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네이버 영화

한창 감수성이 퐁퐁 솟아나던 고등학교 1학년,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츠지 히토나리 지음, 소담출판사)란 책을 읽었다. 러브신이 나오는 장면에선 혼자 얼굴 빨개져서 가슴 벌렁대며 읽다가, 헤어진 연인(아오이)을 잊지 못하면서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자 주인공 준세이를 이해 못하던 순수한 시절이었다. 스무 살에 만났던 준세이와 아오이는 아오이가 서른 살이 되는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 쿠폴라(반구형으로 된 지붕이나 천장)에서 만나기로 한다. 어찌나 로맨틱하였는지 10년이 지나도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던 둘은 결국 두오모에서 다시 만난다.


“우리도 2년 후에 약속 정해놓고 만날까? 우리가 그때까지 만나든 헤어지든 상관없이?”


스무 살의 어느 날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영화로 개봉된 『냉정과 열정 사이』이야기를 하다가 장난스럽게 약속했다. 군대라는 거대한 산을 앞에 두고 있던 우리에게 서른 살은 존재하기나 하나 싶을 정도의 먼 날이었다.


‘피렌체는 과거야. 나는 그곳에서 과거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영화와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과거 타령을 하며 툭하면 넋 놓고 먼산을 보던(‘멍 때리기 대회’에 나가면 우승 가능성이 높은) 준세이에게서 ‘피렌체=과거’라고 세뇌당한 채로 도착했다. 그 책을 재미나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 대한 기대를 가득 안고.

영화 속 주인공들이 약속했던 그 두오모 성당, 드디어 나도 그곳에 왔다. 어린 시절의 사랑을 여전히 믿었던 두 연인은 10년이 지나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좋아한다는 마음에 믿음 대신 의심을 보냈던 나는 이곳에 혼자 서 있다. 믿음이 부족한 자는 종교뿐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 당장은 더 많이 믿는 사람이 손해 같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 순간에 더 많은 믿음과 사랑을 보낸 쪽이 더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걸. 아오이가 왜 하필 성당 꼭대기를 만남의 장소로 정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두오모 성당에 꼭 가 보겠다고 다짐했던 10년 전의 그 소녀는 그곳에 한 번 들어가 보겠다고 줄 서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치여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오이의 생일은 아마 여름은 아니었을 거다. 성수기 한여름이었다면 관광객에 치여 성당 입장에만 몇 시간을 기다리고, 막상 올라가서는 셀카봉을 들고 설쳐대는 수많은 사람들에 치여 정작 준세이 그림자도 못 봤을 것이다. 것도 아니면 긴 기다림에 지쳐 올라가기를 포기했거나. 그렇다. 피렌체에 들어선 지 1시간, 괜히 난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어디선가 나타난 예쁜 원피스를 입은 시원한 키의 여자가 사람들 사이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버스킹도 역시 그 지역에 어울려야 되는 듯 아름답고 차분한 선율이 대성당 앞마당을 가득 채웠다. 나의 열등감은 내 믿음만큼이나 가벼웠던지 그녀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두오모 성당은 내부도 멋있지만 붓으로 칠한듯한 외관이 아름답고 독특하다. 초록과 하얀색의 조합은 묘하게 아름답지만, 왠지 쉽게 벗겨질 것 같아서 자주 관리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항상 마음을 쓰고 사랑해 주어야 하는 걸 가르치려는 옛사람들의 의도가 아닐까? 언제나 내 곁에 있을 줄 알고 함부로 대하는 관계는 결국 끝이 나기 마련이니까.


두오모 성당에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지 10년인데, 막상 와 보니 쿠폴라에 오르고 싶지는 않았다. 희미해진 기억과 함께 두오모의 쿠폴라에 오르는 꿈도 옅어진 걸까? 두오모 성당의 사진만으로도 행복과 서글픔을 느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의 뜨거움은 무덤덤함으로 변했다. 아쉽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씁쓸했다. 그나마 사람들이 덜 북적이는 두오모 대성당 맞은편, ‘조토의 종탑’ 꼭대기에 올랐다. 빨간 지붕의 피렌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씁쓸함이 사라지고 탄성이 나왔다. 준세이를 이끄는 건 언제나 과거였지만, 현재의 나를 이끄는 건 ‘어디 가야 사람이 좀 더 없을까? 어디 가야 좀 더 편할까?’였다. 10년 동안 가 보고 싶었던 두오모 따위가 아니라.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강에는 소설가 단테가 그의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만난 베키오 다리가 있다. 굳이 그 다리를 찾을 수고도 없이 멀리서 사람들의 머리가 빽빽이 보이는 다리를 봤다면 그 다리가 바로 베키오 다리다. 『냉정과 열정 사이』부터 소설가 단테라니…… 피렌체는 정말 로맨스가 뚝뚝 묻어나는 곳이다. 양쪽으로 상점이 들어선 다리는 굉장히 독특하지만, 그 때문에 정작 다리 위에서 강을 볼 수는 없다. 예전에는 다리를 따라 푸줏간이 길게 늘어서 있다고 했는데 그곳의 냄새가 싫었던 왕은 푸줏간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고 대신 보석 가게를 들였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베키오 다리 위에는 보석 가게가 넘쳐난다. 로맨틱한 감정으로 폭발하기 직전의 연인들이라면 여기서 반짝거리는 것을 손가락에 끼고 나오겠지? 다리 위의 보석가게를 그대로 남겨둔 건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보석가게 때문에 자물쇠를 달 틈이 없는 다리지만, 사랑을 약속하고 싶은 연인들은 기어코 자물쇠를 달아놓았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곳에 단거야? 꼭 그렇게 해야 너희의 사랑이 영원하니?’라고 묻고 싶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가 소설이라면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실존 인물들이다. 실화가 주는 감동은 사람들을 이 곳으로 이끌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물쇠를 걸게 만든다. 그렇게 자물쇠는 인기상품이 되어버렸다.

다리를 건넜다. 시끄러운 곳에 있다가 상대적으로 조용한 반대편으로 오니 그제야 아름다운 피렌체가 보였다. 깨끗하지 않지만 조용하게 흐르는 강과, 귀여운 젤라토 가게,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유유 히도시를 즐기는 사람들. 그 풍경이야말로 이곳을 정말 로맨틱하게 만들고 있었다. 도시의 소음과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니 마침내 피렌체가 나타났다.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석양을 만끽하기 위해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왔다. 이곳도 이미 유명한 곳인 듯 기념품을 파는 트럭과 좌판이 쫙 깔려 있었고, 사람들은 광장의 계단에 진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부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지는 태양과 피렌체의 빨간 지붕은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이곳에 있어 감사한 마음이 샘솟았다. 

과거에 사는 찌질남이라며 준세이를 타박했지만, 막상 피렌체에 와 보니 그런 그가 이해됐다. 덕분에 피렌체에 와서 아주 오래 동안 잊었던 얼굴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내가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이란 상상을 언제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참 잊기 힘들 줄 알았는데 결국은 잊었다. 그리움도 과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수많은 기억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영화 속 주인공들과 달리 난 첫사랑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그래서 많이 아팠다 한들 그게 뭐 어떤가? 덕분에 나는 한 사람을 나의 우주로 여겼던 그 시절에 머물렀으면 몰랐을 더 다양하고 큰 세상을 알게 됐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보낼 수 있고, 영화를 보고 울 수 있는 감수성을 갖게 됐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더 아낄 수 있게 됐다. 그런 지금의 내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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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서둘러 일어나 바티칸 시국으로 간다. 로마 안에 있지만, 이탈리아가 아닌 엄연하게 다른 나라. 하지만 입국하기 위해 여권이 필요하지는 않다. 바티칸 박물관의 높다란 벽이 바티칸 시국과 로마를 구분 짓는 경계일 뿐. 












종교 그 자체인 바티칸 시국으로 들어가기 직전 눈에 띈 성인용품점 광고를 재미나다며 사진 한 방 찍곤 바티칸 박물관으로 왔다. 그 높은 벽의 웅장함을 느낄 새도 벽을 빙 둘러싸고 있는 긴 줄의 행렬. 그러고 보니 오늘은 월요일.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 바티칸 박물관의 특성상 월요일에 많은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또다시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멍 때리고 있거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길에서 카드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물건을 팔거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바티칸 박물관 입장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매력적인 박물관 투어 상품을 팔고 있는 여행사 직원들..










