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한국에서 온 XX라고 하고요, 최근 일을 그만두고 유럽을 여행하고 있어요."


유럽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카우치서핑과 히치하이킹이었다. 특히 카우치서핑으로 유럽을 여행한 여행기를 읽고 나서는 ‘그래 이런 게 진짜 여행이지.’라며 현지인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꿈을 꿨다. 하지만 메시지를 계속 보내도 카우치서핑이 처음이고, 추천의 글 하나 없는 나는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 그렇게 카우치서핑을 아예 포기할 무렵, 한줄기 빛과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안녕, 네가 말한 날짜 괜찮은데, 다른 게스트랑 같이 방을 써야 할 거야. 상관없으면 우리 집으로와. 주소는..."


처음 받아보는 “okay” 메시지에 나는 바로 함부르크 행 버스표를 예매했다. 게다가 다른 게스트도 있다니 어색하지도 않고 더 좋을 것이다. 드디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 카우치서핑이 이루어지는구나!

생전 본 적도 없는 나를, 카우치서핑이 처음이라 프로필에 추천의 글 하나 없는 나를 처음으로 재워준 사람은 함부르크의 천사, 나달 아저씨. 그는 30년 전에 시리아에서 독일로 건너와서 이제는 독일에서 산 날이 더 길다고 했다. 아저씨가 간단히 소개해준 방과 거실의 화이트보드에는 그동안 카우치서핑으로 이 집을 다녀갔던 게스트들이 남긴 행복한 메시지가 남아 있었고, 그건 아저씨 인생의 기쁨인 듯했다.


곧 먼저 와 있던 게스트, 미국에서 온 안나가 도착했다. 함부르크에서의 첫날이라고 아저씨는 인도의 난과 비슷한 시리아 식 애피타이저와 구운 연어, 그리고 감자튀김으로 구성된 맛있는 저녁을 차려 주셨다. 공짜로 재워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근사한 밥까지 차려주시는 아저씨는 사람에게 베푸는 게 그저 즐거운지 시리아 술까지 만드셨다.


“카우치서핑하다 보면 딱 잠만 자고 호스트랑 이야기도 안 하고 가는 게스트들이 있거든. 그 아이들은 참 얌체 같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숙박비를 아끼니까 자기들은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인생은 그게 다가 아니거든.”


아저씨의 그 말에 낮에는 함부르크 시내를 돌아다니다가도 해가 질 무렵이면 바로 집으로 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안나와 함께 셋이서 이야기 했는데 안나는 항상 30분 후에 슬그머니 빠져 방으로 들어가 혼자 놀았고, 심심한 아저씨를 걱정하는 오지랖 넓은 나만 아저씨와 함께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시리아에 산 날보다 독일에 산 날이 더 많아. 독일 시민권도 있지만, 여전히 독일은 남의 나라야. 가끔씩 참 외로워."

                              
4년이란 시간 남의 나라에 살면서 가끔씩 주체할 수 없이 외로웠는데, 30년을 살아도 그건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느낌인가 보다. 독일인과 뿌리까지 섞일 수 없는, 그들과 매일 부대끼며 지내도 채워지지 않는 그 느낌. 나만 느낀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뭔가 위안이 되었다.


아저씨는 아침마다 프랑스 라디오를 들어서, 덕분에 아침 먹는 내내 우리는 ‘봉주르’를 들어야 했다. 아랍어, 독일어, 영어까지 3개 국어를 하지만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은 게 가장 후회된다는 아저씨는 그 후회를 끝내려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단다. 그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영어만으로 벅차다며 매번 제2외국어를 배우려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는데 아저씨를 보니 후회하기 전에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같이 좋은 호스트를 만나서 전 운이 정말 좋아요. 고마워요.”

"고맙다고 안 해도 돼. 정말 나한테 고마우면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기회를 놓치지 마. 작은 행동이지만 그게 우리가 사는 곳을 좋게 만드는 일이야. 선 순환을 만드는 거지."


