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기념탑, 베를린 대성당, 샤를로텐 부르크 궁전을 둘러본 시간


베를린에 있는 동안은 베를린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땡땡이와 함께 여행 다니기로 했다. 땡땡이는 만나던 날부터 '상수시 궁전'을 보러 베를린 근처의 포츠담에 가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에 쫓겨 베를린 시내에 있는 '샤를로텐 부르크 궁전'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궁전으로 걸어가는 길. 어느 지하철역에서 내려 어디로 걸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베를린의 전승기념탑을 발견했다. 빽빽한 가로수와 그 도로의 끝에 서 있는 탑. 파리의 개선문과 샹젤리제가 떠오르는 풍경이다. 처음엔 1873년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과의 전쟁에서 이긴 기념으로 만들어진 기녑탑이었다. 원래 있던 곳에서 나치가 이곳으로 옮기고, 마지막으로 히틀러가 금장식도 더했다고 한다. 전승기념탑과 그 주위에 있는 여러 기념비는 승리의 의미도 있지만, 여러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독일인은 무엇을 위해 싸운 걸까? 영광은 아니더라도 추모는 받고 있을까?

공격당한 나라의 희생자들에게는 당연히 추모를 하겠지만, 독일 같은 경우는 어떨까? 두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독일에서는 그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도 껄끄럽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무슨 잘못일까? 단지 국가에서 일으킨 전쟁이라는 이유로 전쟁에 참전한 일반 병사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명예도, 자랑스러운 조국도 없는 그 자리...




샤를로텐 부르크 궁전은 왕비 소피 샤를로테를 위해 지어진 여름 별장이라고 한다. 소박해 보이는 궁전 뒤로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하지만 궁전 한 켠은 아쉽게도 보수공사 중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처럼 방은 벽화와 천장화로 가득 채워져 있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궁전 곳곳을 매우고 있는 반짝거리는 금장식들. 여름 별장마저도 이렇다면 도대체 왕과 왕비가 살던 궁전은 어땠을까?


이곳, 샤를로텐 부르크 궁전에도 아시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도자기가 상당히 많다. 덴마크의 왕족 별장에서도 중국과 일본 도자기를 많이 보았는데... 외국의 물건을 수입하고, 전시하는 로얄패밀리의 취미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가보다.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궁전 내부를 찍으려면 입장할 때 사진을 찍겠다는 이용권을 사야 된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난 계속 찍었는데 운이 좋았다. 


드디어 궁전을 다 둘러보고 정원으로 나왔다. 창문을 지날 때마다 밖으로 보이는 정원이 아름다워 얼른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계획대로 잘 짜인 도로를 보는 느낌이다. 조깅하는 사람, 꽃을 찍는 사람, 호수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쬐고 있는 사람..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워킹투어 때는 지나가기만 했던 베를린 대성당. 자세히 보고자 다시 찾아왔다. 대성당에 들어오기 전 땡땡이와 밖에서 나눴던 어지러운 대화가 머리 속에서 사라지도록 만드는 경건한 대성당의 내부. 땡땡이는 천주교 신자답게 촛불에 불을 붙였다. 신자는 아니지만 교회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가만히 서서 대성당 내부의 둥그런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대성당 돔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길, 신기한 광경을 발견했다.(그림인지 실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진까지 찍었던 걸 보면 실제라고 생각한다.) 독일 기독교에서 꽤 유명한 분이 돌아가셨는지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벽 너머의 관 안에 한 분이 누워 계셨다. 그리고 그를 향해 사람들이 묵념을 하고 기도를 했다. 독일 기독교의 성인이시겠지만, 죽은 사람이 떡 하니 보이니 기분이 묘했다. 이전에 본 미국 드라마에서 장례식장 정중앙에 돌아가신 분을 모신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그걸 실제로 보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시체'에 대한 거리낌이 우리보다는 적은가 싶기도 했다.

드디어 올라간 대성당 돔. 근처의 TV타워 외에는 높은 건물이 거의 없어 베를린 시내를 둘러보기에 딱 좋다. 맑은 날씨가 자주 없다는 독일 답게 날씨는 그리 맑지 않지만, 그래서 더 독일스러운 풍경이다. 360도 어느 방향이든 독일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어서 참 좋은 대성당의 돔. 곳곳에 칠이 벗겨져 세월의 흔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대성당 돔의 벽 너머로 구불구불 흐르는 라인강이 참으로 운치 있다.


대성당을 나가는 길, 미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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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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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만난 변태 덕에 잠을 제대로 못 자 기분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얼굴에 와 닿는 베를린 아침 공기는 무척 상쾌했다. 


게스트하우스에 짐만 우선 맡겨두고 베를린 프리워킹투어를 하기 위해 나갔다. 메트로를 찾아가는 길이 꽤나 복잡하다. 이 글씨는 뭐라는 거야? 그리고 표는 또 왜 이리 비싸? 도착하는 곳이 몇 정거장 안 된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아주 대범하게(?) 무임승차를 했다. (덴마크에서 배운 나쁜 버릇이...)

