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보던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항상 내 눈물을 쏙 빼던 건 바다거북이었다. 어린 나를 거뜬히 등에 태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그 거대한 거북은 죽을힘을 다해서 태어났던 바닷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쉬지도 않고 모래를 파고 구덩이를 만들어 거기에 알을 낳았다. 모래로 알을 다시 덮은 거북이는 왔던 바다로 돌아갔다. 거기까지만 봤으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알을 낳고 혼자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박수를 쳤을 텐데… 카메라는 어김없이 그 이후의 모습을 비췄다.

알에서 깬 아기 거북은 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해 가는데, 그 사이에 그 어린 거북이를 노리는 것들이 곳곳에서 출몰했다. 걸음을 뗀 지 불과 몇 분도 안 되어 반이 잡아 먹혔다. 그렇게 살아남아 바다에 도착하는 아이들은 불과 10%나 됐을까? 그 장면은 내 동심을 일찍 파괴했다.

호주의 브리즈번 Brisbane에서 4시간 정도 차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몬 레포스 Mon Repos라는 곳이 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대 농장이 있는 분다버그 Bundaberg라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동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돌아오듯 매년 11월에서 12월 사이 멘 레포스에서 태어난 바다거북이들은 알을 낳으러 다시 이곳에 돌아온다.(매년 11월이라니 좀 웃기다. 거북이들이 달력을 보고 ‘11월이 되어 가잖아? 슬슬 몬 레포스로 갈 준비를 해야겠어.’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고속도로를 벗어나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거북이 센터는 빛도 최소로 한 채, 주변의 다른 시설들과 꽤 떨어져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바다거북을 보호하기 위해 센터에서는 어미 거북이 알을 낳은 순간부터 알에서 깬 거북이가 바다로 갈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언제 바닷가에 오는 거야 거북이 마음이지만 하루에 이곳을 찾아오는 거북이도 그리 많지 않다. 미리 예약해야만 올 수 있지만, 그마저도 거북이가 바빠서 오지 못한 날엔 허탕 칠 수밖에 없다. 내 앞의 모든 팀은 거북이를 보고 행복한 표정으로 센터를 나갔다. 못 볼지도 모른다는 허탈감이 날 엄습하고, 시간은 이미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그녀가 왔어요!!”

그녀가 왔다니…첫사랑이라도 만난 듯이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센터 직원이 쓴 헤드렌턴 빛만이 주위를 밝히고, 앞사람을 이정표 삼아 좁은 숲길을 걸어갔다. 10분쯤 걸었을까? 밤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바다에 바람과 나무가 만드는 만드는 묘한 소리만 울렸다. 그리고 칠흑같이 검은 바다 위, 새하얀 보름달이 무심하게 떠 있었다. 달이 뱉어내는 환한 빛은 바다 위에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었다. 고흐 그림보다도 더 신비로운 이 장면만으로도 기다림을 보상받은 것 같았다.


 “쉿 조용히 해 주세요. 저기 보여요? 거북이가 지금 알 낳을 자리를 탐색하고 있어요.”

모두가 숨 죽이고 조용히 거북이를 향해 걸었다. 내 손바닥만 하게 보이던 거북이가 점점 커지더니 드디어 내가 다큐멘터리 속에서 보던 그 모습으로 나타났다. 내가 쭈그리면 여전히 거뜬하게 나를 태울 수 있을 것 같은 거북이의 몸길이만으로도 놀라웠다. 사람들은 조용히 거북이를 둘러쌌지만, 거북이는 신경도 쓰지 않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구덩이를 파는 힘 좋은 뒷발에 튀는 모래가 사람들의 얼굴을 때렸다.

갑자기 땅 파기를 멈춘 거북이, 갑자기 눈앞에 새하얀 것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거북이가 드디어 알을 낳기 시작했다! 알 낳는 걸 본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볼 줄이야! 게다가 내 눈앞에서!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모두 숨죽였다. 끈끈한 액체와 함께 거북이의 몸에서 떨어지던 그 하얀 알은 거대한 스펀지처럼 모든 저항을 흡수했다. 그 먼 바다를 헤엄쳐 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북이. 주변의 부산스러움과 관계없이 할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정말 어른 같았다. 

근데 기분이 이상하다. 이건 마치 산부인과 분만실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아기 낳는 걸 구경하는 것과 별 다를 것 없지 않은가? 어느 날 지구로 외계인이 쳐들어 와 ‘인간’이란 것들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구경한다며 분만실에 우르르 몰려와 있는 것처럼. 하긴 거북이 입장에서 우리는 괴상망측한 외계인일 거다.

 

“몇 년 전에 몬 레포스에서 태어났던 xx예요. 다시 돌아와서 알을 낳네요.”

