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틀 때까지 사람들과 술을 마신 나는 정오가 지나서야 겨우 일어났다. 숙취에 절은 몸을 이끌고 벨기에에서 놓친 감자튀김으로 해장을 하며 느릿느릿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오직 한 곳, 반 고흐 미술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 빈센트 반 고흐

4년 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 보수공사 중인 틈을타 바다 건너온 고흐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됐다. 그때 처음 받은 인상은 "치열함"이었다. 어느 터치 하나 대충한 것이 없는, 정말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의 그림 중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무심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나이를 보았다. 37세. 채 40세가 되기 전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자신의 천재성을 몰랐던 화가는, 9살에서 그림실력이 멈춰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4년 후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을 가는 길, 그 강렬했던 감정을 기억하는 내 가슴은 설레고 있었다.


미술관은 그의 그림뿐만 아니라 가족, 그가 들었던 음악, 읽었던 글, 만났던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 등 고흐와 관련한 모든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동생이자 친구였던 테오와 일생 동안 주고받은 편지는 미술관의 한 면을 거의 가득 차지했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은데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생활비를 동생에게 받아가며 살았던 30대 남자, 고흐는 얼마나 비참했을까?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그의 이야기를 지나니 다시 한 번 주저함이 없는 거친 붓놀림에 눈이 간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세심한, 뭐라 설명할 수가 없는 그림들. 물감 살 돈이 자주 모자랐다고 하지만, 고흐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주저 없이 했던 일은 텅 빈 캠퍼스에 붓질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림에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열정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귀를 자른 이 사내를 단순히 미쳤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하다. 천재성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면 그런 것일까? 몇 년을 그려오던 그의 자화상에는 한결같이 불안정해 보이는 사내가 있다. 충만하지 않은 느낌.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계속 그림을 그려나가는 마음은 어땠을까? 삶을 스스로 끝낸 고흐도 힘들었겠지만, 내게는 테오가 느꼈을 상실감과 형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기력함도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고흐가 삶을 마감한 지 1년 후 테오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렇게 고흐를 아꼈던 테오의 뜻을 따라 테오의 부인이 고흐의 그림을 수집하고 그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로소 고흐는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었다. 


고흐 미술관에서 오후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다시 숙소로 들어가는 길, 고흐의 삶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고단해져 힘이 하나도 없다. 그때부터였다.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고흐는 여행 중에 책을 읽지 않겠다는 내 다짐을 꺾어버렸고, 난 고흐의 평전 『불꽃과 색채』(슈테판 폴라첵 지음, 이상북스)를읽기 시작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고흐의 마지막 그림
The sadness will last forever

'왜 이렇게 힘들고 왜 이렇게 아플까?’


고흐는 여느 젊은이처럼 20대 초반 이런저런 공부와 일들을 하며 자신을 찾다가 마침내 그림을 발견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미술을 진로로 정한 사람들보다 시작이 늦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찾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찾아도 결코 행복하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이 사내는 보여준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는 인간을 너무 사랑했다. 사람들의 고단한 삶에 녹아들지 않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늘어대던 목사를 저주했고, 그림을 돈의 가치로만 환산하는 부자들에게 환멸을 느꼈다. 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의 고민과 열정과 사랑은 남들에게 광기로 보였던 걸까? 오히려 고흐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욕하고 피했다. 그래서 그렇게나 아팠던 고흐의 유언은 "The sadnesswill last forever"(고통은 영원하다)였다.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지속되고 늪과 같은 가난 속에 있어도, 나는 미치지 않고 원하는 바를 끝까지 추구할 수 있을까? 내 안의 열정을 지필 곳을 찾지 못해 아프고, 날 슬프게 하는 것들에 도움이 되지 못해 아프다. 그가 느꼈을 아픈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문득 겁이 났다. 내 가슴이 느끼는 그것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나도 이렇게 아플 수가 있겠구나. 그리고 그게 심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겠구나. 그의 그림도 아팠지만, 난 무엇보다 그의 삶이 그렇게 아팠다. 암스테르담에서부터 보던 그의 평전은 독일의 함부르크로 넘어가서 끝이 났다. 그래서 난 함부르크에서 좀 아팠다. 그가 가진 것만큼 열정이 없어서 아프고, 내 안의 사랑을 제대로 세상에 내보이지 못하는 비겁함과 게으름에 화가 나고, 그것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 미쳐버릴까 봐 겁이 났다. 어쩌면 그래서 그림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반 고흐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5년 후에 다시 한 번 그 미술관에 가고 싶다. 그때는 좀 더 당당하게 고흐를 만나고 싶다.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고흐의 모든 그림은 네이버 지식사전에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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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벌써 자? 여긴 파티의 도시 암스테르담이라고!”

페리와 레베카 그리고 다른 여행객들과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펍에서 놀다 보니 어느새 해가 뜨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이만 자러 가겠다는데 너무 빠른 시간이라며 더 놀자고 했다.


너희는 정말 괴물이야.'

오후 늦게 일어나 암스테르담 프리워킹투어에 갔지만 이미 정원이 차 버렸다. 대신 나처럼 갑자기 갈 곳을 잃은 금발 미녀니나를 알게 됐다. 슬로바키아에서 온 니나는 암스테르담으로 6개월간 교환학생 온 친구다. 동유럽 여자들이 예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아마 유럽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서 제일 예뻤던 것 같다.

찌는 듯한 날씨와 거리에 터질 듯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 그 와중에 니나는 물가가 너무 비싸다며 계속 투덜댔다.

"어떻게 맥주 한 잔이 10유로나 하지? 슬로바키아에서는 1유로면 된단 말이야!"

‘네가 암스테르담에 와 버린 걸 어쩌라고….’

그런 니나에게 술은 암스테르담보다 싱가포르가 더 비싸다고 얘기했더니 'Hell'이 따로 없단다. 학생이니 주머니 사정이 어떨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계속 돈 이야기를 하는 니나에게 살짝 질렸다. 하지만 난생처음 만나는 슬로바키아 사람과 이야기하며 도시를 걷는 것도 나름 재미있고, 무엇보다 토요일 오후 보트에서 파티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혼자였다면 아마 남들이 파티하는 장면을 보고 괜스레 우울해졌을지도 몰랐다.