베를린 TV타워

프리워킹투어가 좋은 이유는 나처럼 아무 정보 없이 여행 온 사람들이 아주 간략하게 도시의 역사와 유명한 것과 장소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2시간 내외로 진행되어 시간을 그리 잡아먹지도 않는다. 투어가 끝날 때 웬만하면 모두가 가이드에게 감사의 의미로 '팁'을 주기에 완벽히 무료라고는 할 수 없다. 


약간 길을 헤맨 후 도착한 프리워킹투어 시작 장소는 베를린 관광의 중심지로 보이는 알렉산더 광장 (Alexander platz). 나를 포함해 투어에 있는 사람들은 총 여섯 명. 2명은 뉴질랜드에서 온 6개월째 세계 여행 중인 커플이고, 3명은 호주에서 온 친구들이다. 늘 그렇듯이 새로운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영어 억양이 낯설어 항상 긴장하며 귀 기울인다. 근데 이 오세아니아에서 온 아이들은 지금껏 들은 발음 중 최악으로 못 알아먹을 지경이었다. 왠지 말을 하다가 마는 느낌이랄까...

베를린 성마리아 교회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빨간 벽돌의 성 마리아 교회와 베를린의 TV타워 Fernsehturm를 눈으로 훑었다. 무려 368.06m라는 TV타워에는 전망대도 있다고 하지만, 투어가이드는 너무 비싸다며 추천해 주지 않는다.


베를린 대성당 앞의 잔디밭에는 드러누워 햇볕을 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낭만적인 모습, 하지만 낭만을 모르는 나. 

 '저 아이들은 유행성 출혈열'을 모르나? 뭐라도 깔지...' 

무슨 행사가 있는지 분장하는 사람들, 멀리서 들리는 스코틀랜드 전통악기 소리...

다시 한번 유럽에 있음이 실감 난다.












그렇게 베를린 돔과 5개의 유명한 박물관이 위치해 있는 박물관 섬(서울의 여의도 같은)을 지나 바다가 없는 베를린에서 만난 도시 비치. Charlie's beach. 근처의 찰리 체크포인트의 이름을 딴 곳인데... 파리 비치부터 느꼈던 거지만, 참 없어 보인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 우리는 누구는 맥주를, 누구는 콜라를, 나는 걷는 내내 눈에 띄어 군침 돌게 만들었던 독일의 소시지를 먹었다. 일명 커리 부어스트 (Curry Wurst.) 소시지 위에 케첩과 카레가루를 뿌린 의외의 조합이지만, 꽤 맛있다.

도시의 모래사장, 찰리 비치Charlie's Beach

 "이제 투어는 끝이 났어. 내가 도움이 됐다면, 팁 좀 줄래? 안 그러면 우리 회사에서 날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투어 내내 피곤한 기색을 보이던 가이드는 마지막 한마디로 우리의 뒷담화거리가 되어 버렸다. 


왠지 헤어지기가 아쉬웠던 우리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위치한  파리지엥 광장의 어느 술집에서 맥주를 한 잔씩 했다. 그곳에서 베를린의 로컬 맥주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를 시켜 마시면서 어제까지도 몰랐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 이 뉴질랜드 커플은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 남자가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했단다. 8년을 사귀고, 결혼 약속을 한 후 6개월째 세계 여행 중인 이 커플은 아직도 서로를 참 사랑스럽게 쳐다본다. 보는 사람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이 로맨틱한 커플. 반면 호주에서 온 대학생 친구들은 아직도 10대처럼 큰소리를 지르며 논다.

베르린 대성당 근처에 있던 로마신화 '넵튠'신을 조각되어 있는 분수

이들과 어울려 브란덴부르크 근처 공원을 어기적 거리며 돌아다니던 중, 호주 친구들 중 한 명이 호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낸다. 암스테르담에서 왔다더니 대마초를 가져왔다. 이윽고 약발이 올라오는지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우리랑 같이 놀자며 미친놈처럼 소릴 지른다. 

"Ok."

 그의 소리에 같이 놀자며 순식간에 우리에게 합류한 어느 동양인 남자.

 "I am from Korea."

 "한국이라고요?"


한 달 만에 처음 만난 한국인이 어찌나 반갑던지... 그렇게 만난 친구는 대학교 반수 준비와 입대를 기다리고 있는 나보다 한참 어린 대학생 땡땡이었다. 여행 시작한 지 이제 이틀째인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인종 차별도 당한 것 같고 해서 기분이 별로던 참에 우리를 만났단다. 

"근데 누나 얘네들 뭐라는 거예요?"

"몰라, 나도 거의 못 알아들어. 그냥 대충 듣고 말하고 있어."