드디어, 드디어 입장한다. 맨 처음 나를 반겨주는 것은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가 25살에 조각했다는 '피에타 상'의 모조품. 실제 작품은 성 베드로 성당의 유리관 속에  전시되어 있다. 스물다섯이란 나이에 이미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낸 그에게 왠지 모를 질투가 느껴진다. 나 같은 사람이 없지는 않았던지 그의 피에타 상을 따라 조각하던 어느 조각가는 몇 번의 시도와 실패에 좌절하여 실제 피에타 상의 성모 마리아의 코를 망치로 쳐 버렸다고 한다.

 '질투는 나의 힘' - 영화의 제목으로도 쓰일 만큼 질투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이고,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에너지가 어떻게 표출되느냐에 따라서 많은 게 달라진다. 실제로도 상당한 질투심과 꼬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미켈란젤로는 그의 에너지를 명작을 만드는데 썼지만, 어느 작가는 질투심을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훼손시키는 것으로 써버렸다... 












처음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시작했듯이, 이곳 바티칸 박물관 관람의 끝도 미켈란젤로의 시스타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이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천지창조를 보러 이곳에 온다는 것을 아는 박물관 관계자들이 박물관의 이동경로 자체를 아예 시스타나 예배당이 제일 뒤에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많은 작품들도 강제로 관람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 기다렸던 것처럼 박물관 내부 역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의 행렬에 같이 휩쓸려 이리저리 같이 돌아다닌다. 


바티칸 시국에 있는 박물관 답게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많은 그림들이 눈에 띈다. 그림을 그리는 기법, 사용하는 도구 등 많은 것들의 변화가 눈에 보이지만 그래도 그리스도라는 한 가지 주제는 영원하다. 아기 예수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까지... 이렇게 몇 천년 동안 한 사람을 주제로 이렇게 놀라운 예술활동이 펼쳐졌다는 것만으로도 예수님은 참 대단하다.

루브르에서 본 것 같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을 경배하는 동상과, 이집트가 얼마나 핍박받고 살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이집트 유물들을 뒤로 하고, 또 하나의 명작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철학을 주제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모습을 재기 넘치게 그린 그림. 누가 누구인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계단에 널브러져 있는 디오게네스, 못생긴 들창코의 소크라테스.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등. 50명이 넘는 사람이 그려져 있지만 대부분 나는 잘 모른다. ^^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이끌고 온 가이드 덕분에 그림에 대한 설명을 몰래 들으며 그림을 감상하는 중,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모든 한국인 관광객들이 갑자기 바티칸 미술관 티켓을 들고 "아테네 학당" 그림을 배경으로 바티칸에 왔다는 인증샷을 찍고 있다. 

 "이렇게 하면 멋진 인증샷이 되죠? 카톡 배경에, 블로그에 올리시면 돼요~" 

한국과 중국 투어에서만 찾을 수 있을 그 장면을 보며 그들에게 미안했지만 20명이 갑자기 같은 사진을 찍는 장면이 부끄러워 그 방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사람의 물결에 지쳐 이제 그만 박물관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박물관이 그렇게 숨겨두었던 마지막 장소 '시스타나 예배당'에 도착하였다. 다가갈수록 어두워지는 조명, 그리고 늘어나는 정체구간. 그렇게 기다리기는 몇 분. 드디어 그림으로만 보아왔던 시스타나 예배당의 천장화가 내 머리 위에 펼쳐져 있다. 구약 성경의 각 부분을 친절하게 그려놓은 대작. 발 디딜 틈도 없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덕에 그 성당의 정체 천장을 채우고 있는 그림을 자세하게 다 보진 못하였다. 그리고 목도 꽤 아프다. 더군다나 "No Photo"를 외치며 사람들 사이를 끊임없이 비집고 다니는 경비원들 덕에 분위기는 상당히 어수선하다. 비록 구약성경을 반 정도만 읽어 모든 내용을 다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내용이 나오는 부분을 볼 때면 아는 척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우리나라 성형외과의 광고로도 쓰이는 천장화의 '천지창조' 부분은 천장의 정중앙에 위치해 항상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다. 천장의 높이도 어마어마한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그려낸 걸까.

그리고 한 벽을 전체 채우고 있는 "최후의 심판". 세상의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천국으로 가는 자들과 지옥불에 떨어지는 자들이 한 그림 앞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멋진 몸을 하고 있는 젊은 예수가 있다. 이 어마어마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표정과 몸이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바티칸 박물관의 나선형 출구

그 괴팍한 성격 덕에 좋지 않은 인간관계, 그리고 그의 능력을 시기하는 사람들, 밀리는 급여에 지체되는 작업, 돈 달라고 괴롭히는 아버지와 형, 아픈 동생 그리고 오랜 천장화 작업으로 인해 얻은 목 디스크... 미켈란젤로는 그 상황에서 이렇게 대작을 만들었다. 어쩌면 그런 상황이 그로 하여금 오히려 몰두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도록 그를 이끌었을까. 천재성만으로는 이런 대작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항상 우울함과 불행을 느끼며 살았다고 하는데, 그 덕에 우리의 눈은 이렇게 호강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들의 인생에 힘든 일이 많았을 때,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우리 같은 범인은 힘든 일이 그에게 발생한 것에 대해 묘한 감사를 해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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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왔지만, 로마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다. 물론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그 어떤 편견-그것도 남이 만들어 놓은- 없이 로마를 만나고 싶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고대 로마는 내 기억 속에 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로마는 고대 로마 제국이 역사의 거의 전부라고 할 만큼 다른 시대의 역사에서는 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기에 도시의 대부분이 고대  유적뿐이다. 그래도 내 기억을 쥐어 짜보며 로마를 기억하려 애써 보지만, 언제나 그렇듯 10년 전의 기억이 제대로 날리는 없다. 

그저 지금 내 눈 앞에는 파리보다 조금 더 더러운 로마의 거리와, 파리만큼 엄청난 낙서의 연속일 뿐이다. 싱가포르처럼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거리, 깨끗하고 높은 빌딩 없이, 더러운 거리의 민낯을 보며 그저 낄낄 거릴 뿐이다. 이러니 사람 사는 곳 같잖아. 그 해방감에 이곳 로마에서 마구 뛰어다니고 싶을 지경이다.











로마에 온 보람이라면 바로 이것인가. 숙소 근처의 후줄근한 식당에서 아무렇게나 시킨 피자와 스파게티도 굉장히 맛있다. 이 가격에 이런 맛이 나온다니.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다시 떠나는 길. 도시 전체가 유적지인 곳에 당연히 박물관도 많다. 역시나 아무 정보도 없이 단지 너무 더워 걷기 힘들 때 눈앞에 띈 박물관 안으로 들어간다. 여전히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로마에서, 박물관에 들어가 보아도 다시 천장 없는 전시실도 연결되는 일이 부지기수. 










이곳 역시 당시의 귀족들과 관련된 곳이라고 했는데 한창 발굴이 진행 중이다. 어떤 용도로 사용되던 곳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에서 불과 5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만큼 꽤 중요한 용도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인도를 둘러싸고 있는 발굴 현장. 아무리 고대시대 이후로 힘을 잃어버린 로마라고 해도, 거의 파탄난 경제상황인 이탈리아라고 해도 결코 우리가 로마를 무시할 수 없는 로마의 저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옛날 거의 오늘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환경과 문명을 일구어 내며, 현대 문명의 뿌리를 만든, 그리고 여전히 엄청난 양의 유물을 발굴 중인, 그 로마를 어떻게 무시할 수가 있겠는가.

근데 근처에 바다가 있는가? 갈매기떼가 굉장히 많다. 심지어 갈매기의 (분비물) 습격을 조심하라는 경고판까지 붙어 있다!

로마의 한여름은 동남아의 날씨와 거의 맞먹지만, 그나마 습도가 낮아서 그늘에만 있으면 매우 시원하다. 로마 시내의 회전 교차로 중앙에 높다랗게 자라고 있는 야자수를 보며 이곳의 여름 날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거리에서는 일사병을 막기 위해 AS로마의 협찬을 받은 생수가 무료로 배포된다. 얼마나 더웠으면...?

가이드북을 읽지 않은 탓에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어디를 꼭 가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그저 지도에 나온 곳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로마 여행과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여행을  떠난 지 1달 반이 지났을 무렵 한국음식이 너무 그리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인민박을 찾았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로마와 파리에서 뭘 먹고, 사고, 어디를 갔다며 몇 명이 같은 레퍼토리를 내게  이야기해줬다.  패키지여행을 온 것도 아닌데 어쩜 그렇게 다들 같은 이야기를 하는지... 나중에 저들에게서 여행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갖게 될지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다시 로마 이야기로 돌아와서 "로마의 휴일"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이 갔다는 분수와 스페인 광장 등이 표시되어 있는 곳에  끌려갔지만 공사 중이라 분수에는 물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고, 그 스페인 광장의 돌계단 위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그곳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게 금지되어 있단다. 알고 보니 오드리 헵번이 그 계단에서 젤라토를 먹었다고... 그 영화를 보지 않은 나로서는 저 계단 위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과연 그 영화를 봤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 계단을 오르는 내내 들러붙는 잡상인들. 