홍등가를 궁금해하던 니나에게 홍등가 투어에서 들었던 말을 해주며, 그 거리를 또 걸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벌써부터 출근한 분들도 많았다. 거리에서 그녀들과 협상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우연히 눈을 마주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킥킥거렸다. 내가 그랬듯 니나도 그들을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확실히 같은 유럽이라도 국민성과 문화는 다른 가보다. 네덜란드의 지나친 자유분방함은 그녀에게도 처음 만나는 충격이었고, 니나가 느끼는 충격이 내겐 또 다른 재미였다.

이미 시작된 그들의 선상파티
암스테르담의 마헤레(MAREHE) 개폐교

“나 밤에 펍 크롤(Pub Crawl, 그 지역의 유명한 펍과 클럽을 돌아다니는 파티. 한여름 암스테르담에서는 매일 저녁 펍 크롤 파티가 열린다.)에 가볼까 싶은데…. 어때?”


니나의 눈이 반짝였다. 돈 때문에 1분 정도 고민하던 그녀는 같이 가겠단다! 브라보! 숙소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는데 페리가 나를 붙잡았다. 밤 12시에 파티에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 니 말대로 여긴 파티의 도시니까!'


오케이! 펍 크롤에 갔다가 12시까지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숙소를 떠났다. 펍 크롤에 입장하는 우리 손에는 촌스러운 펍 크롤 티셔츠가 들려 있었다. "Youmay not remember tonight but won't forget!"(오늘 밤을 기억하지 못해도, 잊지는 못할 거야!)이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티셔츠에 쓰여 있었다. 단합대회도 아니고 다 같이 똑같은 옷을 입고 암스테르담 시내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건가? 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희한하게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그 티셔츠를 입었고, 나도 티셔츠를 들고 다니기 귀찮다는 핑계로 입어 버렸다. 똑같은 옷을 입은 몇십 명의 사람들이 암스테르담 거리를 점령한 모습은 꼭 객기 부리는 고등학생들 같았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먼저 대마초를 판매했다는 불독 커피샵 (암스테르담의 커피샵은 대마초를 파는 곳)

각 펍마다 한 잔의 보드카는 무료지만 그 이후부터는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첫 번째 장소에서는 할로윈 파티도 아닌데 악마 복장을 한 무리들이 더러운 춤을 추며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귀찮게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장소에서 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펍을 30분간 간격으로 투어 다녔다. 지루해질라 치면 다음 펍으로 옮겨가는 게 재미있었다. 오늘 나의 친구가 되어준 니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맥주 한 잔을 샀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맥주 한 잔씩 사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좋은데, 짧은 시간 동안 급하게 마셔버린 보드카와 맥주가 점점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공기 중의 대마초 향도 점점 진해지는 느낌이었다.


‘벌써부터 피곤해지면 안 되는데, 12시에 파티에 가기로 했는데…’

네덜란드의 전통신발 나막신 - 클롬펜

오랜만에 상쾌하게 눈을 떴다. 엇? 내가 어떻게 숙소에 왔지?

“야, 너 완전 제대로 놀더라? 니 친구가 너 여기데려다 줬었어. 너 좀 취해 보이던데.”

“아… 그랬구나…. 파티는 재미있었어?”

“아니 파티 취소됐었어.”

니나한테 고맙다는 말이나 했을까?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잘 놀아서 마음에 든다는 페리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오늘 밤에 꼭 파티에 같이 가자고 했다. 오늘은 그의 눈을 피해 숙소에 들어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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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더웠는데 어제저녁부터 쌀쌀해지더니 오늘 아침은 잔뜩 흐리다. 하지만 예정했던 대로 암스테르담의 근교로 떠나 본다.


1. 암스테르담의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가면 도착하는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작은 마을. 관광안내소도 있지만 문 열지 않았고, 작은 교회당에서는 100년은 된 듯한 책과 엽서를 판매하고 있다. 나 같은 외지인에게도 조용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해 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내 무릎 높이보다도 더 낮은 담장을 가진 집에서 살고 있다.

이끼 낀 지붕, 참 좋다.


아이들이 야외수업을 나왔다. 선생님이 손을 절대 놓지 마라고 했는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다. 정말 앙증맞다. 하지만 선생님의 풀 설명보다는 내가 더 신기한지 전부 나를 쳐다봐서 괜히 선생님께 미안했다. 이렇게 자연과 가까운 곳에 살며 소와 양, 말을 매일 보고, 들판에 핀 꽃을 구분할 줄 아는 아이로 큰다는 것은 꽤 멋진 것 같다. 나도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가 어릴 때는 교외에서 키우고 싶다.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급기야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몸을 피해야겠다.


2. 한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나타났다. 얼마만에 보는 무지개인지 게다가 이런 배경으로 무지개를 볼 수 있다니 오늘 운이 참 좋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도시가 뽀송뽀송해졌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에담'이라는 도시. '에담'치즈로 유명한 치즈의 도시란다. 중심가에는 치즈 가게가 여럿 자리 잡고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다. 'Edam Cheese cake'이라는 단어의 나열을 보자 허기가 진다. 식당의 한 쪽에 자리 잡고 앉아 치즈 케이크를 음미해 본다. 꽤 맛있다.

 "넌 어디서 왔니?"

 "한국이요."

 "당연히 남한이겠지?"

식당에서 맥주 한 잔 하시던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때가 북한이 도발을 일으켰던 때라 네덜란드 뉴스에도 연일 한국 소식이 많이 나왔는데 역시나 아저씨가 한국 괜찮냐며 내게 물어보신다. 그러다 말 거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드렸는데 갑자기 궁금증이 밀려왔나 보다.

 "한국은 어쩌다가 분단이 됐니?"

 "그전에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는데 해방이 되면서 남쪽이랑 북쪽에 따로... 어쩌고 저쩌고.."

 "아 그렇구나. 근데 왜 일본은 한국을 왜 식민지로 삼았니?"

 "일본은 섬나라인데 한국이 제일 가깝고... 어쩌고 저쩌고."

내 설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엄지를 들어 올리며 고맙단다. 한국인을 태어나서 처음 만난 거라고 한다. 내가 알크마르에 치즈시장 보러 갔었다고 하니 치즈를 보려면 에담을 먼저 왔어야 했다며 내게 살짝 핀잔을 준다. 

