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건디에서 다시 떠나는 길. 오늘의 목적지는 프랑스 동남쪽 끝, 휴양도시 니스.

(그러고 보니 어쩜 위치까지 부산이랑 비슷하지? ^^)

30도를 훌쩍 넘는 바깥 온도,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어도 차 안의 온도는 흡사 40도가 될 것 같다. 이런 날씨에 차에 7시간 앉아 있으니 두통까지 몰려온다. 참을성에 한계가 올 무렵, 드디어 니스에 도착했다. 이제까지 봤던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과 뭔가 다른 느낌이다. 굉장히 어수선하지만 그만큼 더 생기가 돈다고나 할까. 그리고 왠지 낯설지 않은 이 느낌.

성수기라고 모든 게 비싼 건 어느 나라나 똑같은지 짜증을 유발시키는 주차요금을 내고, 근처에 봐 두었던 성당으로 갔다. 이 성당 역시 이름은 노트르담 성당. 노트르담은 'Our lady'란 뜻으로 프랑스 전역에 이와 같은 이름을 한 성당이 많다고 하는데, 다만 파리에 있는 것이 워낙 크고 아름답기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대명사가 된  것뿐이란다. 그러고 보니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과 그 외관이 비슷한 것 같다. 

조용하게 안으로 들어가 니스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시고, 이렇게 별 탈 없이 프랑스 돌아다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이나라 저나라 잘 들쑤시고 다닐 수 있도록 보살펴 달라고 마리아 님께 전하고 나왔다.

"트램이다!" 

여행 중 자주 보게 될 트램이었지만, 내 생애 처음 본 트램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었다. 기차도 아닌 것이, 지하철도 아닌 것이, 도로 위에 난 길을 따라 달리고 있다니!


프랑스 제5의 도시 답게, 그리고 최고의 휴양도시 답게 거리엔 상점들이 넘치고, 여행객들은 도로를 가득 점령하고 있다. 길을 따라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감탄하게 되는 유럽식 전통건물 안에 들어서 있는 현대식 상점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지중해 바다. 


 '저 색깔이 사람들이 말하는 에메랄드 색이라는 거구나.'


부산에 살면서 심심하면 찾아가서 볼 수 있는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볼 때마다 항상 새롭고, 다른 느낌을 내게 준다. 그래,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바다다.

게다가 오늘은 역사적인, 내 생애 처음으로 지중해를 만나고 있으니.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부산의 바다를 계속 보고 있으면 나도 같이 쭉 태평양 너머로 뻗어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지중해와 맞닿은 니스의 해변은 괜스레 끝이 보이지 않는 아주 큰 연못 어느 귀퉁이에 있는 것 같다. 내게 지중해는 거대한 연못과도 같은 느낌인가 보다. 

파란 바다 색깔에 맞추어 백사장에 늘어선 파란 파라솔까지 장관을 이루고 있다. 겉으론 아름다워 보이지만 이곳은 돈을 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유료 해변이고, 파라솔 없이 사람들 마음대로 놀고 있는 곳은 무료 해변이다. 니스의 새변은 모래사장이 아닌 자갈마당이라 오래 걷지는 못하겠다. 앉으려고 하니 엉덩이도 따갑고 돌도 햇볕에 상당히 익었다. 그래도 무료 해변에 있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섰을 때 오른쪽으로는 쭉 벋은 해변이 있다면, 왼쪽을 봤을 때 높은 언덕이 눈에 보인다. 이 모습이 익숙하다. 어디서 보았지? 그래, 해운대! 해운대 바닷가도 딱 이런 지형이지.



"내게 해운대가 바다 그 자체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 해운대는 일 년에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던 곳. 수많은 추억이 있는 곳. 난 온전히 해운대의 풍경만을 내  가슴속에 담은 적이 있을까? 항상 누군가와 함께 했던 추억, 혹은 울적함에 소주병 사 들고 혼자 갔던 곳인데. 바다를 보면서도 바다를 본 게 아니라 내 옆의 사람과 혹은 나 자신과 이야기했지 바다와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해운대를 쉽게 자주 갈 수 있었던 건 참 행운이지만, 해운대의 기억이 바다 그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에 괜히 해운대에게  미안해진다. 하지만, 내게 해운대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여행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가끔씩 내 앞에 마주하고 있는 것만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내 앞에 있는 바다, 내 앞에 있는 음식, 내 앞에 있는 거리, 내 앞에 있는 사람.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에 집중하고, 이 순간 나와 함께 있는 사람과 공간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그래서 여행이 필요할 수 있다.


해변가에서 놀고 있는 섹시한 오빠들과 예쁜 언니들을 흐뭇하게 감상하며 도착한 언덕. 과연 내 예상대로 지중해 앞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너무 눈부셔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니스를  내려다보는데도 아까 해변에 두고 온 부산 생각에 갇혀 있다. 이곳에서 니스를 보니 더욱 부산 같다. 내 시선 어디에나 들어오는 산과 좁다란 골목길 그리고 바다까지. 니스에 도착하자마자 들었던 낯설지 않았던 그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비록 건물은 한국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지만, 한여름의 니스는 부산을 떠올려주기에 충분했다.

 

프랑스 북쪽의 건물들은 대게 회색 건물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곳 니스는 색색의 건물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혹시 남쪽의 따뜻한 날씨와 북쪽의 습기가 많은 눅눅한 날씨가 사람들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쳐 건물 색깔도 차이가 나는 걸까? 국토가 넓다 보니 지역별로 삶의 방식도 많이 다를진대, 이곳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는 니스에서는 이렇게 밖에서 빨래를 말리는 반면, 프랑스 북쪽에서는 습기 때문에 외부에서 빨래를 말리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도 지역별로 음식과 문화가 다른데 하물며 한국보다 더 넓은 나라에서는 얼마나 차이가 많이 날까.

유럽 음식에 지쳐 베트남 쌀국수 가게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들어갔다. 프랑스어를 굉장히 잘 구사하는 베트남 주인이 나와 자리를 안내해 준다. 나중에 우리 옆으로 그녀의 친구들이 들어와 앉는다.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더 열심히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을 보니, 자유로운 유럽의 생활방식에 그녀가 이미 많이 익숙해진 듯하다.

이탈리아와 가까워서인지, 날씨가 더워서인지 젤라토 아이스크림 가게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어김없이 맛있다! 

늦게 해가 지는 유럽. 8시 반이지만 아직도 해가 지지 않았다. 으레 그렇듯이 이곳에도 가판대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길에서 레게머리를 만들어 주며 돈을 벌고 있는 사람도 발견했다. 모든 것을 길에서 팔 고 있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한참을 구경하고 있었다. 하긴 캄보디아에는 목욕탕 의자와 어린이용 책상을 길에 펼쳐 두고 네일아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큰 가방 하나를 메고 돌아다니면서 마사지와 제모 서비스를 팔고 계시는 어머님도 있었다. 내게 주어진 장소가 없어도 내가 가진 능력으로 내 삶을 꾸려간다는 의지를 괜히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드디어 해가 지기 시작한다. 시간은 밤 10시가 되었다. 밤이 된 시내는 더욱더 해운대 바닷가 길을 연상시킨다. 니스에 미안하게도 이곳에서 부산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아마도 싱가포르를 뜨기 몇 달 전부터 앓고 있던 향수병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겐 그렇다.

걷기에 적당한 온도가 된 해가 진 니스 거리를 계속  떠돌아다녔다.

높은 온도에도 습기가 낮아 놀기 좋은 곳.

바다 색깔이 너무 예쁜 곳. 

바다뿐 아니라 골목길도, 건물도, 성당도 아름다운 곳.

아,,, 니스에서 하룻밤만 묵고 가기에는 너무 아쉽다.


PS. 내가 문을 직접 열어야만 되는 엘리베이터. 아직도 너무 신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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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떠나 벨기에로 가는 날 아침, 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탔다. 정거장을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안으로 들어오며 오랜만에 지옥철을 보게 됐다.


1분 1초가 중요한 출근시간에는 한 명이라도 더 타야 되는데 싱가포르 지하철은 항상 느긋하다. 안쪽은 텅 비었는데 문 쪽만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밖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문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안 쪽으로 들어가면 될 것인데 이 사람들은 이기적인 것인지, 예의가 발라 타인을 차마 밀지 못하는 건지 절대 문 쪽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싱가포르에서 4년 살고 나서는 후자일 거라고 잠정 결론 내렸다.) 한때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죽음의 구간을 지나 삼성역에 있는 회사에 출근했던 나는 안쪽이 명당이라는 걸 알기에 타자마자 “쏘리, 쏘리”하며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넓은 자리를 차지했다. 지하철에 타며 모세의 기적처럼 내가 길을 만들면 누구 한 명 나를 따라와 젖과 꿀이 흐르지는 않더라도 약속된 편안함이 있는 그곳으로 가길 바랬는데, 날 따라오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내 중심가로 갈수록 지하철 문 쪽만 사람이 꽉 차서 지하철 문도 못 열고 그냥 역을 지나치는데도 안쪽에는 한 두 명만 서 있다.(대게 안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국에서 지옥철 훈련을 받고 온 나 같은 외국인들로 보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도록 지하철 안 쪽으로 들어가 주세요.”


