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으로 떠나기로 한 아침에도 나달 아저씨와 홍콩 여행객들은 함부르크에 하루 더 머물면서 라파반에서 파티를 하고 새벽에 열리는 어시장 경매를 같이 보자며 나를 유혹한다. 내 귀는 또 강하게 펄럭거리지만, 그래도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좋은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에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길, 마음이 무거워진다. 


함부르크에서 코펜하겐까지 버스로 6시간. 이 6시간의 여정 중 45분은 발틱해를 배로 건너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발틱해를 45분 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그새 눈에 익숙해진 함부르크 시내를 구경하며 가는 버스 안, 곧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페리만큼이나 페리 안의 주차 공간도 엄청나다. 몇 대의 대형버스를 비롯한 모든 차가 함께 들어간다. 나름 면세구역이라 배 안에 조그만 면세점들이 있는 게 귀여웠다. 갑판으로 나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보는 발틱해와 하늘. 그렇게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갈 때쯤, 도착했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타고 왔던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를 찾으러 내려갔다. 그런데 도무지 어떤 버스를 탔는지, 버스의 색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층수를 잘못 계산했나 싶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웬 기차만 덩그러니 있다. 타고 왔던 버스를 찾기 위해 다시 아래층으로 가봤지만 도무지 버스를 찾을 수가 없다.


 '기차가 버스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건가 봐.'

버스를 도저히 못 찾던 나는 배 안에 있던 기차를 간이 기차로 생각, 기차를 타고 자리에 앉았다. 우연히 함부르크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던 덴마크인 부부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됐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 기차가 버스까지 데려다주냐고 물어봤다.

 "뭔 소리야? 우리는 함부르크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온 건데? 버스 타고 왔으면 버스를 찾아야 돼."


아뿔싸. 이미 기차가 출발하고 있다. 이 기차를 타고 그냥 갈까 싶기도 했지만 버스에 둔 내 짐이 문제다. 기차에서 사정 설명해 가며 가까스로 내려 역으로 달려갔다. 친절한 역무원들이 알려주는 대로 버스가 지나갈 법한 길이 있는 곳으로 가니 내가 탔던 버스는 오직 나를 기다리기 위해 길가에 서 있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을 보았나! 그날따라 왠지 버스 맨 앞좌석에 앉고 싶었는데 버스 기사님은 내가 타지 않은 걸 기억하고 있었다. 

저 버스에 타기만 하면 되는데.. 그때부터 버스를 향한 달리기가 시작됐다. 국경지대에 있는 기차역이라 출구로 가는 길은 굉장히 꼬여 있었고, 긴치마를 입고 있던 나는 치마를 걷어올리고 철조망을 넘으며 버스를 향해 달려갔다. 버스는 눈 앞에 있었지만 그 버스를 타기까지 꼬인 길을 따라 15분을 내리 달렸다. 그 사이 버스는 나를 천천히 따라왔고, 졸지에 난 버스의 모든 승객들이 감상하는 코믹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Welcome back!"

15분 간의 코믹 드라마 후, 내가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모든 승객들이 박수를 친다. 그들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 버스에 타면서부터 계속 '쏘리'를 외치면서도, 내 자리가 맨 앞이라 빨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음에 정말 감사를 드렸다.

사실 어렴풋이 "Stupid"라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뭐라 반박할 수가 없다... 그 순간 나는 정말 바보였으니....


나를 태운 버스가 다시 출발하고, 30분도 안 되어 난 속 편히 버스 안에서 잠들었다.

덴마크 중앙역

그렇게 도착한 덴마크 중앙역.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서 집주소도 받지 않고 떠난 길이라 그냥 게스트하우스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중앙역에서 자동으로 연결된 와이파이 덕에 호스트인 엠마뉴엘에게서 집주소와 집 찾아오는 방법이 적힌 메시지를 받았다. 중앙역에 와이파이가 되는 곳은 처음이었고, 그 덕에 카우치서핑에 다시 성공하게 되다니! 그리고 


이렇게 사소한 일들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것,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내게 친절을 베풀 기회를 주고(?), 그 친절에 깊이 감사할 수 있는 것. 여행 전에도 내게 분명 일어나던 일들인데 미처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다.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것들. 여행은 그렇게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엠마뉴엘의 설명대로 메트로를 타기 위해 중앙역과 연결된 메트로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티켓을 사고 메트로를 타기까지 다시 30분이 걸렸다. 심한 방향치인 나는 언제나 목적지 근처까지는 쉽게 오지만 목적지 근처에 와서부터 굉장히 혼란을 느낀다. 어디 플랫폼인지 어느 방향인지... 

그렇게 겨우 잡아 탄 메트로를 타고 거의 40분은 내린 어느 역. 이미 코펜하겐 시내로부터 한참 먼 외곽이다. 그 역에서부터 엠마뉴엘의 설명대로 쭉 걸어가는 길. 이 길이 맞는지, 어디에서 왼쪽 길로 빠져야 하는지 긴장을 하고 있던 나는 얼마나 걸었는지 몰랐지만, 족히 20분은 걸어 그의 집에 도착했다.

엠마뉴엘네 정원과 집으로 연결되는 길

여기가 맞나? 이 길이 맞나 싶어 조용히 들어간 곳에선 넓은 정원과 아름다운 전원주택. 화분 밑에 숨겨놨다던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신세계가 펼쳐져 있다. 태어나서 본 집 중 가장 넓은 집. 1층에만 방이 다섯 개. 거실도 2곳이며, 한 곳엔 해먹까지 걸려 있다. 내게 배정된 지하로 내려가는 나무계단. 흔히 영화 속에서만 보던 허름하고 음산한 지하가 아닌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지하. 지하에도 방만 세 개가 있고, 화장실, 세탁실이 따로 있다. 

아이들의 학교 캠프로 엠마뉴엘네 가족이 모두 자리를 비운 오늘. 이런 곳에서 하루를 혼자 보낼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하다. 

아침에만 해도 함부르크였고, 점심 때는 멍청한 소동을 일으켰지만, 이렇게 저녁에는 혼자서 넓은 방을 차지하며 유유자적할 수 있다니. 아무래도 난 참 운이 좋은 여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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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덴마크 | 코펜하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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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틀 때까지 사람들과 술을 마신 나는 정오가 지나서야 겨우 일어났다. 숙취에 절은 몸을 이끌고 벨기에에서 놓친 감자튀김으로 해장을 하며 느릿느릿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오직 한 곳, 반 고흐 미술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 빈센트 반 고흐

4년 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 보수공사 중인 틈을타 바다 건너온 고흐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됐다. 그때 처음 받은 인상은 "치열함"이었다. 어느 터치 하나 대충한 것이 없는, 정말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의 그림 중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무심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나이를 보았다. 37세. 채 40세가 되기 전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자신의 천재성을 몰랐던 화가는, 9살에서 그림실력이 멈춰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4년 후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을 가는 길, 그 강렬했던 감정을 기억하는 내 가슴은 설레고 있었다.