다시 시작된 나 혼자 에담 투어. 아까 들렀던 작은 마을보다는 훨씬 큰 마을. 작지만 나름 광장도 있고,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걸로 보아 적지 않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근처의 아무 마을로 이동해 본다.


3. 해 질 무렵 도착한 마을. 역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예쁜 교회와 예쁜 가게들. 그리고 그곳까지 나를 따라온 것 같은 무지개로 완벽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곳.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마당이 있는 집들을 많이 본다. 암스테르담 중심가에서 절대 볼 수 없던 마당이 딸린 집을.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암스테르담으로 다시 넘어왔다. 해가 지고 밤이 시작되었는데 암스테르담에 오니 네온사인으로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것 같다. 오늘이 레베카의 생일이니 한 잔 하러 가자고 한다. 두 시간 정도 놀다가 그것도 재미가 없는지 피곤한지 그만 쉬고 싶어 져서 일찍 잠에 들었다.  아마 낮에 느낀 감성을 계속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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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거 알아? 우리 네덜란드인들은 10대 때 딱 2가지만 배워."


 "그게 뭔데?"

 "뭐 먹고 싶어? 뭐 하고 싶어?"

  "내가 과장 좀 했는데, 어릴 때부터 우린 항상 질문을 받아. '뭐 먹고 싶니?', '어디 갈래?', '뭐하고 싶니?' 같은 간단한 질문부터 정치, 경제에 대한 생각까지. 그러다 보니 내가 평소에 생각이 없으면 아무 대답도 못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버릇 덕분에 국민들 각자가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갖고 있어. 난 우리나라 교육 좀 괜찮은 거 같아."


What do you want to do? What do you want to eat?"


게스트하우스에서 근무하며 새벽에는 그래피티를 그리러 다니는 자유로운 영혼, 페리. 그는단 두 문장으로 네덜란드인이 받는 교육을 간결하게 압축시켜 버렸다. 공교육만으로 대부분의 국민이 2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도 부럽지만, 그보다는 각자 ‘생각’을 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란다는 말이 참 근사하다. 매춘과 대마초가 합법이 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교육 때문이 아닐까? 


"그럼 그래피티가 합법이야?"

"당연히 불법이지. 그래서 경찰 뜨면 도망가야 돼!" 


새벽에 돌아다녀서 그런지 대마초 때문인지 항상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는 그 아이는 꼭 『해리포터』에 나오는 스네이프 교수처럼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피티를 이야기하는 순간은 눈이 반짝거린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전 세계 여행객들과 이야기하고, 그래피티를 그리는 삶이 좋단다.

나한테는 그림 그리고 술 마시는 게 휴가야.

로비에 새로 들어오는 여자에게 페리가 인사를 했다. 그녀는 술잔을 들고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영국에서 온 레베카는 까다로워 보이는 첫인상과 다르게 굉장히 붙임성 있었다. 바에서 계속 맥주를 들이키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본인의 스케치북. 그걸 보여주며 한 장 한 장 본인의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그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게다가 그 스케치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그대로 팔에 문신까지 해 버렸다. 그녀는 미술 전공을 하고 있으며 일주일 동안 암스테르담에 휴가를 왔다. 레베카에겐 그림 그리고 술 마시는 게 휴가였다. 실제로 오후에는 암스테르담의 조용한 카페나 운하 근처에 앉아 몇 시간이고 계속 그림을 그리고 밤새도록 파티에서 놀다가 해 뜰 때쯤 돌아와서 잤다. 그리고 오후에 일어나 그림 그리는 일상. 그것을 일주일 내내 암스테르담에서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영감을 주는 고흐의 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그 아이를 보고 내가 지금까지 간 ‘휴가’라는 것들을 돌이켜 보았다. 블로그에서 봤던 “XX에서 꼭 해야 할 것”대로 걷고 음식을 먹은 게 아닐까? 대체 휴가를 간 건 나인가, 블로그 주인인가? 인증샷을 찍고 발도장을 찍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휴가가 아닐까?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먼저 생겼다는 커피숍(네덜란드의 커피숍은 대마초를 파는 곳이다)
 "너희는 11개월 일하고 1개월 휴가 가지? 나는 11개월 여행하고 1개월 일해." 

 "비용은 어떻게 충당해요?"

 "11개월 동안 내 수만 마리의 일꾼(꿀벌)들과 퀸(여왕벌)이 날 위해서 열심히 일해 놓으면 내가 남아공에 돌아가서 1개월 동안 일을 하지. 그리고 그 돈으로 다음 11개월 동안 다시 여행 다녀. 큰 돈은 아니라 고급스럽게 여행은 못해도 배낭여행은 충분히 할 수 있지."


60개국이 넘는 나라를 돌아다니며 30년간 여행 중인 산타클로스의 수염을 가진 에드워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자마자 배낭에서 식빵과 잼을 꺼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고급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예순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젊은이들이 주로 오는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룸을 숙소로 삼은 것도 그랬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정말 여행을 좋아했고, 가지고 있는 돈 안에서 그걸 하고 있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네덜란드 방문이라는 할아버지에겐 여행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삶의 특별한 이벤트' 같은 게 아닌 삶 자체였다. 


나 역시도 살아있는 동안 되도록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여행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은 볼 때마다 놀랍다. 사실 인간은 유목민이었는데 언제부턴가(아마도 벼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정착했다. 사람들이 언제나 여행을 꿈꾸고 버킷리스트에 세계일주를 넣는 이유는 우리 피 속에 아직 남아 있을 유목민의 DNA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것을 보고자 떠난 여행에서 가끔은 그곳의 풍경보다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정말 ‘지 맘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거창한 삶의 철학이랄 것도 없다. 그저 남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걸 하며 살아간다.


 “3개 국어를 하면 이런 작은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고급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면 안 되나? 그리고 그래피티 말고 돈 되는 그림을 그리면 안 될까?

 “네덜란드까지 와서 풍차 안 보고 뭐하냐?”

 “양봉사업이 잘 되면 몇 달 더 일해서 그걸 확장시키면 돈을 더 많이 벌 텐데.”


