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묵었던 도시 bagnole de l'orne에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프랑스의 북서쪽. 그 유명하다는 몽생미셸. Mont-Saint-Michel. 논 저 멀리 성 같은 섬이 보인다. 들어가서 설명을 보니 성이 아니라 수도원과 교회가 결합된 형태인  "Abbey"라고 한다.

 자가용을 이용하든 버스를 이용하든 도착하게 되면 모두 하차하여 무료 셔틀버스나 하루에 3번 운행하는 마차)를 이용해 들어가야 한다. 물론 걸을 수도 있지만, 셔틀버스로도 10-15분 정도 되는 거리라 시간의 제약이 있는 여행객이 걷기엔 조금 먼 거리가 되지 싶다. 하지만 걷게 된다면 갯벌을 직접 밟으며(만조 때는 얕은 바다가 되는) 조용기 걷기에 좋은 그런 길. 어떤 자유로운 영혼들은 이미 신발을 벗고 갯벌을 걷고 있다. 

셔틀버스에서 내린 우리를 반겨주는 몽생미쉘

셔틀버스에서 내리니 날 반기는 이 장면. 정말 멋져서 몇 분간 가만히 서서 몽생미셸을 보고 있었다. 무려 800년에 걸쳐 지어졌다고 하는 몽생미셸. 프랑스 본토(?)에 다녀오던 수도승들이 벽돌을 하나하나 가져와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몇 년 전까지는 몽생미셸과 본토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가 있었다고 한다. 그 도로 덕에 바닷물이 막혀 도로 옆으로 모래들이 쌓였고, 또 간척 사업 덕에 더 이상 섬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섬이 아닌 그저 프랑스와 연결된 땅이 되어 버려 안타까웠던 걸까... 몽생미셸을 섬으로 다시 만드는 '몽생미셸 프로젝트'를 통해, 도로를 철거하고 다시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업이 2015년에 완공되었으며, 난 운 좋게 완공되고 이곳에 방문하게 되었다. :) 비록 600m만 떨어져 있다 해도 바다에 둘러싸인 육지와 떨어진 수도원이라니, 정말 속세에서 벗어나 진리를 찾으려고 했던 수도승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잖아.

여기도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데 누군가 차 빼는 걸 잊어버렸다!! 밀물 때에는 섬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물이 차 오른다. 어쩜 이런 곳에 이런 거대한 수도원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한여름, 극성수기의 프랑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섬에 입장한다. 수도원 밑으로 이렇게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좁은 벽돌 길 사이로 들어서 있는 상점들과 식당들. 유럽식 벽돌 바닥과 좁은 골목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그냥 같이 올라간다..

벽돌 길을 오르는 중에 건물 틈으로 보이는 바다가 참 아름답다. 근데 덩그러니 섬만 있는 곳이라 그런가. 8월 한여름에 나만 너무 춥다. 사진을 찍으니 흡사 북한 여자 같이 나온다. 싱가포르에 너무 오래 살았나...

몽생미쉘 수도원의 거대한 벽

몽생미셸 수도원에 입장하기 위해 입장권을 사야 된다. 한여름의 프랑스를 여행하는 일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앞으로 가게 될 로마도 그럴까??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길도 참 운치 있다. 정말 프랑스는 전통적인 도시 외관을 보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인다고 하는데 이런 곳에서 그런 노력이 보인다. 실제 파리의 건물은 내부는 최신식이더라도 외관은 고풍스러운 옛날 분위기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단다.

 "이런 전통을 유지하려다 보니 우리나라가 건축, 보수공사를 되게 잘 해. ^^"

 라는 친구의 한 마디. 

엄청난 높이의 수도원 천장. 그리고 수도원 중앙에 위치한 정원. 툴루즈에서 봤던 그 정원과 같은 모양이다. 수도원 내부를 돌아보는 틈틈이 보이는 바다와 하늘. 과연 이곳에서 신을 섬겼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까지 오게 됐을까? 섬에 있는 수도원을 택한 사람들에겐 분명 더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지 않았을까…

국경의 거의 끝에 위치한 수도원이라 그런지 예배당과 복도에 대포도 있고, 망루의 흔적도 곳곳에 있다. 실제로 영국과 가까운 위치 덕에 중세시대 잉글랜드와의 전쟁이 자주 일어났던 곳이란다. 전시 중에는 이 섬의 수도사들과 거주하던 주민들도 함께 섬과 수도원을 지켰을까? 수도원의 옥상에서 하늘을 보니 정말 신이 계신 하늘을 가장 가까이 느끼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뜻 그대로 그 어느 것도 없이 오로지 하늘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람은 무척 차다... 그곳에서 땅을 내려다보니 속세를 떠나 오직 진리를 찾기 위한 곳으로 제격인 생각이 들다가도, 이 세상 그 어떤 것들보다도 가장 위에 존재했을 중세시대 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권위를 말 그대로 보여주는(섬의 꼭대기에 수도원이 위치하고, 상점과 마을이 섬의 가장 아랫부분에 위치한) 섬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와 논밭의 경계가 전혀 없는데 그래서 이곳에서 재배한 식물들은 그 맛도 좀 다르다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식당에 들어 몽생미셸의 유명한 오믈렛 대신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홍합요리를 다시 먹었다. Le pouland라는 식당인데(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 가이드북에 소개된 식당이다. 근데 왜 소개됐는지 잘 모르겠다. 위치가 좋아서?)  서비스가 너무 느렸다. 아무리 식당에 사람이 많았지만 이곳에서 2시간을 있었다. 이래서 가이드북에 나오는 식당은 의심부터 해 봐야 하는가? ^^; 하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는 요리도, 경치도 멋있긴 했다. 프랑스의 Mouls(홍합) 요리도 맛있지만, 역시 내겐 한국의 홍합탕이 최고. ^^

그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꼭대기에 동상을 올려두었을까

몽생미셸에서 내려와 다시 셔틀버스를 타려다 마침 마주친 마차를 탔다. 한 사람당 5.3유로 하는데, 셔틀버스로로 10분 정도였던 왔던 거리를 다시 돌아간다. 말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또각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참 듣기 좋다.  몽생미셸이 있는 프랑스 북쪽 노르망디 지방은 말로도 유명한데 이 말들도 노르망디에서 태어나고 자란 말들이고 하루에 이렇게 세 번의 왕복 운행을 한단다. 총 18km를 운행하는 거라고 안내원이 장히 자세히 설명해 주네. 우리는 말의 노동시간도 잘 지켜준다는 말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몽생미셸은 야경이 아름답기로도 아주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언젠가 다시 올 기회가 된다면 저녁에 한 번 들르고 싶다. 그리고 수도원의 가장 높은 곳에서 좀 더 오래도록 명상에 잠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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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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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립 도서관을 갔다가 센강을 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는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곳으로 왔다. 바스티유 감옥은 혁명 당시 다 파괴되어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대신 혁명을 기념하는 탑만 남아 있다. 아무 계획 없이 온 여행이라 무엇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그다지 없었는데도 굳이  아무것도 없는 이 '터'에 꾸역꾸역 온 것을 보면 전공을 속일 수는 없다. 그래, 난 한때 열렬히 역사를 사랑했고, 국사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사학과를 전공한 사람이다. 그 탑을 보며 괜히 눈을 감고 그때 혁명을 상상해 봤다. 그들의 절박함, 사람답게 살고 싶은 그 소망들을...