미술관은 그의 그림뿐만 아니라 가족, 그가 들었던 음악, 읽었던 글, 만났던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 등 고흐와 관련한 모든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동생이자 친구였던 테오와 일생 동안 주고받은 편지는 미술관의 한 면을 거의 가득 차지했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은데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생활비를 동생에게 받아가며 살았던 30대 남자, 고흐는 얼마나 비참했을까?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그의 이야기를 지나니 다시 한 번 주저함이 없는 거친 붓놀림에 눈이 간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세심한, 뭐라 설명할 수가 없는 그림들. 물감 살 돈이 자주 모자랐다고 하지만, 고흐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주저 없이 했던 일은 텅 빈 캠퍼스에 붓질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림에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열정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귀를 자른 이 사내를 단순히 미쳤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하다. 천재성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면 그런 것일까? 몇 년을 그려오던 그의 자화상에는 한결같이 불안정해 보이는 사내가 있다. 충만하지 않은 느낌.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계속 그림을 그려나가는 마음은 어땠을까? 삶을 스스로 끝낸 고흐도 힘들었겠지만, 내게는 테오가 느꼈을 상실감과 형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기력함도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고흐가 삶을 마감한 지 1년 후 테오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렇게 고흐를 아꼈던 테오의 뜻을 따라 테오의 부인이 고흐의 그림을 수집하고 그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로소 고흐는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었다. 


고흐 미술관에서 오후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다시 숙소로 들어가는 길, 고흐의 삶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고단해져 힘이 하나도 없다. 그때부터였다.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고흐는 여행 중에 책을 읽지 않겠다는 내 다짐을 꺾어버렸고, 난 고흐의 평전 『불꽃과 색채』(슈테판 폴라첵 지음, 이상북스)를읽기 시작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고흐의 마지막 그림
The sadness will last forever

'왜 이렇게 힘들고 왜 이렇게 아플까?’


고흐는 여느 젊은이처럼 20대 초반 이런저런 공부와 일들을 하며 자신을 찾다가 마침내 그림을 발견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미술을 진로로 정한 사람들보다 시작이 늦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찾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찾아도 결코 행복하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이 사내는 보여준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는 인간을 너무 사랑했다. 사람들의 고단한 삶에 녹아들지 않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늘어대던 목사를 저주했고, 그림을 돈의 가치로만 환산하는 부자들에게 환멸을 느꼈다. 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의 고민과 열정과 사랑은 남들에게 광기로 보였던 걸까? 오히려 고흐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욕하고 피했다. 그래서 그렇게나 아팠던 고흐의 유언은 "The sadnesswill last forever"(고통은 영원하다)였다.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지속되고 늪과 같은 가난 속에 있어도, 나는 미치지 않고 원하는 바를 끝까지 추구할 수 있을까? 내 안의 열정을 지필 곳을 찾지 못해 아프고, 날 슬프게 하는 것들에 도움이 되지 못해 아프다. 그가 느꼈을 아픈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문득 겁이 났다. 내 가슴이 느끼는 그것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나도 이렇게 아플 수가 있겠구나. 그리고 그게 심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겠구나. 그의 그림도 아팠지만, 난 무엇보다 그의 삶이 그렇게 아팠다. 암스테르담에서부터 보던 그의 평전은 독일의 함부르크로 넘어가서 끝이 났다. 그래서 난 함부르크에서 좀 아팠다. 그가 가진 것만큼 열정이 없어서 아프고, 내 안의 사랑을 제대로 세상에 내보이지 못하는 비겁함과 게으름에 화가 나고, 그것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 미쳐버릴까 봐 겁이 났다. 어쩌면 그래서 그림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반 고흐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5년 후에 다시 한 번 그 미술관에 가고 싶다. 그때는 좀 더 당당하게 고흐를 만나고 싶다.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고흐의 모든 그림은 네이버 지식사전에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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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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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벌써 자? 여긴 파티의 도시 암스테르담이라고!”

페리와 레베카 그리고 다른 여행객들과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펍에서 놀다 보니 어느새 해가 뜨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이만 자러 가겠다는데 너무 빠른 시간이라며 더 놀자고 했다.


너희는 정말 괴물이야.'

오후 늦게 일어나 암스테르담 프리워킹투어에 갔지만 이미 정원이 차 버렸다. 대신 나처럼 갑자기 갈 곳을 잃은 금발 미녀니나를 알게 됐다. 슬로바키아에서 온 니나는 암스테르담으로 6개월간 교환학생 온 친구다. 동유럽 여자들이 예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아마 유럽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서 제일 예뻤던 것 같다.

찌는 듯한 날씨와 거리에 터질 듯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 그 와중에 니나는 물가가 너무 비싸다며 계속 투덜댔다.

"어떻게 맥주 한 잔이 10유로나 하지? 슬로바키아에서는 1유로면 된단 말이야!"

‘네가 암스테르담에 와 버린 걸 어쩌라고….’

그런 니나에게 술은 암스테르담보다 싱가포르가 더 비싸다고 얘기했더니 'Hell'이 따로 없단다. 학생이니 주머니 사정이 어떨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계속 돈 이야기를 하는 니나에게 살짝 질렸다. 하지만 난생처음 만나는 슬로바키아 사람과 이야기하며 도시를 걷는 것도 나름 재미있고, 무엇보다 토요일 오후 보트에서 파티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혼자였다면 아마 남들이 파티하는 장면을 보고 괜스레 우울해졌을지도 몰랐다.


홍등가를 궁금해하던 니나에게 홍등가 투어에서 들었던 말을 해주며, 그 거리를 또 걸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벌써부터 출근한 분들도 많았다. 거리에서 그녀들과 협상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우연히 눈을 마주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킥킥거렸다. 내가 그랬듯 니나도 그들을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확실히 같은 유럽이라도 국민성과 문화는 다른 가보다. 네덜란드의 지나친 자유분방함은 그녀에게도 처음 만나는 충격이었고, 니나가 느끼는 충격이 내겐 또 다른 재미였다.

이미 시작된 그들의 선상파티
암스테르담의 마헤레(MAREHE) 개폐교

“나 밤에 펍 크롤(Pub Crawl, 그 지역의 유명한 펍과 클럽을 돌아다니는 파티. 한여름 암스테르담에서는 매일 저녁 펍 크롤 파티가 열린다.)에 가볼까 싶은데…. 어때?”