브란덴부르크 문

그렇게 밤거리를 일곱 명이서 싸돌아다니면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처음에 쭈뼛거리던 땡땡이가 서서히 주당의 모습을 보이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맥주를 사서 들고 다니다 메트로 안에서 마셨는데 알고 보니 불법이란다. 이 호주 아이들이랑 몇 시간 같이 있으니 나도 살짝 맛이 가는 듯하다. ^^


더운 여름날 밤 한국에서처럼 슈퍼마켓 앞에 설치된 간이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여기가 한국인지 베를린인지 모르겠다. 매너 좋은 땡땡이는 늦은 밤 누나 혼자 가면 안 된다며 게스트하우스까지 날 데려다줬다. 베를린에서 무얼 본 날이 아닌, 새로 만난 친구들과 정신없이 논 첫 번째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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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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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보던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항상 내 눈물을 쏙 빼던 건 바다거북이었다. 어린 나를 거뜬히 등에 태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그 거대한 거북은 죽을힘을 다해서 태어났던 바닷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쉬지도 않고 모래를 파고 구덩이를 만들어 거기에 알을 낳았다. 모래로 알을 다시 덮은 거북이는 왔던 바다로 돌아갔다. 거기까지만 봤으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알을 낳고 혼자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박수를 쳤을 텐데… 카메라는 어김없이 그 이후의 모습을 비췄다.

알에서 깬 아기 거북은 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해 가는데, 그 사이에 그 어린 거북이를 노리는 것들이 곳곳에서 출몰했다. 걸음을 뗀 지 불과 몇 분도 안 되어 반이 잡아 먹혔다. 그렇게 살아남아 바다에 도착하는 아이들은 불과 10%나 됐을까? 그 장면은 내 동심을 일찍 파괴했다.

호주의 브리즈번 Brisbane에서 4시간 정도 차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몬 레포스 Mon Repos라는 곳이 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대 농장이 있는 분다버그 Bundaberg라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동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돌아오듯 매년 11월에서 12월 사이 멘 레포스에서 태어난 바다거북이들은 알을 낳으러 다시 이곳에 돌아온다.(매년 11월이라니 좀 웃기다. 거북이들이 달력을 보고 ‘11월이 되어 가잖아? 슬슬 몬 레포스로 갈 준비를 해야겠어.’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고속도로를 벗어나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거북이 센터는 빛도 최소로 한 채, 주변의 다른 시설들과 꽤 떨어져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바다거북을 보호하기 위해 센터에서는 어미 거북이 알을 낳은 순간부터 알에서 깬 거북이가 바다로 갈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언제 바닷가에 오는 거야 거북이 마음이지만 하루에 이곳을 찾아오는 거북이도 그리 많지 않다. 미리 예약해야만 올 수 있지만, 그마저도 거북이가 바빠서 오지 못한 날엔 허탕 칠 수밖에 없다. 내 앞의 모든 팀은 거북이를 보고 행복한 표정으로 센터를 나갔다. 못 볼지도 모른다는 허탈감이 날 엄습하고, 시간은 이미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그녀가 왔어요!!”

그녀가 왔다니…첫사랑이라도 만난 듯이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센터 직원이 쓴 헤드렌턴 빛만이 주위를 밝히고, 앞사람을 이정표 삼아 좁은 숲길을 걸어갔다. 10분쯤 걸었을까? 밤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바다에 바람과 나무가 만드는 만드는 묘한 소리만 울렸다. 그리고 칠흑같이 검은 바다 위, 새하얀 보름달이 무심하게 떠 있었다. 달이 뱉어내는 환한 빛은 바다 위에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었다. 고흐 그림보다도 더 신비로운 이 장면만으로도 기다림을 보상받은 것 같았다.


 “쉿 조용히 해 주세요. 저기 보여요? 거북이가 지금 알 낳을 자리를 탐색하고 있어요.”

모두가 숨 죽이고 조용히 거북이를 향해 걸었다. 내 손바닥만 하게 보이던 거북이가 점점 커지더니 드디어 내가 다큐멘터리 속에서 보던 그 모습으로 나타났다. 내가 쭈그리면 여전히 거뜬하게 나를 태울 수 있을 것 같은 거북이의 몸길이만으로도 놀라웠다. 사람들은 조용히 거북이를 둘러쌌지만, 거북이는 신경도 쓰지 않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구덩이를 파는 힘 좋은 뒷발에 튀는 모래가 사람들의 얼굴을 때렸다.

갑자기 땅 파기를 멈춘 거북이, 갑자기 눈앞에 새하얀 것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거북이가 드디어 알을 낳기 시작했다! 알 낳는 걸 본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볼 줄이야! 게다가 내 눈앞에서!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모두 숨죽였다. 끈끈한 액체와 함께 거북이의 몸에서 떨어지던 그 하얀 알은 거대한 스펀지처럼 모든 저항을 흡수했다. 그 먼 바다를 헤엄쳐 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북이. 주변의 부산스러움과 관계없이 할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정말 어른 같았다. 

근데 기분이 이상하다. 이건 마치 산부인과 분만실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아기 낳는 걸 구경하는 것과 별 다를 것 없지 않은가? 어느 날 지구로 외계인이 쳐들어 와 ‘인간’이란 것들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구경한다며 분만실에 우르르 몰려와 있는 것처럼. 하긴 거북이 입장에서 우리는 괴상망측한 외계인일 거다.