                                          센 강에 있던 야외 수영장


오늘은 토요일, 친구의 친구 초청으로 바비큐 파티에 가게 됐다. 사실 파티랄 것도 없는 다섯 명이서 맛있게 고기를 구워 먹는 자리. 으레 삼겹살을 기대했던 난 그들이 굽고 있는 갈비뼈가 붙어 있는 고기들을 보며 속으로 실망을 했다. 그래 폭립이고 뭐고 역시 난 그냥 삼겹살이 최고!


 "근데 한국의 역사는 어때? 무슨 일들이 있었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잠시 고민했다. 한반도의 역사는 반만년 정도 되는데 그걸 어떻게  이야기해줘? 그 질문에  이런저런 답변을 하다가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이야기하던 중 묘한 기분을 느꼈다. 유럽에 오기 전 나는 아시아에서만 살면서 아시아 문화만 접했던 사람이다. 아시아 역사는 주로 서양으로부터 침략을 당한 역사. 동남아 대부분 국가도 이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의 식민지였었다. 그래서 다른 아시아 국가의 박물관을 가 보아도 서양으로부터 침략당했던 자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게다가 심심치 않게 유럽풍의 건물들도 발견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약소국으로 살았었던 그 시절의 아픔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 프랑스인들, 영국처럼 제국주의로 온 지구를 들쑤시고 다닌 나라 중 하나다. 그 결과 베트남에서도 나이 많은 어르신들 중 프랑스어를 하는 어른들을 찾아볼 수가 있고,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는 아예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이다. 그 덕에 본국의  영토뿐 아니라 몇 개의 섬 역시도 영토로 가지고 있는 나라. 약소국의 설움을 모른다. "우리도 나치에게  지배당했었어."라고 말하지만 그것도 고작(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지만) 3년 간이었다. 본인들이 식민지로 거느렸던 많은 나라들. 그 사람들이 고통당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있단다.

"그래도 우리는 다른 나라들처럼 심하게 굴지는 않았어. 고문도 심하게 안 하고, 주로 회유하는 식이었어."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통치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가 다 폭력일 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그 폭력이 괜찮아질 수 있을까? 그리고 너희 아프리카에 보상은 다 해줬니? 우리는 심하게 식민지 국민들을 대하지 않았으니 일본보다는, 독일보다는 훨씬 괜찮고, 아프리카 문제도 다 해결했다는 그들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역사시간에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던 그 시간들을 어떻게 배울까? 항상 침략 당해 힘겨워하던 자국 역사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강대국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제국주의에 철저히 뭉개졌던 나라의 국민이었던 나와, 제국주의로 전 세계를 호령했던 나라의 국민이었던 그들과 제국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는 것. 재미난 경험이다. 


      

오늘 나를 초대한 친구들은 지난주 결혼식에서도 봤던 커플인데 8년째 동거 중이며, 여자가 이전 동거남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까지 총 세명이 함께 살고 있다. 프랑스 문화상 그리고 법률상 동거도 결혼과 거의 동일한 형태의 가족임을 감안해 보면,

 '이 남자 부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네. ^^;'


 본인보다 8살 많은 미혼모와 살면서, 그녀의 아들까지 거두어서 같이 지내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여자분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친구들도 왜 이 남자가 이 여자를 선택했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하는 걸 보면 프랑스인들도 그런 조건은 참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나 보다.

 내가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아이가 있는 싱글이라면, 난 그 사람의 아이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조건들 하나도 안 보고,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

뭐 언젠가 헤어질 수도 있는 게 사람 일이지만, 그렇게 쉽지 않은 사람을 만나서 보듬고 사랑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내가 연애하는 모습이 갑자기 어린애 같고, 속물 같아 보이는 건 왜 일까..?

                   

여기저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낙서들

갑자기 이 커플, 대마초를 피기 시작한다. 프랑스에서도 분명 불법인데 어디서 구해 왔는지 피기 시작한다. 아들도 있는데 꼭 저러고 싶을까? 좋게 보이던 그들의 이미지에 좀 금이 가는 순간이다. 둘이 피는 건 상관없지만 아들 앞에서는 좀... 

내가 보수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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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 |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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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오르셰 미술관을 가는 길에 일요일마다 서는 장에 들렀다. 유럽의 아무리 작은 동네에서도 으레 만날 수 있는 성당과 성당 주변의 광장. 그 광장에서 매주 일요일 아침 벼룩시장이 열린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장에 나와 있다.

내가 딱히 살 건 없지만 그래도 이런 시장을 보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이런 시장에 와야지 좀 사람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구경을 마치고, 오르셰 미술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8월 첫째 주 일요일.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은 프리 선데이라 미술관 관람이 무료다. 그래서 관광객에 시민들까지 오르셰 미술관 앞에서도 역시 줄 서기는  계속된다.

푹푹 찌는 한여름의 날씨 아래 저 앞에 새치기를 하는 두 명의 수녀님 아니 수녀들이 보인다. 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거리를 조금씩 새치기를 해대더니 결국 20분 만에 입구에까지 도달했다. 수녀복을 입고 뻔뻔하게 새치기를 해내는 대범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기차역을 개조하여 만든 미술관답게 정말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과 한쪽 벽을 크게 장식하고 있는 황금빛 거대한 벽시계가 기차역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입구에 위치해 있는 '자유의 여신상' 그래,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미국에게 선물로 준 거라고 했었지. 


그 어떤 그림들보다도 그날 하루 일을 마친 후의 그림들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밀레의 <만종>.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내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감사기도를 드리는 여인의 모습과,

농사일을 마치고 소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의 모습. 뒤로 비치는 햇살이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신비하게 만들어 준다. 하루를 열심히 보낸, 노동의 가치를 더 신성하게 만들어 주는 느낌이다. 그래, 어떤 위치에서든 주어진 시간, 하루를 열심히 보낸 사람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법.


폴 세잔의 그림이었나? 가족모임이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하나, 둘, 셋!' 찰칵. 각자 자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의 모습을 나타낸 것과 같은 그림. 재치 있는 그림이다.


흑인은 언제부터 유럽에서 노예로 생활하게 되었을까? 그림과 조각에서 심심치 않게 노예로 보이는 흑인들이 등장한다. 역시 그림, 문학 등 예술을 잘  살펴봐도 그때의 시대 상황,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는 정말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도 그냥 지나가는 순간이 아닌 역사가 되기 때문에 현재를 잘 살아내야 한다고 한참 공부하던 언젠가 생각하곤 했었다..


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들어가기도 힘들다. 바로 나도 좋아하는 <반 고흐 작품 전시관>

정말 집도 하늘도 숲도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그 당시에는 완전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던 그인데 지금 그의 그림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지 그게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암스테르담 가면 무조건 반 고흐 미술관을 가야지. 그나저나 이곳에 소장되어 있어야 될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 대여 중이라 못 봐서 너무 아쉽다.