“우와!”

잘 교육받은 방청객처럼 우리는 감탄했다. 거북이가 땅을 팔 때부터 땅을 다시 덮을 때까지 센터의 직원 아니 연구원은 사람들로부터 거북이를 보호했다. 움직임을 통해 몸상태를 확인하고, 몸길이를 재고, 거북이의 신원파악을 하며 열심히 일하는 그녀. 한밤중에 거북이를 관찰하는 것이 그녀의 직업이지만, 거북이를 향한 눈빛과 배려, 몸짓에서 직업과 별개로 동물을 참 사랑하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호주에서 본 사람 중 가장 열심히 일하던 센터의 직원

알을 다 낳은 거북이는 땅을 덮고 바다 쪽으로 몸을 틀었다. 확실히 거북이는 지쳐 보였지만, 이럴 시간이 없다는 듯 다시 바다로 가기 위해 느릿느릿 걸었다. 사람들은 홍해 바다가 갈라지듯 거북이에게 길을 내주었고, 그녀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올 때처럼 그렇게 갔다. 처음 바다에 도착했을 때보다 더 높게 떠오른 달은 어느새 거북이의 등을 비추었다.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의 비호를 받으며 어미 거북은 그렇게 검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바다, 보름달, 방금 출산을 마친 바다거북

인간인 내가 그곳에 서 있는 게 그렇게 거추장스러울 수 없었다. 어떻게 사진으로 담아보고 싶었지만 사진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의 반의반도 담지 못했다. 그 먼 길을 헤엄쳐서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끝내고 가는 어미의 뒷모습은 위대했다. 게다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바다로 들어가는 시크함까지... 11월 말의 자정이 넘은 시골의 바닷가. 사람들은 모두 떠났는데 난 거북이가 사라진 바다와 보름달을 계속 보았다.



* 11~1월은 바다 거북이 와서 알을 낳고 2~3월 사이 아기 거북들이 부화한다. 방문 시기에 따라 알 낳는 걸 보거나 부화하는 걸 볼 수 있다. 여행사에도 '몬 레포스 거북이 투어'가 있는데 그건 아무래도 좀 비싼 것 같고, 센터 홈페이지에서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다. 

https://www.queensland.com/en-sg/attraction/mon-repos-turtle-centre


*참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GGEY4_8tLQ&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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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호주 | 썬샤인_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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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브리즈번에 있을 때는 모르겠는데, 브리즈번만 벗어나면 새삼 느낀다. 이 나라가 얼마나 넓은 지를. 조금만 시내를 벗어나면 허허벌판이 펼쳐지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6시간을 가도 아직 퀸즈랜드 주 남쪽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정말 '질린다 이 나라.' 싶었다.


한국과 날씨가 반대인 호주는 12월이 한여름이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이해 2주간의 일정으로 브리즈번에서 다시 브리즈번으로 돌아오는, 호주 아웃백 캠핑 +로드트립을 떠났다. 큰 도시를 제외하고서 대중교통이란 걸 아예 찾아볼 수 없는 호주이지만, 호주 전역이 고속도로로 잘 연결되어 있어서 차를 타고 호주 전체를 몇 달씩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곳에도 캠핑장이 있다니!'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곳곳에 유료 캠핑장과 무료로 캠핑할 수 있는 공유지도 널려 있다. 그야말로 운전하고 가다 지치면 텐트 치고 잠자기 딱 좋은 환경. 

광활한 대륙을 찍고 싶었는데 로드킬 당한 캥거루도 같이 찍혔다...

첫날은 아웃백 트립에 설레어 모든 길이 그저 신기하지만, 이튿날부터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를 떠나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시골길과 호주 평야와 사막의 지평선만 끝도 없이 이어진다. 차 내부 온도는 40도를 가리키고, 몇 백 km를 달려도 별다를 것 없는 풍경이 하루 종일 지속되니 좀 힘들어진다.

호주 내륙을 달리는 기차 (정말 길다..)
SA주의 소금 호수 Hart. 더운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눈밭인 줄 알았다;; (소금 호수를 처음 봐서..)