"Beautiful lady, this is for you." 

 끊임없이 뻐꾸기를 날리며 장미 한 송이를  건네주시는 분들. 하지만 얼떨결에 장미를 받는 순간 난 돈을 내야 한다. 


파리와 로마에 이렇게 많은 오벨리스크는 약소국 이집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깟 오벨리스크 몇 개가 없더라도(!) 남아 있는 엄청난 양의 문화재에 대한 이집트의 자신감을 보여 준다. 약탈해 왔을 수도 있고, 전리품일 수도 있는 오벨리스크는 바다 건너 로마와 파리에서 꽤 잘 적응하고 있다. 심지어 이곳 오벨리스크의 위에는 십자가가 달려 있다. 여러 가지 오만 신들을 다 믿었던 이집트 사람들이 만든 오벨리스크에 떡 하니 세워져 있는 십자가가 왠지 우습다.

관심 없는 명품 거리는 빠른 속도로 지나쳐 버리고 파리에서도 봤던 판테옹에 입장한다. 이곳 역시도 이탈리아의 역사에 큰 공헌을 세운 여러 영웅들을 모셔놓은 곳이다. 다만 다분히 공적인 느낌이 가득했던 파리의 판테옹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조금 더 자연스러운 느낌과 함께 원래 건물이 지어졌던 목적대로 에배도 같이 드릴 수 있다. 근대 문명의 중심지였던 파리 역시도 로마에 빚지고 있는 게 많아 보인다. 

더위에 지쳐 헤롱 거리고 있을 때. 자그마한 광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예술의 향연.(이라고 부르고 싶다.)

 4명의 아저씨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은 공기 중에 퍼지고, 눈 앞에는 로마의 그림들이 한 가득 광장에 널려 있다.  한 장에 5유로 내지 10유로 하는 전형적인 판매용 그림들이지만, 하나같이 다 아름답다. 만약 지금 다시 로마를 간다면 그 그림 중의 하나를 구입했을 텐데... 

4명의 아저씨들은 돈을 버는 것보다는 그저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  즐거워하고 있었다.  연주하는 내내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서 내 마음도 같이 따뜻해진다. 이 무명의 밴드는 본인들이 이 한 명의 여행객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적어도 지금 이 광장에서만큼은 이 분위기에 참 행복하다. 












걷기에 지치고 피곤하지만 숙소로 가기는 싫어서 로마 테베레 강을  1시간가량 오가는 보트를 했다. 사람이 있는 곳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가만히 앉아서 그렇게 도시를 바라보는 그 기분이 참 좋아서. 거리만큼 강에서 보는 풍경이 그렇게 아름답거나 하지는 않았다. 강둑 곳곳에는 여전히 낙서가 즐비하고, 놀러 왔는지 살고 있는지 구분이 가질 않는 사람들이 다리 아래에서 텐트를 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낚시를 하고 있다. 그래, 사실  문화재보다는 이렇게 사람들이 도시와 삶을 비비적대고 있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테베레 강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곳은 사람 사는 곳, 로마이다.










그렇게 로마 시내 곳곳에 내 발자국을 남겨놓고 일찍 숙소로 가서, 더위를 반쯤 먹고 지쳐 빨리 곯아떨어졌다. 내일은 로마 안의 작은 나라 바티칸으로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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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생 말로saint malo로 갔다.

마을 전체가 성에 둘러 쌓여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브리타니 지방이라고 하는데 몽생미셸이 어느 지역에 속하냐 하는 것을 두고 아직도 노르망디와 브리타니 사람들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을 내 지방에 꼭 두고 싶은 그 마음 ^^

성 안의 아름다운 마을과 해수욕장 때문에 휴가 온 사람들을 많이 찾아오고 있지만, 이곳은 외국인들보다 여름휴가 온 프랑스인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간조 때라 물이 빠져서 바닷물 대신, 바닷물을 끌어와서 만든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놀고 있다.

마침 마을에는 벼룩시장이 열렸다. 많은 여행객들 때문일까. 벌써 많은 상점들이 들어와 있었지만, 일요 벼룩시장 덕에 길거리 좌판에서 많은 물건이 나와 있다. 파리에서 벼룩시장을 못 가 좀 아쉬웠는데 이렇게 벼룩시장을 보다니. 예쁜 골목길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은 언제나 보기 좋다. 멋지게  차려입은 키 큰 중년 여성이 신발을 고르고 있는 모습마저도 특별해 보인다. 




늦은 오후 시간 활기에 찬 거리가 인상적이다. 길거리에서 파는 와플과 도넛을 먹으며 한 시간여를 그저 걷고 또 걸었다. 사람들을 보고 물건들을 보며... 그렇게 걸어 걸어 예쁜 벽돌 길과 벽돌집을 지나 성에 올랐다. 벽돌색은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색을 띠고 있어도 모든 건물이 다 비슷한 색을 가지고 있으니 정말 동화 속의 (밤이 되면) 무서운 마을 같다. 지붕 부분을 왜 저렇게 지었는지 집의 높이가 높아도 2층엔 작은 다락방만 들어갈 수 있는 집. 외벽도, 지붕도 모두가 벽돌로 지었다. 그리고 자그만 창문. 전쟁시를 대비하는 건가?

좁은 골목길을 지나고 마을을 둘러싼 성을 넘어오면 나오는 넓은 모래사장. 이곳도 조수간만의 차가 큰 편이라 곧 바닷물이 들어온단다. 바다였다가 길이었다가 이 길을 걷다 보면 흡사 부산의 다대포나 송정 해수욕장이 생각난다. ^^ 화창했던 날씨는 바다 쪽으로 갈수록 흐려진다. 

바닷가 쪽에서 마을을 바라보니 거대한 모래산 덕에 흡사 재개발 예정지구 같은 느낌을 준다.  멀리 있는 유럽식 건물과 높은 교회 건물이 재개발의 느낌을 상쇄시켜준다. 가만히 돌 위에  걸터앉아 여행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앞으로 어느 곳에 가고 싶은지, 그곳에서 무엇을 찾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는 시간이라 아쉽게도 땅끝에 있는 성(이라고 불리지만 잉글랜드 군에 항상 대비해 있었을 망루 같은)에는 들어가 보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파리뿐만 아니라 프랑스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전통을 최대한 지키는 그 마음을 오늘 몽생미셸과 생말로에서 또 만났다. 전통적인 건물 안에 있는 현대식 상점에서 전혀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휴가를 맞이한 프랑스인들, 휴가가 아닐 때도 카페에서 항상 여유를 찾는 그들이 이곳에서 더 큰 여유를 누리는 모습이 괜히 인상적으로 남을 곳이었다. 

내일이면 다시 로드트립, 7시간의 이동을 해 프랑스 중부로 내려간다.

어떤 모습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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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 | 생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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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묵었던 도시 bagnole de l'orne에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프랑스의 북서쪽. 그 유명하다는 몽생미셸. Mont-Saint-Michel. 논 저 멀리 성 같은 섬이 보인다. 들어가서 설명을 보니 성이 아니라 수도원과 교회가 결합된 형태인  "Abbey"라고 한다.

 자가용을 이용하든 버스를 이용하든 도착하게 되면 모두 하차하여 무료 셔틀버스나 하루에 3번 운행하는 마차)를 이용해 들어가야 한다. 물론 걸을 수도 있지만, 셔틀버스로도 10-15분 정도 되는 거리라 시간의 제약이 있는 여행객이 걷기엔 조금 먼 거리가 되지 싶다. 하지만 걷게 된다면 갯벌을 직접 밟으며(만조 때는 얕은 바다가 되는) 조용기 걷기에 좋은 그런 길. 어떤 자유로운 영혼들은 이미 신발을 벗고 갯벌을 걷고 있다. 

셔틀버스에서 내린 우리를 반겨주는 몽생미쉘

셔틀버스에서 내리니 날 반기는 이 장면. 정말 멋져서 몇 분간 가만히 서서 몽생미셸을 보고 있었다. 무려 800년에 걸쳐 지어졌다고 하는 몽생미셸. 프랑스 본토(?)에 다녀오던 수도승들이 벽돌을 하나하나 가져와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몇 년 전까지는 몽생미셸과 본토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가 있었다고 한다. 그 도로 덕에 바닷물이 막혀 도로 옆으로 모래들이 쌓였고, 또 간척 사업 덕에 더 이상 섬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섬이 아닌 그저 프랑스와 연결된 땅이 되어 버려 안타까웠던 걸까... 몽생미셸을 섬으로 다시 만드는 '몽생미셸 프로젝트'를 통해, 도로를 철거하고 다시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업이 2015년에 완공되었으며, 난 운 좋게 완공되고 이곳에 방문하게 되었다. :) 비록 600m만 떨어져 있다 해도 바다에 둘러싸인 육지와 떨어진 수도원이라니, 정말 속세에서 벗어나 진리를 찾으려고 했던 수도승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잖아.