예수님인가? 아저씨는 먹여주고 재워주신 것도 모자라 교훈과 따뜻한 마음까지 안겨 주셨다. 마음이 한창 감동으로 차 오를 무렵 아저씨는 뜬금없는 말을 했다.


“나 게스트들한테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는데 너 참 매력 있고, 좋은 사람 같아. 여행 잠깐 쉬고 독일에 좀 더 있으면 안 돼? 몇 달 동안 여기서 지내도 돼. 너 어차피 일도 그만 두었다며.”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아저씨는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부담스럽도록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정신이 화들짝 깼다.


“너 그 애랑 결혼할 거야?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어.”


독일인과 뿌리까지 섞일 수는 없어 항상 이방인 같다는 아저씨는 이런 부분에서는 뼛속까지 유러피언이었다.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고마운 호스트라 뭐라 말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피곤하다 말하고 방에 들어갔다.


‘내일 당장 다른 데 찾아서 나가야지.’


하지만 나갈 때 나가더라도, 아저씨에게 이 찝찝한 기분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늦게 집에 들어간 나는 나를 걱정하는 아저씨에게 내 기분을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게 좀 이상한 것 같지만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기분 풀어. 우리 집에 머무는 게스트에게 안 좋은 기억을 주기 싫어. 이젠 너를 게스트로만 볼게.”

 
‘게스트로만? 아이고 아저씨, 제발 좀.’


그 이후 덜 따뜻해진 아저씨는 다른 게스트들 앞에서 일부러 날 놀리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 했고, 그런 모습에 난 괜히 미안했다. 아저씨는 내가 떠나는 날 저녁에는 마지막이라고 맛있는 저녁을 만들었고, 내가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함부르크에 하루 더 머무르라고 했다.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게스트의 아침과 저녁까지 다 챙겨주고 신경 쓰는 호스트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사 왔던 머그잔을 선물로 드리고 함부르크를 떠나는 길, 색다른 여행의 기억을 만들어 준 나달 아저씨를 생각했다. 아저씨 때문에라도 함부르크는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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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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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의 마지막 날, 나를 3일 간 재워준 엠마뉴엘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사이클리스트 복장을 하고 출근하기 전 정원의 잡초를 뽑으면서 거래처 사람과 통화하던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매일 왕복 30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아이들의 학교 캠프에도 참가하고, 아이들의 다양한 경험을 위해 카우치서핑 호스트도 하는 이 사람의 모습은 내게 '북유럽 아빠'의 좋은 예로 남게 되었다. 

집을 나서 트레인을 타러 가는 길.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길가에 핀 꽃 하나도 그저 스칠 수가 없다. 자세히 보니 무궁화가 피어 있다. 코펜하겐의 주택가에서 이렇게 무궁화를 알아보다니, 대한민국 국민이긴 한가보다.

몇 번 무임승차했던 코펜하겐의 트레인 내부

코펜하겐의 마지막 날 그래도 인어공주 상을 봐야 하지 않겠냐는 관광객의 심리가 발동하여 찾아가던 중, 이왕이면 자동차가 다니는 큰 도로보다는 공원을 통해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운 좋게 얻어걸린 이 곳, 카스텔레트 (Kastellet). 으레 그렇듯 잔디밭이 넓게 펼쳐질 것으로만 기대했는데 적당히 큰 호수와 군대 주둔지로 쓰인 것으로 추측되는 예전 건물과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던 꽤 볼만한 곳이었다. 

공원 내의 적당한 구릉지대가 있어 순찰을 하거나, 적으로부터 피하거나 숨어서 공격하기 좋은 곳으로 보였다. 덕분에 평평한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보다 더 큰 운동 효과를 볼 수 있고, 언덕 위에서는 가까운 바다의 모습도 볼 수 있는 예쁜 공원이었다. 그 때문일까. 나는 인어공주에 대한 생각을 잊고, 언덕을 올라가 공원과 코펜하겐 시내를 번갈아 보며 그저 이 곳에 서 있는 것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목적했던 곳을 가는 것보다, 그곳에 가는 길에서 찾는 것들이 보물인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 이 공원도 딱 그렇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미소 지으며 인사해 주는 코펜하겐 사람들 속에 잠시나마 섞여 있을 수 있는 곳. (이 곳이 공원이 아니라 코펜하겐의 북쪽 항구를 지키기 위한 요새로 쓰였다는 건 덴마크를 떠난 뒤 알게 됐다.) 