방송이 나와도 움직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 지하철을 타야만 지각을 면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한국에서 온 사람에겐 정말 어이없는 풍경이 매일 아침 싱가포르 지하철에서 벌어진다. 못해도 열 명은 더 태울 수 있는데 지하철은 속절없이 역을 떠난다. 물론 지하철 타려고 사람들을 미는 게 안전한 일은 아니지만, 출근 시간에는 그만한 미덕도 없다. 


언제나 자리가 남는 싱가포르의 지하철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발 디딜 틈 없는 출근 시간 파리 지하철이 참 어색했다. 그러다 마침내 지하철 안의 거친 사람들을 보며 고향에 온 듯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 지하철은 이래야 제 맛이지! 오랜만에 사람들로 빽빽한 지하철을 나는 앉아서 구경하며, 파리지엥들의 지하철 내 공간 활용능력에 깊이 감탄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도 직장인이었는데’


사람들에 섞여 지하철에서 내렸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내린 지하철을 계속 타고 갔다. 나와 함께 내린 한 무리는 나와 반대방향으로 우르르 걸어갔다. 모두가 나를 버려두고 떠나는 느낌이었다. 누가 봐도 떠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버스터미널로 걷는 나.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들과 같은 방향으로 걸었는데, 지금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자발적으로 자유를 반납하고 살아오던 내가 자유를 찾아 여기에 서 있는데, 이상하게 허전했다. 왠지 저 사람들의 뒤를 쫓아 나도 다시 지하철을 타야 할 것 같았다. 기껏 자유를 만들었는데 아직 그 자유에 적응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과연 여행이 끝났을 때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까?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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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날. 오늘은 드디어 날씨가 맑아졌다. 하늘도 정말 예쁘다!


다 돌려면 일주일도 더 걸린다는 이 방대한 박물관. 난 역사학자가 아니므로 하루만 박물관 관람에 쓰기로 했다. 세계 3대 박물관에 포함되는 그 명성에 걸맞게 사람이 정말 많고 줄이 엄청 길었다. 하지만 어제 내가 샀던 뮤지엄 패스 덕에 대기 없이 바로 통과하여 박물관에 진입할 수 있었다! 정말 예쁜 녀석이다! :) 같이 간 친구는 루브르 박물관에 돈 내고 입장한 게 처음이라고 한다. 아니 그럼 루브르 박물관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거야?

 "아니, EU 시민은 누구나 만 25세 이전에는 모든 박물관 입장이 무료야."

헉 만 25세?! 내 머리는 재빠르게 우리나라 박물관에는 그런 혜택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몇몇 곳은 그런 혜택이 있지만, 가격의 차이만 있을 뿐 학생들에게도 입장료를 다 받는다. 그리고 혜택이 있더라도 초등학생들에게만 주어질 뿐... 신선한 충격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26,27세까지는 루브르 박물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니. 문화강국은 역시 다르구나 싶었다. 가난한 학생들, 갈 곳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쉽게 박물관에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만 25세이면 대학생도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박물관의 문턱이 없어 문화재와 예술 작품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학생들은 우선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위대한 작품들을 보며 생각과 상상력, 창의력 등이 자랄 수 있는 참 좋은 환경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매일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기에 가능한 일이려나? 어쨌든 만 25세까지 박물관 무료입장은 대박이다!

파리 뮤지엄 패스 - 강추!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지하 입구는 애플, 루이뷔통 등의 명품 상점까지 갖추어져 있다. 아무리 언제나 관광객들로 넘치는 루브르 박물관이지만 이런 상점들이 있어서 살짝 실망스럽다고 하자,

 "아니야, 이건 관광객들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거야. ㅋㅋㅋㅋㅋ" 란다. 


세계 7대 미스터리,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 10대 시절 항상 나의 판타지에 있던 이집트. 내 인생에서 이집트 유물을 보는 첫 경험. 스핑크스부터 벽, 미라를 만든 후 넣는 관..  난생처음 보는 이집트 유물들이 바다 건너 프랑스에 전시되어 있었다.

스핑크스
너무 귀엽잖아! ^^
파라오의 관

관이 정말 화려하지 않은가. 뱀의 얼굴을 하고 사람의 몸 모양으로 만든 관. 그리고 그냥 두기 심심했는지 아름다운 무늬도 새겨놓았다. 사후세계에 쓸 수 있도록 필요한 소지품들도 같이 묻혀 있었다니 정말 절대왕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례문화다. 4000년 전에 이런 것 등을 만들었다니 정말 대단하잖아. 장례  문화재뿐 아니라 장신구, 옷, 그릇 등의 물건들도 얼마나 화려하고 독특하던지 내 눈이 정말 호강했다. 정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고대 이집트인들만의 독특한 문양과 물건들. 그들의 예술 감각에 감탄을 하면서도 이런 예술이 극소수를 위해서만 쓰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노예로 살며 평생 노동력을 착취만 당했겠지..


처음 만나는 이집트가 너무 좋아서, 무려 2시간이나 그곳에 있었다. 집중을 끝내고 멍한 마음에 별 생각 없이 박물관 복도 곳곳에 나 있는 화살표를 따라갔다. "모나리자 ->"

모나리자가 있는 방에 도착했지만 사람들만 굉장히 많았다. 멀리 보니 내 손바닥 크기로 모나리자의 그림이 보인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둘러싸고 있어 감히 앞으로 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의 격렬한 사랑 덕에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커다란 유리 액자가 모나리자를 둘러싸고 있고, 이곳을 관리하는 직원도 따로 있을 정도다. 사진으로 찍어도 유리 액자 때문에 잘 나올 리가 없겠다. 사진 찍는 건 포기. 

사진 찍는 걸 포기하니 측면에서, 정면에서 자유롭게 볼 수가 있다. '왜 이 그림이 그리 대단한가?'를 알고 싶어 몇 바퀴를 돌며 여기저기서 관찰해 봤지만, 그 특출함을 알아채기에 난 정규 교육을 너무나 잘 받아 안목이 부족하고, 주위 사람들은 끊임없이 날 밀어댄다. 이만 안녕, 모나리자. 다음에 또 볼 날이 있겠지.

사진 엄청 못 찍었네. 로마 황제를 그렇게 동경했던 나폴레옹이 왕비 조세핀에게 왕관을 하사하는 그림. 한 벽을 가득 채울 만큼 엄청난 크기이다.

그리고 루브르를 유명하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 밀로의 비너스를 보러 왔다. 역시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예술작품은 왜 명작인 걸까. 왜 나는 그런 것을 알아보지 못할까?? 그리고 이 사람들은 그걸 알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드는 건가? 근엄하고 경직된 얼굴에 육감적인 몸이 기막히게 연출이 된 거라고 하는데, 설명을 볼수록 어쩐지 난 미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때고 역시 내가 온전히 느껴야 하는 건데...

모나리자보다, 밀로의 비너스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들 동상이 더 좋다. 제우스도, 아폴론도, 아테나도 아프로디테도.. 항상 책과 그림으로만 보던 신들은 본토에서 이렇게 그려졌었구나. 한 신도 수백 가지 버전으로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신화를 숭상했는지 알 수 있다. 신이지만 정말 인간과 똑같은 모양, 인간이 느끼는 추악한 감정까지도 그대 가지고 있는,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정이 간다.  




역시 기둥도 그대로 넘기는 법이 없다.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궁을 개조해서 만든 만큼 워낙 방대한 박물관이라 박물관 안으로도 대중교통이 드나든다. 박물관을 관통하는 도로도 있어 참 신기했었다. 박물관이 눈에 많이 보인다면 그만큼 방문할 가능성도 많고, 자연스럽게 문화적인, 교육적인 효과로 이어지겠지.


 "이 소리 한국말 아니야?"

친구가 물어본다. 그렇다. 박물관 구석에서 한 한국인 가족이 말다툼을 하고 있다. 이제 그만 나가자는 어머니,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아버지, 이럴 거면 박물관 들어오기 전 왜 아무 말하지 않았냐며 어머니를 타박하는 딸. 셋이서 투닥거리고 있다. 아주 살짝 부끄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그림 감상을 하러 발길을 돌렸다.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의 그림도,

화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림 속의 많은 그림을 그려놓은 화랑 혹은 작업실을 그린 그림도 참 흥미로웠다.


폐관 시간이 될 때쯤 나도 집중력이 떨어져 아시아 관을 마지막으로 보고 나왔다. 

방대한 크기와 그에 버금가는 전시된 작품의 수들. 왜 루브르 박물관이 유명하고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 중 상당한 양의 작품들이 분명히 다른 나라에서 온 것이다. 전 세계를 정복하러 다니며 전쟁을 통해, 그리고 식민지에서 얼마나 많은 보물들을 가져왔을까. 그런 소중한 유물들을 잘 보관하고, 이 다양한 문명을 한 자리에서 보게 해 주어서 정말 감사하지만, 너희 정말 도둑놈이야! 그리고 이 문화유산들로 '문화, 예술의 나라 프랑스'라는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간다는 걸 생각하면, 프랑스인들 얄밉기까지 하다.


