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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12 파리 지옥철 구경

파리를 떠나 벨기에로 가는 날 아침, 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탔다. 정거장을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안으로 들어오며 오랜만에 지옥철을 보게 됐다.


1분 1초가 중요한 출근시간에는 한 명이라도 더 타야 되는데 싱가포르 지하철은 항상 느긋하다. 안쪽은 텅 비었는데 문 쪽만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밖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문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안 쪽으로 들어가면 될 것인데 이 사람들은 이기적인 것인지, 예의가 발라 타인을 차마 밀지 못하는 건지 절대 문 쪽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싱가포르에서 4년 살고 나서는 후자일 거라고 잠정 결론 내렸다.) 한때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죽음의 구간을 지나 삼성역에 있는 회사에 출근했던 나는 안쪽이 명당이라는 걸 알기에 타자마자 “쏘리, 쏘리”하며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넓은 자리를 차지했다. 지하철에 타며 모세의 기적처럼 내가 길을 만들면 누구 한 명 나를 따라와 젖과 꿀이 흐르지는 않더라도 약속된 편안함이 있는 그곳으로 가길 바랬는데, 날 따라오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내 중심가로 갈수록 지하철 문 쪽만 사람이 꽉 차서 지하철 문도 못 열고 그냥 역을 지나치는데도 안쪽에는 한 두 명만 서 있다.(대게 안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국에서 지옥철 훈련을 받고 온 나 같은 외국인들로 보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도록 지하철 안 쪽으로 들어가 주세요.”


방송이 나와도 움직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 지하철을 타야만 지각을 면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한국에서 온 사람에겐 정말 어이없는 풍경이 매일 아침 싱가포르 지하철에서 벌어진다. 못해도 열 명은 더 태울 수 있는데 지하철은 속절없이 역을 떠난다. 물론 지하철 타려고 사람들을 미는 게 안전한 일은 아니지만, 출근 시간에는 그만한 미덕도 없다. 


언제나 자리가 남는 싱가포르의 지하철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발 디딜 틈 없는 출근 시간 파리 지하철이 참 어색했다. 그러다 마침내 지하철 안의 거친 사람들을 보며 고향에 온 듯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 지하철은 이래야 제 맛이지! 오랜만에 사람들로 빽빽한 지하철을 나는 앉아서 구경하며, 파리지엥들의 지하철 내 공간 활용능력에 깊이 감탄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도 직장인이었는데’


사람들에 섞여 지하철에서 내렸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내린 지하철을 계속 타고 갔다. 나와 함께 내린 한 무리는 나와 반대방향으로 우르르 걸어갔다. 모두가 나를 버려두고 떠나는 느낌이었다. 누가 봐도 떠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버스터미널로 걷는 나.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들과 같은 방향으로 걸었는데, 지금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자발적으로 자유를 반납하고 살아오던 내가 자유를 찾아 여기에 서 있는데, 이상하게 허전했다. 왠지 저 사람들의 뒤를 쫓아 나도 다시 지하철을 타야 할 것 같았다. 기껏 자유를 만들었는데 아직 그 자유에 적응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과연 여행이 끝났을 때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까?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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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