3년 전 싱가포르 박물관에서 "오르셰전"이 열렸을 때, 그 그림 앞에서 30분을 가만히 보고 앉아 있었다.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참 멋지고 이상하게 슬펐던 그 그림.



오르셰 미술관 옥상에서 보는 파리는 역시나 아름답다. 멀리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레쾨르 사원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를 지나가는 투어 보트. 이렇게 큰 규모의 투어 보트는 파리에서 처음 봤다. 역시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다. 한여름의 파리는 시민의 수보다 관광객의 수가 3배는 더 많다고 한다. 한여름의 해운대는 다른 지방의 관광객들이 더 많듯이 한여름의 파리는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해 있다!


미술관을 나와 대충 와플을 사서 강변에 앉아 먹으며 사람 구경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고, 돗자리를 깔고 벌써부터 술을 마시는가 하면, 누군가는 나처럼 그저 사람 구경을 하고 있다. 


오늘이 8월 2일. 한 달 전에 퇴사를 했고 지금 난 프랑스 파리에 와 있다. 여행  일주일째. 내가 하고 있는 여행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었나. 내가 원하는 여행의 모습이었나. 또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여행 와서도 이렇게 고민을 하는 나는 무엇인가. 그 시간 그 장소에 온전히 나를 맡기는 것은 언제쯤 내게 가능한 일이 될까? 아니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여행은 무엇인가? 난 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어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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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프랑스 |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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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날. 오늘은 드디어 날씨가 맑아졌다. 하늘도 정말 예쁘다!


다 돌려면 일주일도 더 걸린다는 이 방대한 박물관. 난 역사학자가 아니므로 하루만 박물관 관람에 쓰기로 했다. 세계 3대 박물관에 포함되는 그 명성에 걸맞게 사람이 정말 많고 줄이 엄청 길었다. 하지만 어제 내가 샀던 뮤지엄 패스 덕에 대기 없이 바로 통과하여 박물관에 진입할 수 있었다! 정말 예쁜 녀석이다! :) 같이 간 친구는 루브르 박물관에 돈 내고 입장한 게 처음이라고 한다. 아니 그럼 루브르 박물관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거야?

 "아니, EU 시민은 누구나 만 25세 이전에는 모든 박물관 입장이 무료야."

헉 만 25세?! 내 머리는 재빠르게 우리나라 박물관에는 그런 혜택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몇몇 곳은 그런 혜택이 있지만, 가격의 차이만 있을 뿐 학생들에게도 입장료를 다 받는다. 그리고 혜택이 있더라도 초등학생들에게만 주어질 뿐... 신선한 충격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26,27세까지는 루브르 박물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니. 문화강국은 역시 다르구나 싶었다. 가난한 학생들, 갈 곳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쉽게 박물관에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만 25세이면 대학생도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박물관의 문턱이 없어 문화재와 예술 작품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학생들은 우선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위대한 작품들을 보며 생각과 상상력, 창의력 등이 자랄 수 있는 참 좋은 환경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매일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기에 가능한 일이려나? 어쨌든 만 25세까지 박물관 무료입장은 대박이다!

파리 뮤지엄 패스 - 강추!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지하 입구는 애플, 루이뷔통 등의 명품 상점까지 갖추어져 있다. 아무리 언제나 관광객들로 넘치는 루브르 박물관이지만 이런 상점들이 있어서 살짝 실망스럽다고 하자,

 "아니야, 이건 관광객들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거야. ㅋㅋㅋㅋㅋ" 란다. 


세계 7대 미스터리,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 10대 시절 항상 나의 판타지에 있던 이집트. 내 인생에서 이집트 유물을 보는 첫 경험. 스핑크스부터 벽, 미라를 만든 후 넣는 관..  난생처음 보는 이집트 유물들이 바다 건너 프랑스에 전시되어 있었다.

스핑크스
너무 귀엽잖아! ^^
파라오의 관

관이 정말 화려하지 않은가. 뱀의 얼굴을 하고 사람의 몸 모양으로 만든 관. 그리고 그냥 두기 심심했는지 아름다운 무늬도 새겨놓았다. 사후세계에 쓸 수 있도록 필요한 소지품들도 같이 묻혀 있었다니 정말 절대왕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례문화다. 4000년 전에 이런 것 등을 만들었다니 정말 대단하잖아. 장례  문화재뿐 아니라 장신구, 옷, 그릇 등의 물건들도 얼마나 화려하고 독특하던지 내 눈이 정말 호강했다. 정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고대 이집트인들만의 독특한 문양과 물건들. 그들의 예술 감각에 감탄을 하면서도 이런 예술이 극소수를 위해서만 쓰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노예로 살며 평생 노동력을 착취만 당했겠지..


처음 만나는 이집트가 너무 좋아서, 무려 2시간이나 그곳에 있었다. 집중을 끝내고 멍한 마음에 별 생각 없이 박물관 복도 곳곳에 나 있는 화살표를 따라갔다. "모나리자 ->"

모나리자가 있는 방에 도착했지만 사람들만 굉장히 많았다. 멀리 보니 내 손바닥 크기로 모나리자의 그림이 보인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둘러싸고 있어 감히 앞으로 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의 격렬한 사랑 덕에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커다란 유리 액자가 모나리자를 둘러싸고 있고, 이곳을 관리하는 직원도 따로 있을 정도다. 사진으로 찍어도 유리 액자 때문에 잘 나올 리가 없겠다. 사진 찍는 건 포기. 

사진 찍는 걸 포기하니 측면에서, 정면에서 자유롭게 볼 수가 있다. '왜 이 그림이 그리 대단한가?'를 알고 싶어 몇 바퀴를 돌며 여기저기서 관찰해 봤지만, 그 특출함을 알아채기에 난 정규 교육을 너무나 잘 받아 안목이 부족하고, 주위 사람들은 끊임없이 날 밀어댄다. 이만 안녕, 모나리자. 다음에 또 볼 날이 있겠지.

사진 엄청 못 찍었네. 로마 황제를 그렇게 동경했던 나폴레옹이 왕비 조세핀에게 왕관을 하사하는 그림. 한 벽을 가득 채울 만큼 엄청난 크기이다.

그리고 루브르를 유명하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 밀로의 비너스를 보러 왔다. 역시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예술작품은 왜 명작인 걸까. 왜 나는 그런 것을 알아보지 못할까?? 그리고 이 사람들은 그걸 알기 때문에 이렇게 모여드는 건가? 근엄하고 경직된 얼굴에 육감적인 몸이 기막히게 연출이 된 거라고 하는데, 설명을 볼수록 어쩐지 난 미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때고 역시 내가 온전히 느껴야 하는 건데...

모나리자보다, 밀로의 비너스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들 동상이 더 좋다. 제우스도, 아폴론도, 아테나도 아프로디테도.. 항상 책과 그림으로만 보던 신들은 본토에서 이렇게 그려졌었구나. 한 신도 수백 가지 버전으로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신화를 숭상했는지 알 수 있다. 신이지만 정말 인간과 똑같은 모양, 인간이 느끼는 추악한 감정까지도 그대 가지고 있는,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정이 간다.  




