"안녕하세요, 전 한국에서 온 XX라고 하고요, 최근 일을 그만두고 유럽을 여행하고 있어요."


유럽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카우치서핑과 히치하이킹이었다. 특히 카우치서핑으로 유럽을 여행한 여행기를 읽고 나서는 ‘그래 이런 게 진짜 여행이지.’라며 현지인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꿈을 꿨다. 하지만 메시지를 계속 보내도 카우치서핑이 처음이고, 추천의 글 하나 없는 나는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 그렇게 카우치서핑을 아예 포기할 무렵, 한줄기 빛과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안녕, 네가 말한 날짜 괜찮은데, 다른 게스트랑 같이 방을 써야 할 거야. 상관없으면 우리 집으로와. 주소는..."


처음 받아보는 “okay” 메시지에 나는 바로 함부르크 행 버스표를 예매했다. 게다가 다른 게스트도 있다니 어색하지도 않고 더 좋을 것이다. 드디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 카우치서핑이 이루어지는구나!

생전 본 적도 없는 나를, 카우치서핑이 처음이라 프로필에 추천의 글 하나 없는 나를 처음으로 재워준 사람은 함부르크의 천사, 나달 아저씨. 그는 30년 전에 시리아에서 독일로 건너와서 이제는 독일에서 산 날이 더 길다고 했다. 아저씨가 간단히 소개해준 방과 거실의 화이트보드에는 그동안 카우치서핑으로 이 집을 다녀갔던 게스트들이 남긴 행복한 메시지가 남아 있었고, 그건 아저씨 인생의 기쁨인 듯했다.


곧 먼저 와 있던 게스트, 미국에서 온 안나가 도착했다. 함부르크에서의 첫날이라고 아저씨는 인도의 난과 비슷한 시리아 식 애피타이저와 구운 연어, 그리고 감자튀김으로 구성된 맛있는 저녁을 차려 주셨다. 공짜로 재워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근사한 밥까지 차려주시는 아저씨는 사람에게 베푸는 게 그저 즐거운지 시리아 술까지 만드셨다.


“카우치서핑하다 보면 딱 잠만 자고 호스트랑 이야기도 안 하고 가는 게스트들이 있거든. 그 아이들은 참 얌체 같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숙박비를 아끼니까 자기들은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인생은 그게 다가 아니거든.”


아저씨의 그 말에 낮에는 함부르크 시내를 돌아다니다가도 해가 질 무렵이면 바로 집으로 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안나와 함께 셋이서 이야기 했는데 안나는 항상 30분 후에 슬그머니 빠져 방으로 들어가 혼자 놀았고, 심심한 아저씨를 걱정하는 오지랖 넓은 나만 아저씨와 함께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시리아에 산 날보다 독일에 산 날이 더 많아. 독일 시민권도 있지만, 여전히 독일은 남의 나라야. 가끔씩 참 외로워."

                              
4년이란 시간 남의 나라에 살면서 가끔씩 주체할 수 없이 외로웠는데, 30년을 살아도 그건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느낌인가 보다. 독일인과 뿌리까지 섞일 수 없는, 그들과 매일 부대끼며 지내도 채워지지 않는 그 느낌. 나만 느낀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뭔가 위안이 되었다.


아저씨는 아침마다 프랑스 라디오를 들어서, 덕분에 아침 먹는 내내 우리는 ‘봉주르’를 들어야 했다. 아랍어, 독일어, 영어까지 3개 국어를 하지만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은 게 가장 후회된다는 아저씨는 그 후회를 끝내려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단다. 그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영어만으로 벅차다며 매번 제2외국어를 배우려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는데 아저씨를 보니 후회하기 전에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같이 좋은 호스트를 만나서 전 운이 정말 좋아요. 고마워요.”

"고맙다고 안 해도 돼. 정말 나한테 고마우면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기회를 놓치지 마. 작은 행동이지만 그게 우리가 사는 곳을 좋게 만드는 일이야. 선 순환을 만드는 거지."


예수님인가? 아저씨는 먹여주고 재워주신 것도 모자라 교훈과 따뜻한 마음까지 안겨 주셨다. 마음이 한창 감동으로 차 오를 무렵 아저씨는 뜬금없는 말을 했다.