박물관 바로 앞의 튈르리 정원으로 가는 길, 또 사람들이 비둘기와 놀고 있다... 걔네 세균 덩어리라니깐!

어제 몽마르트에서 봤던 모자 파는 사람들, 짝퉁 가방 파는 사람들 여기도 어김없이 있다.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한 발이 휴식하기에 딱 좋은 공원이다. 게다가 비치된 의자들도 매우 편안한 것들이라 낮잠이라도 잘 지경이다. 여기서도 파리의 하늘은 기가 막히게 예쁘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파리 여행을 패키지로 가면 (긴 비행시간과 짧은 여행기간 탓도 있겠지만) 루브르 박물관에서 딱 20분만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입장 -> 모나리자와 사진 찰칵 -> 밀로의 비너스와 사진 찰칵 -> 끝" 그리고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하는데 그럴 거면 왜 굳이 입장료를 내고 루브르 박물관에 오는지를 모르겠다. 그런 사진은 인터넷으로도 쉽게 볼 수 있고, 작품은 감상하고 느끼기 위해서 보는 거지, 사진 찍는 건 2순위일 텐데 말이다. '세계 3대 박물관을 내가 방문했고,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봤다!'는 정복 여행인가. 그저 세계지도에  점찍는? 그런 여행은 아니, 관광은 갔다 오고 나서도 별로  가슴속에 남는 게 없어서 몇 번인가 후회했던 경험이 있다. 관심이 없다면 세계 명소라도 들를 필요는 없다. 그냥 제쳐 버리고 관심 있는 다른 곳에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루브르 박물관? 관심 없으면 안 와도 된다. 쇼핑이 좋으면 바로 샹젤리제나 라파예트 백화점에 갑시다! 세계 3대 박물관이니 뭐니 그런 거 남이 만들어 놓은 거다. 그래서 난 고생 좀 하더라도 내 맘대로 다니는 자유여행이 좋다. ^^


튈르리 정원을 나와 퐁네프 다리로 간다. '퐁네프의 연인들' 영화로 유명한 이 다리의 뜻은 '새로운 다리'이지만, 사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곳이다. 오래된 다리 답게 운치 있다. 하지만 내 관심사는 퐁네프 다리 옆의 예술가 다리라고 불리는 이 다리. 다리의 외벽에는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고, 그리고 거기에선 야바위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안녕, 오늘도 만났네요. 관광객을 상대로 한 야바위꾼들. 세네 명이 한 패거리로, 서로 재밌게 게임하는 척하면서 지나가는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실제로 관광객이 개입되기 전에는 굉장히 허술하게 게임을 하면서 누구라도 구슬을 찾을 수 있게 패를 돌리지만, 일단 누군가 게임에 개입하면 그때부터는 인정사정없다. 그 한 명을 아주 호구로 만든다. ^^


시간은 6시 반이지만 아직도 해가 지려면 3시간 반은 더 남은 파리에서 센강 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1시간이나 태워준단다.  퐁네프 다리가 있는 시테섬에서 에펠탑까지 왕복으로 운행하는 크루즈.


크루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내가 미처 몰랐던 파리에 대해 또 알게 되고, 이미 가봤던 노트르담 대성당도, 내일 갈 에펠탑도 여기서 보니 참 근사하다. 그녀는 다이애나 왕비가 이곳 파리 센강 근처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해 주었다. 그곳이 파리였구나.. 가만히 앉아서 파리의 저무는 해와 깨끗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니 갑자기 난 행복한 사람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방안에만 갇혀 산 사람처럼 끊임없이 파리의 하늘을 보며 감탄한다.

여전히 해는 높이 떠 있다. 해가 10시에 지니 마치 시간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그에 맞추어 관광지들도 마감 시간이 저녁 9시 정도이다. 이래서 여름에 유럽 여행은 참 좋은 것 같다. 늦게 지는 해와 관련된 프랑스인들의 농담.

 "해가 아직 안 졌네? 술 마시자. 아, 드디어 해가 졌구나.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술을 마셔야지. ^^"


1시간 여의 뱃놀이를 끝내고 나니 눈에 파리 비치가 보인다.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지만 바다가 없는 파리에서  벌써 10년째 만들어지고 있는 인공비치. 인공 야자수도 만들어 놓았다. 쉬고 있는 사람은 있어도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없다.  물놀이할 곳도 없다. 센강에서 수영은 불법이니. 

휴가를 가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비치란다. 그 마음은 참 아름답지만 왠지 파리스럽지 못해서 약간 안쓰러웠다. 이런 거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도시인데 바다가 가지고 싶었나..  친구조차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으며, 친구들 중에서도 파리 비치에 가 본 사람이 없단다. 왜 만들어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파리스럽지 못하다고 비난을 해댄다.

싱가포르의 쇼핑몰에서 진행되는 어떤 행사들을 볼 때마다 느꼈던 아류의 느낌이라고 할까? 싱가포르에서는 그들의 삶의 중심(!)이랄 수 있는 쇼핑몰에서 연극, 공연, 체육행사, 심지어 학교 졸업식 등 온갖 행사가 다 일어난다. (싱가포르에는 갈곳이 많이 없어 사람들이 주말에 주로 쇼핑몰을 간다. 주말에 쇼핑몰 간다고 좋아하는 초등학생을 보면 안쓰러울 때도 있다.) 쇼핑몰에서 진행되다 보니 행사의 규모에 한계가 있고, 시야에 항상 들어오는 상점들 때문에 집중도도 적으며, 그래서인지 내 것이 아닌 너의 것을 잠시 흉내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 행사를 위층에서 보고 있자면 실소가 나올 때가 많다. 남의 것을 따라 하는 사람을 볼 때의 불편함. 파리에서 처음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여기 파리 비치에서. (그래도 선베드에 누워 낮잠은 자 보고 싶었다.)


파리 비치를 바라보며 새삼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닌 내가 이미 가진 아름다움을 발전시키고 그것으로 승부 볼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온리원으로 살아가는 일..

파리, 넌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마지막으로 Leon에서 먹은 우리나라 홍합탕과 비슷한 내가 반한 홍합요리. 레옹은 프랜차이즈라서 프랑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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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 |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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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비가 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비 오는 우중충한 날씨가 아침부터 날 반겨준다. :)

하늘은 비록 흐리지만 새벽에 내린 비로 거리는 깨끗하다.


파리 중심가로 가기 전, 근처 카페에 들러 출근하는 프랑스인들처럼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카페가 무척 아늑하다. 에스프레소와 크로와상 하나를 먹고 바삐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며 그전날 있던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는 여유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들도 몇몇 있다. 연금 잘 받으시나 보다.

싱가포르 4년 생활이 내게 남긴 단맛에 대한 애착 덕에 에스프레소는 별로다. 역시 커피는 믹스커피가 진리!

도대체 이 작은 잔으로 뭘 마신다는 거지? 정말 이들은 개운하다고 느끼는 건가?

중심가로 가기 위해 지하철 타러 가는 길. 가게의 간판도 참 아기자기하고, 무엇보다 고층 아파트가 없어서 좋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파리의 대표적인 건물 오페라 가르니에.

지하철에서 내려 오페라까지 가는 길에 칼바람이 분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라 좀 쌀쌀하다.

'우와~'

위대한 음악가들의 흉상

또 그저 탄성만 지른다. 나의 사진 실력이 안타까울 뿐.. 사진으로 보면 그저 멋진 프랑스의 고건물로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그 아름다운 외면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다. 꼭 프랑스인이 아니더라도 슈베르트, 쇼팽 등 위대한 작곡가들을 기리기 위해 그들의 흉상을 건물 전면에 세워놓은 것에서 예술을 사랑했던, 지금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다. 하긴 그 당시 파리는 세계의 중심이었으니. 대부분 훌륭한 예술가들이 이곳, 파리에서 공연을 하고 네트워킹을 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내부는 더욱 놀랍다. 천장까지 빼곡히 채운 그림과 금으로 치장해 놓은 메인 홀. 그 당시 귀족들이 얼마나 화려한 생활을 했는지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현재는 오페라 대신 발레 위주로 공연을 한다고 하니 여전히 내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다. 예전 유럽의 귀족들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항상 보았던 공연장. 그곳에서 귀부인들은 항상 2층 가장 오른쪽이나 왼쪽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그물 같은 장갑에 부채를 들고 항상 우아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오페라 내부의 도서관

                                                                

공연장

2층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도 꽤 멋있다. 이렇게 옛날 건물과 자동차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 사람들이 이런 풍경을 보러 파리에  오는구나. 오페라 주변에는 이미 많은 수의 관광버스가  몇십 명의 관광객들을 토해내고 있다. 대부분 중국인과 한국인이다. 