여기도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데 누군가 차 빼는 걸 잊어버렸다!! 밀물 때에는 섬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물이 차 오른다. 어쩜 이런 곳에 이런 거대한 수도원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한여름, 극성수기의 프랑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섬에 입장한다. 수도원 밑으로 이렇게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좁은 벽돌 길 사이로 들어서 있는 상점들과 식당들. 유럽식 벽돌 바닥과 좁은 골목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그냥 같이 올라간다..

벽돌 길을 오르는 중에 건물 틈으로 보이는 바다가 참 아름답다. 근데 덩그러니 섬만 있는 곳이라 그런가. 8월 한여름에 나만 너무 춥다. 사진을 찍으니 흡사 북한 여자 같이 나온다. 싱가포르에 너무 오래 살았나...

몽생미쉘 수도원의 거대한 벽

몽생미셸 수도원에 입장하기 위해 입장권을 사야 된다. 한여름의 프랑스를 여행하는 일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앞으로 가게 될 로마도 그럴까??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길도 참 운치 있다. 정말 프랑스는 전통적인 도시 외관을 보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인다고 하는데 이런 곳에서 그런 노력이 보인다. 실제 파리의 건물은 내부는 최신식이더라도 외관은 고풍스러운 옛날 분위기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단다.

 "이런 전통을 유지하려다 보니 우리나라가 건축, 보수공사를 되게 잘 해. ^^"

 라는 친구의 한 마디. 

엄청난 높이의 수도원 천장. 그리고 수도원 중앙에 위치한 정원. 툴루즈에서 봤던 그 정원과 같은 모양이다. 수도원 내부를 돌아보는 틈틈이 보이는 바다와 하늘. 과연 이곳에서 신을 섬겼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까지 오게 됐을까? 섬에 있는 수도원을 택한 사람들에겐 분명 더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지 않았을까…

국경의 거의 끝에 위치한 수도원이라 그런지 예배당과 복도에 대포도 있고, 망루의 흔적도 곳곳에 있다. 실제로 영국과 가까운 위치 덕에 중세시대 잉글랜드와의 전쟁이 자주 일어났던 곳이란다. 전시 중에는 이 섬의 수도사들과 거주하던 주민들도 함께 섬과 수도원을 지켰을까? 수도원의 옥상에서 하늘을 보니 정말 신이 계신 하늘을 가장 가까이 느끼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뜻 그대로 그 어느 것도 없이 오로지 하늘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람은 무척 차다... 그곳에서 땅을 내려다보니 속세를 떠나 오직 진리를 찾기 위한 곳으로 제격인 생각이 들다가도, 이 세상 그 어떤 것들보다도 가장 위에 존재했을 중세시대 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권위를 말 그대로 보여주는(섬의 꼭대기에 수도원이 위치하고, 상점과 마을이 섬의 가장 아랫부분에 위치한) 섬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와 논밭의 경계가 전혀 없는데 그래서 이곳에서 재배한 식물들은 그 맛도 좀 다르다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식당에 들어 몽생미셸의 유명한 오믈렛 대신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홍합요리를 다시 먹었다. Le pouland라는 식당인데(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 가이드북에 소개된 식당이다. 근데 왜 소개됐는지 잘 모르겠다. 위치가 좋아서?)  서비스가 너무 느렸다. 아무리 식당에 사람이 많았지만 이곳에서 2시간을 있었다. 이래서 가이드북에 나오는 식당은 의심부터 해 봐야 하는가? ^^; 하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는 요리도, 경치도 멋있긴 했다. 프랑스의 Mouls(홍합) 요리도 맛있지만, 역시 내겐 한국의 홍합탕이 최고. ^^

그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꼭대기에 동상을 올려두었을까

몽생미셸에서 내려와 다시 셔틀버스를 타려다 마침 마주친 마차를 탔다. 한 사람당 5.3유로 하는데, 셔틀버스로로 10분 정도였던 왔던 거리를 다시 돌아간다. 말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또각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참 듣기 좋다.  몽생미셸이 있는 프랑스 북쪽 노르망디 지방은 말로도 유명한데 이 말들도 노르망디에서 태어나고 자란 말들이고 하루에 이렇게 세 번의 왕복 운행을 한단다. 총 18km를 운행하는 거라고 안내원이 장히 자세히 설명해 주네. 우리는 말의 노동시간도 잘 지켜준다는 말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몽생미셸은 야경이 아름답기로도 아주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언젠가 다시 올 기회가 된다면 저녁에 한 번 들르고 싶다. 그리고 수도원의 가장 높은 곳에서 좀 더 오래도록 명상에 잠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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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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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립 도서관을 갔다가 센강을 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는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곳으로 왔다. 바스티유 감옥은 혁명 당시 다 파괴되어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대신 혁명을 기념하는 탑만 남아 있다. 아무 계획 없이 온 여행이라 무엇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그다지 없었는데도 굳이  아무것도 없는 이 '터'에 꾸역꾸역 온 것을 보면 전공을 속일 수는 없다. 그래, 난 한때 열렬히 역사를 사랑했고, 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사학과를 전공한 사람이다. 그 탑을 보며 괜히 눈을 감고 그때 혁명을 상상해 봤다. 그들의 절박함, 사람답게 살고 싶은 그 소망들을...


                                          센 강에 있던 야외 수영장


오늘은 토요일, 친구의 친구 초청으로 바비큐 파티에 가게 됐다. 사실 파티랄 것도 없는 다섯 명이서 맛있게 고기를 구워 먹는 자리. 으레 삼겹살을 기대했던 난 그들이 굽고 있는 갈비뼈가 붙어 있는 고기들을 보며 속으로 실망을 했다. 그래 폭립이고 뭐고 역시 난 그냥 삼겹살이 최고!


 "근데 한국의 역사는 어때? 무슨 일들이 있었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잠시 고민했다. 한반도의 역사는 반만년 정도 되는데 그걸 어떻게  이야기해줘? 그 질문에  이런저런 답변을 하다가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이야기하던 중 묘한 기분을 느꼈다. 유럽에 오기 전 나는 아시아에서만 살면서 아시아 문화만 접했던 사람이다. 아시아 역사는 주로 서양으로부터 침략을 당한 역사. 동남아 대부분 국가도 이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의 식민지였었다. 그래서 다른 아시아 국가의 박물관을 가 보아도 서양으로부터 침략당했던 자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게다가 심심치 않게 유럽풍의 건물들도 발견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약소국으로 살았었던 그 시절의 아픔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 프랑스인들, 영국처럼 제국주의로 온 지구를 들쑤시고 다닌 나라 중 하나다. 그 결과 베트남에서도 나이 많은 어르신들 중 프랑스어를 하는 어른들을 찾아볼 수가 있고,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는 아예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이다. 그 덕에 본국의  영토뿐 아니라 몇 개의 섬 역시도 영토로 가지고 있는 나라. 약소국의 설움을 모른다. "우리도 나치에게  지배당했었어."라고 말하지만 그것도 고작(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3년 간이었다. 본인들이 식민지로 거느렸던 많은 나라들. 그 사람들이 고통당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있단다.

"그래도 우리는 다른 나라들처럼 심하게 굴지는 않았어. 고문도 심하게 안 하고, 주로 회유하는 식이었어."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통치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가 다 폭력일 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그 폭력이 괜찮아질 수 있을까? 그리고 너희 아프리카에 보상은 다 해줬니? 우리는 심하게 식민지 국민들을 대하지 않았으니 일본보다는, 독일보다는 훨씬 괜찮고, 아프리카 문제도 다 해결했다는 그들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역사시간에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그 시간들을 어떻게 배울까? 항상 침략 당해 힘겨워하던 자국 역사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강대국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제국주의에 철저히 뭉개졌던 나라의 국민이었던 나와, 제국주의로 전 세계를 호령했던 나라의 국민이었던 그들과 제국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는 것. 재미난 경험이다. 