니나의 눈이 반짝였다. 돈 때문에 1분 정도 고민하던 그녀는 같이 가겠단다! 브라보! 숙소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는데 페리가 나를 붙잡았다. 밤 12시에 파티에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 니 말대로 여긴 파티의 도시니까!'


오케이! 펍 크롤에 갔다가 12시까지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숙소를 떠났다. 펍 크롤에 입장하는 우리 손에는 촌스러운 펍 크롤 티셔츠가 들려 있었다. "Youmay not remember tonight but won't forget!"(오늘 밤을 기억하지 못해도, 잊지는 못할 거야!)이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티셔츠에 쓰여 있었다. 단합대회도 아니고 다 같이 똑같은 옷을 입고 암스테르담 시내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건가? 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희한하게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그 티셔츠를 입었고, 나도 티셔츠를 들고 다니기 귀찮다는 핑계로 입어 버렸다. 똑같은 옷을 입은 몇십 명의 사람들이 암스테르담 거리를 점령한 모습은 꼭 객기 부리는 고등학생들 같았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먼저 대마초를 판매했다는 불독 커피샵 (암스테르담의 커피샵은 대마초를 파는 곳)

각 펍마다 한 잔의 보드카는 무료지만 그 이후부터는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첫 번째 장소에서는 할로윈 파티도 아닌데 악마 복장을 한 무리들이 더러운 춤을 추며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귀찮게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장소에서 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펍을 30분간 간격으로 투어 다녔다. 지루해질라 치면 다음 펍으로 옮겨가는 게 재미있었다. 오늘 나의 친구가 되어준 니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맥주 한 잔을 샀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맥주 한 잔씩 사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좋은데, 짧은 시간 동안 급하게 마셔버린 보드카와 맥주가 점점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공기 중의 대마초 향도 점점 진해지는 느낌이었다.


‘벌써부터 피곤해지면 안 되는데, 12시에 파티에 가기로 했는데…’

네덜란드의 전통신발 나막신 - 클롬펜

오랜만에 상쾌하게 눈을 떴다. 엇? 내가 어떻게 숙소에 왔지?

“야, 너 완전 제대로 놀더라? 니 친구가 너 여기데려다 줬었어. 너 좀 취해 보이던데.”

“아… 그랬구나…. 파티는 재미있었어?”

“아니 파티 취소됐었어.”

니나한테 고맙다는 말이나 했을까?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잘 놀아서 마음에 든다는 페리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오늘 밤에 꼭 파티에 같이 가자고 했다. 오늘은 그의 눈을 피해 숙소에 들어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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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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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더웠는데 어제저녁부터 쌀쌀해지더니 오늘 아침은 잔뜩 흐리다. 하지만 예정했던 대로 암스테르담의 근교로 떠나 본다.


1. 암스테르담의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가면 도착하는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작은 마을. 관광안내소도 있지만 문 열지 않았고, 작은 교회당에서는 100년은 된 듯한 책과 엽서를 판매하고 있다. 나 같은 외지인에게도 조용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해 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내 무릎 높이보다도 더 낮은 담장을 가진 집에서 살고 있다.

이끼 낀 지붕, 참 좋다.


아이들이 야외수업을 나왔다. 선생님이 손을 절대 놓지 마라고 했는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다. 정말 앙증맞다. 하지만 선생님의 풀 설명보다는 내가 더 신기한지 전부 나를 쳐다봐서 괜히 선생님께 미안했다. 이렇게 자연과 가까운 곳에 살며 소와 양, 말을 매일 보고, 들판에 핀 꽃을 구분할 줄 아는 아이로 큰다는 것은 꽤 멋진 것 같다. 나도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가 어릴 때는 교외에서 키우고 싶다.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급기야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몸을 피해야겠다.


2. 한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나타났다. 얼마만에 보는 무지개인지 게다가 이런 배경으로 무지개를 볼 수 있다니 오늘 운이 참 좋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도시가 뽀송뽀송해졌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에담'이라는 도시. '에담'치즈로 유명한 치즈의 도시란다. 중심가에는 치즈 가게가 여럿 자리 잡고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다. 'Edam Cheese cake'이라는 단어의 나열을 보자 허기가 진다. 식당의 한 쪽에 자리 잡고 앉아 치즈 케이크를 음미해 본다. 꽤 맛있다.

 "넌 어디서 왔니?"

 "한국이요."

 "당연히 남한이겠지?"

식당에서 맥주 한 잔 하시던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때가 북한이 도발을 일으켰던 때라 네덜란드 뉴스에도 연일 한국 소식이 많이 나왔는데 역시나 아저씨가 한국 괜찮냐며 내게 물어보신다. 그러다 말 거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드렸는데 갑자기 궁금증이 밀려왔나 보다.

 "한국은 어쩌다가 분단이 됐니?"

 "그전에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는데 해방이 되면서 남쪽이랑 북쪽에 따로... 어쩌고 저쩌고.."

 "아 그렇구나. 근데 왜 일본은 한국을 왜 식민지로 삼았니?"

 "일본은 섬나라인데 한국이 제일 가깝고... 어쩌고 저쩌고."

내 설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엄지를 들어 올리며 고맙단다. 한국인을 태어나서 처음 만난 거라고 한다. 내가 알크마르에 치즈시장 보러 갔었다고 하니 치즈를 보려면 에담을 먼저 왔어야 했다며 내게 살짝 핀잔을 준다. 

다시 시작된 나 혼자 에담 투어. 아까 들렀던 작은 마을보다는 훨씬 큰 마을. 작지만 나름 광장도 있고,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걸로 보아 적지 않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근처의 아무 마을로 이동해 본다.


3. 해 질 무렵 도착한 마을. 역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예쁜 교회와 예쁜 가게들. 그리고 그곳까지 나를 따라온 것 같은 무지개로 완벽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곳.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마당이 있는 집들을 많이 본다. 암스테르담 중심가에서 절대 볼 수 없던 마당이 딸린 집을.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암스테르담으로 다시 넘어왔다. 해가 지고 밤이 시작되었는데 암스테르담에 오니 네온사인으로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것 같다. 오늘이 레베카의 생일이니 한 잔 하러 가자고 한다. 두 시간 정도 놀다가 그것도 재미가 없는지 피곤한지 그만 쉬고 싶어 져서 일찍 잠에 들었다.  아마 낮에 느낀 감성을 계속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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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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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거 알아? 우리 네덜란드인들은 10대 때 딱 2가지만 배워."


 "그게 뭔데?"

 "뭐 먹고 싶어? 뭐 하고 싶어?"