역시 기둥도 그대로 넘기는 법이 없다.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궁을 개조해서 만든 만큼 워낙 방대한 박물관이라 박물관 안으로도 대중교통이 드나든다. 박물관을 관통하는 도로도 있어 참 신기했었다. 박물관이 눈에 많이 보인다면 그만큼 방문할 가능성도 많고, 자연스럽게 문화적인, 교육적인 효과로 이어지겠지.


 "이 소리 한국말 아니야?"

친구가 물어본다. 그렇다. 박물관 구석에서 한 한국인 가족이 말다툼을 하고 있다. 이제 그만 나가자는 어머니,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아버지, 이럴 거면 박물관 들어오기 전 왜 아무 말하지 않았냐며 어머니를 타박하는 딸. 셋이서 투닥거리고 있다. 아주 살짝 부끄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그림 감상을 하러 발길을 돌렸다.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의 그림도,

화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림 속의 많은 그림을 그려놓은 화랑 혹은 작업실을 그린 그림도 참 흥미로웠다.


폐관 시간이 될 때쯤 나도 집중력이 떨어져 아시아 관을 마지막으로 보고 나왔다. 

방대한 크기와 그에 버금가는 전시된 작품의 수들. 왜 루브르 박물관이 유명하고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 중 상당한 양의 작품들이 분명히 다른 나라에서 온 것이다. 전 세계를 정복하러 다니며 전쟁을 통해, 그리고 식민지에서 얼마나 많은 보물들을 가져왔을까. 그런 소중한 유물들을 잘 보관하고, 이 다양한 문명을 한 자리에서 보게 해 주어서 정말 감사하지만, 너희 정말 도둑놈이야! 그리고 이 문화유산들로 '문화, 예술의 나라 프랑스'라는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간다는 걸 생각하면, 프랑스인들 얄밉기까지 하다.


박물관 바로 앞의 튈르리 정원으로 가는 길, 또 사람들이 비둘기와 놀고 있다... 걔네 세균 덩어리라니깐!

어제 몽마르트에서 봤던 모자 파는 사람들, 짝퉁 가방 파는 사람들 여기도 어김없이 있다.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한 발이 휴식하기에 딱 좋은 공원이다. 게다가 비치된 의자들도 매우 편안한 것들이라 낮잠이라도 잘 지경이다. 여기서도 파리의 하늘은 기가 막히게 예쁘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파리 여행을 패키지로 가면 (긴 비행시간과 짧은 여행기간 탓도 있겠지만) 루브르 박물관에서 딱 20분만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입장 -> 모나리자와 사진 찰칵 -> 밀로의 비너스와 사진 찰칵 -> 끝" 그리고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하는데 그럴 거면 왜 굳이 입장료를 내고 루브르 박물관에 오는지를 모르겠다. 그런 사진은 인터넷으로도 쉽게 볼 수 있고, 작품은 감상하고 느끼기 위해서 보는 거지, 사진 찍는 건 2순위일 텐데 말이다. '세계 3대 박물관을 내가 방문했고,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봤다!'는 정복 여행인가. 그저 세계지도에  점찍는? 그런 여행은 아니, 관광은 갔다 오고 나서도 별로  가슴속에 남는 게 없어서 몇 번인가 후회했던 경험이 있다. 관심이 없다면 세계 명소라도 들를 필요는 없다. 그냥 제쳐 버리고 관심 있는 다른 곳에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루브르 박물관? 관심 없으면 안 와도 된다. 쇼핑이 좋으면 바로 샹젤리제나 라파예트 백화점에 갑시다! 세계 3대 박물관이니 뭐니 그런 거 남이 만들어 놓은 거다. 그래서 난 고생 좀 하더라도 내 맘대로 다니는 자유여행이 좋다. ^^


튈르리 정원을 나와 퐁네프 다리로 간다. '퐁네프의 연인들' 영화로 유명한 이 다리의 뜻은 '새로운 다리'이지만, 사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곳이다. 오래된 다리 답게 운치 있다. 하지만 내 관심사는 퐁네프 다리 옆의 예술가 다리라고 불리는 이 다리. 다리의 외벽에는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고, 그리고 거기에선 야바위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안녕, 오늘도 만났네요. 관광객을 상대로 한 야바위꾼들. 세네 명이 한 패거리로, 서로 재밌게 게임하는 척하면서 지나가는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실제로 관광객이 개입되기 전에는 굉장히 허술하게 게임을 하면서 누구라도 구슬을 찾을 수 있게 패를 돌리지만, 일단 누군가 게임에 개입하면 그때부터는 인정사정없다. 그 한 명을 아주 호구로 만든다. ^^


시간은 6시 반이지만 아직도 해가 지려면 3시간 반은 더 남은 파리에서 센강 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1시간이나 태워준단다.  퐁네프 다리가 있는 시테섬에서 에펠탑까지 왕복으로 운행하는 크루즈.


크루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내가 미처 몰랐던 파리에 대해 또 알게 되고, 이미 가봤던 노트르담 대성당도, 내일 갈 에펠탑도 여기서 보니 참 근사하다. 그녀는 다이애나 왕비가 이곳 파리 센강 근처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해 주었다. 그곳이 파리였구나.. 가만히 앉아서 파리의 저무는 해와 깨끗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니 갑자기 난 행복한 사람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방안에만 갇혀 산 사람처럼 끊임없이 파리의 하늘을 보며 감탄한다.

여전히 해는 높이 떠 있다. 해가 10시에 지니 마치 시간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그에 맞추어 관광지들도 마감 시간이 저녁 9시 정도이다. 이래서 여름에 유럽 여행은 참 좋은 것 같다. 늦게 지는 해와 관련된 프랑스인들의 농담.

 "해가 아직 안 졌네? 술 마시자. 아, 드디어 해가 졌구나.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술을 마셔야지. ^^"


1시간 여의 뱃놀이를 끝내고 나니 눈에 파리 비치가 보인다.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지만 바다가 없는 파리에서  벌써 10년째 만들어지고 있는 인공비치. 인공 야자수도 만들어 놓았다. 쉬고 있는 사람은 있어도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없다.  물놀이할 곳도 없다. 센강에서 수영은 불법이니. 

휴가를 가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비치란다. 그 마음은 참 아름답지만 왠지 파리스럽지 못해서 약간 안쓰러웠다. 이런 거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도시인데 바다가 가지고 싶었나..  친구조차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으며, 친구들 중에서도 파리 비치에 가 본 사람이 없단다. 왜 만들어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파리스럽지 못하다고 비난을 해댄다.