                       

문득 오페라에 들어오기 전 나를 삥 뜯으려고 내게 다가오던 집시 언니들을 보았다. 어랏. 눈도 마주쳤네. 파리의 유명 관광지에서는 이렇게 흰 종이 들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Can you speak Englsh?"라고 물어보며 다가와서 이러 이러한 내용으로 서명운동을 하는 중이라고 서명에 동참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 서명을 하는 사이, 그들은 일행 중 한 명이 나의 뒤에서 소매치기를 한다. 정말 사람 삥 뜯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이 언니들 내가 여행객으로 보이니 오페라 들어오고 나갈 때 2번이나 내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순찰차가 오페라로 다가오자 정말 5초도 안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루마니아가 EU에 가입하면서 많은 집시들이 여러 나라를 거쳐 이렇게 프랑스까지 왔다고 하는데, 집시들 때문에 꽤 골치  아파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잠을 자니 노숙자가 늘고, 대게 순진한 관광객들을 등쳐 먹는 방법으로 먹고 사니 민원도 많이 들어오고...  유명 관광지에는 이런 집시들을 잡으러 경찰들이 자주 순찰을 돌고 있다.


점심은 파리에서도 맛집이라고 하는 (굳이 프랑스에서 일본 음식 먹기) 일본 라멘집에서 맛있게 먹고 반담 광장을 지나, 라파예트 백화점 Galeries la fayette으로 갔다. 내부도 굉장히 화려하고, 특히 천장의 디자인이 참 화려하다. 듣기로는 많은 브랜드가 탄생한 나라 답게 백화점이란 것이 생긴 것도 프랑스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이 백화점은 이미 지은 지 100년 이상된 곳이다. 내가 들렀던 오페라 근처의 반담 광장, 그리고 이곳 라파예트 백화점도 모두 명품관으로 빽빽하게 가득 차 있지만, 난 별 관심 없어 그저 지나갈 뿐.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라파예트 백화점 옥상을 가기 위해. 높은 건물이 별로 없는 파리에서 도시경관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여전히 파리의 첫날은 흐리고 바람도 많이 분다.



빌딩 숲을 무척 사랑하는 내가 이렇게 낮은 건물들이 주는 매력을 새삼 알게 됐다. 시야가 탁 트이는데다, 빌딩 숲에서 보던 조각하늘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 하늘은 이렇게 넓은 것이었지. 파리 시내의 경관을 살리기 위해서, 높은 건물을 되도록 짓지 않는 프랑스인들 덕분에 파리는 파리만의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고, 이 것을 보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파리에 온다. 역시 사람이든, 문화든 자신의 장점을 파악하고, 그것으로 승부를 봐야 하나 보다.

라파예트 백화점 건물 외관 장식

 광진구 혹은 영등포구 크기 정도라는 파리는 그 작은 크기만큼 도보여행이 가능한 매력이 있다. 물론 볼거리의 수와 크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라파예트 백화점에서 약 10분쯤 걸어서 도착한 마들렌 교회(Église de la Madeleine)에도 잠시 들른다. 그리스 신전같이 굉장히 웅장하다.

교회 안에서 괜히 경건한 마음에 이렇게 청소해 주시는 분께도 감사하는 마음이 마구 샘솟는다.
마들렌의 정문으로 다시 나오면 멀리 콩코르드 광장의 정중앙으로 불룩 솟은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오벨리스크도 오벨리스크지만, 파리 시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고건물들이 날 더 설레게 한다. 싱가포르에서도 그랬지만, 파리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정말 휴가 온 기분이 항상 들 것만 같다.

이집트의 룩소르 신전에 있었다는 오벨리스크라는데 선물로 받은 것이라 자랑스럽게 이렇게 도시의 중앙에 있다. 프랑스 땅에서 이집트의 유물을 본다는 게 약간 기분이 묘하다. 나라가 얼마나 힘들면 이런 국보를 다른 나라에 선물할까. 유럽 곳곳에 있을 오벨리스크. 이집트의 슬픈 역사 혹은 잘 나가는 유럽의 역사.

오벨리스크가 있는 광장 주변은 어제 막 끝이 났던 Tour de France의 철거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라 여기저기 어수선했다.

Tour de France 관중석 철거 중

잠깐, 광장 끝에서 눈에 익은 건물이 하나 보인다.

말로만 듣던 개선문이다. 정말 친절한 도시다. 이렇게 쉽게 눈에 띄어 주다니.. 주요 명소는 굳이 지도 없이도 다닐 수 있겠다. 그리고 저 울창한 가로수길은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라고 한다. 살살 걸어가 볼까?

샹젤리제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

샹젤리제 거리. 관광객들로 온통 시끌벅적하다. 여행 오기 전 일부러 여행 기분을 내려고 “오 샹젤리제~” 음악을 들었는데, 그리고 그 음악을 이 거리에서  들을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그냥 팝 음악만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낭만, 예술 이런 걸 너무 기대했나 보다. 그냥 상점과 쇼핑의 거리. 그것도 아기자기하거나 예술적 감성이 돋보이는 게 아닌 거대 프랜차이즈들이  빽빽한... 그냥 싱가포르의 오차드거리 같았다. 그저 화려한 명품의 거리인데 내가 이해를 잘못 했었나 보다.


그리고 이 화려한 거리에서 이렇게 구걸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자니 짠했다. 최고 명품거리와 구걸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참 보기 불편했다. 그 순간 3년 전 캄보디아에 여행 때, 연말 파티에 갔었는데 그때 공병을 수거하러 다니는 5살 정도 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술 마시고 춤추는 어른들로 가득 찬 그곳에서 아이들은 그 빈병을 본인이 가져가도 되는지 묻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개선문(Arc de  Triomphe)에 도착. 

전쟁에서 승리한 기쁨도 물론 있겠지만, 나폴레옹은 정말로 로마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그때처럼 황제가 되고 싶었나 보다. 이렇게 로마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을 그대로 본뜬 것을 만든 것만 봐도.. 물론 그 개선문보다 나폴레옹이 만든 이 개선문이 훨씬 웅장하고 아름답다.

개선문에서 바라본 에펠탑
개선문에서 바라본 샹젤리제

정말 그리 높지 않은 건물에 올라왔음에도 파리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아이보리색의 건물과 초록 나무와 어디서나 시원하게 볼 수 있는 하늘. 그리고 이 개선문이 있는 샤를 드골 광장을 중심으로 시원하게 뻗은 방사형 도로도 보기 좋다. 파리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는 사람은 도로주행 시험 안에 꼭 이 방사형 도로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탈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처음 운전을 배우는 사람에겐 정말 곤혹스러울  듯하다. 

날씨는 좋은데 바람이 너무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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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을 뚫고 도착한 여기는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는 파리와는 다른 도시라는 것을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으며 그렇게 베르사유에 도착했다.

넓다, 넓어.


문조차도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금이다. 정말 왕의 절대권력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곳도 어김없이 관광객이 많았지만, 뮤지엄 패스로 유유히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로크 양식? 로코코 양식? 말도 많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 알아듣고 싶어 지는 마음이 들 날이 오길 바라며 궁전의 입구로 들어서려는 찰나!

한쪽 팔이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럴 수가 생전 처음으로 새똥을 맞았다! 그리고  그곳은 베르사유 궁전. 실없는 웃음만 계속 흘리며, 소매가 없는 팔에 떨어져 아주 다행이라는 말을 날리며 화장실로 직행했다. 앞으로 내게 베르사유 궁전은 새똥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루이 14세가 파리에 있는 보 르 비콩트 성의 아름다움을 질투하여 베르사유 궁전을 지을 때 무조건 그 성보다 크고 아름답게 지어라고 했다니, 그의 질투 덕에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베르사유 궁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각 방마다 배치된 화려한 가구들과 조각품들. 벽 한 면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그림과 천장화. 대리석으로 점철된 벽과 바닥. 과연 화려함의 극치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베르사유 궁전. 태양왕이라는 별칭답게 궁전의 곳곳에서 태양의 모양이나 태양신 아폴론과 관련된 무늬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아폴론으로 보이는 아래 문 손잡이도 꽤 귀엽다.


왕비의 침실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썼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죽은 불쌍한 인물일 뿐인데, 외국에서는 왜 그렇게 그녀가 유명하지?"

친구의 물음에 내가 더 의아해졌다. 정말? 오히려 프랑스에서는 그녀가 그리 유명하지 않다는 말이야? 왜 그럴까 생각해 보던 나는 "베르사유의 장미" 만화를 말해 주었다. (초등학교 때 정말 가슴 아프게 봤던 그 만화. 아, 추억의 오스칼!) 그 만화 덕분에 초등학생 때부터 이미 마리 앙투아네트니 루이 16세니 프랑스혁명 등에 대해 들어봤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해 놓고 보니 뭔가 부족하다. 그러게 왜 유명할까?

만화에서 그녀는 오히려 바보같이 순진하고 선량한 인물이었던 걸로 기억되고, 그녀를 악명 높게 만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세요."라는 말은 그녀가 내뱉은 적도 없기에 오히려 억울한 인물일 뿐이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프랑스 혁명의 극적 효과를 위해 그런 말을 지은 듯 싶다.

저 무거운 샹들리에가 이렇게 천장에 멀쩡이 붙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놀랍기도 하고 무섭다. 사실 샹들리에를 볼 때마다 난 『소년탐정 김전일』만화책에서 본 샹들리에를 이용한 살인사건이 자동반사로 항상 떠오른다... (하핫 ^^;)

그시대 최첨단의 예술이 집약되어 있을 베르사유 궁전. 그 당시 최고의 예술가들이 와서 만들었겠지. 그러고 보면 그 시대 살았던 예술가들은 한편으로 고달프지 않았을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이 아닌 왕이 혹은 교황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그려냈으니.. 하긴 그렇게 따지면 현대를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 고용주가, 자본을 가진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얻는 것을 보면 삶은 지금도 그때도 묘하게 연결되는 것 같다.