  "내가 과장 좀 했는데, 어릴 때부터 우린 항상 질문을 받아. '뭐 먹고 싶니?', '어디 갈래?', '뭐하고 싶니?' 같은 간단한 질문부터 정치, 경제에 대한 생각까지. 그러다 보니 내가 평소에 생각이 없으면 아무 대답도 못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버릇 덕분에 국민들 각자가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갖고 있어. 난 우리나라 교육 좀 괜찮은 거 같아."


What do you want to do? What do you want to eat?"


게스트하우스에서 근무하며 새벽에는 그래피티를 그리러 다니는 자유로운 영혼, 페리. 그는단 두 문장으로 네덜란드인이 받는 교육을 간결하게 압축시켜 버렸다. 공교육만으로 대부분의 국민이 2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도 부럽지만, 그보다는 각자 ‘생각’을 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란다는 말이 참 근사하다. 매춘과 대마초가 합법이 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교육 때문이 아닐까? 


"그럼 그래피티가 합법이야?"

"당연히 불법이지. 그래서 경찰 뜨면 도망가야 돼!" 


새벽에 돌아다녀서 그런지 대마초 때문인지 항상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는 그 아이는 꼭 『해리포터』에 나오는 스네이프 교수처럼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피티를 이야기하는 순간은 눈이 반짝거린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전 세계 여행객들과 이야기하고, 그래피티를 그리는 삶이 좋단다.

나한테는 그림 그리고 술 마시는 게 휴가야.

로비에 새로 들어오는 여자에게 페리가 인사를 했다. 그녀는 술잔을 들고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영국에서 온 레베카는 까다로워 보이는 첫인상과 다르게 굉장히 붙임성 있었다. 바에서 계속 맥주를 들이키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본인의 스케치북. 그걸 보여주며 한 장 한 장 본인의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그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게다가 그 스케치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그대로 팔에 문신까지 해 버렸다. 그녀는 미술 전공을 하고 있으며 일주일 동안 암스테르담에 휴가를 왔다. 레베카에겐 그림 그리고 술 마시는 게 휴가였다. 실제로 오후에는 암스테르담의 조용한 카페나 운하 근처에 앉아 몇 시간이고 계속 그림을 그리고 밤새도록 파티에서 놀다가 해 뜰 때쯤 돌아와서 잤다. 그리고 오후에 일어나 그림 그리는 일상. 그것을 일주일 내내 암스테르담에서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영감을 주는 고흐의 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그 아이를 보고 내가 지금까지 간 ‘휴가’라는 것들을 돌이켜 보았다. 블로그에서 봤던 “XX에서 꼭 해야 할 것”대로 걷고 음식을 먹은 게 아닐까? 대체 휴가를 간 건 나인가, 블로그 주인인가? 인증샷을 찍고 발도장을 찍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휴가가 아닐까?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먼저 생겼다는 커피숍(네덜란드의 커피숍은 대마초를 파는 곳이다)
 "너희는 11개월 일하고 1개월 휴가 가지? 나는 11개월 여행하고 1개월 일해." 

 "비용은 어떻게 충당해요?"

 "11개월 동안 내 수만 마리의 일꾼(꿀벌)들과 퀸(여왕벌)이 날 위해서 열심히 일해 놓으면 내가 남아공에 돌아가서 1개월 동안 일을 하지. 그리고 그 돈으로 다음 11개월 동안 다시 여행 다녀. 큰 돈은 아니라 고급스럽게 여행은 못해도 배낭여행은 충분히 할 수 있지."


60개국이 넘는 나라를 돌아다니며 30년간 여행 중인 산타클로스의 수염을 가진 에드워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자마자 배낭에서 식빵과 잼을 꺼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고급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예순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젊은이들이 주로 오는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룸을 숙소로 삼은 것도 그랬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정말 여행을 좋아했고, 가지고 있는 돈 안에서 그걸 하고 있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네덜란드 방문이라는 할아버지에겐 여행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삶의 특별한 이벤트' 같은 게 아닌 삶 자체였다. 


나 역시도 살아있는 동안 되도록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여행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은 볼 때마다 놀랍다. 사실 인간은 유목민이었는데 언제부턴가(아마도 벼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정착했다. 사람들이 언제나 여행을 꿈꾸고 버킷리스트에 세계일주를 넣는 이유는 우리 피 속에 아직 남아 있을 유목민의 DNA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것을 보고자 떠난 여행에서 가끔은 그곳의 풍경보다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정말 ‘지 맘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거창한 삶의 철학이랄 것도 없다. 그저 남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걸 하며 살아간다.


 “3개 국어를 하면 이런 작은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고급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면 안 되나? 그리고 그래피티 말고 돈 되는 그림을 그리면 안 될까?

 “네덜란드까지 와서 풍차 안 보고 뭐하냐?”

 “양봉사업이 잘 되면 몇 달 더 일해서 그걸 확장시키면 돈을 더 많이 벌 텐데.”


지 맘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상반되는 두 감정. 사회가 만들어놓은 길대로 가는 것에 익숙한 나는 그들에게 값싼 걱정을 보내지만, 가슴 한편은 씁쓸하다. 사실 그런 자유와 당당함이 부럽다. 시키는 것을 최고로 잘 해내는 나는 결정하라고 하면 그때부터 바보가 된다. 내 취향마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삶을 살고 있지만, 나는 한국에서 배운 잣대로 그 삶을 멋대로 평가한다.


남들이 만든 길 따라 사는 것이 최고라 해서 그렇게 살았는데, 난 ‘생각 불능 상태’가 되었고 또다시 백수가 되었다. 저렇게 지 맘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저러다 돈 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거 하면 돈 벌 수 있어? 그거 하면 스펙 생겨? 인맥 생겨? 우리가 만들어 놓은 안전한 기준은 내게 행복은 커녕 만성적인 욕구불만만 주었다. 항상 불안했다. 어쩌면 진짜 저 아이들처럼 지 맘대로 사는 게 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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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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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어젯밤 내내 술과 대마초에 찌든 사람들의 고성방가로 암스테르담은 밤새도록 시끄러웠다. 한 나라의 수도 중앙에 와서 조용한 걸 기대한 나는 너무 순진했나 보다. 아무튼 오늘은 암스테르담을 벗어나 책 속에서 본 이 그림을 찾으러 떠난다. 