호수의 바로 옆에는 성 알반 교회가 카스텔레트의 잔디밭과 어우러져 유럽 엽서 사진의 이미지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교회 근처에는 이렇게 처칠의 동상까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 교회도 영국식 교회라고 한다. 카스텔레트 요새가 그랬듯 때로는 사전 지식 없이 무언가를 보고 즐기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라고 쓰고 싶은데 난 사전 지식 없이 하는 여행이 한 70%정도 된다...


이 부근이 관광객들에게 노다지와 같은 곳인지 교회 근처에는 코펜하겐의 셸린 섬의 탄생신화의 주인공 '게피온 여신'과 황소들이 조각된  '게피온 분수'가 있었다. 물속에서 소를 몰고 있는 터프한 모습의 여신. 하지만 이 게피온 분수보다는 분수 주변에 전시되어 있는 클래식카가 내 눈길을 더 끌었다. 그 독특한 모양과 아름다운 곡선에 정신이 팔려 몇 장 찍어보려고 꽤 오래 기웃거렸던 기억이 난다.

게피온 분수 근처의 처칠 공원. 처칠 동상

다시 정신 차리고 인어공주상을 보러 가다가 발견한 대형 크루즈. 대형 컨테이너선이 아니면서 이렇게 큰 배는 처음 본다. 각각의 칸이 마치 호텔방과 같은 거구나. 이 크루즈는 어디를 갈까? 그리고 비용은 얼마나 될까? 내 버킷리스트에 있는 남극 크루즈 여행을 언젠가는 꼭 이루리라는 다짐을 난데없이 하며, 드디어 인어공주 상을 찾았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작은 크기의 청동상. 어린 시절 읽은 동화 속 주인공들 중 거의 (아마도) 유일하게 새드엔딩의 주인공이라서 그럴까. 흐린 하늘과 더불어 더 우울해 보이는 인어공주. 이미 모여 있던 많은 관광객들은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각각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데르센 동상도 어딘가 있다고 하지만 관심이 없어 패스. 방정환 선생님 동상은 있는지도 모르는데 안데르센 동상은 찾아서 뭐해.

이미 해는 완전히 졌고, 베를린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코펜하겐의 밤을 혼자 즐겨야 하는 시간. 해가 진 후 여자 혼자서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는 안전한 도시에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면서, 거리를 걸으며 이곳저곳을 눈으로 훑어낸다.

'저 버스는 어디를 돌아다닐까?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정말 타고 싶었던 코펜하겐 파티 버스를 뒤로 하고 덴마크의 여왕과 가족이 거주한다는 아말리엔보그 궁전 광장을 지나, 프레데릭스 교회를 지나 조금씩 코펜하겐의 센트럴로 걸었다.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서 혼자 펍에 들어가서 술 마시는 일도 간간히 하고 있다.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서 저녁을 거르고 맥주 한 잔으로 때우는 일이 많아졌다.


역시나 오늘도 맥주를 한 잔 하기로 하고, 아무 골목 첫 번째로 보이는 펍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졌어도 문을 열고 혼자 들어가는 나를 일제히 바라보는 손님들을 보는 건 조금 부담스러웠다. 테이블 4개, 그리고 바. 유럽의 중세시대가 떠오르게 만드는 펍의 인테리어. 네다섯 명의 사람들이 이미 술을 마시고 있는 곳에 어색하지 않은 척하며 맥주 한 잔을 시켜 바에 앉았다. 내게 말 걸지 않기를 바라면서 들고 다니던 책을 펴고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눈으로는 책을 읽고 있지만, 끼리끼리 술 마시고 잇는 사람들이 괜히 부러운 건 왜일까? 혼자 여행 다니는 게 외로워지기 시작하나 보다. 그 사람들에게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은 꿋꿋하게 맥주를 한 잔 더 시켜 마시고 그 펍을 나왔다. 