“나 게스트들한테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는데 너 참 매력 있고, 좋은 사람 같아. 여행 잠깐 쉬고 독일에 좀 더 있으면 안 돼? 몇 달 동안 여기서 지내도 돼. 너 어차피 일도 그만 두었다며.”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아저씨는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부담스럽도록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정신이 화들짝 깼다.


“너 그 애랑 결혼할 거야?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어.”


독일인과 뿌리까지 섞일 수는 없어 항상 이방인 같다는 아저씨는 이런 부분에서는 뼛속까지 유러피언이었다.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고마운 호스트라 뭐라 말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피곤하다 말하고 방에 들어갔다.


‘내일 당장 다른 데 찾아서 나가야지.’


하지만 나갈 때 나가더라도, 아저씨에게 이 찝찝한 기분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늦게 집에 들어간 나는 나를 걱정하는 아저씨에게 내 기분을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게 좀 이상한 것 같지만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기분 풀어. 우리 집에 머무는 게스트에게 안 좋은 기억을 주기 싫어. 이젠 너를 게스트로만 볼게.”

 
‘게스트로만? 아이고 아저씨, 제발 좀.’


그 이후 덜 따뜻해진 아저씨는 다른 게스트들 앞에서 일부러 날 놀리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 했고, 그런 모습에 난 괜히 미안했다. 아저씨는 내가 떠나는 날 저녁에는 마지막이라고 맛있는 저녁을 만들었고, 내가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함부르크에 하루 더 머무르라고 했다.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게스트의 아침과 저녁까지 다 챙겨주고 신경 쓰는 호스트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사 왔던 머그잔을 선물로 드리고 함부르크를 떠나는 길, 색다른 여행의 기억을 만들어 준 나달 아저씨를 생각했다. 아저씨 때문에라도 함부르크는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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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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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칠레 하우스(Chile haus)와 하펜시티(Hafen city)를 보기 위해 항구로 왔다. 독일 제 1의 항구이자 유럽 제2의 항구인 함부르크의 랜드마크인 칠레 하우스(Chile haus). 단한 군데의 빈틈도 없이 빨간 벽돌로 촘촘히 쌓아 올린 건물에 과연 철저하게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독일인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인간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내면이 왜곡과 과장으로 표현된,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건물’이라는 설명을 보기 전에도 이미 따스함은 느낄 수 없었다. 아름답고 웅장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가득한 칠레 하우스와, 그 건물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마치 거대한 괴물처럼 나를 내려다보았다.

칠레 하우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은 칠레와의 무역거래로 큰 부를 쌓았다. 성공한 무역상이 지은 건물이 가장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란 것이 보여주듯, 빨갛고 네모난 건물이 바다의 한 면을 둘러싸듯 들어서 있는 이 일대는 모두 상품 창고와 무역 회사였다. 괜히 부산에 온 듯 함부르크에 더 정이 갔다.

오래 된 건물에서는 최대한 건물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모든 물건을 옥상에 설치된 도르래를 이용해서 옮긴단다. 무엇보다 독특한 건 문도 없고 정지하지도 않는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눈치를 보다 뛰어들어야 한다. 아름다운 옛 건물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하지만 목이 없는 사람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됐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먼저 차를 수입해 판매했다는 곳은 이제 근사한 카페가 되었다. 터키인이 운영하는 페르시아 카펫 상점이 있고, 콜롬비아에서 직수입한 커피콩으로 커피를 만드는 유명 카페가 있었다. 그 어느 곳보다 수입품을 빠르게 입수하는 곳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하펜시티 근처는 이국적인 상점으로 가득했다.

‘항구 도시’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유흥가는 이곳 함부르크에도 어김없이 존재한다. 함부르크의 거대 어시장 뒤편의 상파울리(SaintPauli) 지역을 지나가면 ‘청소년 통행 금지’ 표지판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함부르크 최대의 유흥가 레파반 (Reeperbahn)이 나타난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야한 간판은 오히려 암스테르담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오후의 햇살 아래 서 있는 간판은 불편해 보였지만 구경하는 재미만큼은 쏠쏠했다. 그러다 그 길의 바로 끝에서 적당히 벽처럼 보이고 싶은 벽과 마주했다.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갈 때처럼, 벽 너머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함부르크의 홍등가로 들어가는 입구. 18세 이하와 여자는 이 너머로 갈 수 없다는 경고가 커다랗게 붙어 있다. 호기심에 살짝 넘어갔다가 출근 준비 중인 여자와 눈이 마주쳐 황급히 돌아 나왔다.