지 맘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상반되는 두 감정. 사회가 만들어놓은 길대로 가는 것에 익숙한 나는 그들에게 값싼 걱정을 보내지만, 가슴 한편은 씁쓸하다. 사실 그런 자유와 당당함이 부럽다. 시키는 것을 최고로 잘 해내는 나는 결정하라고 하면 그때부터 바보가 된다. 내 취향마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삶을 살고 있지만, 나는 한국에서 배운 잣대로 그 삶을 멋대로 평가한다.


남들이 만든 길 따라 사는 것이 최고라 해서 그렇게 살았는데, 난 ‘생각 불능 상태’가 되었고 또다시 백수가 되었다. 저렇게 지 맘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저러다 돈 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거 하면 돈 벌 수 있어? 그거 하면 스펙 생겨? 인맥 생겨? 우리가 만들어 놓은 안전한 기준은 내게 행복은 커녕 만성적인 욕구불만만 주었다. 항상 불안했다. 어쩌면 진짜 저 아이들처럼 지 맘대로 사는 게 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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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건디에서 다시 떠나는 길. 오늘의 목적지는 프랑스 동남쪽 끝, 휴양도시 니스.

(그러고 보니 어쩜 위치까지 부산이랑 비슷하지? ^^)

30도를 훌쩍 넘는 바깥 온도,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어도 차 안의 온도는 흡사 40도가 될 것 같다. 이런 날씨에 차에 7시간 앉아 있으니 두통까지 몰려온다. 참을성에 한계가 올 무렵, 드디어 니스에 도착했다. 이제까지 봤던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과 뭔가 다른 느낌이다. 굉장히 어수선하지만 그만큼 더 생기가 돈다고나 할까. 그리고 왠지 낯설지 않은 이 느낌.

성수기라고 모든 게 비싼 건 어느 나라나 똑같은지 짜증을 유발시키는 주차요금을 내고, 근처에 봐 두었던 성당으로 갔다. 이 성당 역시 이름은 노트르담 성당. 노트르담은 'Our lady'란 뜻으로 프랑스 전역에 이와 같은 이름을 한 성당이 많다고 하는데, 다만 파리에 있는 것이 워낙 크고 아름답기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대명사가 된  것뿐이란다. 그러고 보니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과 그 외관이 비슷한 것 같다. 

조용하게 안으로 들어가 니스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시고, 이렇게 별 탈 없이 프랑스 돌아다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이나라 저나라 잘 들쑤시고 다닐 수 있도록 보살펴 달라고 마리아 님께 전하고 나왔다.

"트램이다!" 

여행 중 자주 보게 될 트램이었지만, 내 생애 처음 본 트램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었다. 기차도 아닌 것이, 지하철도 아닌 것이, 도로 위에 난 길을 따라 달리고 있다니!


프랑스 제5의 도시 답게, 그리고 최고의 휴양도시 답게 거리엔 상점들이 넘치고, 여행객들은 도로를 가득 점령하고 있다. 길을 따라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감탄하게 되는 유럽식 전통건물 안에 들어서 있는 현대식 상점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지중해 바다. 


 '저 색깔이 사람들이 말하는 에메랄드 색이라는 거구나.'


부산에 살면서 심심하면 찾아가서 볼 수 있는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볼 때마다 항상 새롭고, 다른 느낌을 내게 준다. 그래,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바다다.

게다가 오늘은 역사적인, 내 생애 처음으로 지중해를 만나고 있으니.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부산의 바다를 계속 보고 있으면 나도 같이 쭉 태평양 너머로 뻗어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지중해와 맞닿은 니스의 해변은 괜스레 끝이 보이지 않는 아주 큰 연못 어느 귀퉁이에 있는 것 같다. 내게 지중해는 거대한 연못과도 같은 느낌인가 보다. 

파란 바다 색깔에 맞추어 백사장에 늘어선 파란 파라솔까지 장관을 이루고 있다. 겉으론 아름다워 보이지만 이곳은 돈을 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유료 해변이고, 파라솔 없이 사람들 마음대로 놀고 있는 곳은 무료 해변이다. 니스의 새변은 모래사장이 아닌 자갈마당이라 오래 걷지는 못하겠다. 앉으려고 하니 엉덩이도 따갑고 돌도 햇볕에 상당히 익었다. 그래도 무료 해변에 있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섰을 때 오른쪽으로는 쭉 벋은 해변이 있다면, 왼쪽을 봤을 때 높은 언덕이 눈에 보인다. 이 모습이 익숙하다. 어디서 보았지? 그래, 해운대! 해운대 바닷가도 딱 이런 지형이지.



"내게 해운대가 바다 그 자체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 해운대는 일 년에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던 곳. 수많은 추억이 있는 곳. 난 온전히 해운대의 풍경만을 내  가슴속에 담은 적이 있을까? 항상 누군가와 함께 했던 추억, 혹은 울적함에 소주병 사 들고 혼자 갔던 곳인데. 바다를 보면서도 바다를 본 게 아니라 내 옆의 사람과 혹은 나 자신과 이야기했지 바다와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해운대를 쉽게 자주 갈 수 있었던 건 참 행운이지만, 해운대의 기억이 바다 그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에 괜히 해운대에게  미안해진다. 하지만, 내게 해운대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여행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가끔씩 내 앞에 마주하고 있는 것만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내 앞에 있는 바다, 내 앞에 있는 음식, 내 앞에 있는 거리, 내 앞에 있는 사람.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에 집중하고, 이 순간 나와 함께 있는 사람과 공간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그래서 여행이 필요할 수 있다.


해변가에서 놀고 있는 섹시한 오빠들과 예쁜 언니들을 흐뭇하게 감상하며 도착한 언덕. 과연 내 예상대로 지중해 앞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너무 눈부셔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니스를  내려다보는데도 아까 해변에 두고 온 부산 생각에 갇혀 있다. 이곳에서 니스를 보니 더욱 부산 같다. 내 시선 어디에나 들어오는 산과 좁다란 골목길 그리고 바다까지. 니스에 도착하자마자 들었던 낯설지 않았던 그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비록 건물은 한국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지만, 한여름의 니스는 부산을 떠올려주기에 충분했다.