      

오늘 나를 초대한 친구들은 지난주 결혼식에서도 봤던 커플인데 8년째 동거 중이며, 여자가 이전 동거남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까지 총 세명이 함께 살고 있다. 프랑스 문화상 그리고 법률상 동거도 결혼과 거의 동일한 형태의 가족임을 감안해 보면,

 '이 남자 부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네. ^^;'


 본인보다 8살 많은 미혼모와 살면서, 그녀의 아들까지 거두어서 같이 지내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여자분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친구들도 왜 이 남자가 이 여자를 선택했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하는 걸 보면 프랑스인들도 그런 조건은 참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나 보다.

 내가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아이가 있는 싱글이라면, 난 그 사람의 아이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조건들 하나도 안 보고,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

뭐 언젠가 헤어질 수도 있는 게 사람 일이지만, 그렇게 쉽지 않은 사람을 만나서 보듬고 사랑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내가 연애하는 모습이 갑자기 어린애 같고, 속물 같아 보이는 건 왜 일까..?

                   

여기저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낙서들

갑자기 이 커플, 대마초를 피기 시작한다. 프랑스에서도 분명 불법인데 어디서 구해 왔는지 피기 시작한다. 아들도 있는데 꼭 저러고 싶을까? 좋게 보이던 그들의 이미지에 좀 금이 가는 순간이다. 둘이 피는 건 상관없지만 아들 앞에서는 좀... 

내가 보수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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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 |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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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오르셰 미술관을 가는 길에 일요일마다 서는 장에 들렀다. 유럽의 아무리 작은 동네에서도 으레 만날 수 있는 성당과 성당 주변의 광장. 그 광장에서 매주 일요일 아침 벼룩시장이 열린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장에 나와 있다.

내가 딱히 살 건 없지만 그래도 이런 시장을 보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이런 시장에 와야지 좀 사람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구경을 마치고, 오르셰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8월 첫째 주 일요일.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은 프리 선데이라 미술관 관람이 무료다. 그래서 관광객에 시민들까지 오르셰 미술관 앞에서도 역시 줄 서기는  계속된다.

푹푹 찌는 한여름의 날씨 아래 저 앞에 새치기를 하는 두 명의 수녀님 아니 수녀들이 보인다. 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거리를 조금씩 새치기를 해대더니 결국 20분 만에 입구에까지 도달했다. 수녀복을 입고 뻔뻔하게 새치기를 해내는 대범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기차역을 개조하여 만든 미술관답게 정말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과 한쪽 벽을 크게 장식하고 있는 황금빛 거대한 벽시계가 기차역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입구에 위치해 있는 '자유의 여신상' 그래,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미국에게 선물로 준 거라고 했었지. 


그 어떤 그림들보다도 그날 하루 일을 마친 후의 그림들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밀레의 <만종>.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내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감사기도를 드리는 여인의 모습과,

농사일을 마치고 소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의 모습. 뒤로 비치는 햇살이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신비하게 만들어 준다. 하루를 열심히 보낸, 노동의 가치를 더 신성하게 만들어 주는 느낌이다. 그래, 어떤 위치에서든 주어진 시간, 하루를 열심히 보낸 사람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법.


폴 세잔의 그림이었나? 가족모임이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하나, 둘, 셋!' 찰칵. 각자 자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의 모습을 나타낸 것과 같은 그림. 재치 있는 그림이다.


흑인은 언제부터 유럽에서 노예로 생활하게 되었을까? 그림과 조각에서 심심치 않게 노예로 보이는 흑인들이 등장한다. 역시 그림, 문학 등 예술을 잘  살펴봐도 그때의 시대 상황,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는 정말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도 그냥 지나가는 순간이 아닌 역사가 되기 때문에 현재를 잘 살아내야 한다고 한참 공부하던 언젠가 생각하곤 했었다..


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들어가기도 힘들다. 바로 나도 좋아하는 <반 고흐 작품 전시관>

정말 집도 하늘도 숲도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그 당시에는 완전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던 그인데 지금 그의 그림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지 그게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암스테르담 가면 무조건 반 고흐 미술관을 가야지. 그나저나 이곳에 소장되어 있어야 될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 대여 중이라 못 봐서 너무 아쉽다.

3년 전 싱가포르 박물관에서 "오르셰전"이 열렸을 때, 그 그림 앞에서 30분을 가만히 보고 앉아 있었다.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참 멋지고 이상하게 슬펐던 그 그림.



오르셰 미술관 옥상에서 보는 파리는 역시나 아름답다. 멀리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레쾨르 사원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를 지나가는 투어 보트. 이렇게 큰 규모의 투어 보트는 파리에서 처음 봤다. 역시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다. 한여름의 파리는 시민의 수보다 관광객의 수가 3배는 더 많다고 한다. 한여름의 해운대는 다른 지방의 관광객들이 더 많듯이 한여름의 파리는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해 있다!


미술관을 나와 대충 와플을 사서 강변에 앉아 먹으며 사람 구경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고, 돗자리를 깔고 벌써부터 술을 마시는가 하면, 누군가는 나처럼 그저 사람 구경을 하고 있다. 


오늘이 8월 2일. 한 달 전에 퇴사를 했고 지금 난 프랑스 파리에 와 있다. 여행  일주일째. 내가 하고 있는 여행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었나. 내가 원하는 여행의 모습이었나. 또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여행 와서도 이렇게 고민을 하는 나는 무엇인가. 그 시간 그 장소에 온전히 나를 맡기는 것은 언제쯤 내게 가능한 일이 될까? 아니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여행은 무엇인가? 난 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어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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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 |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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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날. 오늘은 드디어 날씨가 맑아졌다. 하늘도 정말 예쁘다!


다 돌려면 일주일도 더 걸린다는 이 방대한 박물관. 난 역사학자가 아니므로 하루만 박물관 관람에 쓰기로 했다. 세계 3대 박물관에 포함되는 그 명성에 걸맞게 사람이 정말 많고 줄이 엄청 길었다. 하지만 어제 내가 샀던 뮤지엄 패스 덕에 대기 없이 바로 통과하여 박물관에 진입할 수 있었다! 정말 예쁜 녀석이다! :) 같이 간 친구는 루브르 박물관에 돈 내고 입장한 게 처음이라고 한다. 아니 그럼 루브르 박물관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거야?

 "아니, EU 시민은 누구나 만 25세 이전에는 모든 박물관 입장이 무료야."

헉 만 25세?! 내 머리는 재빠르게 우리나라 박물관에는 그런 혜택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몇몇 곳은 그런 혜택이 있지만, 가격의 차이만 있을 뿐 학생들에게도 입장료를 다 받는다. 그리고 혜택이 있더라도 초등학생들에게만 주어질 뿐... 신선한 충격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26,27세까지는 루브르 박물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니. 문화강국은 역시 다르구나 싶었다. 가난한 학생들, 갈 곳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쉽게 박물관에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만 25세이면 대학생도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박물관의 문턱이 없어 문화재와 예술 작품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학생들은 우선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위대한 작품들을 보며 생각과 상상력, 창의력 등이 자랄 수 있는 참 좋은 환경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매일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기에 가능한 일이려나? 어쨌든 만 25세까지 박물관 무료입장은 대박이다!

파리 뮤지엄 패스 - 강추!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지하 입구는 애플, 루이뷔통 등의 명품 상점까지 갖추어져 있다. 아무리 언제나 관광객들로 넘치는 루브르 박물관이지만 이런 상점들이 있어서 살짝 실망스럽다고 하자,

 "아니야, 이건 관광객들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거야. ㅋㅋㅋㅋㅋ" 란다. 


세계 7대 미스터리,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 10대 시절 항상 나의 판타지에 있던 이집트. 내 인생에서 이집트 유물을 보는 첫 경험. 스핑크스부터 벽, 미라를 만든 후 넣는 관..  난생처음 보는 이집트 유물들이 바다 건너 프랑스에 전시되어 있었다.

스핑크스
너무 귀엽잖아! ^^
파라오의 관

관이 정말 화려하지 않은가. 뱀의 얼굴을 하고 사람의 몸 모양으로 만든 관. 그리고 그냥 두기 심심했는지 아름다운 무늬도 새겨놓았다. 사후세계에 쓸 수 있도록 필요한 소지품들도 같이 묻혀 있었다니 정말 절대왕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례문화다. 4000년 전에 이런 것 등을 만들었다니 정말 대단하잖아. 장례  문화재뿐 아니라 장신구, 옷, 그릇 등의 물건들도 얼마나 화려하고 독특하던지 내 눈이 정말 호강했다. 정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고대 이집트인들만의 독특한 문양과 물건들. 그들의 예술 감각에 감탄을 하면서도 이런 예술이 극소수를 위해서만 쓰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노예로 살며 평생 노동력을 착취만 당했겠지..