4월 초순부터 9월 중순까지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네덜란드의 소도시, 알크마르(Alkmaar)에서는 치즈 시장이 열린다. 생산된 치즈를 검수하고, 그 치즈를 운반하는 모든 과정이 몇 백 년 전부터 해오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곳. 덕분에 매주 금요일 이 작은 도시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35분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는 알크마르. 그리 길지 않은 여정이지만 창밖으로 간간이 보이는 풍차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들이 자아내는 풍경에서 네덜란드 전원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기차역을 빠져나오면 이런 전통 복장을 입은 안내원이 친절하게 지도를 주며 치즈시장이 열리는 바흐 광장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그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나는 다른 관광객들 뒤를 설렁설렁 따라가며 알크마르 시내를 구경한다. 시끌벅적하기만 했던 암스테르담과 달리 조용하다. 그 조용함 덕에 도시의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 이 곳은 내 환상 속의 네덜란드 같구나.'


치즈시장은 10시에 시작하지만 굳이 빨리 갈 필요는 없다. 치즈 거래에 관심이 무척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10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되는 행사를(그것도 네덜란드어로 진행되는) 전부 다 보지는 않는다. 그러니 조금 늦게 도착해도 별 상관 없다. 아무튼 치즈가 원래 둥그런 모양이라는 것을 처음 안 나는 저울 위의 노랑이들이 무엇인지 깨닫는데 몇 초가 걸렸다. 

충분히 디지털로 할 수 있지만, 계량소에서는 굳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큰 저울에, 반대편에는 추를 두고 치즈의 무게를 재고 있다. 계량소에서 먼저 치즈 무게를 확인하면, 밖에서는 검사원이 치즈 검수를 한다. 그리고 그 검사를 통과해 그날의 치즈로 뽑힌 사람은 (휴대폰으로?) 영예롭게 사진을 찍는다. 


사실 가장 재밌었던 장면은 치즈를 어깨에 메고 뒤뚱거리며 걷는 아저씨의 모습. 지게(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다.)도 귀엽게 생겼는데, 그 지게를 어깨에 매면 저절로 뒤뚱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는지 아저씨들이 치즈를 옮기는 모습은 무척이나 귀엽다. 가끔은 치즈가 아닌 사람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구경꾼들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하기도 한다.

충분히 디지털화 가능한 이 모든 절차를 알크마르 사람들은 굳이 아날로그로 진행하고 있다. 현대화된 것이 있다면 광장에 설치해 놓은 대형 스크린과 카메라, 사회자가 들고 있는 마이크 정도. 전통을 지키는 노력이 먼저였던지, 관광이 먼저였던지 어쨌든 매주 금요일 많은 관광객들이 치즈시장에 들른다. 역시 내가 가진 고유의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되나 보다.

 

알크마르는 치즈시장 말고도 볼 게 많으니 바로 가지 말고 더 둘러보라고 사회자는 권하지만, 치즈 거래가 끝난 후 도시는 이윽고 조용해졌다. 덕분에 난 조용히 이 소도시를 즐길 기회를 갖게 됐다.


그녀의 말대로 난 이곳 알크마르에 남아서 치즈 박물관에도 들렀다. 입장과 동시에 치즈 한 조각을 준다. 유럽인들은 도대체 무슨 맛으로 이 치즈를 먹을까? 유럽인들이 보기에 정사각형의 납작한, 아무 맛이 없는 "가짜 치즈"에 익숙한 난 역시나 치즈 박물관에 별 감동받지 못했다. 




사람에 치여, 비싼 물가에 치여 암스테르담에서는 생각도 안 했던 운하 투어 보트에 올라탔다.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신데렐라... 네덜란드 동화는 아닐지라도 그 동화의 집은 이런 모양일 거야.


집, 회사, 광장, 교회... 자신들의 보금자리 아래 항상 물을 두고 사는 사람들. 새삼 이 불모지나 다름없었을 땅에 길을 내고 삶을 이어나간 네덜란드인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 뒤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알크마르에서 가장 낮은 다리 아래를 지나갈 때는 모두가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




한 시간 가량의 운하 투어 후에 이 조용한 도시가 더욱 좋아진 나는 내친김에 자전거를 빌려 알크마르의 교외로 나갔다. 산이 없는 나라인 만큼, 자전거 타기 정말 좋고, 국민들도 자전거 타기 정말 좋아한다. 다리에서 강으로 다이빙하는 젊은 아이들도, 아이를 앞자리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금요일 오후의 여유를 흠뻑 틀기고 있다. 강가를 마주한 어느 집 앞,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조용히 뭔가를 쓰시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내게 조용히 미소를 지어주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네덜란드가 더 좋아졌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교외로 나오니 집집마다 보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금요일 저녁, 가족들이 보트를 타고, 준비해 온 저녁을 먹으며 그렇게 주말을 맞이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가정이 이런 거겠지? (물론 보트는 없어도 된다.)


PS. 암스테르담 중앙역에는 매 30분마다 알크마르에 가는 기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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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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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Prostitution Information Center (매춘정보센터)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친구가 준 게스트하우스 주소만 달랑 들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는데, 알고 보니 이 일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합법적인 홍등가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튤립과 평화로운 풍차 이미지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매춘 박물관과 SEX SHOW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홍등가를 암스테르담의 관광지 근처에 만들어 놓은 것도 네덜란드 정부의 철저한 계산이겠지만, 대도시 한 복판에 자리한 그 당당함이 더 어이 없었다. 하지만 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홍등가 투어’를 신청해 버렸다.


여전히 대낮같은 저녁 7시, 조금 뻘쭘하게 투어가 시작됐다. 첫 목적지는 숙소를 찾아 헤매다 신기해서 나도 일찍이 들어가 보았던 콘돔 가게. 정말 기발한 모양과 맛(!)을 가진 콘돔이 가득 한 그곳에서 왠지 인간 상상력의 끝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질 무렵 빨간 창 너머로 그녀들이 등장했다. 쇼윈도 너머, 빨간 커튼을 배경으로 속옷만 걸친 그녀들은 섹시한 포즈를 취하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유혹의 눈길을 보내는 게 습관이 된 건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끈적한 눈길을 보낸다. 도대체 왜 내게 혀를 날름대는 건지? 이 일대 내내 이런 가게가 이어졌다. 이들의 사진을 찍는 것은 불법이고, 개중에는 소변을 종이컵에 받아두었다가 사진 찍은 사람의 얼굴에 뿌리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한때는 남성 매춘부들의 거리도 있었지만, 적자를 면치 못해 다시 여성 매춘부의 거리로 바뀌었다는 아주 안타까운 얘기도 들었다.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한 동유럽에서 왔다고 했지만 동양인과 흑인도 거리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각자의 사연으로 이곳까지 왔겠지만, 인신매매 이야기도 들리는 걸 보면 아무리 합법이라도 깨끗할 수는 없나 보다. 인종 별로 나뉘어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그곳은 백화점의 쇼윈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의 시간과 노동을 팔고 돈을 버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지만, 이곳에 있으니 이 세상 어느 것이든 상품가치로 매겨버리는 자본주의의 맨얼굴을 보는 듯했다.