싱가포르의 쇼핑몰에서 진행되는 어떤 행사들을 볼 때마다 느꼈던 아류의 느낌이라고 할까? 싱가포르에서는 그들의 삶의 중심(!)이랄 수 있는 쇼핑몰에서 연극, 공연, 체육행사, 심지어 학교 졸업식 등 온갖 행사가 다 일어난다. (싱가포르에는 갈곳이 많이 없어 사람들이 주말에 주로 쇼핑몰을 간다. 주말에 쇼핑몰 간다고 좋아하는 초등학생을 보면 안쓰러울 때도 있다.) 쇼핑몰에서 진행되다 보니 행사의 규모에 한계가 있고, 시야에 항상 들어오는 상점들 때문에 집중도도 적으며, 그래서인지 내 것이 아닌 너의 것을 잠시 흉내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런 행사를 위층에서 보고 있자면 실소가 나올 때가 많다. 남의 것을 따라 하는 사람을 볼 때의 불편함. 파리에서 처음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여기 파리 비치에서. (그래도 선베드에 누워 낮잠은 자 보고 싶었다.)


파리 비치를 바라보며 새삼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닌 내가 이미 가진 아름다움을 발전시키고 그것으로 승부 볼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온리원으로 살아가는 일..

파리, 넌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마지막으로 Leon에서 먹은 우리나라 홍합탕과 비슷한 내가 반한 홍합요리. 레옹은 프랜차이즈라서 프랑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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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비가 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비 오는 우중충한 날씨가 아침부터 날 반겨준다. :)

하늘은 비록 흐리지만 새벽에 내린 비로 거리는 깨끗하다.


파리 중심가로 가기 전, 근처 카페에 들러 출근하는 프랑스인들처럼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카페가 무척 아늑하다. 에스프레소와 크로와상 하나를 먹고 바삐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며 그전날 있던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는 여유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들도 몇몇 있다. 연금 잘 받으시나 보다.

싱가포르 4년 생활이 내게 남긴 단맛에 대한 애착 덕에 에스프레소는 별로다. 역시 커피는 믹스커피가 진리!

도대체 이 작은 잔으로 뭘 마신다는 거지? 정말 이들은 개운하다고 느끼는 건가?

중심가로 가기 위해 지하철 타러 가는 길. 가게의 간판도 참 아기자기하고, 무엇보다 고층 아파트가 없어서 좋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파리의 대표적인 건물 오페라 가르니에.

지하철에서 내려 오페라까지 가는 길에 칼바람이 분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라 좀 쌀쌀하다.

'우와~'

위대한 음악가들의 흉상

또 그저 탄성만 지른다. 나의 사진 실력이 안타까울 뿐.. 사진으로 보면 그저 멋진 프랑스의 고건물로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그 아름다운 외면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다. 꼭 프랑스인이 아니더라도 슈베르트, 쇼팽 등 위대한 작곡가들을 기리기 위해 그들의 흉상을 건물 전면에 세워놓은 것에서 예술을 사랑했던, 지금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다. 하긴 그 당시 파리는 세계의 중심이었으니. 대부분 훌륭한 예술가들이 이곳, 파리에서 공연을 하고 네트워킹을 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내부는 더욱 놀랍다. 천장까지 빼곡히 채운 그림과 금으로 치장해 놓은 메인 홀. 그 당시 귀족들이 얼마나 화려한 생활을 했는지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현재는 오페라 대신 발레 위주로 공연을 한다고 하니 여전히 내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다. 예전 유럽의 귀족들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항상 보았던 공연장. 그곳에서 귀부인들은 항상 2층 가장 오른쪽이나 왼쪽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그물 같은 장갑에 부채를 들고 항상 우아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오페라 내부의 도서관

                                                                

공연장

2층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도 꽤 멋있다. 이렇게 옛날 건물과 자동차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 사람들이 이런 풍경을 보러 파리에  오는구나. 오페라 주변에는 이미 많은 수의 관광버스가  몇십 명의 관광객들을 토해내고 있다. 대부분 중국인과 한국인이다. 

                       

문득 오페라에 들어오기 전 나를 삥 뜯으려고 내게 다가오던 집시 언니들을 보았다. 어랏. 눈도 마주쳤네. 파리의 유명 관광지에서는 이렇게 흰 종이 들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Can you speak Englsh?"라고 물어보며 다가와서 이러 이러한 내용으로 서명운동을 하는 중이라고 서명에 동참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 서명을 하는 사이, 그들은 일행 중 한 명이 나의 뒤에서 소매치기를 한다. 정말 사람 삥 뜯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이 언니들 내가 여행객으로 보이니 오페라 들어오고 나갈 때 2번이나 내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순찰차가 오페라로 다가오자 정말 5초도 안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루마니아가 EU에 가입하면서 많은 집시들이 여러 나라를 거쳐 이렇게 프랑스까지 왔다고 하는데, 집시들 때문에 꽤 골치  아파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잠을 자니 노숙자가 늘고, 대게 순진한 관광객들을 등쳐 먹는 방법으로 먹고 사니 민원도 많이 들어오고...  유명 관광지에는 이런 집시들을 잡으러 경찰들이 자주 순찰을 돌고 있다.


점심은 파리에서도 맛집이라고 하는 (굳이 프랑스에서 일본 음식 먹기) 일본 라멘집에서 맛있게 먹고 반담 광장을 지나, 라파예트 백화점 Galeries la fayette으로 갔다. 내부도 굉장히 화려하고, 특히 천장의 디자인이 참 화려하다. 듣기로는 많은 브랜드가 탄생한 나라 답게 백화점이란 것이 생긴 것도 프랑스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이 백화점은 이미 지은 지 100년 이상된 곳이다. 내가 들렀던 오페라 근처의 반담 광장, 그리고 이곳 라파예트 백화점도 모두 명품관으로 빽빽하게 가득 차 있지만, 난 별 관심 없어 그저 지나갈 뿐.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라파예트 백화점 옥상을 가기 위해. 높은 건물이 별로 없는 파리에서 도시경관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여전히 파리의 첫날은 흐리고 바람도 많이 분다.



빌딩 숲을 무척 사랑하는 내가 이렇게 낮은 건물들이 주는 매력을 새삼 알게 됐다. 시야가 탁 트이는데다, 빌딩 숲에서 보던 조각하늘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 하늘은 이렇게 넓은 것이었지. 파리 시내의 경관을 살리기 위해서, 높은 건물을 되도록 짓지 않는 프랑스인들 덕분에 파리는 파리만의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고, 이 것을 보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파리에 온다. 역시 사람이든, 문화든 자신의 장점을 파악하고, 그것으로 승부를 봐야 하나 보다.

라파예트 백화점 건물 외관 장식

 광진구 혹은 영등포구 크기 정도라는 파리는 그 작은 크기만큼 도보여행이 가능한 매력이 있다. 물론 볼거리의 수와 크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라파예트 백화점에서 약 10분쯤 걸어서 도착한 마들렌 교회(Église de la Madeleine)에도 잠시 들른다. 그리스 신전같이 굉장히 웅장하다.

교회 안에서 괜히 경건한 마음에 이렇게 청소해 주시는 분께도 감사하는 마음이 마구 샘솟는다.
마들렌의 정문으로 다시 나오면 멀리 콩코르드 광장의 정중앙으로 불룩 솟은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오벨리스크도 오벨리스크지만, 파리 시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고건물들이 날 더 설레게 한다. 싱가포르에서도 그랬지만, 파리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정말 휴가 온 기분이 항상 들 것만 같다.