 

“몇 년 전에 몬 레포스에서 태어났던 xx예요. 다시 돌아와서 알을 낳네요.”

“우와!”

잘 교육받은 방청객처럼 우리는 감탄했다. 거북이가 땅을 팔 때부터 땅을 다시 덮을 때까지 센터의 직원 아니 연구원은 사람들로부터 거북이를 보호했다. 움직임을 통해 몸상태를 확인하고, 몸길이를 재고, 거북이의 신원파악을 하며 열심히 일하는 그녀. 한밤중에 거북이를 관찰하는 것이 그녀의 직업이지만, 거북이를 향한 눈빛과 배려, 몸짓에서 직업과 별개로 동물을 참 사랑하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호주에서 본 사람 중 가장 열심히 일하던 센터의 직원

알을 다 낳은 거북이는 땅을 덮고 바다 쪽으로 몸을 틀었다. 확실히 거북이는 지쳐 보였지만, 이럴 시간이 없다는 듯 다시 바다로 가기 위해 느릿느릿 걸었다. 사람들은 홍해 바다가 갈라지듯 거북이에게 길을 내주었고, 그녀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올 때처럼 그렇게 갔다. 처음 바다에 도착했을 때보다 더 높게 떠오른 달은 어느새 거북이의 등을 비추었다.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의 비호를 받으며 어미 거북은 그렇게 검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바다, 보름달, 방금 출산을 마친 바다거북

인간인 내가 그곳에 서 있는 게 그렇게 거추장스러울 수 없었다. 어떻게 사진으로 담아보고 싶었지만 사진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의 반의반도 담지 못했다. 그 먼 길을 헤엄쳐서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끝내고 가는 어미의 뒷모습은 위대했다. 게다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바다로 들어가는 시크함까지... 11월 말의 자정이 넘은 시골의 바닷가. 사람들은 모두 떠났는데 난 거북이가 사라진 바다와 보름달을 계속 보았다.



* 11~1월은 바다 거북이 와서 알을 낳고 2~3월 사이 아기 거북들이 부화한다. 방문 시기에 따라 알 낳는 걸 보거나 부화하는 걸 볼 수 있다. 여행사에도 '몬 레포스 거북이 투어'가 있는데 그건 아무래도 좀 비싼 것 같고, 센터 홈페이지에서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다. 

https://www.queensland.com/en-sg/attraction/mon-repos-turtle-centre


*참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GGEY4_8tLQ&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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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호주 | 썬샤인_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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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아우구스타 (Port Augusta)

브리즈번을 떠난 후 약 1,500km를 달려서 겨우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포트 아우구스타에 도착했다. 오후 4시의 온도계는 여전히 40도를 가리키고, 거리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가 않는다. 다음날 오전 밖을 나가보니 브리즈번에서는 많이 볼 수 없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원(래) 주민들 에보리진(Aborigin)이 하나둘 눈에 띈다. 처음에는 흑인들이 유독 많구나 싶었는데, 확실히 아프리카계 사람들과는 다른 체형에 비로소 애보리진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됐다. 호주 정부는 에보리진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에게 지원금도 주고, 살 곳도 마련해 주지만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인지, 유목민으로 살던 뿌리를 잃어버려서인지 그들은 길가에 말 그대로 퍼질러 앉아 멍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간혹 그들의 멍한 눈과 마주칠 때면 괜히 움찔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가정폭력예방센터와 알코올중독예방센터가 몇 군데나 있고, 거리 곳곳에는 폭력과 음주를 줄이자는 포스터가 붙어 있던 것이었다. 가정의 경제력과 가정폭력 사이에는 슬프게도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까 불안했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SA) 주에서 나름 큰 항구가 있는 도시지만 30분 남짓 걸으면 도시 전체를 거의 다 볼 수 있다. 이름처럼 큰 항구가 있어서 SA주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의식주를 공급받는 통로이지만, 도시는 정말 휑하다. 다들 나처럼 휴가를 떠난 건지 너무 더워 다들 건물 안에 있는 건지... 다리 밑, 나무 아래, 그늘진 거리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애보리진 사람 몇몇을 본 게 다다.

포트 아우구스타의 멈춰있는 시계

오른쪽 다리의 이름은 1904년에 건설된 Great Western Bridge 였는데 이름을 보는 순간 참 재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리 안내판에 누군가 욕을 적어놨더랬다. 

뼈대만 남은 배
염전이 있던 곳은 아닌데 더운 날씨에 바닷물이 말라간다

시내를 돌고 포트 아우구스타의 전경을 보고자 가까운 Hancook's lookout으로 가는 길. 바닷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소금만 있다. 고속도로에서 봤던 그 소금 호수가 이곳에는 소금 바다의 모습을 하고 있다. 눈밭과도 같은 소금은 이곳의 날씨를 다시 한번 내게 상기시킨다. 한국인에게는 웃긴 이름의 한쿡 룩아웃. Hancook이라는 사람의 성을 딴 이곳은 갈대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구릉지대이다.