아말리엔보그 궁전을 지키고 있던 머리가 너무 무거워 보이는 근위병

조용한 골목, 저녁시간 옅은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벽돌 길에서 괜히 아련함을 느끼며 감상에 젖으려는 찰나, 멀리 술 취한 아저씨의 고성방가 소리를 듣고 서둘러 베를린 행 버스로 걸었다.

3일 동안 고마웠어, 코펜하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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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덴마크 | 코펜하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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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물가가 살인적이라는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손은 자동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카우치서핑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사람들 몇 명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웹사이트를 끄려는 찰나, 한 사람에게 이름을 잘 못 써서 보낸 것을 발견했다.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복사 및 붙여넣기에 실수가 있었다. 메시지를 취소하려 했지만 취소가 되지 않았다. 잘 못 보냈다는 메시지를 다시 보낼까 하다가 귀찮아 그냥 내버려 뒀다. 몇 시간 후, 내가 메시지를 잘 못 보낸 사람에게서 답장을 받았다. 'Fu** you'만안 했지 그런 식으로 살지 말라며 아주 그냥 저주를 퍼붓고 있다. 화난 건 이해하지만 너무 하단 생각이 든다.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욕먹고 주눅이 들었다.


그렇게 덴마크의 카우치서핑을 포기하려던 찰나에 엠마뉴엘에게 답장을 받게 됐다. 딸의 학교 캠프에 참석하느라 식구들이 모두 집을 비웠지만 본인의 집에서 머물 수 있다고, 마침 홍콩에서 온 다른 여행객도 있으니 괜찮으면 오라고 했다. 내가 도착하는 날 가족들이 집에 없을 거라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오예'를 외쳤다. 그런 나 자신이 당혹스러웠다.

해먹까지 걸려 있던 엠마뉴엘네 거실

그다음 날, 코펜하겐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 다시 엠마뉴엘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메트로가 고장 나는 바람에 모든 승객들이 버스로 옮겨 타야 하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그 바람에 그의 집에 도착하는데 장장 3시간이 걸렸다. 시간은 이미 열 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집주인 엠마뉴엘과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는 나를 반겨주었지만 동시에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원망의 눈길도 살짝 보냈다.


"메트로가 어쩌고...... 버스를 탔는데...... 저쩌고." 

구구절절 늘어놓는 데다 변명이 되는 느낌이다. 시간이 늦어 엠마뉴엘의 아이들은 다 자고, 그도 내일 일을 위해 자야 할 시간. 그렇게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았다. 




아무리 카우치서핑이 무료라고 해도, 호스트는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일종의 문화 교류.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 여자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먹고 사는지, 여행은 어떤지 등을 듣는 간접경험. 게다가 엠마뉴엘은 세 아이의 아빠다. 이 아빠는 거실에서 세 아이가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영어실력이 느는 것은 덤일 테고.


그제야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관대하지만 자선사업가는 아니다. 한국에서 온 혼자 여행하는 여자와 아이들이 이야기하고 노는 것을 상상했는데 그것을 못해서 씁쓸했던 거다. 게다가 평일이면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가야 하니 오늘밖에 시간이 없었을 것이고. 그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서로 약속하지 않았다는 것만 믿고 늦게 들어왔으니…… 


이제야 카우치서핑이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의 첫 카우치서핑 호스트였던 나달 아저씨는 반쯤 은퇴하고 댁에 계셨고, 게스트들에게 먼저 다가가셨다. 하지만 두 번째 엠마뉴엘의 집에 선 그도 일로 바쁘고, 그의 아이들도 다 초등학생들이라 내가 그들을 만나려 노력할 필요가 있었다. 엠마뉴엘의 집에서 난 나달 아저씨가 말한 얌체 카우치 서퍼가 되어 버렸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카우치서핑에서는 온종일 싸돌아 다니느라 피곤하더라도 호스트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현지인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은 재미있고 값지지만, 때에 따라선 정말 피곤하다. 특히나 그냥 침대에 누워 자고 싶은 그런 날이면 더더욱.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아직은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건 에너지 소모가 엄청난 일이었다. 문득 카우치서핑만으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무한한 존경심이 느껴졌다. 에너지를 회복하고 호스트와 놀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카우치서핑을 해야겠다.