 

프랑스 북쪽의 건물들은 대게 회색 건물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곳 니스는 색색의 건물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혹시 남쪽의 따뜻한 날씨와 북쪽의 습기가 많은 눅눅한 날씨가 사람들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쳐 건물 색깔도 차이가 나는 걸까? 국토가 넓다 보니 지역별로 삶의 방식도 많이 다를진대, 이곳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는 니스에서는 이렇게 밖에서 빨래를 말리는 반면, 프랑스 북쪽에서는 습기 때문에 외부에서 빨래를 말리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도 지역별로 음식과 문화가 다른데 하물며 한국보다 더 넓은 나라에서는 얼마나 차이가 많이 날까.

유럽 음식에 지쳐 베트남 쌀국수 가게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들어갔다. 프랑스어를 굉장히 잘 구사하는 베트남 주인이 나와 자리를 안내해 준다. 나중에 우리 옆으로 그녀의 친구들이 들어와 앉는다.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더 열심히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을 보니, 자유로운 유럽의 생활방식에 그녀가 이미 많이 익숙해진 듯하다.

이탈리아와 가까워서인지, 날씨가 더워서인지 젤라토 아이스크림 가게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어김없이 맛있다! 

늦게 해가 지는 유럽. 8시 반이지만 아직도 해가 지지 않았다. 으레 그렇듯이 이곳에도 가판대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길에서 레게머리를 만들어 주며 돈을 벌고 있는 사람도 발견했다. 모든 것을 길에서 팔 고 있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한참을 구경하고 있었다. 하긴 캄보디아에는 목욕탕 의자와 어린이용 책상을 길에 펼쳐 두고 네일아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큰 가방 하나를 메고 돌아다니면서 마사지와 제모 서비스를 팔고 계시는 어머님도 있었다. 내게 주어진 장소가 없어도 내가 가진 능력으로 내 삶을 꾸려간다는 의지를 괜히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드디어 해가 지기 시작한다. 시간은 밤 10시가 되었다. 밤이 된 시내는 더욱더 해운대 바닷가 길을 연상시킨다. 니스에 미안하게도 이곳에서 부산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아마도 싱가포르를 뜨기 몇 달 전부터 앓고 있던 향수병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겐 그렇다.

걷기에 적당한 온도가 된 해가 진 니스 거리를 계속  떠돌아다녔다.

높은 온도에도 습기가 낮아 놀기 좋은 곳.

바다 색깔이 너무 예쁜 곳. 

바다뿐 아니라 골목길도, 건물도, 성당도 아름다운 곳.

아,,, 니스에서 하룻밤만 묵고 가기에는 너무 아쉽다.


PS. 내가 문을 직접 열어야만 되는 엘리베이터. 아직도 너무 신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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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 | 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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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떠나 벨기에로 가는 날 아침, 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탔다. 정거장을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안으로 들어오며 오랜만에 지옥철을 보게 됐다.


1분 1초가 중요한 출근시간에는 한 명이라도 더 타야 되는데 싱가포르 지하철은 항상 느긋하다. 안쪽은 텅 비었는데 문 쪽만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밖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문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안 쪽으로 들어가면 될 것인데 이 사람들은 이기적인 것인지, 예의가 발라 타인을 차마 밀지 못하는 건지 절대 문 쪽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싱가포르에서 4년 살고 나서는 후자일 거라고 잠정 결론 내렸다.) 한때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죽음의 구간을 지나 삼성역에 있는 회사에 출근했던 나는 안쪽이 명당이라는 걸 알기에 타자마자 “쏘리, 쏘리”하며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넓은 자리를 차지했다. 지하철에 타며 모세의 기적처럼 내가 길을 만들면 누구 한 명 나를 따라와 젖과 꿀이 흐르지는 않더라도 약속된 편안함이 있는 그곳으로 가길 바랬는데, 날 따라오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내 중심가로 갈수록 지하철 문 쪽만 사람이 꽉 차서 지하철 문도 못 열고 그냥 역을 지나치는데도 안쪽에는 한 두 명만 서 있다.(대게 안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국에서 지옥철 훈련을 받고 온 나 같은 외국인들로 보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도록 지하철 안 쪽으로 들어가 주세요.”


방송이 나와도 움직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 지하철을 타야만 지각을 면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한국에서 온 사람에겐 정말 어이없는 풍경이 매일 아침 싱가포르 지하철에서 벌어진다. 못해도 열 명은 더 태울 수 있는데 지하철은 속절없이 역을 떠난다. 물론 지하철 타려고 사람들을 미는 게 안전한 일은 아니지만, 출근 시간에는 그만한 미덕도 없다. 


언제나 자리가 남는 싱가포르의 지하철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발 디딜 틈 없는 출근 시간 파리 지하철이 참 어색했다. 그러다 마침내 지하철 안의 거친 사람들을 보며 고향에 온 듯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 지하철은 이래야 제 맛이지! 오랜만에 사람들로 빽빽한 지하철을 나는 앉아서 구경하며, 파리지엥들의 지하철 내 공간 활용능력에 깊이 감탄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도 직장인이었는데’


사람들에 섞여 지하철에서 내렸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내린 지하철을 계속 타고 갔다. 나와 함께 내린 한 무리는 나와 반대방향으로 우르르 걸어갔다. 모두가 나를 버려두고 떠나는 느낌이었다. 누가 봐도 떠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버스터미널로 걷는 나.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들과 같은 방향으로 걸었는데, 지금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자발적으로 자유를 반납하고 살아오던 내가 자유를 찾아 여기에 서 있는데, 이상하게 허전했다. 왠지 저 사람들의 뒤를 쫓아 나도 다시 지하철을 타야 할 것 같았다. 기껏 자유를 만들었는데 아직 그 자유에 적응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과연 여행이 끝났을 때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까?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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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 |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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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생 말로saint malo로 갔다.

마을 전체가 성에 둘러 쌓여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브리타니 지방이라고 하는데 몽생미셸이 어느 지역에 속하냐 하는 것을 두고 아직도 노르망디와 브리타니 사람들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을 내 지방에 꼭 두고 싶은 그 마음 ^^

성 안의 아름다운 마을과 해수욕장 때문에 휴가 온 사람들을 많이 찾아오고 있지만, 이곳은 외국인들보다 여름휴가 온 프랑스인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간조 때라 물이 빠져서 바닷물 대신, 바닷물을 끌어와서 만든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놀고 있다.