Hancook's Look out에서 보는 포트 아우구스타의 바다와 만


울룰루-카타 튜타 국립공원 (Uluru - Kata Tjuta national park)

아침부터 꾸물거리던 하늘에서는 결국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옆에서 하루를 자고 울룰루로 달리는 길, 울룰루와 가까운 휴게소에서 멀리 울룰루의 모습이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큰 바위라고 했던가? 괘 먼 거리에서도 보이는 울룰루는 화산이 터지고 난 후의 산의 모습 같다.

울룰루만 보러 오는 외국인들이 많은지 울룰루까지 가는 길에는 왼쪽으로 운전하라는 웃긴 표지판을 자주 볼 수 있다.

국립공원답게 울룰루 근처에는 아주 큰 단 하나의 리조트가 있었고, 놀랍게도 쇼핑몰과 다양한 레스토랑과 그곳을 잇는 셔틀버스까지 운행 중이었다. 울룰루 근처에서 잘 수 있는 곳은 이 곳뿐이라 이곳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울룰루를 보기 위해 나왔다.

울룰루 국립공원 내부로 들어가려면 3일 동안 출입이 가능한 표(3일이 가장 짧은 것.)를 사야 한다. 유명한 곳에 오니 모든 게 다 돈이란 생각에 갑자기 짜증이 몰려왔다. 아무튼 출입 사무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울룰루와 가까워진다. 

평평한 땅 위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바위. 가랑비는 바위의 홈 곳곳을 타고 내려와서 작은 폭포를 만들며 돌을 타고 흘러내린다. 먼 옛날 유목민으로 살던 애보리진은 이곳, 울룰루를 발견하고 신성하게 여겨 울룰루 꼭대기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런 그들 앞에 문명이랍시고 갑자기 나타난 서양인들이 얼마나 위협적으로 보였을까? 그리고 보호라는 이름 아래 그들이 살 곳을 '지정'해 주고 나머지 땅을 마음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그 과정에서 당연히 물리적 충돌은 있었고, 울룰루 내의 문화 센터에서는 그때 있었던 일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다. 

울룰루

 주변을 이루고 있는 갈대인지 뭔지 모를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울룰루는 묘한 인상을 준다. 이 황량한 땅에 어떻게 그렇게 큰 바위가 덩그러니 있는지... 선사시대 사람들의 흔적을 동굴에 그려진 벽화에서 발견했던 것처럼 울룰루 한 벽에는 원주민들이 그렸던 벽화가 남아 있다. 그리고 제사 음식을 준비하던 그을음이 남아 있는 부엌도 남아 있다. 울룰루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 수도 있지만, 왠지 가까이서 보니 그 신성함이 덜한 느낌이랄까. 울룰루를 끝내고 내 생각엔 더 아름다웠던 카타튜타로 향했다.

내리는 비에 울룰루 곳곳에는 작은 폭포가 형성되었다.


카타 튜타의 전경

카타튜타 역시도 거대한 바위인데, 둥그런 모래 바위가 덩그러니 있었던 울룰루와 달리 더 생동적인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거대한 협곡의 모습으로 혹은 낮은 산과 같은 모습으로. 울룰루와 달리 이곳은 그 위를 올라갈 수도 있다. 높은 곳에서 보는 울룰루-카타 튜타 국립공원의 모습은 또 달랐다. 사막지대에 덩그러니 자리한 모래 바위들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 유목민이었던 애보리진이 사막을 헤매다가 이곳을 발견하고 얼마나 놀라움과 감사함을 느꼈을지 새삼 생각했다. 카타튜타에 오면서부터 내리던 가랑비는 결국 비바람으로 바뀌었다. 

일출과 일몰을 보러 다음날 다시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비는 다음날까지도 그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내리는 비로 밤이 되면 울룰루 주변을 주변을 빛으로 밝히는 루미나리에 "Field of Light Uluru'도 취소되었다. 비는 정말 밤새도록 내려서 텐트가 무너지지 않을까 반 걱정하면서 잠을 잤다.


호주에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웠던 킹스 캐넌(Kings Canyon) 절벽