기본 요금은 15분에 50유로이며(더 자세한 이야기는 29금으로 넘어가야 해서 패스!) 어떤 서비스를 얼마나 제공하는지 가격표까지 만들고 정찰제를 실시한다. 15분을 넘기거나 다른 서비스를 원하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설명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몇 백 년 동안 이 거리를 지키고 서 있었을 성당의 바로 맞은편에 헐벗은 여인들이 서 있는 게 정말 웃겼다. 이제는 박힌 돌 신세가 되어 버린 성당이 애처로웠다. 아예 이 일대를 성의 심벌로 만들고자 거리와 건물 곳곳에 여성과 남성의 몸을 상징하는 조형물까지 있다. 거리와 펜스, 벤치에서 야한 상징을 찾는 재미가 월리를 찾는 것처럼 쏠쏠했다. 암스테르담에서 느꼈던 민망함은 간 곳 없고 어느새 난 거리의 모든 곳을 훑고 있었다.

저기 빨간 창 너머, 그녀들이 일하는 곳.

이 매춘의 거리에 진동하는 것 중의 하나는 대마초 냄새이다. 길에서 대마초를 피는 것은 합법인데 맥주를 마시는 것은 불법인이 나라. 도대체 그 기준이 뭘까? 전 세계 사람들이 대마초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이곳에 온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튤립과 풍차에 대한 이미지로 네덜란드에 온 사람은 정말 나뿐이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동안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든 그중 한 명은 꼭 대마초를 말고, 그걸 함께 있는 사람들과 공유했다. 네덜란드 인근 국가에선 대마초만 사러 차를 끌고 암스테르담으로 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중 과연 대마초가 좋아서 오는 사람들이 많을까, 금지된 것을 한 번 해 보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을까?


온갖 안 되는 것으로 점철된 우리의 십 대. 머리카락은 어깨를 넘지 말고, 학교에서 만화책을 보면 안 되고, 치마는 무릎 위로 올라가면 안 되고, 파마는 하지 말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머리를 길러보려 발악했고, 고등학생에게도 술을 파는 술집을 발견하면 쾌감을 느꼈다. 나중에야 알았다. 단지 하지 말란 것들을 하고 싶어서 내가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음을. 막상 이십 대가 되고 보니 그때 하지 말란 것들에 관심이 사라졌다.


금기를 개방시키면 어떨까? 우리가 문제라고 말하는 그것을 마음껏 하게 내버려 두면 정말 문제가 될까? 범죄가 아니고서야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것을 해 보면 우선은 호기심이 사라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든 말든 그것은 개인의 몫이 된다. 집안의 반대가 없었더라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렇게 불타오를 수 있었을까? 


네덜란드는 금기를 비즈니스로 만들었다. 최소한의 제한만 남겨두고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에 맡겨 버린 셈이다. 세수증대, 관광산업 개발. 모두 다 좋지만 자국민을 그만큼 성숙한 인간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 자부심이 어마어마하다.

매춘 박물관

PS.

1. 내가 묵으려 했던 호스텔은 직업여성들을 위한 운동도 한다는 기독교계 게스트하우스인 Shelter city (주소: Barndesteeg 21, 1012 BV, Amsterdam, Netherland). 한 달 정도 암스테르담에 있을 예정이 있다면 한 번 가보는 것도 괜찮다.


2. 암스테르담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게스트하우스의 네덜란드 직원과 친해지게 됐다. 우연히 주변의 홍등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너 저기 홍등가에 가 본 적 있어?"

 "응. 어렸을 때 딱 한 번. 궁금해서."

 "오 정말? 어때?"

 "정말 별로 였어. 그 여자들한테 그건 그냥 일일 뿐이잖아. 아무 반응도 없고 로봇을 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뭐 하고 있나 싶더라고. 나 그 이후로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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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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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 비로소 혼자가 되어 내가 태어난 대륙이 아닌 유럽이란 곳을 여행한다. 정말 아무에게도 의지할 곳 없이 나 혼자 스스로 다녀야 할 시간. 사실 어젯밤 12시까지도 아침에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했었다. 가고 싶은 곳도 없다. 그러면 이동시간이 가장 짧을 나라는 어디일까? 

그래 가자, 벨기에로, 브뤼셀로. 

단지 파리에서 버스로 3시간이란 이유만으로 즉흥적으로 브뤼셀 행 버스를 예매하고 잠들었다.


버스 터미널로 가기 위해 혼자 지하철을 타니 비로소 내가 외국에 다시 혼자 떨어져 있음이 새삼 느껴진다. 출근하는 파리 시민들 틈에 캐리어를 끌고 적잖은 민폐를 끼치며 도착한 터미널. 세상에! 버스 각 좌석마다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잭이 있다. '이런 예쁜 아이들을 보았나!'

만화박물관에서

이전 동남아를 여행할 때처럼 숙소 예약은 도착해서 하기로 하고 브뤼셀에 내렸다. 파리에서부터 우중충하던 하늘은 브뤼셀에서 비로 바뀌어 있었고, 프랑스어만 가득한 터미널 안에서 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뱅뱅 돌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관광안내소를 찾았건만 점심 먹고 1시까지 오겠다는 성의 없는 팻말만 붙어 있다. 음.. 브뤼셀과 벨기에에 대한 단 하나의 정보도 없이 그냥 이곳에 와서 하나하나 부딪히겠다는 내 생각은 너무 무모했던가?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별 탈 없이 여행 다녔던 건 그저 나의 행운 중에 하나였나... 

그렇게 1시에 다시 문을 연 관광안내소는 브뤼셀 지도를 1유로에 팔고 있었다. 아니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돈 주고 팔고 있다니, 너무 쪼잔한 거 아니야? 눈물을 머금고 1유로를 주고는 직원에게 내가 궁금한 모든 것을 캐묻기 시작했다. 어디가 브뤼셀의 중심지인지 어디 가야 괜찮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는지 등등.


그렇게 약간의 정보를 얻은 후 이름도 부르기 힘든 곳으로 지하철을 타고 출발했다. 여전히 비 내리는 거리. 모자를 푹 눌러쓰고 젖은 지도를 보며 우선 짐을 놔두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길. 혼자 길 찾는 동양인 여자가 안쓰러웠던지 지나가는 잘생긴 청년들이 길을 알려준다. 내가 걷던 길과 반대의 길이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30분 정도 걸었는데 뭔가 이상하다. 지도 상에선 이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는데 왜 이리 가도 가도 나오지 않을까.

