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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23 300년 전의 N포세대
  2. 2018.02.22 유럽에서 처음으로 술에 취한 날

동이 틀 때까지 사람들과 술을 마신 나는 정오가 지나서야 겨우 일어났다. 숙취에 절은 몸을 이끌고 벨기에에서 놓친 감자튀김으로 해장을 하며 느릿느릿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오직 한 곳, 반 고흐 미술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 빈센트 반 고흐

4년 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 보수공사 중인 틈을타 바다 건너온 고흐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됐다. 그때 처음 받은 인상은 "치열함"이었다. 어느 터치 하나 대충한 것이 없는, 정말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의 그림 중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무심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나이를 보았다. 37세. 채 40세가 되기 전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자신의 천재성을 몰랐던 화가는, 9살에서 그림실력이 멈춰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4년 후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을 가는 길, 그 강렬했던 감정을 기억하는 내 가슴은 설레고 있었다.


미술관은 그의 그림뿐만 아니라 가족, 그가 들었던 음악, 읽었던 글, 만났던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 등 고흐와 관련한 모든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동생이자 친구였던 테오와 일생 동안 주고받은 편지는 미술관의 한 면을 거의 가득 차지했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은데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생활비를 동생에게 받아가며 살았던 30대 남자, 고흐는 얼마나 비참했을까?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그의 이야기를 지나니 다시 한 번 주저함이 없는 거친 붓놀림에 눈이 간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세심한, 뭐라 설명할 수가 없는 그림들. 물감 살 돈이 자주 모자랐다고 하지만, 고흐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주저 없이 했던 일은 텅 빈 캠퍼스에 붓질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림에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열정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귀를 자른 이 사내를 단순히 미쳤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하다. 천재성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면 그런 것일까? 몇 년을 그려오던 그의 자화상에는 한결같이 불안정해 보이는 사내가 있다. 충만하지 않은 느낌.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계속 그림을 그려나가는 마음은 어땠을까? 삶을 스스로 끝낸 고흐도 힘들었겠지만, 내게는 테오가 느꼈을 상실감과 형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기력함도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고흐가 삶을 마감한 지 1년 후 테오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렇게 고흐를 아꼈던 테오의 뜻을 따라 테오의 부인이 고흐의 그림을 수집하고 그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로소 고흐는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었다. 


고흐 미술관에서 오후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다시 숙소로 들어가는 길, 고흐의 삶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고단해져 힘이 하나도 없다. 그때부터였다.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고흐는 여행 중에 책을 읽지 않겠다는 내 다짐을 꺾어버렸고, 난 고흐의 평전 『불꽃과 색채』(슈테판 폴라첵 지음, 이상북스)를읽기 시작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고흐의 마지막 그림
The sadness will last forever

'왜 이렇게 힘들고 왜 이렇게 아플까?’


고흐는 여느 젊은이처럼 20대 초반 이런저런 공부와 일들을 하며 자신을 찾다가 마침내 그림을 발견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미술을 진로로 정한 사람들보다 시작이 늦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찾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찾아도 결코 행복하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이 사내는 보여준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는 인간을 너무 사랑했다. 사람들의 고단한 삶에 녹아들지 않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늘어대던 목사를 저주했고, 그림을 돈의 가치로만 환산하는 부자들에게 환멸을 느꼈다. 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의 고민과 열정과 사랑은 남들에게 광기로 보였던 걸까? 오히려 고흐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욕하고 피했다. 그래서 그렇게나 아팠던 고흐의 유언은 "The sadnesswill last forever"(고통은 영원하다)였다.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지속되고 늪과 같은 가난 속에 있어도, 나는 미치지 않고 원하는 바를 끝까지 추구할 수 있을까? 내 안의 열정을 지필 곳을 찾지 못해 아프고, 날 슬프게 하는 것들에 도움이 되지 못해 아프다. 그가 느꼈을 아픈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문득 겁이 났다. 내 가슴이 느끼는 그것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나도 이렇게 아플 수가 있겠구나. 그리고 그게 심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겠구나. 그의 그림도 아팠지만, 난 무엇보다 그의 삶이 그렇게 아팠다. 암스테르담에서부터 보던 그의 평전은 독일의 함부르크로 넘어가서 끝이 났다. 그래서 난 함부르크에서 좀 아팠다. 그가 가진 것만큼 열정이 없어서 아프고, 내 안의 사랑을 제대로 세상에 내보이지 못하는 비겁함과 게으름에 화가 나고, 그것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 미쳐버릴까 봐 겁이 났다. 어쩌면 그래서 그림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반 고흐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5년 후에 다시 한 번 그 미술관에 가고 싶다. 그때는 좀 더 당당하게 고흐를 만나고 싶다.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고흐의 모든 그림은 네이버 지식사전에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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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뭘 벌써 자? 여긴 파티의 도시 암스테르담이라고!”