처음 만나는 이집트가 너무 좋아서, 무려 2시간이나 그곳에 있었다. 집중을 끝내고 멍한 마음에 별 생각 없이 박물관 복도 곳곳에 나 있는 화살표를 따라갔다. "모나리자 ->"

모나리자가 있는 방에 도착했지만 사람들만 굉장히 많았다. 멀리 보니 내 손바닥 크기로 모나리자의 그림이 보인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둘러싸고 있어 감히 앞으로 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의 격렬한 사랑 덕에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커다란 유리 액자가 모나리자를 둘러싸고 있고, 이곳을 관리하는 직원도 따로 있을 정도다. 사진으로 찍어도 유리 액자 때문에 잘 나올 리가 없겠다. 사진 찍는 건 포기. 

사진 찍는 걸 포기하니 측면에서, 정면에서 자유롭게 볼 수가 있다. '왜 이 그림이 그리 대단한가?'를 알고 싶어 몇 바퀴를 돌며 여기저기서 관찰해 봤지만, 그 특출함을 알아채기에 난 정규 교육을 너무나 잘 받아 안목이 부족하고, 주위 사람들은 끊임없이 날 밀어댄다. 이만 안녕, 모나리자. 다음에 또 볼 날이 있겠지.

사진 엄청 못 찍었네. 로마 황제를 그렇게 동경했던 나폴레옹이 왕비 조세핀에게 왕관을 하사하는 그림. 한 벽을 가득 채울 만큼 엄청난 크기이다.

그리고 루브르를 유명하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 밀로의 비너스를 보러 왔다. 역시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예술작품은 왜 명작인 걸까. 왜 나는 그런 것을 알아보지 못할까?? 그리고 이 사람들은 그걸 알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드는 건가? 근엄하고 경직된 얼굴에 육감적인 몸이 기막히게 연출이 된 거라고 하는데, 설명을 볼수록 어쩐지 난 미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때고 역시 내가 온전히 느껴야 하는 건데...

모나리자보다, 밀로의 비너스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들 동상이 더 좋다. 제우스도, 아폴론도, 아테나도 아프로디테도.. 항상 책과 그림으로만 보던 신들은 본토에서 이렇게 그려졌었구나. 한 신도 수백 가지 버전으로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신화를 숭상했는지 알 수 있다. 신이지만 정말 인간과 똑같은 모양, 인간이 느끼는 추악한 감정까지도 그대 가지고 있는,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정이 간다.  




역시 기둥도 그대로 넘기는 법이 없다.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궁을 개조해서 만든 만큼 워낙 방대한 박물관이라 박물관 안으로도 대중교통이 드나든다. 박물관을 관통하는 도로도 있어 참 신기했었다. 박물관이 눈에 많이 보인다면 그만큼 방문할 가능성도 많고, 자연스럽게 문화적인, 교육적인 효과로 이어지겠지.


 "이 소리 한국말 아니야?"

친구가 물어본다. 그렇다. 박물관 구석에서 한 한국인 가족이 말다툼을 하고 있다. 이제 그만 나가자는 어머니,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아버지, 이럴 거면 박물관 들어오기 전 왜 아무 말하지 않았냐며 어머니를 타박하는 딸. 셋이서 투닥거리고 있다. 아주 살짝 부끄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그림 감상을 하러 발길을 돌렸다.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의 그림도,

화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림 속의 많은 그림을 그려놓은 화랑 혹은 작업실을 그린 그림도 참 흥미로웠다.


폐관 시간이 될 때쯤 나도 집중력이 떨어져 아시아 관을 마지막으로 보고 나왔다. 

방대한 크기와 그에 버금가는 전시된 작품의 수들. 왜 루브르 박물관이 유명하고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 중 상당한 양의 작품들이 분명히 다른 나라에서 온 것이다. 전 세계를 정복하러 다니며 전쟁을 통해, 그리고 식민지에서 얼마나 많은 보물들을 가져왔을까. 그런 소중한 유물들을 잘 보관하고, 이 다양한 문명을 한 자리에서 보게 해 주어서 정말 감사하지만, 너희 정말 도둑놈이야! 그리고 이 문화유산들로 '문화, 예술의 나라 프랑스'라는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간다는 걸 생각하면, 프랑스인들 얄밉기까지 하다.


박물관 바로 앞의 튈르리 정원으로 가는 길, 또 사람들이 비둘기와 놀고 있다... 걔네 세균 덩어리라니깐!

어제 몽마르트에서 봤던 모자 파는 사람들, 짝퉁 가방 파는 사람들 여기도 어김없이 있다.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한 발이 휴식하기에 딱 좋은 공원이다. 게다가 비치된 의자들도 매우 편안한 것들이라 낮잠이라도 잘 지경이다. 여기서도 파리의 하늘은 기가 막히게 예쁘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파리 여행을 패키지로 가면 (긴 비행시간과 짧은 여행기간 탓도 있겠지만) 루브르 박물관에서 딱 20분만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입장 -> 모나리자와 사진 찰칵 -> 밀로의 비너스와 사진 찰칵 -> 끝" 그리고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하는데 그럴 거면 왜 굳이 입장료를 내고 루브르 박물관에 오는지를 모르겠다. 그런 사진은 인터넷으로도 쉽게 볼 수 있고, 작품은 감상하고 느끼기 위해서 보는 거지, 사진 찍는 건 2순위일 텐데 말이다. '세계 3대 박물관을 내가 방문했고,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봤다!'는 정복 여행인가. 그저 세계지도에  점찍는? 그런 여행은 아니, 관광은 갔다 오고 나서도 별로  가슴속에 남는 게 없어서 몇 번인가 후회했던 경험이 있다. 관심이 없다면 세계 명소라도 들를 필요는 없다. 그냥 제쳐 버리고 관심 있는 다른 곳에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루브르 박물관? 관심 없으면 안 와도 된다. 쇼핑이 좋으면 바로 샹젤리제나 라파예트 백화점에 갑시다! 세계 3대 박물관이니 뭐니 그런 거 남이 만들어 놓은 거다. 그래서 난 고생 좀 하더라도 내 맘대로 다니는 자유여행이 좋다. ^^


튈르리 정원을 나와 퐁네프 다리로 간다. '퐁네프의 연인들' 영화로 유명한 이 다리의 뜻은 '새로운 다리'이지만, 사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곳이다. 오래된 다리 답게 운치 있다. 하지만 내 관심사는 퐁네프 다리 옆의 예술가 다리라고 불리는 이 다리. 다리의 외벽에는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고, 그리고 거기에선 야바위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안녕, 오늘도 만났네요. 관광객을 상대로 한 야바위꾼들. 세네 명이 한 패거리로, 서로 재밌게 게임하는 척하면서 지나가는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실제로 관광객이 개입되기 전에는 굉장히 허술하게 게임을 하면서 누구라도 구슬을 찾을 수 있게 패를 돌리지만, 일단 누군가 게임에 개입하면 그때부터는 인정사정없다. 그 한 명을 아주 호구로 만든다. ^^


시간은 6시 반이지만 아직도 해가 지려면 3시간 반은 더 남은 파리에서 센강 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1시간이나 태워준단다.  퐁네프 다리가 있는 시테섬에서 에펠탑까지 왕복으로 운행하는 크루즈.


크루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내가 미처 몰랐던 파리에 대해 또 알게 되고, 이미 가봤던 노트르담 대성당도, 내일 갈 에펠탑도 여기서 보니 참 근사하다. 그녀는 다이애나 왕비가 이곳 파리 센강 근처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해 주었다. 그곳이 파리였구나.. 가만히 앉아서 파리의 저무는 해와 깨끗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니 갑자기 난 행복한 사람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방안에만 갇혀 산 사람처럼 끊임없이 파리의 하늘을 보며 감탄한다.

여전히 해는 높이 떠 있다. 해가 10시에 지니 마치 시간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그에 맞추어 관광지들도 마감 시간이 저녁 9시 정도이다. 이래서 여름에 유럽 여행은 참 좋은 것 같다. 늦게 지는 해와 관련된 프랑스인들의 농담.

 "해가 아직 안 졌네? 술 마시자. 아, 드디어 해가 졌구나.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술을 마셔야지. ^^"


1시간 여의 뱃놀이를 끝내고 나니 눈에 파리 비치가 보인다.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지만 바다가 없는 파리에서  벌써 10년째 만들어지고 있는 인공비치. 인공 야자수도 만들어 놓았다. 쉬고 있는 사람은 있어도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없다.  물놀이할 곳도 없다. 센강에서 수영은 불법이니. 