초창기 비틀즈는 5명이였다고 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한 명이 더 서 있다.


사실 이 곳은 하룻밤의 유희를 찾는 사람들뿐 아니라 비틀스 팬들의 성지기도 하다. 이 민망한 간판이 즐비한 거리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비틀스 광장’으로 불리고 비틀스 철제 조형물까지 설치되어 있다. 그 비틀스 조형물이 손바닥보다 작은 속옷만 걸친 여자들의 사진을 마주하고 있는 게 참 우스웠다. 영국에서 건너 온 가난한 무명밴드 비틀스는 1960년부터 2년 간 이 곳 펍에서 노래하고연주하며 실력을 쌓았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영국에서 건너온 가난한 청년들에게 이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스트립클럽과 성인 쇼가 난무하는 이곳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을 것 같다. 전설로 불리는 밴드의 시작은 술 취한 뱃사람들이 드나들던 허름한 펍이었다. 그 대단한 비틀스가 이 거리에서 묵묵히 실력을 기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도 무명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위안이 되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든, 연습하고 실력을 쌓다 보면 기회가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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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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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내내 술과 대마초에 찌든 사람들의 고성방가로 암스테르담은 밤새도록 시끄러웠다. 한 나라의 수도 중앙에 와서 조용한 걸 기대한 나는 너무 순진했나 보다. 아무튼 오늘은 암스테르담을 벗어나 책 속에서 본 이 그림을 찾으러 떠난다. 


4월 초순부터 9월 중순까지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네덜란드의 소도시, 알크마르(Alkmaar)에서는 치즈 시장이 열린다. 생산된 치즈를 검수하고, 그 치즈를 운반하는 모든 과정이 몇 백 년 전부터 해오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곳. 덕분에 매주 금요일 이 작은 도시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35분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는 알크마르. 그리 길지 않은 여정이지만 창밖으로 간간이 보이는 풍차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들이 자아내는 풍경에서 네덜란드 전원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기차역을 빠져나오면 이런 전통 복장을 입은 안내원이 친절하게 지도를 주며 치즈시장이 열리는 바흐 광장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그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나는 다른 관광객들 뒤를 설렁설렁 따라가며 알크마르 시내를 구경한다. 시끌벅적하기만 했던 암스테르담과 달리 조용하다. 그 조용함 덕에 도시의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 이 곳은 내 환상 속의 네덜란드 같구나.'


치즈시장은 10시에 시작하지만 굳이 빨리 갈 필요는 없다. 치즈 거래에 관심이 무척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10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되는 행사를(그것도 네덜란드어로 진행되는) 전부 다 보지는 않는다. 그러니 조금 늦게 도착해도 별 상관 없다. 아무튼 치즈가 원래 둥그런 모양이라는 것을 처음 안 나는 저울 위의 노랑이들이 무엇인지 깨닫는데 몇 초가 걸렸다. 

충분히 디지털로 할 수 있지만, 계량소에서는 굳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큰 저울에, 반대편에는 추를 두고 치즈의 무게를 재고 있다. 계량소에서 먼저 치즈 무게를 확인하면, 밖에서는 검사원이 치즈 검수를 한다. 그리고 그 검사를 통과해 그날의 치즈로 뽑힌 사람은 (휴대폰으로?) 영예롭게 사진을 찍는다. 


사실 가장 재밌었던 장면은 치즈를 어깨에 메고 뒤뚱거리며 걷는 아저씨의 모습. 지게(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다.)도 귀엽게 생겼는데, 그 지게를 어깨에 매면 저절로 뒤뚱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는지 아저씨들이 치즈를 옮기는 모습은 무척이나 귀엽다. 가끔은 치즈가 아닌 사람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구경꾼들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하기도 한다.