다시 제자리에 서서 지도를 자세히 본다. 아뿔싸! 길을 알려준 남자들은 나보다 더한 방향치였다. 다시 내가 원래 가던 방향으로 다시 걸으며 온 골목길을 캐리어를 질질 끌고 헤매며 이제는 제발 아무 게스트하우스만 나오길 바랄 무렵. 내 눈 앞에 게스트하우스 하나가 등장했다. 

"Thank God!"

이미 2시간 정도 비를 쫄딱 맞아 몸도 으슬으슬하게 떨린다. 여행이고 뭐고 잠부터 좀 자고 싶다. 12시 좀 넘은 시간에 브뤼셀에 도착했지만, 숙소에 도착하니 3시가 넘었다. 길에서 3시간을 헤매고 다녔다. 아까운 내 시간... 


체크인하고 들어온 곳은 세명이 함께 방을 쓰는 곳인데 현재 체크인 한 사람은 나뿐이다. 뭔가 예감이 좋다. 그날 밤 이 방에 나만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 침대도 정말 깔끔하고. 뭔가 좋다. 침대 옆의 창문을 통해 비 오는 브뤼셀 거리를 보았다. 맞은편의 쇼핑몰 덕분에 낭만적인 그림은 연출되지 않지만, 비 오는 브뤼셀. 좋다.


침대에 계속 있으면 그대로 잠들어버릴 것 같아 그냥 나왔다.  비 오는 오후 갈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숙소에서 얻은 지도를 다시 보며 갈 곳을 궁리하다가 가까운 곳에 만화 박물관(The Belgian comic strip center)이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즐겁게 봐 온 스머프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너무나도 유명한 틴틴의 고향, 브뤼셀. 그것만으로도 만화박물관은 충분히 가 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만화 박물관 입구, 역시 벨기에 만화의 대표주자 스머프와 틴틴이 지키고 있다. 























틴틴과 스머프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들어가니 으레 모든 박물관들이 그렇듯이 만화의 역사부터 나를 맞이한다. 흥미로운 점은 만화는 문자와 말이 없던 시절부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해 왔던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렇지 인류 최초의 그림이라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 역시도 그렇지. 그 당시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몇천 년이 지난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했는지 그 그림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명작 속에 숨어있는 재기 발랄한 캐릭터들. 그리고 풍자와 비판 기능을 수행하기에 참으로 효과적인 그림까지도.

 

 드디어 스머프를 만나는 시간. 어릴 적 스머프와 함께했던 추억이 마구 쏟아진다. 함께 가가멜을 미워하고 "랄랄라 랄랄라"를 같이 부르던 어린 시절 나와 함께 기억을 공유했던 그 스머프가 소중할 뿐이다. 스머프의 바지까지 이렇게 귀엽게 빨랫줄에 걸려 있다.

프랑스어 발음으로 '땅땅' 우리에게는 '틴틴'.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탐험하는 '인디아나 존스'같은 캐릭터.

두 시간 여를 이리저리 돌아보고 나왔더니 비가 그쳐 있다. 비그친 브뤼셀은 더 깨끗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한여름 비가 지나간 자리, 브뤼셀은 말끔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 있다. 거리의 악사들도 다시 나와 연주를 시작하고, 사람들은 다시 활기차게 걸어 다니기 시작한다.


운 좋게도 오늘 밤 내가 묵는 방에 다른 여행객들은 없다. 벨기에에 왔으니 캔맥주를 몇 개 사다 마시며 잠들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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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벨기에 | 브뤼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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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출처: 네이버 영화

한창 감수성이 퐁퐁 솟아나던 고등학교 1학년,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츠지 히토나리 지음, 소담출판사)란 책을 읽었다. 러브신이 나오는 장면에선 혼자 얼굴 빨개져서 가슴 벌렁대며 읽다가, 헤어진 연인(아오이)을 잊지 못하면서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자 주인공 준세이를 이해 못하던 순수한 시절이었다. 스무 살에 만났던 준세이와 아오이는 아오이가 서른 살이 되는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 쿠폴라(반구형으로 된 지붕이나 천장)에서 만나기로 한다. 어찌나 로맨틱하였는지 10년이 지나도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던 둘은 결국 두오모에서 다시 만난다.


“우리도 2년 후에 약속 정해놓고 만날까? 우리가 그때까지 만나든 헤어지든 상관없이?”


스무 살의 어느 날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영화로 개봉된 『냉정과 열정 사이』이야기를 하다가 장난스럽게 약속했다. 군대라는 거대한 산을 앞에 두고 있던 우리에게 서른 살은 존재하기나 하나 싶을 정도의 먼 날이었다.


‘피렌체는 과거야. 나는 그곳에서 과거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영화와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과거 타령을 하며 툭하면 넋 놓고 먼산을 보던(‘멍 때리기 대회’에 나가면 우승 가능성이 높은) 준세이에게서 ‘피렌체=과거’라고 세뇌당한 채로 도착했다. 그 책을 재미나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 대한 기대를 가득 안고.

영화 속 주인공들이 약속했던 그 두오모 성당, 드디어 나도 그곳에 왔다. 어린 시절의 사랑을 여전히 믿었던 두 연인은 10년이 지나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좋아한다는 마음에 믿음 대신 의심을 보냈던 나는 이곳에 혼자 서 있다. 믿음이 부족한 자는 종교뿐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 당장은 더 많이 믿는 사람이 손해 같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 순간에 더 많은 믿음과 사랑을 보낸 쪽이 더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걸. 아오이가 왜 하필 성당 꼭대기를 만남의 장소로 정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두오모 성당에 꼭 가 보겠다고 다짐했던 10년 전의 그 소녀는 그곳에 한 번 들어가 보겠다고 줄 서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치여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오이의 생일은 아마 여름은 아니었을 거다. 성수기 한여름이었다면 관광객에 치여 성당 입장에만 몇 시간을 기다리고, 막상 올라가서는 셀카봉을 들고 설쳐대는 수많은 사람들에 치여 정작 준세이 그림자도 못 봤을 것이다. 것도 아니면 긴 기다림에 지쳐 올라가기를 포기했거나. 그렇다. 피렌체에 들어선 지 1시간, 괜히 난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어디선가 나타난 예쁜 원피스를 입은 시원한 키의 여자가 사람들 사이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버스킹도 역시 그 지역에 어울려야 되는 듯 아름답고 차분한 선율이 대성당 앞마당을 가득 채웠다. 나의 열등감은 내 믿음만큼이나 가벼웠던지 그녀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두오모 성당은 내부도 멋있지만 붓으로 칠한듯한 외관이 아름답고 독특하다. 초록과 하얀색의 조합은 묘하게 아름답지만, 왠지 쉽게 벗겨질 것 같아서 자주 관리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항상 마음을 쓰고 사랑해 주어야 하는 걸 가르치려는 옛사람들의 의도가 아닐까? 언제나 내 곁에 있을 줄 알고 함부로 대하는 관계는 결국 끝이 나기 마련이니까.