휴가를 가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비치란다. 그 마음은 참 아름답지만 왠지 파리스럽지 못해서 약간 안쓰러웠다. 이런 거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도시인데 바다가 가지고 싶었나..  친구조차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으며, 친구들 중에서도 파리 비치에 가 본 사람이 없단다. 왜 만들어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파리스럽지 못하다고 비난을 해댄다.

싱가포르의 쇼핑몰에서 진행되는 어떤 행사들을 볼 때마다 느꼈던 아류의 느낌이라고 할까? 싱가포르에서는 그들의 삶의 중심(!)이랄 수 있는 쇼핑몰에서 연극, 공연, 체육행사, 심지어 학교 졸업식 등 온갖 행사가 다 일어난다. (싱가포르에는 갈곳이 많이 없어 사람들이 주말에 주로 쇼핑몰을 간다. 주말에 쇼핑몰 간다고 좋아하는 초등학생을 보면 안쓰러울 때도 있다.) 쇼핑몰에서 진행되다 보니 행사의 규모에 한계가 있고, 시야에 항상 들어오는 상점들 때문에 집중도도 적으며, 그래서인지 내 것이 아닌 너의 것을 잠시 흉내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 행사를 위층에서 보고 있자면 실소가 나올 때가 많다. 남의 것을 따라 하는 사람을 볼 때의 불편함. 파리에서 처음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여기 파리 비치에서. (그래도 선베드에 누워 낮잠은 자 보고 싶었다.)


파리 비치를 바라보며 새삼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닌 내가 이미 가진 아름다움을 발전시키고 그것으로 승부 볼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온리원으로 살아가는 일..

파리, 넌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마지막으로 Leon에서 먹은 우리나라 홍합탕과 비슷한 내가 반한 홍합요리. 레옹은 프랜차이즈라서 프랑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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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비가 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비 오는 우중충한 날씨가 아침부터 날 반겨준다. :)

하늘은 비록 흐리지만 새벽에 내린 비로 거리는 깨끗하다.


파리 중심가로 가기 전, 근처 카페에 들러 출근하는 프랑스인들처럼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카페가 무척 아늑하다. 에스프레소와 크로와상 하나를 먹고 바삐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며 그전날 있던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는 여유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들도 몇몇 있다. 연금 잘 받으시나 보다.

싱가포르 4년 생활이 내게 남긴 단맛에 대한 애착 덕에 에스프레소는 별로다. 역시 커피는 믹스커피가 진리!

도대체 이 작은 잔으로 뭘 마신다는 거지? 정말 이들은 개운하다고 느끼는 건가?

중심가로 가기 위해 지하철 타러 가는 길. 가게의 간판도 참 아기자기하고, 무엇보다 고층 아파트가 없어서 좋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파리의 대표적인 건물 오페라 가르니에.

지하철에서 내려 오페라까지 가는 길에 칼바람이 분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라 좀 쌀쌀하다.

'우와~'

위대한 음악가들의 흉상

또 그저 탄성만 지른다. 나의 사진 실력이 안타까울 뿐.. 사진으로 보면 그저 멋진 프랑스의 고건물로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그 아름다운 외면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다. 꼭 프랑스인이 아니더라도 슈베르트, 쇼팽 등 위대한 작곡가들을 기리기 위해 그들의 흉상을 건물 전면에 세워놓은 것에서 예술을 사랑했던, 지금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다. 하긴 그 당시 파리는 세계의 중심이었으니. 대부분 훌륭한 예술가들이 이곳, 파리에서 공연을 하고 네트워킹을 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내부는 더욱 놀랍다. 천장까지 빼곡히 채운 그림과 금으로 치장해 놓은 메인 홀. 그 당시 귀족들이 얼마나 화려한 생활을 했는지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현재는 오페라 대신 발레 위주로 공연을 한다고 하니 여전히 내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다. 예전 유럽의 귀족들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항상 보았던 공연장. 그곳에서 귀부인들은 항상 2층 가장 오른쪽이나 왼쪽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그물 같은 장갑에 부채를 들고 항상 우아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오페라 내부의 도서관

                                                                

공연장

2층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도 꽤 멋있다. 이렇게 옛날 건물과 자동차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 사람들이 이런 풍경을 보러 파리에  오는구나. 오페라 주변에는 이미 많은 수의 관광버스가  몇십 명의 관광객들을 토해내고 있다. 대부분 중국인과 한국인이다. 

                       

문득 오페라에 들어오기 전 나를 삥 뜯으려고 내게 다가오던 집시 언니들을 보았다. 어랏. 눈도 마주쳤네. 파리의 유명 관광지에서는 이렇게 흰 종이 들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Can you speak Englsh?"라고 물어보며 다가와서 이러 이러한 내용으로 서명운동을 하는 중이라고 서명에 동참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 서명을 하는 사이, 그들은 일행 중 한 명이 나의 뒤에서 소매치기를 한다. 정말 사람 삥 뜯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이 언니들 내가 여행객으로 보이니 오페라 들어오고 나갈 때 2번이나 내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순찰차가 오페라로 다가오자 정말 5초도 안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루마니아가 EU에 가입하면서 많은 집시들이 여러 나라를 거쳐 이렇게 프랑스까지 왔다고 하는데, 집시들 때문에 꽤 골치  아파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잠을 자니 노숙자가 늘고, 대게 순진한 관광객들을 등쳐 먹는 방법으로 먹고 사니 민원도 많이 들어오고...  유명 관광지에는 이런 집시들을 잡으러 경찰들이 자주 순찰을 돌고 있다.


점심은 파리에서도 맛집이라고 하는 (굳이 프랑스에서 일본 음식 먹기) 일본 라멘집에서 맛있게 먹고 반담 광장을 지나, 라파예트 백화점 Galeries la fayette으로 갔다. 내부도 굉장히 화려하고, 특히 천장의 디자인이 참 화려하다. 듣기로는 많은 브랜드가 탄생한 나라 답게 백화점이란 것이 생긴 것도 프랑스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이 백화점은 이미 지은 지 100년 이상된 곳이다. 내가 들렀던 오페라 근처의 반담 광장, 그리고 이곳 라파예트 백화점도 모두 명품관으로 빽빽하게 가득 차 있지만, 난 별 관심 없어 그저 지나갈 뿐.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라파예트 백화점 옥상을 가기 위해. 높은 건물이 별로 없는 파리에서 도시경관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여전히 파리의 첫날은 흐리고 바람도 많이 분다.



빌딩 숲을 무척 사랑하는 내가 이렇게 낮은 건물들이 주는 매력을 새삼 알게 됐다. 시야가 탁 트이는데다, 빌딩 숲에서 보던 조각하늘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 하늘은 이렇게 넓은 것이었지. 파리 시내의 경관을 살리기 위해서, 높은 건물을 되도록 짓지 않는 프랑스인들 덕분에 파리는 파리만의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고, 이 것을 보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파리에 온다. 역시 사람이든, 문화든 자신의 장점을 파악하고, 그것으로 승부를 봐야 하나 보다.

라파예트 백화점 건물 외관 장식

 광진구 혹은 영등포구 크기 정도라는 파리는 그 작은 크기만큼 도보여행이 가능한 매력이 있다. 물론 볼거리의 수와 크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라파예트 백화점에서 약 10분쯤 걸어서 도착한 마들렌 교회(Église de la Madeleine)에도 잠시 들른다. 그리스 신전같이 굉장히 웅장하다.

교회 안에서 괜히 경건한 마음에 이렇게 청소해 주시는 분께도 감사하는 마음이 마구 샘솟는다.
마들렌의 정문으로 다시 나오면 멀리 콩코르드 광장의 정중앙으로 불룩 솟은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오벨리스크도 오벨리스크지만, 파리 시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고건물들이 날 더 설레게 한다. 싱가포르에서도 그랬지만, 파리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정말 휴가 온 기분이 항상 들 것만 같다.

이집트의 룩소르 신전에 있었다는 오벨리스크라는데 선물로 받은 것이라 자랑스럽게 이렇게 도시의 중앙에 있다. 프랑스 땅에서 이집트의 유물을 본다는 게 약간 기분이 묘하다. 나라가 얼마나 힘들면 이런 국보를 다른 나라에 선물할까. 유럽 곳곳에 있을 오벨리스크. 이집트의 슬픈 역사 혹은 잘 나가는 유럽의 역사.

오벨리스크가 있는 광장 주변은 어제 막 끝이 났던 Tour de France의 철거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라 여기저기 어수선했다.

Tour de France 관중석 철거 중

잠깐, 광장 끝에서 눈에 익은 건물이 하나 보인다.

말로만 듣던 개선문이다. 정말 친절한 도시다. 이렇게 쉽게 눈에 띄어 주다니.. 주요 명소는 굳이 지도 없이도 다닐 수 있겠다. 그리고 저 울창한 가로수길은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라고 한다. 살살 걸어가 볼까?