마침 마을에는 벼룩시장이 열렸다. 많은 여행객들 때문일까. 벌써 많은 상점들이 들어와 있었지만, 일요 벼룩시장 덕에 길거리 좌판에서 많은 물건이 나와 있다. 파리에서 벼룩시장을 못 가 좀 아쉬웠는데 이렇게 벼룩시장을 보다니. 예쁜 골목길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은 언제나 보기 좋다. 멋지게  차려입은 키 큰 중년 여성이 신발을 고르고 있는 모습마저도 특별해 보인다. 




늦은 오후 시간 활기에 찬 거리가 인상적이다. 길거리에서 파는 와플과 도넛을 먹으며 한 시간여를 그저 걷고 또 걸었다. 사람들을 보고 물건들을 보며... 그렇게 걸어 걸어 예쁜 벽돌 길과 벽돌집을 지나 성에 올랐다. 벽돌색은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색을 띠고 있어도 모든 건물이 다 비슷한 색을 가지고 있으니 정말 동화 속의 (밤이 되면) 무서운 마을 같다. 지붕 부분을 왜 저렇게 지었는지 집의 높이가 높아도 2층엔 작은 다락방만 들어갈 수 있는 집. 외벽도, 지붕도 모두가 벽돌로 지었다. 그리고 자그만 창문. 전쟁시를 대비하는 건가?

좁은 골목길을 지나고 마을을 둘러싼 성을 넘어오면 나오는 넓은 모래사장. 이곳도 조수간만의 차가 큰 편이라 곧 바닷물이 들어온단다. 바다였다가 길이었다가 이 길을 걷다 보면 흡사 부산의 다대포나 송정 해수욕장이 생각난다. ^^ 화창했던 날씨는 바다 쪽으로 갈수록 흐려진다. 

바닷가 쪽에서 마을을 바라보니 거대한 모래산 덕에 흡사 재개발 예정지구 같은 느낌을 준다.  멀리 있는 유럽식 건물과 높은 교회 건물이 재개발의 느낌을 상쇄시켜준다. 가만히 돌 위에  걸터앉아 여행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앞으로 어느 곳에 가고 싶은지, 그곳에서 무엇을 찾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는 시간이라 아쉽게도 땅끝에 있는 성(이라고 불리지만 잉글랜드 군에 항상 대비해 있었을 망루 같은)에는 들어가 보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파리뿐만 아니라 프랑스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전통을 최대한 지키는 그 마음을 오늘 몽생미셸과 생말로에서 또 만났다. 전통적인 건물 안에 있는 현대식 상점에서 전혀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휴가를 맞이한 프랑스인들, 휴가가 아닐 때도 카페에서 항상 여유를 찾는 그들이 이곳에서 더 큰 여유를 누리는 모습이 괜히 인상적으로 남을 곳이었다. 

내일이면 다시 로드트립, 7시간의 이동을 해 프랑스 중부로 내려간다.

어떤 모습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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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 | 생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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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묵었던 도시 bagnole de l'orne에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프랑스의 북서쪽. 그 유명하다는 몽생미셸. Mont-Saint-Michel. 논 저 멀리 성 같은 섬이 보인다. 들어가서 설명을 보니 성이 아니라 수도원과 교회가 결합된 형태인  "Abbey"라고 한다.

 자가용을 이용하든 버스를 이용하든 도착하게 되면 모두 하차하여 무료 셔틀버스나 하루에 3번 운행하는 마차)를 이용해 들어가야 한다. 물론 걸을 수도 있지만, 셔틀버스로도 10-15분 정도 되는 거리라 시간의 제약이 있는 여행객이 걷기엔 조금 먼 거리가 되지 싶다. 하지만 걷게 된다면 갯벌을 직접 밟으며(만조 때는 얕은 바다가 되는) 조용기 걷기에 좋은 그런 길. 어떤 자유로운 영혼들은 이미 신발을 벗고 갯벌을 걷고 있다. 

셔틀버스에서 내린 우리를 반겨주는 몽생미쉘

셔틀버스에서 내리니 날 반기는 이 장면. 정말 멋져서 몇 분간 가만히 서서 몽생미셸을 보고 있었다. 무려 800년에 걸쳐 지어졌다고 하는 몽생미셸. 프랑스 본토(?)에 다녀오던 수도승들이 벽돌을 하나하나 가져와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몇 년 전까지는 몽생미셸과 본토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가 있었다고 한다. 그 도로 덕에 바닷물이 막혀 도로 옆으로 모래들이 쌓였고, 또 간척 사업 덕에 더 이상 섬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섬이 아닌 그저 프랑스와 연결된 땅이 되어 버려 안타까웠던 걸까... 몽생미셸을 섬으로 다시 만드는 '몽생미셸 프로젝트'를 통해, 도로를 철거하고 다시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업이 2015년에 완공되었으며, 난 운 좋게 완공되고 이곳에 방문하게 되었다. :) 비록 600m만 떨어져 있다 해도 바다에 둘러싸인 육지와 떨어진 수도원이라니, 정말 속세에서 벗어나 진리를 찾으려고 했던 수도승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잖아.

여기도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데 누군가 차 빼는 걸 잊어버렸다!! 밀물 때에는 섬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물이 차 오른다. 어쩜 이런 곳에 이런 거대한 수도원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한여름, 극성수기의 프랑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섬에 입장한다. 수도원 밑으로 이렇게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좁은 벽돌 길 사이로 들어서 있는 상점들과 식당들. 유럽식 벽돌 바닥과 좁은 골목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그냥 같이 올라간다..

벽돌 길을 오르는 중에 건물 틈으로 보이는 바다가 참 아름답다. 근데 덩그러니 섬만 있는 곳이라 그런가. 8월 한여름에 나만 너무 춥다. 사진을 찍으니 흡사 북한 여자 같이 나온다. 싱가포르에 너무 오래 살았나...

몽생미쉘 수도원의 거대한 벽

몽생미셸 수도원에 입장하기 위해 입장권을 사야 된다. 한여름의 프랑스를 여행하는 일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앞으로 가게 될 로마도 그럴까??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길도 참 운치 있다. 정말 프랑스는 전통적인 도시 외관을 보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인다고 하는데 이런 곳에서 그런 노력이 보인다. 실제 파리의 건물은 내부는 최신식이더라도 외관은 고풍스러운 옛날 분위기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단다.