충분히 디지털화 가능한 이 모든 절차를 알크마르 사람들은 굳이 아날로그로 진행하고 있다. 현대화된 것이 있다면 광장에 설치해 놓은 대형 스크린과 카메라, 사회자가 들고 있는 마이크 정도. 전통을 지키는 노력이 먼저였던지, 관광이 먼저였던지 어쨌든 매주 금요일 많은 관광객들이 치즈시장에 들른다. 역시 내가 가진 고유의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되나 보다.

 

알크마르는 치즈시장 말고도 볼 게 많으니 바로 가지 말고 더 둘러보라고 사회자는 권하지만, 치즈 거래가 끝난 후 도시는 이윽고 조용해졌다. 덕분에 난 조용히 이 소도시를 즐길 기회를 갖게 됐다.


그녀의 말대로 난 이곳 알크마르에 남아서 치즈 박물관에도 들렀다. 입장과 동시에 치즈 한 조각을 준다. 유럽인들은 도대체 무슨 맛으로 이 치즈를 먹을까? 유럽인들이 보기에 정사각형의 납작한, 아무 맛이 없는 "가짜 치즈"에 익숙한 난 역시나 치즈 박물관에 별 감동받지 못했다. 




사람에 치여, 비싼 물가에 치여 암스테르담에서는 생각도 안 했던 운하 투어 보트에 올라탔다.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신데렐라... 네덜란드 동화는 아닐지라도 그 동화의 집은 이런 모양일 거야.


집, 회사, 광장, 교회... 자신들의 보금자리 아래 항상 물을 두고 사는 사람들. 새삼 이 불모지나 다름없었을 땅에 길을 내고 삶을 이어나간 네덜란드인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 뒤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알크마르에서 가장 낮은 다리 아래를 지나갈 때는 모두가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




한 시간 가량의 운하 투어 후에 이 조용한 도시가 더욱 좋아진 나는 내친김에 자전거를 빌려 알크마르의 교외로 나갔다. 산이 없는 나라인 만큼, 자전거 타기 정말 좋고, 국민들도 자전거 타기 정말 좋아한다. 다리에서 강으로 다이빙하는 젊은 아이들도, 아이를 앞자리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금요일 오후의 여유를 흠뻑 틀기고 있다. 강가를 마주한 어느 집 앞,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조용히 뭔가를 쓰시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내게 조용히 미소를 지어주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네덜란드가 더 좋아졌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교외로 나오니 집집마다 보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금요일 저녁, 가족들이 보트를 타고, 준비해 온 저녁을 먹으며 그렇게 주말을 맞이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가정이 이런 거겠지? (물론 보트는 없어도 된다.)


PS. 암스테르담 중앙역에는 매 30분마다 알크마르에 가는 기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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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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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준 게스트하우스 주소만 달랑 들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는데, 알고 보니 이 일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합법적인 홍등가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튤립과 평화로운 풍차 이미지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매춘 박물관과 SEX SHOW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홍등가를 암스테르담의 관광지 근처에 만들어 놓은 것도 네덜란드 정부의 철저한 계산이겠지만, 대도시 한 복판에 자리한 그 당당함이 더 어이 없었다. 하지만 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홍등가 투어’를 신청해 버렸다.


여전히 대낮같은 저녁 7시, 조금 뻘쭘하게 투어가 시작됐다. 첫 목적지는 숙소를 찾아 헤매다 신기해서 나도 일찍이 들어가 보았던 콘돔 가게. 정말 기발한 모양과 맛(!)을 가진 콘돔이 가득 한 그곳에서 왠지 인간 상상력의 끝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질 무렵 빨간 창 너머로 그녀들이 등장했다. 쇼윈도 너머, 빨간 커튼을 배경으로 속옷만 걸친 그녀들은 섹시한 포즈를 취하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유혹의 눈길을 보내는 게 습관이 된 건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끈적한 눈길을 보낸다. 도대체 왜 내게 혀를 날름대는 건지? 이 일대 내내 이런 가게가 이어졌다. 이들의 사진을 찍는 것은 불법이고, 개중에는 소변을 종이컵에 받아두었다가 사진 찍은 사람의 얼굴에 뿌리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한때는 남성 매춘부들의 거리도 있었지만, 적자를 면치 못해 다시 여성 매춘부의 거리로 바뀌었다는 아주 안타까운 얘기도 들었다.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한 동유럽에서 왔다고 했지만 동양인과 흑인도 거리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각자의 사연으로 이곳까지 왔겠지만, 인신매매 이야기도 들리는 걸 보면 아무리 합법이라도 깨끗할 수는 없나 보다. 인종 별로 나뉘어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그곳은 백화점의 쇼윈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의 시간과 노동을 팔고 돈을 버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지만, 이곳에 있으니 이 세상 어느 것이든 상품가치로 매겨버리는 자본주의의 맨얼굴을 보는 듯했다.