울루루에서 메인 고속도로인 Stuart highway를 이용하면 노던 준주의 주도인 앨리스 스프링스로 갈 수 있지만 왠지 아쉬워서 다른 길로 셌다. 노던 준주의 울룰루, 앨리스 스프링스를 포함해 레드 센터(Red center)라고 불리는 지역 안의 킹스 캐넌. 울룰루에서 3시간쯤 운전했을까, 도착한 그곳은 아름다운 붉은 절벽이었다. 킹스 캐넌 전체를 볼 수 있는 6km 트레킹을 하기로 하고 절벽을 올랐다. 갑자기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피곤함이 확 밀려왔지만 무심코 돌아봤을 때 날 반기는 그 장관에 힘을 얻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10분 정도 올라간 계단의 끝에서 만난 킹스 캐넌은 정말로 대박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행복했던 건 앞으로 6km 동안 이 아름다운 절벽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 지질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사막과 산이 맞닿은 경계라는 이곳에서는 정말로 진기한 풍경을 많이 볼 수 있다. 분명 한 곳에 위치한 식물인데 불과 30cm 차이로 내 눈에도 전혀 다른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어떻게 돌이 이런 모양을 하고 구부러져 있을까. 어쩜 이렇게 절벽의 층이 선명하게 남아 있을까. 어제 내린 비는 곳곳에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고, 마른 절벽과 묘하게 대비되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혹은 성경 속의 어떤 장면 같기도 했다. 번개를 맞아서인지 날씨가 워낙 덥고 건조해서 그런지 검게 타버린 나무와 돌들을 볼 수 있다. 두 협곡이 마주한 곳에 위치한 폭포는 '에덴의 정원'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하고 있다. 거의 3시간 정도 걸린 트레킹이 정말 하나도 지치지 않았던 건 순전히 이 엄청난 풍경 덕분이다. 

폭포 '에덴의 정원(Garden of Eden)'

개인적으로는 울룰루보다 훨씬 몇 배나 아름답고 추천하고픈 곳이지만, 왜 덜 알려져 있는지... 아무튼 여전히 호주 아웃백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엄청난 풍경을 보는 행복을 느끼게 해 준 곳이다.


전날 내리던 비는 밤이 되자 다시 줄기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킹스 캐넌 리조트의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자던 우리는 눈뜨자마자 텐트가 무너지지 않도록 텐트를 붙들어야 했다. 밤새도록 이어진 비바람에 킹스 캐넌이 연결된 모든 도로는 다 물에 잠겼고, 리조트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 모두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 우리야 괜찮지만 다음날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비행기를 타야 했던 사람들에겐 정말로 어이없을 일. 그것을 무시하고 나간 차 2대는 물에 잠긴 도로에 빠져서 구조대를 기다려야만 했다. 화가 잔뜩 난 사람들을 이해시키려는지 킹스 캐넌의 보안관은 물이 불어서 폐쇄된 도로의 사진을 보내줬다. 분명 사막지대인데 한 번 비가 오면 무섭게 내리는 이 곳. 이틀까지만 해도 40도에 육박하던 곳에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소년탐정 김전일」의 단골 주제처럼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됐다. 정말 자연은 아름답고도 무섭다. 아무튼 덕분에 하루 동안 아무 곳에도 안 가고, 맥주 마시고 독서하고 카드놀이하며 푹 쉬었다. 모든 사람들이 강제적으로 하루 더 묵어갈 수밖에 없어서 리조트는(비록 사람들에게 반값 혜택을 주긴 했지만) 큰 이익을 보았다고 한다. 


진정한 아웃백 여행, 비포장도로 100km 달리기

킹스 캐넌에서 나와 레드센터의 다른 국립공원을 들르려고 했으나 그곳으로 가는 길은 비 때문에 여전히 막혀 있었다. 그래서 왔던 길로 되돌아 가야만 했는데 그게 지겨웠던 우리는 다른 도전을 했다. 메인 고속도로로 빠지는 100km의 비포장도로 지름길을 발견했다. 도로 통제 표시는 없다. 어제 엄청나게 내렸던 비로 길 곳곳은 큰 물 웅덩이가 여기저기 생겨 있다. 완벽한 4륜 구동 차는 아니기에 큰 물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웅덩이가 깊어 보이는 곳은 직접 내려서 얼마나 깊은지 확인해 보기도 했다. 우리 전에 지나갔던 차들의 바퀴 자국을 보며 그들이 간 길을 따라가기도, 그 길을 피해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100km를 2시간에 걸쳐서 빠져나왔다. 덕분에 차는 엉망이 되었지만, 제대로 된 아웃백 여행을 한 기분이다.(내가 운전을 안 해서 그런 걸까? ㅋ) 이 100km 덕분에 포장도로가 얼마나 은혜로운 것인지 깨달았다. 나중에 메인도로를 통해 킹스 캐넌에서 앨리스 스프링스로 도착한 여행자들과 만났는데 그들은 3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시간도 아끼고, 제대로 된 아웃백 로드트립을 하고... 3번 세차를 한 것만 빼면 차도 다치지 않았고... 뿌듯하다. 

앨리스 스프링스의 관광안내소 앞. 우리가 타고 온 길은 비로 폐쇄된 도로였다. 근데 정작 도로 양쪽 끝에는 아무 표시가 없었다. 괜히 힘든 길이 아니었다.