페리와 레베카 그리고 다른 여행객들과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펍에서 놀다 보니 어느새 해가 뜨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이만 자러 가겠다는데 너무 빠른 시간이라며 더 놀자고 했다.


너희는 정말 괴물이야.'

오후 늦게 일어나 암스테르담 프리워킹투어에 갔지만 이미 정원이 차 버렸다. 대신 나처럼 갑자기 갈 곳을 잃은 금발 미녀니나를 알게 됐다. 슬로바키아에서 온 니나는 암스테르담으로 6개월간 교환학생 온 친구다. 동유럽 여자들이 예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아마 유럽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서 제일 예뻤던 것 같다.

찌는 듯한 날씨와 거리에 터질 듯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 그 와중에 니나는 물가가 너무 비싸다며 계속 투덜댔다.

"어떻게 맥주 한 잔이 10유로나 하지? 슬로바키아에서는 1유로면 된단 말이야!"

‘네가 암스테르담에 와 버린 걸 어쩌라고….’

그런 니나에게 술은 암스테르담보다 싱가포르가 더 비싸다고 얘기했더니 'Hell'이 따로 없단다. 학생이니 주머니 사정이 어떨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계속 돈 이야기를 하는 니나에게 살짝 질렸다. 하지만 난생처음 만나는 슬로바키아 사람과 이야기하며 도시를 걷는 것도 나름 재미있고, 무엇보다 토요일 오후 보트에서 파티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혼자였다면 아마 남들이 파티하는 장면을 보고 괜스레 우울해졌을지도 몰랐다.


홍등가를 궁금해하던 니나에게 홍등가 투어에서 들었던 말을 해주며, 그 거리를 또 걸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벌써부터 출근한 분들도 많았다. 거리에서 그녀들과 협상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우연히 눈을 마주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킥킥거렸다. 내가 그랬듯 니나도 그들을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확실히 같은 유럽이라도 국민성과 문화는 다른 가보다. 네덜란드의 지나친 자유분방함은 그녀에게도 처음 만나는 충격이었고, 니나가 느끼는 충격이 내겐 또 다른 재미였다.

이미 시작된 그들의 선상파티
암스테르담의 마헤레(MAREHE) 개폐교

“나 밤에 펍 크롤(Pub Crawl, 그 지역의 유명한 펍과 클럽을 돌아다니는 파티. 한여름 암스테르담에서는 매일 저녁 펍 크롤 파티가 열린다.)에 가볼까 싶은데…. 어때?”


니나의 눈이 반짝였다. 돈 때문에 1분 정도 고민하던 그녀는 같이 가겠단다! 브라보! 숙소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는데 페리가 나를 붙잡았다. 밤 12시에 파티에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 니 말대로 여긴 파티의 도시니까!'


오케이! 펍 크롤에 갔다가 12시까지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숙소를 떠났다. 펍 크롤에 입장하는 우리 손에는 촌스러운 펍 크롤 티셔츠가 들려 있었다. "Youmay not remember tonight but won't forget!"(오늘 밤을 기억하지 못해도, 잊지는 못할 거야!)이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티셔츠에 쓰여 있었다. 단합대회도 아니고 다 같이 똑같은 옷을 입고 암스테르담 시내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건가? 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희한하게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그 티셔츠를 입었고, 나도 티셔츠를 들고 다니기 귀찮다는 핑계로 입어 버렸다. 똑같은 옷을 입은 몇십 명의 사람들이 암스테르담 거리를 점령한 모습은 꼭 객기 부리는 고등학생들 같았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먼저 대마초를 판매했다는 불독 커피샵 (암스테르담의 커피샵은 대마초를 파는 곳)

각 펍마다 한 잔의 보드카는 무료지만 그 이후부터는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첫 번째 장소에서는 할로윈 파티도 아닌데 악마 복장을 한 무리들이 더러운 춤을 추며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귀찮게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장소에서 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펍을 30분간 간격으로 투어 다녔다. 지루해질라 치면 다음 펍으로 옮겨가는 게 재미있었다. 오늘 나의 친구가 되어준 니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맥주 한 잔을 샀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맥주 한 잔씩 사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좋은데, 짧은 시간 동안 급하게 마셔버린 보드카와 맥주가 점점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공기 중의 대마초 향도 점점 진해지는 느낌이었다.


‘벌써부터 피곤해지면 안 되는데, 12시에 파티에 가기로 했는데…’

네덜란드의 전통신발 나막신 - 클롬펜

오랜만에 상쾌하게 눈을 떴다. 엇? 내가 어떻게 숙소에 왔지?

“야, 너 완전 제대로 놀더라? 니 친구가 너 여기데려다 줬었어. 너 좀 취해 보이던데.”

“아… 그랬구나…. 파티는 재미있었어?”

“아니 파티 취소됐었어.”

니나한테 고맙다는 말이나 했을까?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잘 놀아서 마음에 든다는 페리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오늘 밤에 꼭 파티에 같이 가자고 했다. 오늘은 그의 눈을 피해 숙소에 들어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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