사람이 가장 많은 이 곳은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가장 유명한 유리의 방이다. 근데 유리가 많이 낡아져서 인지 처음엔 유리의 방인지 몰랐다. 유리창과 그 맞은편마다 붙어 있는 거울이 빛을 서로 반사하며 이 방을 얼마나 눈부시고 크게 보이도록 만들었을지... 루이 14세는 태양왕인 자신의 위엄을 보이려 국빈을 맞거나 행사를 할 때 항상 이곳에서 했다고 한다.

나폴레옹 1세. 역시 로마 황제가 입고 있던 것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한 켠에는 이렇게 그 당시 귀족들의 그림도 같이 걸려 있다. 건물에 이름 새기는 것, 초상화 걸어두는 것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파리에서 떨어진 곳에 궁전을 지어놓다 보니 그 당시 귀족도 전부 베르사유로  넘어왔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힘의 이동이 좀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그때부터 시작된 건지는  몰라도 베르사유가 현재도 좀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기 전 이 도시의 시장이었다고 하는데, 대선 전에 서울 시장을 '거치는'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 정치가 문득 떠올랐다.


드디어 밖으로 나와 방대한 정원을 구경할 시간.

궁전 바로 앞마당에서 찍은 사진인데 아직도 정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술래잡기 하기에도 딱 좋아 보이는 그런 정원. ^^;

성 내부만 입장료를 받고, 이렇게 정원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벌써부터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쉬고 있다. 자전거 타고 달리다가 느닷없이 풀밭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는 사람을 보며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이렇게 자유로이 드나들며 운동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음에 동네 주민들이 살짝 부러워 지기도 했다.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 4편 『해리포터와 불의 잔』의 미로가 생각나게 하는 이곳. 이 미로 숲 역시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이다. 사람 키의 몇 배나 높은 미로 숲을 나무로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유명한 예술작품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내게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귀족들이 이곳에서 밀회를 즐기기도 했다니, 파리 사교계의 시작이 바로 여기인 듯싶다.

그리고 정원의 끝. 시끌벅적한 풀밭과 호수를 지나 울창하고 한적한 나무숲으로 친구를  따라왔다. 개인이 기증하는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 숲에 오직 한 나무, 그와 그의 친구들이 한 친구의 이름으로 기증한 나무를 찾으러. 몇 달 전 친구 중의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녀가 평소에 좋아했던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 그녀의 이름으로 친구들이 나무 한 그루를  기증했다고 한다. 그때 나무를 확인 못했던 터라 이번 기회에 나무를 찾고 싶다는 그를 도와 어떤 나무 일지 열심히 수색해 보았으나 결국 찾지는 못했다. 항상 세상의 슬픔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여 슬프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던 그녀는 저 먼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에도 항상 가슴 아파했단다. 그 선한 마음이 더 아프게 내게 다가온다. 얼마나 아플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당하고 폭력적인 일들을 진정 가슴으로 느끼며 나의 무기력을 확인해야할 때 오는 그 좌절감은...  이제는 편안한 정원의 나무를 등받이 삼아 행복하게 휴식하기를 바라며 베르사유 궁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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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 | 베르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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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넷째 날, 드디어 파리의 상징 에펠타워를 보러 가는 날 :)

메트로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 저 멀리 에펠타워가 보인다.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돼. 파리에 오는 관광객의 99%가 오는 곳이다. 오늘도 날씨가 여전히 좋다. 셔츠를 벗고 풀밭에서 누워 파리 햇살에 에펠탑을 배경으로 일광욕 중이다. 정말 이 날씨를 온몸으로  즐기는구나. 

이 잔디밭에서 가끔씩 작은 공연도 열리고, 여름밤에는 시민들이 돗자리와 맥주를 들고 삼삼오오 이곳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적당히 가벼운 그 여름밤의 공기가 생각나서 괜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에펠탑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내게 다가오는 흰 종이를 들고 있는 집시 언니들. 셀카봉을 들고 어기적 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상인들. 그렇게 걸어 에펠탑에 도착하였다. 밑에서 보니 영락없이 그냥 철탑이다. 처음 에펠탑이 지어졌을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했고, 소설가 모파상은 파리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이 탑이 싫어 에펠탑 1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단다. 탑은 변한 게 없는데, 사람들이 변해서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라며 이 탑을 찬양한다. 탑 입장에서 우리는 얼마나 가벼운 인간들일까. ^^ 

지난 월요일 오페라 가를리에에 갔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프랑스 사람들 건물에 사람 이름 새기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에펠탑을 만들 당시 수고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이렇게 탑에도 새겨져 있다. 그 어떤 보상보다도 탑에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 엄청난 보상일 듯하다.


에펠탑 꼭대기로 올라가는 입구의 길은 이미 길다. 2,3 시간은 기다려야 될 듯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만큼 기다려서 올라가야 할까?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일단 줄에 서서 기다려 본다. 성수기 중에서도 극성수기인 지금 그중에서도 엄청난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있다. 줄은 서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극심한 고민이 왔다 갔다 한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이 좋은 시간에 파리에서 줄이나 서고 있어야 할까. 이런 결정장애 류의 고민에 기분이 금세 가라앉았다. 나도 참, 몸이 줄을 서고 있으면 마음이라도 그냥 편하게 먹고 있으면 안 될까... 

2시간 후, 겨우 4층까지 올라갔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 쓸데없다는 걸 깨달았다. 4층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 풍경은 어마어마했다. 1층은 너무 더웠는데 4층만 돼도 바람이 불어와 구경하기 더없이 완벽한 때였다. 역시 높은 건물이 없어서 바람이 시원시원하게 불어 대나 보다. 그러면 꼭대기는 얼마나 시원할까? 다시 그렇게 꼭대기로 올라가는 줄에서는 기다림에 대한 지루함이 아닌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올라가는 길, 여기서도 보이는 "나 여기 다녀감"류의 낙서들. 이런 낙서는 정말 만국 공통의 문화인가 보다. 쯧쯧

그렇게 3,40분을 더 기다린 끝에 드디어 에펠탑의 꼭대기에 다다랐다. 밑에서 보다 바람이 더 강해 춥기까지 하지만 햇살은 너무 따뜻하고, 하늘도 맑다. 가만히 파리 시내 전경을 보고 있자니 2시간 반가량의 기다림이 그만한 가치로 내게 다가왔다. 며칠 전 가 봤다고 몽마르트 언덕과 개선문이 눈에 들어온다. 

에펠탑 꼭대기에는 이렇게 샴페인을 파는 자그마한 바도 있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마시는 샴페인은 어떨까 싶어 (가격에 흠칫한 후) 한 잔 사서 마셨다. 양도 많지 않고, 멋있지 않은 플라스틱 잔에 주지만 그래도 풍경을 안주 삼아 맛있게 들이켰다.

도시의 미관을 굉장히 중요시 여겨 고층건물의 건축을 자재한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오래된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노력 덕분에 파리는 파리만의 아름다운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파리를 찾는다. 파리에서만 볼 수 있는 그 분위기 때문에. 분명히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가 있을지언데 (분명 6.25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기도 했겠지만) 개발의 명분으로 많이 파괴된 것 같아 씁쓸하다. 


센강도 한강만큼 다리가 많고, 길게 나 있는 가로수들도 보기가 좋다. 멀리 파리의 비즈니스 중심지인 라데팡스가 보인다. 파리에서 유일하게 고층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곳인데, 역시나 파리 시민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곳이란다. 내가 가 보고 싶다고 하니 절대! 가 볼 필요가 없다고 친구가 말린다. 그 앞 초록 공원 안에 덩그러니 위치한 하얀 건물은 루이비통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라던가...



동화책에서 그대로 나온듯한 원색의 차. 너무 귀엽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서 만난 이 귀여운 차는, 가위로 차만 오려서 도로에 붙여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도 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하다.


그리고 드디어 만났다. 돈 받는 유럽의 화장실. 물론 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은 나는 공짜로 사용 가능하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은 무조건 50센트를 넣어야만 한다. 에펠탑 근처라 워낙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서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한국인의 정서상 화장실 이용한다고 돈을 내라는 건 참 정 없는 짓이다.

그리고 15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전쟁박물관과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다는 앵밸리드 (Hôtel National des  Invalides)를 아주 짧게 관람한 후 근처의 판테온으로 갔다. 도보로 이동 가능해서 참 좋다. ^^  

맨 꼭대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교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지하 묘소, 사령부 등 몇 번에 걸쳐 그 용도가 바뀌었다가 마침내 프랑스 위인들의 묘지로 사용되고 있는 판테옹. 1층에는 2 차세계대전 당시 위인들을 위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역시 왕실에서 지은 교회인 만큼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곳곳에 기독교와 관련된 회화와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에 대해서 많이 모르는 나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퀴리 부부 내외, 빅토르 휴고, 에밀 졸라 그들도 역시 이곳 판테옹에 안치되어 있다. 특히 퀴리 부인은 여성 최초, 그리고 최초로 두 개의 다른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라서 더욱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폴란드 태생이었는데 파리에서 공부하며 주로 거주해서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한다. (폴란드에서는 뭐라고 안 하나?)