엠마뉴엘네 뒷뜰

이제야 카우치서핑이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첫 번째 나달 아저씨네에서는 아저씨가 댁에 계속 계셨고, 본인이 여행객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편이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엠마뉴엘네에서는 엠마뉴엘도 본인의 일로 바쁘고, 그의 아이들도 다 초등학생들이라 내가 그들을 만나려 좀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와 함께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내가 정말 좋은 사람 같다면 그렇게 칭찬을 해 주시던 나달 아저씨 덕분에 카우치서핑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져서였던 걸까.. 


에너지가 좀 회복되면 카우치서핑을 다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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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집에서 편하고 아늑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본격 코펜하겐 시내를 돌아보러 갈 시간.

가고 싶은 곳도 알아본 곳도 없이 무작정 시내로 나갔다. 함부르크에서 타고 왔던 버스가 날 내려 준 그 장소로 다시 돌아가 어디를 가 볼까 돌아다니다 눈에 띈 일본 음식점. 아시아 음식이 너무나 먹고 싶어서 앞뒤 재지 않고 바로 들어가서 돈가스를 시켜 먹었다. 오랜만에 뱃속에 쌀이 들어가서 행복했던 마음도 잠시, 말도 안 되는 가격이 적힌 계산서에 가슴이 미어진다.


일단 박물관에라도 가볼 생각으로 길에서 지도를 보며 한껏 집중하고 있으니, 지나가는 한 청년이 어디를 찾느냐고 묻는다. 잘 생긴 데다가 친절하기까지 하다니. 코펜하겐의 이미지가 더 좋아진다. ^^

그렇게 찾은 덴마크의 국립박물관은 일요일이라 입장료가 무료다. 다른 나라의 국립박물관이 그렇듯 이곳도 으레 선사시대의 유물부터 고스란히 수집, 보관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본 것 같은 돌들이 전시되어 있는 방을 지나니 이제야 유럽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왕족과 귀족의 장신구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 예전 바이킹들의 술잔을 직접 보니 그리 신기할 수가 없다. 술 마실 때 쓰기에 그리 편해 보이는 술잔은 아니지만 독특한 문양에다 가지고 다니기 편할 거 같아 보이긴 한다. 그리고 왠지 오랜 시간 술이 시원하게 지속될 것 같다.












가장 흥미롭던 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끌려갔던 사람들을 구조하는 적십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던 곳. 사람들을 구조하던 의사들, 그들을 태우고 오는 버스를 운전했던 사람들, 식량을 준비했던 사람들. 사람들의 증언에 그곳의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졌다. 구조작전을 짜고 실행해 옮기기 전까지의 과정에 쓰였던 물건이 전시되어 있는 곳에서는 그때의 급박하고 비장한 마음이 전해져 나까지 긴장되었고, 사람들이 돌아와 가족들의 품에 다시 안기는 순간에는 나까지도 같이 행복해졌다. 적십자의 이 활동 덕분에 전 유럽에서 덴마크는 나치에게 가장 적은 피해를 입었다며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이다.










특별 전시로 아시아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곳에서 한국의 기와집을 만나니 꽤 반가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비정상적으로 큰 눈을 부릅뜨고 있는 모델의 사진이 박힌 일본의 스티커 사진기 앞에서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이 스티커 자판기는 은근히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 같다.



 

박물관이 문 닫는 시간에 맞춰 다시 코펜하겐 시내를 정처 없이 걷다가 멀리 보이는 교회의 첨탑을 발견했다. 그 첨탑으로 올라가고 싶은 충동에 따라 지도를 휙휙 돌려서 방향을 찾아가며 찾은 교회는 The church of our savor. 