샹젤리제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

샹젤리제 거리. 관광객들로 온통 시끌벅적하다. 여행 오기 전 일부러 여행 기분을 내려고 “오 샹젤리제~” 음악을 들었는데, 그리고 그 음악을 이 거리에서  들을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그냥 팝 음악만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낭만, 예술 이런 걸 너무 기대했나 보다. 그냥 상점과 쇼핑의 거리. 그것도 아기자기하거나 예술적 감성이 돋보이는 게 아닌 거대 프랜차이즈들이  빽빽한... 그냥 싱가포르의 오차드거리 같았다. 그저 화려한 명품의 거리인데 내가 이해를 잘못 했었나 보다.


그리고 이 화려한 거리에서 이렇게 구걸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자니 짠했다. 최고 명품거리와 구걸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참 보기 불편했다. 그 순간 3년 전 캄보디아에 여행 때, 연말 파티에 갔었는데 그때 공병을 수거하러 다니는 5살 정도 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술 마시고 춤추는 어른들로 가득 찬 그곳에서 아이들은 그 빈병을 본인이 가져가도 되는지 묻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개선문(Arc de  Triomphe)에 도착. 

전쟁에서 승리한 기쁨도 물론 있겠지만, 나폴레옹은 정말로 로마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그때처럼 황제가 되고 싶었나 보다. 이렇게 로마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을 그대로 본뜬 것을 만든 것만 봐도.. 물론 그 개선문보다 나폴레옹이 만든 이 개선문이 훨씬 웅장하고 아름답다.

개선문에서 바라본 에펠탑
개선문에서 바라본 샹젤리제

정말 그리 높지 않은 건물에 올라왔음에도 파리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아이보리색의 건물과 초록 나무와 어디서나 시원하게 볼 수 있는 하늘. 그리고 이 개선문이 있는 샤를 드골 광장을 중심으로 시원하게 뻗은 방사형 도로도 보기 좋다. 파리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는 사람은 도로주행 시험 안에 꼭 이 방사형 도로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탈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처음 운전을 배우는 사람에겐 정말 곤혹스러울  듯하다. 

날씨는 좋은데 바람이 너무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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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을 뚫고 도착한 여기는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는 파리와는 다른 도시라는 것을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으며 그렇게 베르사유에 도착했다.

넓다, 넓어.


문조차도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금이다. 정말 왕의 절대권력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곳도 어김없이 관광객이 많았지만, 뮤지엄 패스로 유유히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로크 양식? 로코코 양식? 말도 많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 알아듣고 싶어 지는 마음이 들 날이 오길 바라며 궁전의 입구로 들어서려는 찰나!

한쪽 팔이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럴 수가 생전 처음으로 새똥을 맞았다! 그리고  그곳은 베르사유 궁전. 실없는 웃음만 계속 흘리며, 소매가 없는 팔에 떨어져 아주 다행이라는 말을 날리며 화장실로 직행했다. 앞으로 내게 베르사유 궁전은 새똥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루이 14세가 파리에 있는 보 르 비콩트 성의 아름다움을 질투하여 베르사유 궁전을 지을 때 무조건 그 성보다 크고 아름답게 지어라고 했다니, 그의 질투 덕에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베르사유 궁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각 방마다 배치된 화려한 가구들과 조각품들. 벽 한 면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그림과 천장화. 대리석으로 점철된 벽과 바닥. 과연 화려함의 극치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베르사유 궁전. 태양왕이라는 별칭답게 궁전의 곳곳에서 태양의 모양이나 태양신 아폴론과 관련된 무늬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아폴론으로 보이는 아래 문 손잡이도 꽤 귀엽다.


왕비의 침실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썼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죽은 불쌍한 인물일 뿐인데, 외국에서는 왜 그렇게 그녀가 유명하지?"

친구의 물음에 내가 더 의아해졌다. 정말? 오히려 프랑스에서는 그녀가 그리 유명하지 않다는 말이야? 왜 그럴까 생각해 보던 나는 "베르사유의 장미" 만화를 말해 주었다. (초등학교 때 정말 가슴 아프게 봤던 그 만화. 아, 추억의 오스칼!) 그 만화 덕분에 초등학생 때부터 이미 마리 앙투아네트니 루이 16세니 프랑스혁명 등에 대해 들어봤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해 놓고 보니 뭔가 부족하다. 그러게 왜 유명할까?

만화에서 그녀는 오히려 바보같이 순진하고 선량한 인물이었던 걸로 기억되고, 그녀를 악명 높게 만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세요."라는 말은 그녀가 내뱉은 적도 없기에 오히려 억울한 인물일 뿐이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프랑스 혁명의 극적 효과를 위해 그런 말을 지은 듯 싶다.

저 무거운 샹들리에가 이렇게 천장에 멀쩡이 붙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놀랍기도 하고 무섭다. 사실 샹들리에를 볼 때마다 난 『소년탐정 김전일』만화책에서 본 샹들리에를 이용한 살인사건이 자동반사로 항상 떠오른다... (하핫 ^^;)

그시대 최첨단의 예술이 집약되어 있을 베르사유 궁전. 그 당시 최고의 예술가들이 와서 만들었겠지. 그러고 보면 그 시대 살았던 예술가들은 한편으로 고달프지 않았을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이 아닌 왕이 혹은 교황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그려냈으니.. 하긴 그렇게 따지면 현대를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 고용주가, 자본을 가진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얻는 것을 보면 삶은 지금도 그때도 묘하게 연결되는 것 같다.

사람이 가장 많은 이 곳은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가장 유명한 유리의 방이다. 근데 유리가 많이 낡아져서 인지 처음엔 유리의 방인지 몰랐다. 유리창과 그 맞은편마다 붙어 있는 거울이 빛을 서로 반사하며 이 방을 얼마나 눈부시고 크게 보이도록 만들었을지... 루이 14세는 태양왕인 자신의 위엄을 보이려 국빈을 맞거나 행사를 할 때 항상 이곳에서 했다고 한다.

나폴레옹 1세. 역시 로마 황제가 입고 있던 것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한 켠에는 이렇게 그 당시 귀족들의 그림도 같이 걸려 있다. 건물에 이름 새기는 것, 초상화 걸어두는 것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파리에서 떨어진 곳에 궁전을 지어놓다 보니 그 당시 귀족도 전부 베르사유로  넘어왔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힘의 이동이 좀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그때부터 시작된 건지는  몰라도 베르사유가 현재도 좀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기 전 이 도시의 시장이었다고 하는데, 대선 전에 서울 시장을 '거치는'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 정치가 문득 떠올랐다.


드디어 밖으로 나와 방대한 정원을 구경할 시간.

궁전 바로 앞마당에서 찍은 사진인데 아직도 정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술래잡기 하기에도 딱 좋아 보이는 그런 정원. ^^;

성 내부만 입장료를 받고, 이렇게 정원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벌써부터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쉬고 있다. 자전거 타고 달리다가 느닷없이 풀밭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는 사람을 보며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이렇게 자유로이 드나들며 운동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음에 동네 주민들이 살짝 부러워 지기도 했다.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 4편 『해리포터와 불의 잔』의 미로가 생각나게 하는 이곳. 이 미로 숲 역시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이다. 사람 키의 몇 배나 높은 미로 숲을 나무로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유명한 예술작품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내게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귀족들이 이곳에서 밀회를 즐기기도 했다니, 파리 사교계의 시작이 바로 여기인 듯싶다.

그리고 정원의 끝. 시끌벅적한 풀밭과 호수를 지나 울창하고 한적한 나무숲으로 친구를  따라왔다. 개인이 기증하는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 숲에 오직 한 나무, 그와 그의 친구들이 한 친구의 이름으로 기증한 나무를 찾으러. 몇 달 전 친구 중의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녀가 평소에 좋아했던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 그녀의 이름으로 친구들이 나무 한 그루를  기증했다고 한다. 그때 나무를 확인 못했던 터라 이번 기회에 나무를 찾고 싶다는 그를 도와 어떤 나무 일지 열심히 수색해 보았으나 결국 찾지는 못했다. 항상 세상의 슬픔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여 슬프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던 그녀는 저 먼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에도 항상 가슴 아파했단다. 그 선한 마음이 더 아프게 내게 다가온다. 얼마나 아플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당하고 폭력적인 일들을 진정 가슴으로 느끼며 나의 무기력을 확인해야할 때 오는 그 좌절감은...  이제는 편안한 정원의 나무를 등받이 삼아 행복하게 휴식하기를 바라며 베르사유 궁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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