이집트의 룩소르 신전에 있었다는 오벨리스크라는데 선물로 받은 것이라 자랑스럽게 이렇게 도시의 중앙에 있다. 프랑스 땅에서 이집트의 유물을 본다는 게 약간 기분이 묘하다. 나라가 얼마나 힘들면 이런 국보를 다른 나라에 선물할까. 유럽 곳곳에 있을 오벨리스크. 이집트의 슬픈 역사 혹은 잘 나가는 유럽의 역사.

오벨리스크가 있는 광장 주변은 어제 막 끝이 났던 Tour de France의 철거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라 여기저기 어수선했다.

Tour de France 관중석 철거 중

잠깐, 광장 끝에서 눈에 익은 건물이 하나 보인다.

말로만 듣던 개선문이다. 정말 친절한 도시다. 이렇게 쉽게 눈에 띄어 주다니.. 주요 명소는 굳이 지도 없이도 다닐 수 있겠다. 그리고 저 울창한 가로수길은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라고 한다. 살살 걸어가 볼까?

샹젤리제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

샹젤리제 거리. 관광객들로 온통 시끌벅적하다. 여행 오기 전 일부러 여행 기분을 내려고 “오 샹젤리제~” 음악을 들었는데, 그리고 그 음악을 이 거리에서  들을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그냥 팝 음악만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낭만, 예술 이런 걸 너무 기대했나 보다. 그냥 상점과 쇼핑의 거리. 그것도 아기자기하거나 예술적 감성이 돋보이는 게 아닌 거대 프랜차이즈들이  빽빽한... 그냥 싱가포르의 오차드거리 같았다. 그저 화려한 명품의 거리인데 내가 이해를 잘못 했었나 보다.


그리고 이 화려한 거리에서 이렇게 구걸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자니 짠했다. 최고 명품거리와 구걸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참 보기 불편했다. 그 순간 3년 전 캄보디아에 여행 때, 연말 파티에 갔었는데 그때 공병을 수거하러 다니는 5살 정도 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술 마시고 춤추는 어른들로 가득 찬 그곳에서 아이들은 그 빈병을 본인이 가져가도 되는지 묻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개선문(Arc de  Triomphe)에 도착. 

전쟁에서 승리한 기쁨도 물론 있겠지만, 나폴레옹은 정말로 로마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그때처럼 황제가 되고 싶었나 보다. 이렇게 로마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을 그대로 본뜬 것을 만든 것만 봐도.. 물론 그 개선문보다 나폴레옹이 만든 이 개선문이 훨씬 웅장하고 아름답다.

개선문에서 바라본 에펠탑
개선문에서 바라본 샹젤리제

정말 그리 높지 않은 건물에 올라왔음에도 파리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아이보리색의 건물과 초록 나무와 어디서나 시원하게 볼 수 있는 하늘. 그리고 이 개선문이 있는 샤를 드골 광장을 중심으로 시원하게 뻗은 방사형 도로도 보기 좋다. 파리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는 사람은 도로주행 시험 안에 꼭 이 방사형 도로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탈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처음 운전을 배우는 사람에겐 정말 곤혹스러울  듯하다. 

날씨는 좋은데 바람이 너무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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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을 뚫고 도착한 여기는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는 파리와는 다른 도시라는 것을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으며 그렇게 베르사유에 도착했다.

넓다, 넓어.


문조차도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금이다. 정말 왕의 절대권력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곳도 어김없이 관광객이 많았지만, 뮤지엄 패스로 유유히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로크 양식? 로코코 양식? 말도 많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 알아듣고 싶어 지는 마음이 들 날이 오길 바라며 궁전의 입구로 들어서려는 찰나!

한쪽 팔이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럴 수가 생전 처음으로 새똥을 맞았다! 그리고  그곳은 베르사유 궁전. 실없는 웃음만 계속 흘리며, 소매가 없는 팔에 떨어져 아주 다행이라는 말을 날리며 화장실로 직행했다. 앞으로 내게 베르사유 궁전은 새똥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루이 14세가 파리에 있는 보 르 비콩트 성의 아름다움을 질투하여 베르사유 궁전을 지을 때 무조건 그 성보다 크고 아름답게 지어라고 했다니, 그의 질투 덕에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베르사유 궁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각 방마다 배치된 화려한 가구들과 조각품들. 벽 한 면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그림과 천장화. 대리석으로 점철된 벽과 바닥. 과연 화려함의 극치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베르사유 궁전. 태양왕이라는 별칭답게 궁전의 곳곳에서 태양의 모양이나 태양신 아폴론과 관련된 무늬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아폴론으로 보이는 아래 문 손잡이도 꽤 귀엽다.


왕비의 침실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썼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죽은 불쌍한 인물일 뿐인데, 외국에서는 왜 그렇게 그녀가 유명하지?"

친구의 물음에 내가 더 의아해졌다. 정말? 오히려 프랑스에서는 그녀가 그리 유명하지 않다는 말이야? 왜 그럴까 생각해 보던 나는 "베르사유의 장미" 만화를 말해 주었다. (초등학교 때 정말 가슴 아프게 봤던 그 만화. 아, 추억의 오스칼!) 그 만화 덕분에 초등학생 때부터 이미 마리 앙투아네트니 루이 16세니 프랑스혁명 등에 대해 들어봤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해 놓고 보니 뭔가 부족하다. 그러게 왜 유명할까?

만화에서 그녀는 오히려 바보같이 순진하고 선량한 인물이었던 걸로 기억되고, 그녀를 악명 높게 만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세요."라는 말은 그녀가 내뱉은 적도 없기에 오히려 억울한 인물일 뿐이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프랑스 혁명의 극적 효과를 위해 그런 말을 지은 듯 싶다.

저 무거운 샹들리에가 이렇게 천장에 멀쩡이 붙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놀랍기도 하고 무섭다. 사실 샹들리에를 볼 때마다 난 『소년탐정 김전일』만화책에서 본 샹들리에를 이용한 살인사건이 자동반사로 항상 떠오른다... (하핫 ^^;)

그시대 최첨단의 예술이 집약되어 있을 베르사유 궁전. 그 당시 최고의 예술가들이 와서 만들었겠지. 그러고 보면 그 시대 살았던 예술가들은 한편으로 고달프지 않았을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이 아닌 왕이 혹은 교황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그려냈으니.. 하긴 그렇게 따지면 현대를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 고용주가, 자본을 가진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얻는 것을 보면 삶은 지금도 그때도 묘하게 연결되는 것 같다.

사람이 가장 많은 이 곳은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가장 유명한 유리의 방이다. 근데 유리가 많이 낡아져서 인지 처음엔 유리의 방인지 몰랐다. 유리창과 그 맞은편마다 붙어 있는 거울이 빛을 서로 반사하며 이 방을 얼마나 눈부시고 크게 보이도록 만들었을지... 루이 14세는 태양왕인 자신의 위엄을 보이려 국빈을 맞거나 행사를 할 때 항상 이곳에서 했다고 한다.