유령 도시 앨리스 스프링스

호주의 노던 준주의 도시, 이름도 예쁜 앨리스 스프링스. 하지만 도시의 모든 곳은 다 문이 닫혀 있었다. 박물관, 미술관, 가장 큰 쇼핑몰도 문이 다 닫혀 있었다. 도대체 이 도시 사람들 모두가 휴가를 떠났단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앨리스 스프링스로 휴가 오는 사람들에게 장사하는 최소한의 사람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심지어 단 한 군데의 술집도 식당도 문을 열지 않는다. 앨리스 스프링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애보리진의 닷 패인팅(Dot Painting) 갤러리에 제일 가 보고 싶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문 연 게 없다. 어쩜 이럴 수가.. 호주 중부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들릴 수 밖에 없는 곳이 앨리스 스프링스인데... 텅 빈 도시에는 다시 애보리진들만 거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굳게 잠긴 도시에 아직 생김새가 익숙하지 않은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건 여전히 겁이 난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신경 쓰는 것도 괜히 겁내 하는 것도, 그리고 안타까워하는 것도 나의 선입견이겠지. 정작 그들은 나의 동정 따위 필요 없이 행복할 수도 있는데... 옛날 같으면 신기하다며 마구 셔터를 눌렀을 나지만, 그 사람들을 나와는 '다른 인간'으로 여기고 신기해하며 사진 찍는 그 행위가 얼마나 큰 무례인지 깨닫고선 웬만하면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 

식물원에 꽃은 하나도 없고 말라가는 나무만 있다.
식물원의 유일한 볼거리, 야생 캥거루
안작 힐에서 바라보는 앨리스 스프링스

그나마 도시에서 갈 수 있는 식물원도 관리의 손을 놓은 건지 황량하기 그지없다. 꽃은 찾아볼 수도 없고 말라버린 나무만 가득하다. 식물원의 철골 구조물도 꽤 오랜 기간 녹이 슨 흔적이 역력하다. 도시 안에 있는 식물원인데도 더 사막 같은 이 느낌은 뭘까. 사람의 손길이 없어서인지 운 좋게 야생 캥거루를 볼 수 있었다.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가장 높은 안작 힐 (Anzac Hill)에 올라가면 작은 도시의 전경을 볼 수 있고, 전쟁기념비도 있다. 호주가 지금껏 참전했던 전쟁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함께 있는데 그중에 한국전쟁도 포함되어 있다. 호주 중부 그 내륙의 중심에 위치한 도시라 그런지 도시에서 뻗어나가는 모든 길의 양쪽 어귀에는 산이 문처럼 도로를 감싸고 있다. 아무래도 때를 잘못 맞춰온 느낌이다. 다음에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북적북적한 사람 사는 도시를 보고 싶다.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15분 정도 차로 이동하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Simpson Gap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당일치기로 Omiston Gorge와 Ellery Creek을 다녀오라고 친구가 추천해줬는데 결국 가 보지를 못했다. 킹스 캐넌에서 하루 더 묵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그 비바람의 여파는 이곳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날씨는 맑았지만, 도로는 통제되어 근처에 가 보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지루함을 안겨준 도시 앨리스 스프링스를 떠나서 4일이 지나 브리즈번에 도착했다.


*아웃백여행 길 위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로~!

http://flyingstar.tistory.com/5


Posted by 돌아온싱언니

브리즈번에 있을 때는 모르겠는데, 브리즈번만 벗어나면 새삼 느낀다. 이 나라가 얼마나 넓은 지를. 조금만 시내를 벗어나면 허허벌판이 펼쳐지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6시간을 가도 아직 퀸즈랜드 주 남쪽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정말 '질린다 이 나라.' 싶었다.


한국과 날씨가 반대인 호주는 12월이 한여름이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이해 2주간의 일정으로 브리즈번에서 다시 브리즈번으로 돌아오는, 호주 아웃백 캠핑 +로드트립을 떠났다. 큰 도시를 제외하고서 대중교통이란 걸 아예 찾아볼 수 없는 호주이지만, 호주 전역이 고속도로로 잘 연결되어 있어서 차를 타고 호주 전체를 몇 달씩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곳에도 캠핑장이 있다니!'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곳곳에 유료 캠핑장과 무료로 캠핑할 수 있는 공유지도 널려 있다. 그야말로 운전하고 가다 지치면 텐트 치고 잠자기 딱 좋은 환경. 

광활한 대륙을 찍고 싶었는데 로드킬 당한 캥거루도 같이 찍혔다...

첫날은 아웃백 트립에 설레어 모든 길이 그저 신기하지만, 이튿날부터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를 떠나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시골길과 호주 평야와 사막의 지평선만 끝도 없이 이어진다. 차 내부 온도는 40도를 가리키고, 몇 백 km를 달려도 별다를 것 없는 풍경이 하루 종일 지속되니 좀 힘들어진다.

호주 내륙을 달리는 기차 (정말 길다..)
SA주의 소금 호수 Hart. 더운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눈밭인 줄 알았다;; (소금 호수를 처음 봐서..)