 "이런 전통을 유지하려다 보니 우리나라가 건축, 보수공사를 되게 잘 해. ^^"

 라는 친구의 한 마디. 

엄청난 높이의 수도원 천장. 그리고 수도원 중앙에 위치한 정원. 툴루즈에서 봤던 그 정원과 같은 모양이다. 수도원 내부를 돌아보는 틈틈이 보이는 바다와 하늘. 과연 이곳에서 신을 섬겼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까지 오게 됐을까? 섬에 있는 수도원을 택한 사람들에겐 분명 더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지 않았을까…

국경의 거의 끝에 위치한 수도원이라 그런지 예배당과 복도에 대포도 있고, 망루의 흔적도 곳곳에 있다. 실제로 영국과 가까운 위치 덕에 중세시대 잉글랜드와의 전쟁이 자주 일어났던 곳이란다. 전시 중에는 이 섬의 수도사들과 거주하던 주민들도 함께 섬과 수도원을 지켰을까? 수도원의 옥상에서 하늘을 보니 정말 신이 계신 하늘을 가장 가까이 느끼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뜻 그대로 그 어느 것도 없이 오로지 하늘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람은 무척 차다... 그곳에서 땅을 내려다보니 속세를 떠나 오직 진리를 찾기 위한 곳으로 제격인 생각이 들다가도, 이 세상 그 어떤 것들보다도 가장 위에 존재했을 중세시대 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권위를 말 그대로 보여주는(섬의 꼭대기에 수도원이 위치하고, 상점과 마을이 섬의 가장 아랫부분에 위치한) 섬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와 논밭의 경계가 전혀 없는데 그래서 이곳에서 재배한 식물들은 그 맛도 좀 다르다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식당에 들어 몽생미셸의 유명한 오믈렛 대신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홍합요리를 다시 먹었다. Le pouland라는 식당인데(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 가이드북에 소개된 식당이다. 근데 왜 소개됐는지 잘 모르겠다. 위치가 좋아서?)  서비스가 너무 느렸다. 아무리 식당에 사람이 많았지만 이곳에서 2시간을 있었다. 이래서 가이드북에 나오는 식당은 의심부터 해 봐야 하는가? ^^; 하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는 요리도, 경치도 멋있긴 했다. 프랑스의 Mouls(홍합) 요리도 맛있지만, 역시 내겐 한국의 홍합탕이 최고. ^^

그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꼭대기에 동상을 올려두었을까

몽생미셸에서 내려와 다시 셔틀버스를 타려다 마침 마주친 마차를 탔다. 한 사람당 5.3유로 하는데, 셔틀버스로로 10분 정도였던 왔던 거리를 다시 돌아간다. 말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또각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참 듣기 좋다.  몽생미셸이 있는 프랑스 북쪽 노르망디 지방은 말로도 유명한데 이 말들도 노르망디에서 태어나고 자란 말들이고 하루에 이렇게 세 번의 왕복 운행을 한단다. 총 18km를 운행하는 거라고 안내원이 장히 자세히 설명해 주네. 우리는 말의 노동시간도 잘 지켜준다는 말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몽생미셸은 야경이 아름답기로도 아주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언젠가 다시 올 기회가 된다면 저녁에 한 번 들르고 싶다. 그리고 수도원의 가장 높은 곳에서 좀 더 오래도록 명상에 잠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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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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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립 도서관을 갔다가 센강을 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는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곳으로 왔다. 바스티유 감옥은 혁명 당시 다 파괴되어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대신 혁명을 기념하는 탑만 남아 있다. 아무 계획 없이 온 여행이라 무엇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그다지 없었는데도 굳이  아무것도 없는 이 '터'에 꾸역꾸역 온 것을 보면 전공을 속일 수는 없다. 그래, 난 한때 열렬히 역사를 사랑했고, 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사학과를 전공한 사람이다. 그 탑을 보며 괜히 눈을 감고 그때 혁명을 상상해 봤다. 그들의 절박함, 사람답게 살고 싶은 그 소망들을...


                                          센 강에 있던 야외 수영장


오늘은 토요일, 친구의 친구 초청으로 바비큐 파티에 가게 됐다. 사실 파티랄 것도 없는 다섯 명이서 맛있게 고기를 구워 먹는 자리. 으레 삼겹살을 기대했던 난 그들이 굽고 있는 갈비뼈가 붙어 있는 고기들을 보며 속으로 실망을 했다. 그래 폭립이고 뭐고 역시 난 그냥 삼겹살이 최고!


 "근데 한국의 역사는 어때? 무슨 일들이 있었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잠시 고민했다. 한반도의 역사는 반만년 정도 되는데 그걸 어떻게  이야기해줘? 그 질문에  이런저런 답변을 하다가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이야기하던 중 묘한 기분을 느꼈다. 유럽에 오기 전 나는 아시아에서만 살면서 아시아 문화만 접했던 사람이다. 아시아 역사는 주로 서양으로부터 침략을 당한 역사. 동남아 대부분 국가도 이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의 식민지였었다. 그래서 다른 아시아 국가의 박물관을 가 보아도 서양으로부터 침략당했던 자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게다가 심심치 않게 유럽풍의 건물들도 발견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약소국으로 살았었던 그 시절의 아픔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 프랑스인들, 영국처럼 제국주의로 온 지구를 들쑤시고 다닌 나라 중 하나다. 그 결과 베트남에서도 나이 많은 어르신들 중 프랑스어를 하는 어른들을 찾아볼 수가 있고,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는 아예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이다. 그 덕에 본국의  영토뿐 아니라 몇 개의 섬 역시도 영토로 가지고 있는 나라. 약소국의 설움을 모른다. "우리도 나치에게  지배당했었어."라고 말하지만 그것도 고작(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3년 간이었다. 본인들이 식민지로 거느렸던 많은 나라들. 그 사람들이 고통당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있단다.