그 어떤 위인보다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분도 여기 묻혀 계신다. 성함은 잘 모르지만, 점자를 최초로 발명하신 분이라고 한다. 새삼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세상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이 분은 시각 장애인에게도 글을 알려주고자 점자를 발명하였고, 그 점자를 통해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그중에 한 명이 헬렌 켈러이고, 그녀는 지구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이렇게 보면 정말 중요하지 않은 일이 하나 없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해도 난 내 사명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판테온 내부에는 이렇게 아직 빈자리가 있는데, 미래 프랑스의 위대한 사람을 위한 자리라고 한다.

판테온에 안치되는 사람들은 이미 장례를 치웠음에도 다시 국장을 치르는데 이런 이벤트가 사람들로 하여금 프랑스에 더 자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 같다. 다른 곳에 국립묘지가 당연히 있겠지만, 판테옹이란 곳에 특별히 시신을 안치하면서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보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듯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뒤, 프랑스는 당시 독일 나치 정부를 도왔던 모든 사람들을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어도- 모두 처단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역사의 잘잘못에 대해 칼 같은 평가를 내리는 데서부터 프랑스의 힘이 나오는 게 아닐까? 프랑스인들의 자부심 중 일정 부분도 이런 곳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한편의 위인전을 읽고 나온 듯한 판테옹에서 5분 거리에는 뤽상부르 공원이라는 예쁜 공원이 있다. 뤽상부르의 철자는 룩셈부르크와 같은데 이 공원과 그 나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근데 왜 이렇게 공원 이름이 귀에 익지? 알고 보니 김어준 아저씨가 유럽  배낭여행 중에 이 뤽상부르 공원에서 노숙을 했던 그 공원이었다. 그 강연이 참 재밌어서 몇 번을 들었더니 공원 이름마저 외웠나 보다. (참고로 그 강연은 청춘페스티벌 https://www.youtube.com/watch?v=1zmnoElezRg )

나꼼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엉뚱하게도 난 이 공원에 앉아서 난 김어준 아저씨와 그의 강연을 생각했다. 자신의 결대로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지... 김어준  아저씨처럼 살면 인생에서 최소한 후회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어울리지 않게 야자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 아이는 과연 살아있는 걸까?


여행의 묘미는 발길 닫는 대로 아무 곳이나 걷는 것. 가끔 길을 잃으면 어때. 꼭 그렇게 길을 잃어 지나가는 곳에서 뜻밖의 보물 같은 장소나 물건이나 혹은 사람을 만난다. 

뤽상부르 근처를 걷다 보니 근처의 소르본 대학가까지 오게 되었다. 대학교 근처라 역시 술집도 많다. 그래, 대학생이라면 술을 마셔야지! :p

누구나 대여하여 사용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자전거와 벽돌 바닥 길. 운치가 있다. 그리고 이 사람, 창문에 걸치고 앉아서 주위 신경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막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스케치북을 펴고 바로 스케치를 시작한다.

영등포구  크기밖에 안 된다는 파리에서는  400m마다 지하철역을 하나씩 찾을 수 있어 길 잃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가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이동하여 친구를 만나기로 한 리퍼블릭 광장으로 향했다. 파리의 모든 데모와 집회는 여기서 열린다는 리퍼블릭 광장.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지난달 IS에 의한 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추모 행사를 했다. 지난달 파리 테러가 난 직후의 광장의 모습은 내가 보질 못했지만, 적어도 7월 말 이곳은 여전히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었다. 해당 관청에서는 동상을 잘  관리하지 않나 보다. 더러운 상태로 방치하는 건지 아니면 치워도 시민들이 계속 낙서를 하는 건지...

테러는 일어나도 사람들은 여전히 기타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JU SUIS CHARLIE (나는 샤를리다.)
굳이 동상의 입에 이럴 필요까지야...


저녁에는 싱가포르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말 파리로 돌아간 친구를 만났다. 다시 돌아온 파리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단다. 하지만 청년실업률이 높은 프랑스에서 그는 어렵지 않게 다시 일자리를 구해 파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다시 싱가포르에 갈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는 그에게 아는 헤드헌터들의 연락처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파리에서 사는 게 왜 힘들어?"

"여기서 집 사려면 얼마나 드는지 알아? 그리고 일자리도 많이 없고,,,,"

"그래도 너 지금 파리에서 일하고 있잖아. 그리고 싱가포르 집값 비싼 건 너도 살아봐서 알잖아?"

"그래도 그땐 회사에서 지원해 줬었으니까."


그 아이가 싱가포르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잘 와 닿지 않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사는 게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가?

(이건 나도 공감하지만) 외국에서 살면 항상 휴가 온 느낌이 드는데... 그 느낌이 좋은가? 심지어 회사에서 엄청 스트레스 받고 집에 돌아가는 그 길에서도 홀리데이 느낌이 난다. 그리고 그 느낌이 나의 스트레스를 조금  경감시켜줄 때도 있다.

아님 그냥 다시 프랑스를 떠나고 싶은가?

싱가포르를 떠날 때는 분명 싱가포르가 지겹다고 했었는데 왜 다시 가고 싶어 할까?


나도 싱가포르를 떠났는데 막상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난 싱가포르를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 든다.

내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어디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하지만 싱가포르 살면서 배운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어디 사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 

결국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환경도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을 싱가포르에서 온몸으로 느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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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10시 반쯤 노트르담 대성당에 도착했다. <노트르담의 꼽추>로 유명한 그곳.


벌써 줄이 이렇게나 길다. 역시나 오늘도 이상하게 추운 날씨에 덜덜 떨며, 그 줄의 끝에 나도 동참한다. 성당인데, 그 크기가 정말 엄청나다. 예술에 대해 아는 것 없는 내가 봐도 정말 웅장하고, 대단한 건물이다. 건물의 크기에서부터 그 당시 기독교가 왕권과 더불어 얼마나 강력한 종교였는지 짐작이 간다. 게다가 이 대성당에서 황제의 결혼식 등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행사들을 치렀다고 하니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곳.

어제처럼 이곳에서도 역시 한국어가 잘 들린다. 휴가철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삶이 질이 정말 많이 향상되었다는 게 이런 곳에서 보이는 듯하다.

감사하게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입장료는 무료 :)

줄서서 기다리기 지루했던 아이가 그만 비둘기에게 포위 당하다

아무리 지루해도 그렇지. 아이가 비둘기들에게 포위당했다. 심지어 밟히고 있다. 아이에겐 순수한 동심으로 비둘기와 함께하는 시간이지만, 내게는 그저 세균 덩어리 비둘기들. 도시의 비둘기가 얼마나 더러운데...(ㅋㅋ) 참고로 파리에서 비둘기는 "Flying rat"(날아다니는 쥐)이라고 불린단다.


생각보다 짧게 40여분 간을 기다린 끝에 성당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정말 들은 대로 유럽 성당의 스태인드 글라스는 대단하다. 각 창마다 성경의 인물들로 꽉꽉 채운, 단 하나도 중복되는 그림 없는 하나하나가 놀라운 작품들.



잔 다르크 동상

성경 속의 인물이 아닌데도 잔 다르크 동상이 대성당 안에 있다. 늘 비장한 그 모습에서 뭔가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잔 다르크.

운 좋게도 미사 시간에 겹쳐 미사 드리는 모습을 잠깐 볼 수 있었다. 관광객들도 누구든지 원하면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데,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것도 참 기억에 남는 일일 게다. 나도 교회 열심히 다니던 시절에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카에 여행 가서도 (교회를 못 찾아서)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었다. 1800년대에 네덜란드가 말레이시아를 지배할 때 지어진 성당에서 드리는 미사였는데, 기억에 남는 일이다.

그나저나 건물 내부의 높이가 어마어마하다. 경건함과 존경이 아닌 위압감이 들 정도의 높이다. 이 건물의 높이만큼  강력한 왕권과 신권 아래에서 그 당시 백성들은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과 베드로 앞에 나타나신 모습을 나타낸 작품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 속 인물 베드로가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니, 왠지 귀엽다. 이때는 몰랐다. 앞으로 유럽을 다니면서 바을과 베드로를 얼마나 많이 만나게 될지 이때는 미처 몰랐다.


유럽 여행 무사히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는 성당을 나와 성당의 꼭대기로 올라가려고 해 보았으나, 줄이 너무 길어서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밀려오는 죄책감. 항상 어떤 관광지를 제낄 때마다 묘하게 느껴지는 이 감정은, 미디어가 나에게 주입시킨 "꼭 가봐야 할 곳", "꼭 먹어봐야 할 것"에 것을 하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불성실함 때문이리라.

줄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쓰는 대신, 노트르담 대성당이 위치한 시테섬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시테섬과 본토(?) 파리를 연결하는 다리에 이렇게 엄청난 양의 자물쇠가 달려있다. 정말 한 치의 틈마저도 모두 이용하여 빼곡히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도대체 누가 이걸 처음 시작했을까? 이젠 어디를 가도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싱가포르 클락키에도 몇 달 전에 생겼었으니...