나폴레옹 1세. 역시 로마 황제가 입고 있던 것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한 켠에는 이렇게 그 당시 귀족들의 그림도 같이 걸려 있다. 건물에 이름 새기는 것, 초상화 걸어두는 것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파리에서 떨어진 곳에 궁전을 지어놓다 보니 그 당시 귀족도 전부 베르사유로  넘어왔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힘의 이동이 좀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그때부터 시작된 건지는  몰라도 베르사유가 현재도 좀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기 전 이 도시의 시장이었다고 하는데, 대선 전에 서울 시장을 '거치는'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 정치가 문득 떠올랐다.


드디어 밖으로 나와 방대한 정원을 구경할 시간.

궁전 바로 앞마당에서 찍은 사진인데 아직도 정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술래잡기 하기에도 딱 좋아 보이는 그런 정원. ^^;

성 내부만 입장료를 받고, 이렇게 정원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벌써부터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쉬고 있다. 자전거 타고 달리다가 느닷없이 풀밭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는 사람을 보며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이렇게 자유로이 드나들며 운동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음에 동네 주민들이 살짝 부러워 지기도 했다.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 4편 『해리포터와 불의 잔』의 미로가 생각나게 하는 이곳. 이 미로 숲 역시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이다. 사람 키의 몇 배나 높은 미로 숲을 나무로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유명한 예술작품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내게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귀족들이 이곳에서 밀회를 즐기기도 했다니, 파리 사교계의 시작이 바로 여기인 듯싶다.

그리고 정원의 끝. 시끌벅적한 풀밭과 호수를 지나 울창하고 한적한 나무숲으로 친구를  따라왔다. 개인이 기증하는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 숲에 오직 한 나무, 그와 그의 친구들이 한 친구의 이름으로 기증한 나무를 찾으러. 몇 달 전 친구 중의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녀가 평소에 좋아했던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 그녀의 이름으로 친구들이 나무 한 그루를  기증했다고 한다. 그때 나무를 확인 못했던 터라 이번 기회에 나무를 찾고 싶다는 그를 도와 어떤 나무 일지 열심히 수색해 보았으나 결국 찾지는 못했다. 항상 세상의 슬픔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여 슬프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던 그녀는 저 먼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에도 항상 가슴 아파했단다. 그 선한 마음이 더 아프게 내게 다가온다. 얼마나 아플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당하고 폭력적인 일들을 진정 가슴으로 느끼며 나의 무기력을 확인해야할 때 오는 그 좌절감은...  이제는 편안한 정원의 나무를 등받이 삼아 행복하게 휴식하기를 바라며 베르사유 궁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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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넷째 날, 드디어 파리의 상징 에펠타워를 보러 가는 날 :)

메트로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 저 멀리 에펠타워가 보인다.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돼. 파리에 오는 관광객의 99%가 오는 곳이다. 오늘도 날씨가 여전히 좋다. 셔츠를 벗고 풀밭에서 누워 파리 햇살에 에펠탑을 배경으로 일광욕 중이다. 정말 이 날씨를 온몸으로  즐기는구나. 

이 잔디밭에서 가끔씩 작은 공연도 열리고, 여름밤에는 시민들이 돗자리와 맥주를 들고 삼삼오오 이곳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적당히 가벼운 그 여름밤의 공기가 생각나서 괜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에펠탑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내게 다가오는 흰 종이를 들고 있는 집시 언니들. 셀카봉을 들고 어기적 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상인들. 그렇게 걸어 에펠탑에 도착하였다. 밑에서 보니 영락없이 그냥 철탑이다. 처음 에펠탑이 지어졌을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했고, 소설가 모파상은 파리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이 탑이 싫어 에펠탑 1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단다. 탑은 변한 게 없는데, 사람들이 변해서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라며 이 탑을 찬양한다. 탑 입장에서 우리는 얼마나 가벼운 인간들일까. ^^ 

지난 월요일 오페라 가를리에에 갔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프랑스 사람들 건물에 사람 이름 새기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에펠탑을 만들 당시 수고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이렇게 탑에도 새겨져 있다. 그 어떤 보상보다도 탑에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 엄청난 보상일 듯하다.


에펠탑 꼭대기로 올라가는 입구의 길은 이미 길다. 2,3 시간은 기다려야 될 듯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만큼 기다려서 올라가야 할까?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일단 줄에 서서 기다려 본다. 성수기 중에서도 극성수기인 지금 그중에서도 엄청난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있다. 줄은 서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극심한 고민이 왔다 갔다 한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이 좋은 시간에 파리에서 줄이나 서고 있어야 할까. 이런 결정장애 류의 고민에 기분이 금세 가라앉았다. 나도 참, 몸이 줄을 서고 있으면 마음이라도 그냥 편하게 먹고 있으면 안 될까... 

2시간 후, 겨우 4층까지 올라갔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 쓸데없다는 걸 깨달았다. 4층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 풍경은 어마어마했다. 1층은 너무 더웠는데 4층만 돼도 바람이 불어와 구경하기 더없이 완벽한 때였다. 역시 높은 건물이 없어서 바람이 시원시원하게 불어 대나 보다. 그러면 꼭대기는 얼마나 시원할까? 다시 그렇게 꼭대기로 올라가는 줄에서는 기다림에 대한 지루함이 아닌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올라가는 길, 여기서도 보이는 "나 여기 다녀감"류의 낙서들. 이런 낙서는 정말 만국 공통의 문화인가 보다. 쯧쯧

그렇게 3,40분을 더 기다린 끝에 드디어 에펠탑의 꼭대기에 다다랐다. 밑에서 보다 바람이 더 강해 춥기까지 하지만 햇살은 너무 따뜻하고, 하늘도 맑다. 가만히 파리 시내 전경을 보고 있자니 2시간 반가량의 기다림이 그만한 가치로 내게 다가왔다. 며칠 전 가 봤다고 몽마르트 언덕과 개선문이 눈에 들어온다. 

에펠탑 꼭대기에는 이렇게 샴페인을 파는 자그마한 바도 있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마시는 샴페인은 어떨까 싶어 (가격에 흠칫한 후) 한 잔 사서 마셨다. 양도 많지 않고, 멋있지 않은 플라스틱 잔에 주지만 그래도 풍경을 안주 삼아 맛있게 들이켰다.

도시의 미관을 굉장히 중요시 여겨 고층건물의 건축을 자재한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오래된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노력 덕분에 파리는 파리만의 아름다운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파리를 찾는다. 파리에서만 볼 수 있는 그 분위기 때문에. 분명히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가 있을지언데 (분명 6.25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기도 했겠지만) 개발의 명분으로 많이 파괴된 것 같아 씁쓸하다. 


센강도 한강만큼 다리가 많고, 길게 나 있는 가로수들도 보기가 좋다. 멀리 파리의 비즈니스 중심지인 라데팡스가 보인다. 파리에서 유일하게 고층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곳인데, 역시나 파리 시민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곳이란다. 내가 가 보고 싶다고 하니 절대! 가 볼 필요가 없다고 친구가 말린다. 그 앞 초록 공원 안에 덩그러니 위치한 하얀 건물은 루이비통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라던가...