교회 첨탑 외관에 보이는 나선형은 첩탑 꼭대기로 가는 계단이었고, 실제로 사람들이 그 계단을 통해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계단이 외부에 설치되어 있는 흥미로운 곳을 올라가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도 피할 겸 안에서 교회의 예배당 안에서 경건한 마음을 잠시 가지고는 첨탑으로 올라갔다. 유럽 여행에서는 교회 덕분에 계단을 오를 일이 의외로 많다. 올라가는 계단 내부에는 창문도 없어 올라가는 길이 숨이 막힐 때도 몇 번 있지만, 교회의 꼭대기는 언제나 올라가 볼만하다. 그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기독교만큼 오만하게 서 있는 교회. 그리고 그 꼭대기에서는 온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다. 360도 어느 방향으로 바라보아도 그림 같은 도시. 파리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높은 건물이 없는 도시는 평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코펜하겐에서는 따뜻한 색의 벽돌집이 많이 있어 정말 그림 같다. 색색깔의 집들과 바다가 어우러져 평화롭고 조용한 코펜하겐. 비 오는 날씨 탓도 있겠지만 한 도시의 수도답지 않게 굉장히 차분한 느낌이다.

우산도 짐스럽기에 비가 와도 그저 맞고 다니는. 
그렇게 하나둘 거추장스러운 것을 줄이고 정말 필요한 것만 내 곁에 남게 되는 것. 여행.


비가 추적추적 내리지만 그래서 더 시내를 돌아다니고 싶다. 비 때문에 날씨도 춥지만, 적당히 사람이 없는, 그림 같은 집들과, 운하와 예쁜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이 거리를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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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덴마크 | 코펜하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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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코펜하겐으로 떠나기로 한 아침에도 나달 아저씨와 홍콩 여행객들은 함부르크에 하루 더 머물면서 라파반에서 파티를 하고 새벽에 열리는 어시장 경매를 같이 보자며 나를 유혹한다. 내 귀는 또 강하게 펄럭거리지만, 그래도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좋은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에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길, 마음이 무거워진다. 


함부르크에서 코펜하겐까지 버스로 6시간. 이 6시간의 여정 중 45분은 발틱해를 배로 건너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발틱해를 45분 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그새 눈에 익숙해진 함부르크 시내를 구경하며 가는 버스 안, 곧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페리만큼이나 페리 안의 주차 공간도 엄청나다. 몇 대의 대형버스를 비롯한 모든 차가 함께 들어간다. 나름 면세구역이라 배 안에 조그만 면세점들이 있는 게 귀여웠다. 갑판으로 나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보는 발틱해와 하늘. 그렇게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갈 때쯤, 도착했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타고 왔던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를 찾으러 내려갔다. 그런데 도무지 어떤 버스를 탔는지, 버스의 색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층수를 잘못 계산했나 싶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웬 기차만 덩그러니 있다. 타고 왔던 버스를 찾기 위해 다시 아래층으로 가봤지만 도무지 버스를 찾을 수가 없다.


 '기차가 버스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건가 봐.'

버스를 도저히 못 찾던 나는 배 안에 있던 기차를 간이 기차로 생각, 기차를 타고 자리에 앉았다. 우연히 함부르크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던 덴마크인 부부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됐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 기차가 버스까지 데려다주냐고 물어봤다.

 "뭔 소리야? 우리는 함부르크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온 건데? 버스 타고 왔으면 버스를 찾아야 돼."


아뿔싸. 이미 기차가 출발하고 있다. 이 기차를 타고 그냥 갈까 싶기도 했지만 버스에 둔 내 짐이 문제다. 기차에서 사정 설명해 가며 가까스로 내려 역으로 달려갔다. 친절한 역무원들이 알려주는 대로 버스가 지나갈 법한 길이 있는 곳으로 가니 내가 탔던 버스는 오직 나를 기다리기 위해 길가에 서 있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을 보았나! 그날따라 왠지 버스 맨 앞좌석에 앉고 싶었는데 버스 기사님은 내가 타지 않은 걸 기억하고 있었다. 