특히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푹푹 찌는 날씨는 기본이고,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오직 고속도로만 길게 뻗어 있다. 그래도 내가 상상하던 모래사막이 아니라 붉은 땅에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Bush(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미개간지 - 출처: 네이버 사전)라고 불리는 황량한 사막이 몇 시간 내내 펼쳐진다. 300km를 달려야 겨우 만날 수 있는 마을. 사실 마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로드트립 여행자들을 위한 주유소, 편의점, 모텔이 있고, 10가구 남짓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예전 미국 서부 영화에서 보던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래바람과 낡아빠진 주유소 간판이 인상적이다. 황량한 사막 마을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던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는 이곳과 아주 잘 어울렸다. 고속도로에서는 아예 불통이던 휴대폰은 마을에 잠깐 들르면 안테나가 선다. 심지어 데이터도 2G까지 쓸 수 있다. ^^

황량한 마을

도시를 벗어난 시골이라 물건이 좀 저렴할까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물자를 공급받는 게 어려워 그런지 가격이 도시보다 비싸면 비싸지 덜 하지 않다. 최근에 본 호주 뉴스에서 쇠퇴하는 광산업에 대한 기사를 보며 호주 중부의 휑한 마을이 오버랩됐다. 그 마을에 살고 있던 10가구 남짓하던 사람들은 무얼 하며 먹고살까? 그 작은 마을의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던 젊은 아이들은 이 오지에서 무얼 얻고 있을까?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너무나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던 아이들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쿠퍼 페디(Coober Peddy)의 오팔 광산

호주 중부를 계속 달리다 보면 군데군데 여전히 광산이 남아있지만 모두가 휴가를 간 건지, 자원이 고갈되어 가서인지 사람을 찾아볼 수는 없다. 묘하게 외로운 느낌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너무 날씨가 더워 지하에 마을을 이루고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다. 지하에 상점, 서점, 호텔, 교회 등이 다 있다고 하는데 진작 알았으면 한번 들렀을 텐데... 좀 아쉽다.)

첫날 만난 무지개
첫날 텐트를 치고 잤던 공터
공터에서 두번째로 잔 날.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공터에서 잔 날.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소리에 조금 겁도 났다. 아침에는 맞은편의 소농장에서 산책하는 소들이 텐트 앞까지 와 울어댔다.

대부분은 캠핑장을 이용하지만, 고속도로 옆으로 캠핑을 할 수 있는 공유지가 있다. 넓적한 그곳에 간이화장실만 덩그러니 있고, 수도꼭지에서 물은 쫄쫄 거리며 나온다.(화장실도 물도 아예 없는 곳도 있다.) 물론 씻는 건 꿈도 못 꾸지만, 밤이 되면 주변에 불빛 하나 없어서 온전히 호주 아웃백의 밤과 별의 바다를 볼 수 있다. 정말 아름답고 고요하지만 광장 공포증이란 게 이런 걸까? 이렇게 끝도 없이 땅이 뻗어있는 곳에 있어보니 건물과 사람에 둘러싸여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싸한 기운이 느껴진다. 허허벌판에 떨어져 보는 경험은 이전에도 이후로도 아마 없을 것 같다. 호주의 치안이 좋은 편이고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이 100km 어떤 곳은 300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데다, 사막 한가운데서 휴대폰은 먹통이 되어 버리니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캠핑이라면 모를까 자신 있게 공유지에서 캠핑하라고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길가의 로드킬 당한 동물들. 가장 많은 건 역시나 캥거루인데,  이 녀석들은 오히려 차가 오면 반가움에(?) 도로로 달려 나온다. 친구들은 "로드킬 당한 수많은 선배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하는 멍청한 캥거루들"이라며 나를 웃겼다. 아웃백 여행을 하던 다른 친구는 도로에 서성이는 캥거루를 먼저 보내려고 서행 중이었는데 마침 열려 있던 뒷좌석의 창문으로 다른 캥거루가 머리를 들이밀어 엄청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 거 보면 참 호기심 많고 순진한 동물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서로 타이밍이 안 맞으면 사고가 나기 딱 좋다. 도로가에 서 있는 캥거루 가족들을 보며 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건지 차에 뛰어들려는 건지를 알 수 없어 조마조마한 적이 몇 번이었던지... 캥거루 이외에도 말과 소도 가끔씩 도로를 걸어 다니고 호주에만 서식한다는 에뮤와도 도로를 공유하고 정말 자연과 함께하는 아웃백 여행이었다.

차가 지나가는 걸 끝까지 주시하며 새끼를 보호하던 엄마 혹은 아빠 에뮤

사막이라던 말답게 호주 중부는 황량함 그 자체였지만, 내가 보고 있는 곳이 도대체 어디쯤인지 끝이 있긴 한 건지... 거칠 것 없는 시야 너머로 지평선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아웃백 여행 중 들렀던 도시 이야기는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http://flyingstar.tistory.com/6


*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적게는 100km 많이는 400km 가까이 날 때도 있다. 여차하면 사막 한가운데서 심한 갈증을 겪거나, 차가 멈춰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웃백 여행을 하려면 충분한 기름과 물과 간단한 음식을 싣고 여행을 다니는 게 좋다. 


* 위키 캠프를 이용하면 호주 전 지역의 유/무료 캠핑 장소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http://wikicamps.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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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