이 자물쇠를 단 사람들 중에 과연 얼마나 아직도 서로 사랑하고 있을까... 이런 열쇠를 볼 때마다 항상 드는 의문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이런 자물쇠들을 보면 그냥 다 끊어버리고 싶다. "다 헤어져 버려라!"를 외치면서. 

대성당 근처의 좌판에서 예전 책이나 그림, 포스터 등을 팔고 있다. 강따라 늘어선 고서점들이 운치 있다. 사야 된다는 부담 없이 마음껏 볼 수 있도록 내가 눈길을 주든 안 주든 주인들은 사람들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고서점과 어울리는 하얀 머리의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물 끄러니 길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다.

크아아아 퀸QUEEN이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느낀 그 향수, 왠지 편한 느낌이 여기도 있다. 비록 내가 아는 가수와 영화의 포스터보다는 모르는 내용이 더 많지만, 그래도 오래된 것이 주는 편안함과 아련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좌판 고서점을 뒤로 하고, 시테섬 근처에 위치한 역시 스태인드 글라스로 유명한 생샤펠 성당에 도착했다. 노트르담 대성당보다는 덜 하지만 역시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 성당에서는 입장료를 받네. 기준이 뭐지? 입장료 대신 4일간 파리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에 기다릴 필요 없이 입장이 가능한 뮤지엄 패스(Museum pass)를 구입했다. 그리고 4일간 요긴하게 사용했다.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다른 분위기로 이렇게 천장을 꾸며 놓았다. 색색깔의 천장이  성당이라기보다는 큰 궁전의 방 하나와 같은 그럼 느낌이다.


예술에 무지한 내 눈에는 생 샤펠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나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비슷해 보이기만 할 뿐이다. 정문 위 섬세하게 조각해 놓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이곳에 와서야 어릴 때 RPG 게임을 하며 내가 열심히 죽여댔던 가고일이라는 괴물이 무엇인지 마침내 여기서 알게 됐다.  저승세계에 살면서 빗물을 모으는 풍요의 괴물이라고 하는데, 교회에 경외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혹은  악령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가고일을 이렇게 지붕 위에 조각해서 두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각종 게임들의 괴물들은 고전에서 모티브를 얻어온 게 참으로 많다. 가고일도 그렇고, 세이렌, 오크, 드워프, 트롤 등등... 역시 고전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들의 인생에 들어와 있다.

성당 옆에는 법원이 있었는데 법원 건물도 아주 그냥 끝내줬다.

추위를 피하고(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구름이 끼어 추웠다.) 점심을 먹으러 아무 식당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Crepe이 너무 맛이 없었다. 주변 관광지 믿고 맛에는 신경을 쓰지 않나 보다. 하지만 춥고 배고파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역시 관광지 주변의 식당은 아무 데나 덥석 들어가면 위험하다.


그리고 이제 메트로를 타고 말로만 듣던 그 몽마르트로 간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얼마나 소매치기가 골칫거리이면 지하철역에서부터 이런 방송을 할까? 하지만,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바로 그런 방송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된다. 몽마르트까지 가는 길이 정말 사람으로 빽빽해서 소매치기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게다가 이 길이 맞나 저길이 맞나 어리바리한 관광객으로선, 소매치기범들에게 밥이 되기 십상일 듯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여쁜 자태를 드러내주는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

사크레쾨르 성당까지 올라가는 길에 만나는 수많은 장사꾼들. 이렇게 짝퉁 가방을 '길'에서 파는 곳은 태국과 베트남 정도일 줄 알았는데 이곳 유럽도 아니 관광객이 모이는 곳에 예외는 없나 보다. 그리고 이 모든 가방에는 "made in Thailand"가 적혀 있다.:p 전 세계 짝퉁 가방 시장의 규모도 상당한 가보다. 그리고 선물이라며 팔찌를 채워주려고 달려드는 많은 흑인 사람들도 불법 장사꾼이다. 팔찌를 차는 순간 돌변하여 돈을 지불하라고 요구한다. 이곳에서 불법으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흑인이라 더 씁쓸했다. 흑인 프랑스인인지 아니면 밀입국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흑인이 이렇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경제와 삶의 질 차이가 느껴진다. 이 차이가 과연 없어질 날이 오기는 할까?

언덕 위에 다 올라와 보니 보이는 파리 시내 전경. 역시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이 넓게 보이는 것이 마음에 딱 든다! 

성당 안에서 사진을 못 찍어서 좀 아쉽지만, 우선 사크레쾨르 성당을 돌아보았다. 각 나라별로 기독교를 위해 순교하신 분들의 사진과 소개가 있는 점이 좀 특별했다. 우리나라의 김대건 신부님도 이곳에 소개되어 있었는데, 프랑스인 신부를 처형했다는 명분으로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했던 이야기를 프랑스인에게 해 주니 돌아오는 말.

"정말? 우리가 한국에 쳐들어 갔었다고? 뭐 놀랍지도 않네. 우리 하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서."


아무튼 내가 믿는 어떤 것을 향해 온몸을 다 던지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항상 그런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그들의 기에 눌리는 그런 기분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인생에서 그런 것이, 그런 때가 한 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당에서 다시 몇 백개의 계단을 올라 이렇게 샤크레쾨르 성당의 꼭대기, 몽마르트르의 꼭대기에 다다랐다. 정말 파리 시내가 다 보인다. 저기 에펠탑도 보이네. 이곳에서 신을 섬겼던, 섬기는 사람들.. 경건한 마음으로 이 계단을 올라 이곳에서 도시를 보며,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

곡대기의 맞은편 교회 종탑

그렇게 성당의 꼭대기에서 내려와 다시 내려가는 길, 아름답게 노래하던 몽마르트 시스터즈와

그 어떤 도구 없이 오직 연필과 스케치북만으로 아이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거리의 화가들.


몽마르트, 예술가들의 성지였던 이곳에서 고풍스러운 예술의 분위기를 잔뜩 기대했지만 역시 관광객들로 온통 북적대는 통에 많이 느끼지는 못했다. 거리의 예술가보다 더 많은 기념품 상점들과, 감성 없는 카페들.

전설로 남아있는 엄청난 예술가들.  모파상, 세잔, 고흐 등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대화를 나누고 술을 마시던 그들의 인생을 이야기하던 곳이었다는 그 느낌을 조금이나마 받고 싶었는데 그 느낌은 소음에 묻혀 버렸다.

유럽 예술의 수도가 최근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파리의 비싼 집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젊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물가가 저렴한 베를린으로 옮겨가 최근 젊은 예술가들은 베를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하니 베를린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몽마르트 일정까지 마치고, 오늘 저녁 약속이 되어 있는 일행들을 만나러 갔다.  완벽한 프랑스 정통 코스요리. 참 감사하게도 잘 얻어먹고 다니고 있다. 메뉴판을 열심히 공부하다가 문득 나의 메뉴판과 남자가 보고 있는 메뉴판에 다른 점이 있단 걸 알았다. 남자의 메뉴판에는 각 요리의 가격이 표시되어 있고, 여자의 메뉴판에는 가격이 없었다. 


왜 그런고 하니, 남성에게 돈 내라는 뜻이란다. 농담으로 다른 분들에게 "여기는 천국!"이라고 말했는데..

그냥 좀 씁쓸하다. 요즘 레스토랑은 모두에게 동일한 메뉴판을 거의 다 쓰지만, 예전에는 다 이렇게 따로 나눠주곤 했단다. 이게 여성을 배려하는 건지, 아니면 (예전에는 여성이 경제력이 없었으니) 돈을 낼 능력이 없으니 남자가 사 주는 밥을 잘 먹어라는 건지... 확실히 유럽에서도 여성의 권리가 이렇게 높아진지 얼마 안 되었구나. 하긴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게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  레스토랑 메뉴판이 바뀐 역사도 그리 글지 않을 듯하다. 


아뻬오(Apero)부터 애피타이저, 메인 메뉴, 디저트, 치즈 그리고 커피까지... 장장 3시간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이런 긴 저녁식사에서 프랑스 사람들의 여유로움과 식사와 요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했다. 비싼 요리가 아니더라도 저녁 시간의 여유를 통해 가족과 시간을 공유하고 많은 대화를 하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게 삶의 질이라는 생각을 했다.


PS. 이날 계산은 여성분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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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 |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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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끝난 게 맞냐고 사람들에게 몇 번을 되물었다. 단체사진은 찍지도 않았다. 내 결혼식인지 부모의 결혼식인지 모를 만큼 내가 아는 얼굴보다 부모님이 아는 얼굴이 많거나, 친하지도 않은 김대리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부를 사람이 없다며 언젠가 하게 될 내 결혼식의 하객 수를 걱정했던 철없던 시절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기 싫지만 동료의 결혼식이니까, 내가 안 가면 저 사람이 내 결혼식에 안 올 거니까 등의 이유를 대며 그 귀한 주말을 결혼식장에서 의미 없이 보낸 모습이 떠올랐다. 싱가포르에서 좋았던 점 중에 하나가 쓸데없는 결혼식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으니 결혼식을 다니며 알게 모르게 피곤했나 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결혼식에 참석했던 이전 회사 동료들 중 내가 연락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던가?