"그래도 우리는 다른 나라들처럼 심하게 굴지는 않았어. 고문도 심하게 안 하고, 주로 회유하는 식이었어."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통치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가 다 폭력일 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그 폭력이 괜찮아질 수 있을까? 그리고 너희 아프리카에 보상은 다 해줬니? 우리는 심하게 식민지 국민들을 대하지 않았으니 일본보다는, 독일보다는 훨씬 괜찮고, 아프리카 문제도 다 해결했다는 그들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역사시간에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그 시간들을 어떻게 배울까? 항상 침략 당해 힘겨워하던 자국 역사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강대국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제국주의에 철저히 뭉개졌던 나라의 국민이었던 나와, 제국주의로 전 세계를 호령했던 나라의 국민이었던 그들과 제국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는 것. 재미난 경험이다. 


      

오늘 나를 초대한 친구들은 지난주 결혼식에서도 봤던 커플인데 8년째 동거 중이며, 여자가 이전 동거남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까지 총 세명이 함께 살고 있다. 프랑스 문화상 그리고 법률상 동거도 결혼과 거의 동일한 형태의 가족임을 감안해 보면,

 '이 남자 부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네. ^^;'


 본인보다 8살 많은 미혼모와 살면서, 그녀의 아들까지 거두어서 같이 지내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여자분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친구들도 왜 이 남자가 이 여자를 선택했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하는 걸 보면 프랑스인들도 그런 조건은 참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나 보다.

 내가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아이가 있는 싱글이라면, 난 그 사람의 아이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조건들 하나도 안 보고,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

뭐 언젠가 헤어질 수도 있는 게 사람 일이지만, 그렇게 쉽지 않은 사람을 만나서 보듬고 사랑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내가 연애하는 모습이 갑자기 어린애 같고, 속물 같아 보이는 건 왜 일까..?

                   

여기저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낙서들

갑자기 이 커플, 대마초를 피기 시작한다. 프랑스에서도 분명 불법인데 어디서 구해 왔는지 피기 시작한다. 아들도 있는데 꼭 저러고 싶을까? 좋게 보이던 그들의 이미지에 좀 금이 가는 순간이다. 둘이 피는 건 상관없지만 아들 앞에서는 좀... 

내가 보수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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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 |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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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파리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오르셰 미술관을 가는 길에 일요일마다 서는 장에 들렀다. 유럽의 아무리 작은 동네에서도 으레 만날 수 있는 성당과 성당 주변의 광장. 그 광장에서 매주 일요일 아침 벼룩시장이 열린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장에 나와 있다.

내가 딱히 살 건 없지만 그래도 이런 시장을 보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이런 시장에 와야지 좀 사람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구경을 마치고, 오르셰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8월 첫째 주 일요일.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은 프리 선데이라 미술관 관람이 무료다. 그래서 관광객에 시민들까지 오르셰 미술관 앞에서도 역시 줄 서기는  계속된다.

푹푹 찌는 한여름의 날씨 아래 저 앞에 새치기를 하는 두 명의 수녀님 아니 수녀들이 보인다. 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거리를 조금씩 새치기를 해대더니 결국 20분 만에 입구에까지 도달했다. 수녀복을 입고 뻔뻔하게 새치기를 해내는 대범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기차역을 개조하여 만든 미술관답게 정말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과 한쪽 벽을 크게 장식하고 있는 황금빛 거대한 벽시계가 기차역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입구에 위치해 있는 '자유의 여신상' 그래,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미국에게 선물로 준 거라고 했었지. 


그 어떤 그림들보다도 그날 하루 일을 마친 후의 그림들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밀레의 <만종>.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내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감사기도를 드리는 여인의 모습과,

농사일을 마치고 소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의 모습. 뒤로 비치는 햇살이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신비하게 만들어 준다. 하루를 열심히 보낸, 노동의 가치를 더 신성하게 만들어 주는 느낌이다. 그래, 어떤 위치에서든 주어진 시간, 하루를 열심히 보낸 사람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법.


폴 세잔의 그림이었나? 가족모임이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하나, 둘, 셋!' 찰칵. 각자 자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의 모습을 나타낸 것과 같은 그림. 재치 있는 그림이다.


흑인은 언제부터 유럽에서 노예로 생활하게 되었을까? 그림과 조각에서 심심치 않게 노예로 보이는 흑인들이 등장한다. 역시 그림, 문학 등 예술을 잘  살펴봐도 그때의 시대 상황,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는 정말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도 그냥 지나가는 순간이 아닌 역사가 되기 때문에 현재를 잘 살아내야 한다고 한참 공부하던 언젠가 생각하곤 했었다..


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들어가기도 힘들다. 바로 나도 좋아하는 <반 고흐 작품 전시관>

정말 집도 하늘도 숲도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그 당시에는 완전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던 그인데 지금 그의 그림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지 그게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암스테르담 가면 무조건 반 고흐 미술관을 가야지. 그나저나 이곳에 소장되어 있어야 될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 대여 중이라 못 봐서 너무 아쉽다.

3년 전 싱가포르 박물관에서 "오르셰전"이 열렸을 때, 그 그림 앞에서 30분을 가만히 보고 앉아 있었다.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참 멋지고 이상하게 슬펐던 그 그림.



오르셰 미술관 옥상에서 보는 파리는 역시나 아름답다. 멀리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레쾨르 사원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를 지나가는 투어 보트. 이렇게 큰 규모의 투어 보트는 파리에서 처음 봤다. 역시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다. 한여름의 파리는 시민의 수보다 관광객의 수가 3배는 더 많다고 한다. 한여름의 해운대는 다른 지방의 관광객들이 더 많듯이 한여름의 파리는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해 있다!


미술관을 나와 대충 와플을 사서 강변에 앉아 먹으며 사람 구경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고, 돗자리를 깔고 벌써부터 술을 마시는가 하면, 누군가는 나처럼 그저 사람 구경을 하고 있다. 


오늘이 8월 2일. 한 달 전에 퇴사를 했고 지금 난 프랑스 파리에 와 있다. 여행  일주일째. 내가 하고 있는 여행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었나. 내가 원하는 여행의 모습이었나. 또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여행 와서도 이렇게 고민을 하는 나는 무엇인가. 그 시간 그 장소에 온전히 나를 맡기는 것은 언제쯤 내게 가능한 일이 될까? 아니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여행은 무엇인가? 난 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어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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