기본 요금은 15분에 50유로이며(더 자세한 이야기는 29금으로 넘어가야 해서 패스!) 어떤 서비스를 얼마나 제공하는지 가격표까지 만들고 정찰제를 실시한다. 15분을 넘기거나 다른 서비스를 원하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설명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몇 백 년 동안 이 거리를 지키고 서 있었을 성당의 바로 맞은편에 헐벗은 여인들이 서 있는 게 정말 웃겼다. 이제는 박힌 돌 신세가 되어 버린 성당이 애처로웠다. 아예 이 일대를 성의 심벌로 만들고자 거리와 건물 곳곳에 여성과 남성의 몸을 상징하는 조형물까지 있다. 거리와 펜스, 벤치에서 야한 상징을 찾는 재미가 월리를 찾는 것처럼 쏠쏠했다. 암스테르담에서 느꼈던 민망함은 간 곳 없고 어느새 난 거리의 모든 곳을 훑고 있었다.

저기 빨간 창 너머, 그녀들이 일하는 곳.

이 매춘의 거리에 진동하는 것 중의 하나는 대마초 냄새이다. 길에서 대마초를 피는 것은 합법인데 맥주를 마시는 것은 불법인이 나라. 도대체 그 기준이 뭘까? 전 세계 사람들이 대마초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이곳에 온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튤립과 풍차에 대한 이미지로 네덜란드에 온 사람은 정말 나뿐이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동안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든 그중 한 명은 꼭 대마초를 말고, 그걸 함께 있는 사람들과 공유했다. 네덜란드 인근 국가에선 대마초만 사러 차를 끌고 암스테르담으로 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중 과연 대마초가 좋아서 오는 사람들이 많을까, 금지된 것을 한 번 해 보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을까?


온갖 안 되는 것으로 점철된 우리의 십 대. 머리카락은 어깨를 넘지 말고, 학교에서 만화책을 보면 안 되고, 치마는 무릎 위로 올라가면 안 되고, 파마는 하지 말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머리를 길러보려 발악했고, 고등학생에게도 술을 파는 술집을 발견하면 쾌감을 느꼈다. 나중에야 알았다. 단지 하지 말란 것들을 하고 싶어서 내가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음을. 막상 이십 대가 되고 보니 그때 하지 말란 것들에 관심이 사라졌다.


금기를 개방시키면 어떨까? 우리가 문제라고 말하는 그것을 마음껏 하게 내버려 두면 정말 문제가 될까? 범죄가 아니고서야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것을 해 보면 우선은 호기심이 사라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든 말든 그것은 개인의 몫이 된다. 집안의 반대가 없었더라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렇게 불타오를 수 있었을까? 


네덜란드는 금기를 비즈니스로 만들었다. 최소한의 제한만 남겨두고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에 맡겨 버린 셈이다. 세수증대, 관광산업 개발. 모두 다 좋지만 자국민을 그만큼 성숙한 인간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 자부심이 어마어마하다.

매춘 박물관

PS.

1. 내가 묵으려 했던 호스텔은 직업여성들을 위한 운동도 한다는 기독교계 게스트하우스인 Shelter city (주소: Barndesteeg 21, 1012 BV, Amsterdam, Netherland). 한 달 정도 암스테르담에 있을 예정이 있다면 한 번 가보는 것도 괜찮다.


2. 암스테르담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게스트하우스의 네덜란드 직원과 친해지게 됐다. 우연히 주변의 홍등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너 저기 홍등가에 가 본 적 있어?"

 "응. 어렸을 때 딱 한 번. 궁금해서."

 "오 정말? 어때?"

 "정말 별로 였어. 그 여자들한테 그건 그냥 일일 뿐이잖아. 아무 반응도 없고 로봇을 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뭐 하고 있나 싶더라고. 나 그 이후로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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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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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