동화책에서 그대로 나온듯한 원색의 차. 너무 귀엽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서 만난 이 귀여운 차는, 가위로 차만 오려서 도로에 붙여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도 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하다.


그리고 드디어 만났다. 돈 받는 유럽의 화장실. 물론 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은 나는 공짜로 사용 가능하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은 무조건 50센트를 넣어야만 한다. 에펠탑 근처라 워낙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서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한국인의 정서상 화장실 이용한다고 돈을 내라는 건 참 정 없는 짓이다.

그리고 15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전쟁박물관과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다는 앵밸리드 (Hôtel National des  Invalides)를 아주 짧게 관람한 후 근처의 판테온으로 갔다. 도보로 이동 가능해서 참 좋다. ^^  

맨 꼭대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교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지하 묘소, 사령부 등 몇 번에 걸쳐 그 용도가 바뀌었다가 마침내 프랑스 위인들의 묘지로 사용되고 있는 판테옹. 1층에는 2 차세계대전 당시 위인들을 위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역시 왕실에서 지은 교회인 만큼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곳곳에 기독교와 관련된 회화와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에 대해서 많이 모르는 나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퀴리 부부 내외, 빅토르 휴고, 에밀 졸라 그들도 역시 이곳 판테옹에 안치되어 있다. 특히 퀴리 부인은 여성 최초, 그리고 최초로 두 개의 다른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라서 더욱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폴란드 태생이었는데 파리에서 공부하며 주로 거주해서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한다. (폴란드에서는 뭐라고 안 하나?)



그 어떤 위인보다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분도 여기 묻혀 계신다. 성함은 잘 모르지만, 점자를 최초로 발명하신 분이라고 한다. 새삼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세상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이 분은 시각 장애인에게도 글을 알려주고자 점자를 발명하였고, 그 점자를 통해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그중에 한 명이 헬렌 켈러이고, 그녀는 지구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이렇게 보면 정말 중요하지 않은 일이 하나 없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해도 난 내 사명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판테온 내부에는 이렇게 아직 빈자리가 있는데, 미래 프랑스의 위대한 사람을 위한 자리라고 한다.

판테온에 안치되는 사람들은 이미 장례를 치웠음에도 다시 국장을 치르는데 이런 이벤트가 사람들로 하여금 프랑스에 더 자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 같다. 다른 곳에 국립묘지가 당연히 있겠지만, 판테옹이란 곳에 특별히 시신을 안치하면서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보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듯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뒤, 프랑스는 당시 독일 나치 정부를 도왔던 모든 사람들을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어도- 모두 처단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역사의 잘잘못에 대해 칼 같은 평가를 내리는 데서부터 프랑스의 힘이 나오는 게 아닐까? 프랑스인들의 자부심 중 일정 부분도 이런 곳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한편의 위인전을 읽고 나온 듯한 판테옹에서 5분 거리에는 뤽상부르 공원이라는 예쁜 공원이 있다. 뤽상부르의 철자는 룩셈부르크와 같은데 이 공원과 그 나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근데 왜 이렇게 공원 이름이 귀에 익지? 알고 보니 김어준 아저씨가 유럽  배낭여행 중에 이 뤽상부르 공원에서 노숙을 했던 그 공원이었다. 그 강연이 참 재밌어서 몇 번을 들었더니 공원 이름마저 외웠나 보다. (참고로 그 강연은 청춘페스티벌 https://www.youtube.com/watch?v=1zmnoElezRg )

나꼼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엉뚱하게도 난 이 공원에 앉아서 난 김어준 아저씨와 그의 강연을 생각했다. 자신의 결대로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지... 김어준  아저씨처럼 살면 인생에서 최소한 후회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어울리지 않게 야자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 아이는 과연 살아있는 걸까?


여행의 묘미는 발길 닫는 대로 아무 곳이나 걷는 것. 가끔 길을 잃으면 어때. 꼭 그렇게 길을 잃어 지나가는 곳에서 뜻밖의 보물 같은 장소나 물건이나 혹은 사람을 만난다. 

뤽상부르 근처를 걷다 보니 근처의 소르본 대학가까지 오게 되었다. 대학교 근처라 역시 술집도 많다. 그래, 대학생이라면 술을 마셔야지! :p

누구나 대여하여 사용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자전거와 벽돌 바닥 길. 운치가 있다. 그리고 이 사람, 창문에 걸치고 앉아서 주위 신경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막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스케치북을 펴고 바로 스케치를 시작한다.

영등포구  크기밖에 안 된다는 파리에서는  400m마다 지하철역을 하나씩 찾을 수 있어 길 잃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가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이동하여 친구를 만나기로 한 리퍼블릭 광장으로 향했다. 파리의 모든 데모와 집회는 여기서 열린다는 리퍼블릭 광장.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지난달 IS에 의한 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추모 행사를 했다. 지난달 파리 테러가 난 직후의 광장의 모습은 내가 보질 못했지만, 적어도 7월 말 이곳은 여전히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었다. 해당 관청에서는 동상을 잘  관리하지 않나 보다. 더러운 상태로 방치하는 건지 아니면 치워도 시민들이 계속 낙서를 하는 건지...

테러는 일어나도 사람들은 여전히 기타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JU SUIS CHARLIE (나는 샤를리다.)
굳이 동상의 입에 이럴 필요까지야...


저녁에는 싱가포르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말 파리로 돌아간 친구를 만났다. 다시 돌아온 파리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단다. 하지만 청년실업률이 높은 프랑스에서 그는 어렵지 않게 다시 일자리를 구해 파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다시 싱가포르에 갈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는 그에게 아는 헤드헌터들의 연락처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파리에서 사는 게 왜 힘들어?"

"여기서 집 사려면 얼마나 드는지 알아? 그리고 일자리도 많이 없고,,,,"

"그래도 너 지금 파리에서 일하고 있잖아. 그리고 싱가포르 집값 비싼 건 너도 살아봐서 알잖아?"

"그래도 그땐 회사에서 지원해 줬었으니까."


그 아이가 싱가포르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잘 와 닿지 않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사는 게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가?

(이건 나도 공감하지만) 외국에서 살면 항상 휴가 온 느낌이 드는데... 그 느낌이 좋은가? 심지어 회사에서 엄청 스트레스 받고 집에 돌아가는 그 길에서도 홀리데이 느낌이 난다. 그리고 그 느낌이 나의 스트레스를 조금  경감시켜줄 때도 있다.

아님 그냥 다시 프랑스를 떠나고 싶은가?

싱가포르를 떠날 때는 분명 싱가포르가 지겹다고 했었는데 왜 다시 가고 싶어 할까?


나도 싱가포르를 떠났는데 막상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난 싱가포르를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 든다.

내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어디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하지만 싱가포르 살면서 배운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어디 사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 

결국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환경도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을 싱가포르에서 온몸으로 느꼈기에..



Posted by 돌아온싱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