특히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푹푹 찌는 날씨는 기본이고,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오직 고속도로만 길게 뻗어 있다. 그래도 내가 상상하던 모래사막이 아니라 붉은 땅에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Bush(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미개간지 - 출처: 네이버 사전)라고 불리는 황량한 사막이 몇 시간 내내 펼쳐진다. 300km를 달려야 겨우 만날 수 있는 마을. 사실 마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로드트립 여행자들을 위한 주유소, 편의점, 모텔이 있고, 10가구 남짓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예전 미국 서부 영화에서 보던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래바람과 낡아빠진 주유소 간판이 인상적이다. 황량한 사막 마을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던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는 이곳과 아주 잘 어울렸다. 고속도로에서는 아예 불통이던 휴대폰은 마을에 잠깐 들르면 안테나가 선다. 심지어 데이터도 2G까지 쓸 수 있다. ^^

황량한 마을

도시를 벗어난 시골이라 물건이 좀 저렴할까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물자를 공급받는 게 어려워 그런지 가격이 도시보다 비싸면 비싸지 덜 하지 않다. 최근에 본 호주 뉴스에서 쇠퇴하는 광산업에 대한 기사를 보며 호주 중부의 휑한 마을이 오버랩됐다. 그 마을에 살고 있던 10가구 남짓하던 사람들은 무얼 하며 먹고살까? 그 작은 마을의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던 젊은 아이들은 이 오지에서 무얼 얻고 있을까?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너무나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던 아이들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쿠퍼 페디(Coober Peddy)의 오팔 광산

호주 중부를 계속 달리다 보면 군데군데 여전히 광산이 남아있지만 모두가 휴가를 간 건지, 자원이 고갈되어 가서인지 사람을 찾아볼 수는 없다. 묘하게 외로운 느낌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너무 날씨가 더워 지하에 마을을 이루고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다. 지하에 상점, 서점, 호텔, 교회 등이 다 있다고 하는데 진작 알았으면 한번 들렀을 텐데... 좀 아쉽다.)

첫날 만난 무지개
첫날 텐트를 치고 잤던 공터
공터에서 두번째로 잔 날.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공터에서 잔 날.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소리에 조금 겁도 났다. 아침에는 맞은편의 소농장에서 산책하는 소들이 텐트 앞까지 와 울어댔다.

대부분은 캠핑장을 이용하지만, 고속도로 옆으로 캠핑을 할 수 있는 공유지가 있다. 넓적한 그곳에 간이화장실만 덩그러니 있고, 수도꼭지에서 물은 쫄쫄 거리며 나온다.(화장실도 물도 아예 없는 곳도 있다.) 물론 씻는 건 꿈도 못 꾸지만, 밤이 되면 주변에 불빛 하나 없어서 온전히 호주 아웃백의 밤과 별의 바다를 볼 수 있다. 정말 아름답고 고요하지만 광장 공포증이란 게 이런 걸까? 이렇게 끝도 없이 땅이 뻗어있는 곳에 있어보니 건물과 사람에 둘러싸여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싸한 기운이 느껴진다. 허허벌판에 떨어져 보는 경험은 이전에도 이후로도 아마 없을 것 같다. 호주의 치안이 좋은 편이고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이 100km 어떤 곳은 300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데다, 사막 한가운데서 휴대폰은 먹통이 되어 버리니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캠핑이라면 모를까 자신 있게 공유지에서 캠핑하라고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길가의 로드킬 당한 동물들. 가장 많은 건 역시나 캥거루인데,  이 녀석들은 오히려 차가 오면 반가움에(?) 도로로 달려 나온다. 친구들은 "로드킬 당한 수많은 선배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하는 멍청한 캥거루들"이라며 나를 웃겼다. 아웃백 여행을 하던 다른 친구는 도로에 서성이는 캥거루를 먼저 보내려고 서행 중이었는데 마침 열려 있던 뒷좌석의 창문으로 다른 캥거루가 머리를 들이밀어 엄청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 거 보면 참 호기심 많고 순진한 동물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서로 타이밍이 안 맞으면 사고가 나기 딱 좋다. 도로가에 서 있는 캥거루 가족들을 보며 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건지 차에 뛰어들려는 건지를 알 수 없어 조마조마한 적이 몇 번이었던지... 캥거루 이외에도 말과 소도 가끔씩 도로를 걸어 다니고 호주에만 서식한다는 에뮤와도 도로를 공유하고 정말 자연과 함께하는 아웃백 여행이었다.

차가 지나가는 걸 끝까지 주시하며 새끼를 보호하던 엄마 혹은 아빠 에뮤

사막이라던 말답게 호주 중부는 황량함 그 자체였지만, 내가 보고 있는 곳이 도대체 어디쯤인지 끝이 있긴 한 건지... 거칠 것 없는 시야 너머로 지평선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아웃백 여행 중 들렀던 도시 이야기는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http://flyingstar.tistory.com/6


*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적게는 100km 많이는 400km 가까이 날 때도 있다. 여차하면 사막 한가운데서 심한 갈증을 겪거나, 차가 멈춰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웃백 여행을 하려면 충분한 기름과 물과 간단한 음식을 싣고 여행을 다니는 게 좋다. 


* 위키 캠프를 이용하면 호주 전 지역의 유/무료 캠핑 장소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http://wikicamps.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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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