저 버스에 타기만 하면 되는데.. 그때부터 버스를 향한 달리기가 시작됐다. 국경지대에 있는 기차역이라 출구로 가는 길은 굉장히 꼬여 있었고, 긴치마를 입고 있던 나는 치마를 걷어올리고 철조망을 넘으며 버스를 향해 달려갔다. 버스는 눈 앞에 있었지만 그 버스를 타기까지 꼬인 길을 따라 15분을 내리 달렸다. 그 사이 버스는 나를 천천히 따라왔고, 졸지에 난 버스의 모든 승객들이 감상하는 코믹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Welcome back!"

15분 간의 코믹 드라마 후, 내가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모든 승객들이 박수를 친다. 그들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 버스에 타면서부터 계속 '쏘리'를 외치면서도, 내 자리가 맨 앞이라 빨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음에 정말 감사를 드렸다.

사실 어렴풋이 "Stupid"라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뭐라 반박할 수가 없다... 그 순간 나는 정말 바보였으니....


나를 태운 버스가 다시 출발하고, 30분도 안 되어 난 속 편히 버스 안에서 잠들었다.

덴마크 중앙역

그렇게 도착한 덴마크 중앙역.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서 집주소도 받지 않고 떠난 길이라 그냥 게스트하우스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중앙역에서 자동으로 연결된 와이파이 덕에 호스트인 엠마뉴엘에게서 집주소와 집 찾아오는 방법이 적힌 메시지를 받았다. 중앙역에 와이파이가 되는 곳은 처음이었고, 그 덕에 카우치서핑에 다시 성공하게 되다니! 그리고 


이렇게 사소한 일들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것,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내게 친절을 베풀 기회를 주고(?), 그 친절에 깊이 감사할 수 있는 것. 여행 전에도 내게 분명 일어나던 일들인데 미처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다.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것들. 여행은 그렇게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엠마뉴엘의 설명대로 메트로를 타기 위해 중앙역과 연결된 메트로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티켓을 사고 메트로를 타기까지 다시 30분이 걸렸다. 심한 방향치인 나는 언제나 목적지 근처까지는 쉽게 오지만 목적지 근처에 와서부터 굉장히 혼란을 느낀다. 어디 플랫폼인지 어느 방향인지... 

그렇게 겨우 잡아 탄 메트로를 타고 거의 40분은 내린 어느 역. 이미 코펜하겐 시내로부터 한참 먼 외곽이다. 그 역에서부터 엠마뉴엘의 설명대로 쭉 걸어가는 길. 이 길이 맞는지, 어디에서 왼쪽 길로 빠져야 하는지 긴장을 하고 있던 나는 얼마나 걸었는지 몰랐지만, 족히 20분은 걸어 그의 집에 도착했다.

엠마뉴엘네 정원과 집으로 연결되는 길

여기가 맞나? 이 길이 맞나 싶어 조용히 들어간 곳에선 넓은 정원과 아름다운 전원주택. 화분 밑에 숨겨놨다던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신세계가 펼쳐져 있다. 태어나서 본 집 중 가장 넓은 집. 1층에만 방이 다섯 개. 거실도 2곳이며, 한 곳엔 해먹까지 걸려 있다. 내게 배정된 지하로 내려가는 나무계단. 흔히 영화 속에서만 보던 허름하고 음산한 지하가 아닌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지하. 지하에도 방만 세 개가 있고, 화장실, 세탁실이 따로 있다. 

아이들의 학교 캠프로 엠마뉴엘네 가족이 모두 자리를 비운 오늘. 이런 곳에서 하루를 혼자 보낼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하다. 

아침에만 해도 함부르크였고, 점심 때는 멍청한 소동을 일으켰지만, 이렇게 저녁에는 혼자서 넓은 방을 차지하며 유유자적할 수 있다니. 아무래도 난 참 운이 좋은 여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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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덴마크 | 코펜하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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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