“하객 대행 알바 구함 25~35세 남/여. 부케 받으실 분도 구해요.”


이쯤 되니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가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나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을 이색 아르바이트.(혹시 중국에도 있으려나?) 하객 머릿수를 채우고 같이 사진 찍는 걸로도 모자라 부케 받을 사람까지 구한단다. 부케를 주고받을 정도면 꽤 친한 친구인데 그런 사람까지 돈 주고 고용해서 쓸 만큼 중요한 걸까?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신랑과 신부의 약속이 아니었던가?


스몰웨딩을 하고 싶어도 부모님의 축의금 회수를 위해 일반적인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도 봤다. “성대한 결혼식=부모님의 기쁨과 체면”이라고 하면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걸까? 그리고 내 결혼식에서 30분을 썼다가 다음 사람에게 넘겨지는 닭장 같은 웨딩홀과 잡다한 소품은 또 무엇인가. 결혼식이 진행되는 시간은 얼추 비슷한데 한국에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걸까? 내가 내 돈으로 올리는 결혼식에 내 의지대로 결정되는 것이 과연 몇 개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겠다고 서약하는 자리인데 서약보다는 왜 다른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걸까? 어쩌다 ‘웨딩 푸어’라는 말이 생겼을까? 우리들이 하는 게 결혼식일까, 축의금 회수전 일까? 열심히 비눗방울을 불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30분 간의 결혼식이 끝나고, 프랑스인들이 진짜 결혼식이라고 부르는 파티를 하러 갔다. 파티장 역시 시에서 빌려준 다목적 홀. 우리는 여기서 밤새도록 파티를 할 예정이다. 몇몇 친구들은 전날 미리 도착하여 이곳을 파티장으로 꾸몄다. 색색의 풍선, 꽃가루, 레드카펫, 명찰, 테이블 세팅… 전문가가 꾸민 것이 아니라 조금씩 엉성하지만 그래서 더 정이 간다. 내가 분 풍선이기에, 내가 붙인 이름표이기에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밤 10시가 돼서야 해가 지는 유럽의 여름. 수다와 술을 사랑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결혼식이 끝난 6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밥도 먹지 않고 샴페인과 다과를 먹으며 수다를 떨어댔다. 식전에 술 마시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말하는 아페로(Apero)라는 프랑스어가 있을 정도니, 밤새도록 놀기 위해 시간을 비워둔 오늘의 아페로는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다목적 홀 뒤로 펼쳐진 들판 너머로 해가 진 밤 10시, 본격적인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저녁이 나오자 사람들은 더 흥분했다. 이렇게 다들 잘 먹을 거였으면서 왜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린 걸까?


빛의 속도로 저녁을 먹어 치우고 디저트가 나오는 사이, 흡사 대학교 MT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게임이 시작되었다. 모든 하객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게임을 즐겼다. 아마도 친하지 않은 회사 동료, 얼굴 본 적도 없는 엄마의 친구가 없는 자리라서 더 그렇겠지. 여전히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부부는 망가지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게임을 즐겼다. 열정적인 게임의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한숨 돌릴 무렵, 오늘의 두 주인공은 블루스를 추기 시작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마침 어두워진 조명 사이로 춤을 추는 두 여인, 그들이 느끼는 행복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소피 부부는 파리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삶에 필요한 것들이 다 있는 도시에서, (프랑스도 한국처럼 수도집중 현상이 심하다.)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집이 없거나 수입이 적다며 결혼을 미루고, 혼수로 스트레스받고 파혼까지 하는 곳에서 온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하다. 남자친구는 소피의 결혼식이 프랑스인의 결혼식 중에서도 조촐한 편이라고 했지만,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한 그녀들은 가진 돈 따위와는 상관없이 참 행복해 보였다.

  "엄마, 난 결혼해도 결혼식 할 생각 없으니까 괜히 축의금 뿌리고 다니지 마."

잊을만하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서운해 했지만 진심이었다. 근데 오늘 이 결혼식을 보고 나선 마음이 살짝 풀렸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평생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는 자리에,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아서 간소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다면 결혼식도 해 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P.S. 시차와의 싸움에서 실패한 나는 파티가 한창 진행되던 11시에 파티장에서 뻗어버렸다. 친구들은 나를 근처의 소피네 집으로 옮겼고, 난 신혼부부의 침대에서 다음날 아침까지 신나게 잤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파티에 침대는 비어 있을 예정이었지만, 결혼 첫날 부부의 침대를 쓴 사람은 시차 적응에 실패한 술 취한 여자였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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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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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나 자신을 방목하려 떠난 여행의 첫날에, 내남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당신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우습지만, 아무튼 나의 첫 유럽 여행은 남자친구의 친구 결혼식 참석으로 시작했다. 13시간의 비행 끝에 파리에 도착한 뒤,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툴루즈에 내렸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라바스띠드(Labastide)라는 정말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남자친구가 이른바 불알친구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2명인데 모두 초등학교부터 같이 다닌 친구들이다.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 이 세 명의 친구는 얼마나 친한지 성적 취향마저 같아 세 명 모두 여성을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 결혼하는 친구는 여자인 소피이다. 그렇다. 남자친구와 같은 취향을 가진 소피 덕에 나는 난생 처음으로 프랑스인의 결혼식 그것도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커플은 결혼식에서 어떤 옷을 입을까? 여기서도 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갈까? 두 여주인공은 어떤 옷을 입을까? 한아름의 궁금증을 안고 도착한 작은 시청.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듯 이 커플도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워낙 소도시라 시청이라기보다는 주민센터 정도로 보이는 작은 건물의 작은 홀에서 결혼식이 치러진다.


먼저 열리고 있던 결혼식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와중에 오늘의 주인공 두 신부가 도착했다. ‘한 명은 정장을 입고 한 명은 하얀 드레스를 입지 않을까?’ 란 나의 이상한 기대는 무너졌다. 둘 다 모두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차에서 함께 내렸다. 너무나 당연한 이성 간의 결혼식만 봐온 데다 게이 커플 중에도 남녀의 역할이 있다고 들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모두가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상상이었다.

 “봉주르~ 나이스투미츄.”

스카이프와 사진으로만 만났던 소피는 내 볼에 뽀뽀하며 반갑고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하객 한 명 한 명과 인사하고 담소를 나누며 결혼식을 기다리는 소피의 모습은 한껏 들떠 있었다. 신부를 꼭꼭 숨겨두는 우리네 결혼식과 달리 두 신부는 너무나 활발하게 하객들 사이를 누볐다. 한 결혼식에서 두 명의 신부를 보는 것도 처음 하는 경험인데 심지어 소피의 그녀는 배까지 불러 있었다. 임신을 어떻게 한 거지? 한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하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마친 커플이 구석으로 가더니 친구 몇 명과 함께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웨딩드레스와 담배라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조합에 어안이 벙벙했다. “새하얀 드레스 수줍은 발걸음♪”은 동쪽의 먼 나라 이야기인가? 웨딩드레스의 하얀색은 순수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We have everything we need!"

앞서 진행되던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과 소피 커플은 다 같이 홀에 들어갔다. 아니 홀이라고 하기도 뭣한 긴 테이블과 의자가 열 개 정도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갔다. 사회, 주례사, 결혼식 도우미, 사진기사? 그런 건 없다. 대부분의 하객들은 서서 결혼식을 지켜봤다. 사회 및 주례사는 시장님이 하고 (작은 도시라서 직접 하신단다.), 사진 찍고, 꽃을 뿌리고, 레드카펫을 까는 것도 다 하객들이 했다. 나는 하나도 못 알아먹은 시장님의 덕담이 끝나자 두 신부가 길게 입맞춤을 하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15분 정도 진행된 예식이 끝나니, 시장님이 새롭게 탄생한 부부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두 신부가 초청한 각 2명의 증인까지 총 6명은 서류에 서명을 했고, 그렇게 결혼식은 끝이 났다. 말로만 듣던 원 스톱 서비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결혼식부터 혼인신고까지 한 자리에서 30분 안에 끝났다. 지금까지 본 가장 소박하고 가장 빠른 결혼식이 끝나자 레드카펫 위로 두 신부가 행진했다. 손을 맞잡은 두 여인은 행복하게 웃었고, 하객들은 나팔을 불고 비눗방울을 불고 꽃가루를 던졌다. 

우연히 그리고 장난스럽게 여자와 데이트한 날, 소피는 남자들을 만나며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어떤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의 부모님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남자와 데이트를 시작했는데, 소피에게 그건 답이 아니었다. 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한 소피가 지금 여기에 서 있다. 프랑스에서는 2013년에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아무리 합법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이 둘의 결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과 색안경을 낀 사람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곳에는 사랑할 만한, 사랑해도 되는 사람을 선택한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기에 그 사람을 선택한 두 여인이 있다.


결혼 전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을 한 소피의 그녀는 결혼식 당시 이미 임신 7개월에 접어들었고, 그로부터 3개월 후 귀여운 남자아이를 낳았다. (잔소리 좀 하자. 임신 7개월인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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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