두오모 성당에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지 10년인데, 막상 와 보니 쿠폴라에 오르고 싶지는 않았다. 희미해진 기억과 함께 두오모의 쿠폴라에 오르는 꿈도 옅어진 걸까? 두오모 성당의 사진만으로도 행복과 서글픔을 느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의 뜨거움은 무덤덤함으로 변했다. 아쉽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씁쓸했다. 그나마 사람들이 덜 북적이는 두오모 대성당 맞은편, ‘조토의 종탑’ 꼭대기에 올랐다. 빨간 지붕의 피렌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씁쓸함이 사라지고 탄성이 나왔다. 준세이를 이끄는 건 언제나 과거였지만, 현재의 나를 이끄는 건 ‘어디 가야 사람이 좀 더 없을까? 어디 가야 좀 더 편할까?’였다. 10년 동안 가 보고 싶었던 두오모 따위가 아니라.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강에는 소설가 단테가 그의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만난 베키오 다리가 있다. 굳이 그 다리를 찾을 수고도 없이 멀리서 사람들의 머리가 빽빽이 보이는 다리를 봤다면 그 다리가 바로 베키오 다리다. 『냉정과 열정 사이』부터 소설가 단테라니…… 피렌체는 정말 로맨스가 뚝뚝 묻어나는 곳이다. 양쪽으로 상점이 들어선 다리는 굉장히 독특하지만, 그 때문에 정작 다리 위에서 강을 볼 수는 없다. 예전에는 다리를 따라 푸줏간이 길게 늘어서 있다고 했는데 그곳의 냄새가 싫었던 왕은 푸줏간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고 대신 보석 가게를 들였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베키오 다리 위에는 보석 가게가 넘쳐난다. 로맨틱한 감정으로 폭발하기 직전의 연인들이라면 여기서 반짝거리는 것을 손가락에 끼고 나오겠지? 다리 위의 보석가게를 그대로 남겨둔 건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보석가게 때문에 자물쇠를 달 틈이 없는 다리지만, 사랑을 약속하고 싶은 연인들은 기어코 자물쇠를 달아놓았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곳에 단거야? 꼭 그렇게 해야 너희의 사랑이 영원하니?’라고 묻고 싶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가 소설이라면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실존 인물들이다. 실화가 주는 감동은 사람들을 이 곳으로 이끌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물쇠를 걸게 만든다. 그렇게 자물쇠는 인기상품이 되어버렸다.

다리를 건넜다. 시끄러운 곳에 있다가 상대적으로 조용한 반대편으로 오니 그제야 아름다운 피렌체가 보였다. 깨끗하지 않지만 조용하게 흐르는 강과, 귀여운 젤라토 가게,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유유 히도시를 즐기는 사람들. 그 풍경이야말로 이곳을 정말 로맨틱하게 만들고 있었다. 도시의 소음과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니 마침내 피렌체가 나타났다.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석양을 만끽하기 위해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왔다. 이곳도 이미 유명한 곳인 듯 기념품을 파는 트럭과 좌판이 쫙 깔려 있었고, 사람들은 광장의 계단에 진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부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지는 태양과 피렌체의 빨간 지붕은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이곳에 있어 감사한 마음이 샘솟았다. 

과거에 사는 찌질남이라며 준세이를 타박했지만, 막상 피렌체에 와 보니 그런 그가 이해됐다. 덕분에 피렌체에 와서 아주 오래 동안 잊었던 얼굴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내가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이란 상상을 언제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참 잊기 힘들 줄 알았는데 결국은 잊었다. 그리움도 과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수많은 기억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영화 속 주인공들과 달리 난 첫사랑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그래서 많이 아팠다 한들 그게 뭐 어떤가? 덕분에 나는 한 사람을 나의 우주로 여겼던 그 시절에 머물렀으면 몰랐을 더 다양하고 큰 세상을 알게 됐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보낼 수 있고, 영화를 보고 울 수 있는 감수성을 갖게 됐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더 아낄 수 있게 됐다. 그런 지금의 내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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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이탈리아 |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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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이튿날 아침 서둘러 일어나 바티칸 시국으로 간다. 로마 안에 있지만, 이탈리아가 아닌 엄연하게 다른 나라. 하지만 입국하기 위해 여권이 필요하지는 않다. 바티칸 박물관의 높다란 벽이 바티칸 시국과 로마를 구분 짓는 경계일 뿐. 












종교 그 자체인 바티칸 시국으로 들어가기 직전 눈에 띈 성인용품점 광고를 재미나다며 사진 한 방 찍곤 바티칸 박물관으로 왔다. 그 높은 벽의 웅장함을 느낄 새도 벽을 빙 둘러싸고 있는 긴 줄의 행렬. 그러고 보니 오늘은 월요일.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 바티칸 박물관의 특성상 월요일에 많은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또다시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멍 때리고 있거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길에서 카드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물건을 팔거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바티칸 박물관 입장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매력적인 박물관 투어 상품을 팔고 있는 여행사 직원들..










드디어, 드디어 입장한다. 맨 처음 나를 반겨주는 것은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가 25살에 조각했다는 '피에타 상'의 모조품. 실제 작품은 성 베드로 성당의 유리관 속에  전시되어 있다. 스물다섯이란 나이에 이미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낸 그에게 왠지 모를 질투가 느껴진다. 나 같은 사람이 없지는 않았던지 그의 피에타 상을 따라 조각하던 어느 조각가는 몇 번의 시도와 실패에 좌절하여 실제 피에타 상의 성모 마리아의 코를 망치로 쳐 버렸다고 한다.

 '질투는 나의 힘' - 영화의 제목으로도 쓰일 만큼 질투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이고,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에너지가 어떻게 표출되느냐에 따라서 많은 게 달라진다. 실제로도 상당한 질투심과 꼬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미켈란젤로는 그의 에너지를 명작을 만드는데 썼지만, 어느 작가는 질투심을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훼손시키는 것으로 써버렸다... 












처음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시작했듯이, 이곳 바티칸 박물관 관람의 끝도 미켈란젤로의 시스타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이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천지창조를 보러 이곳에 온다는 것을 아는 박물관 관계자들이 박물관의 이동경로 자체를 아예 시스타나 예배당이 제일 뒤에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많은 작품들도 강제로 관람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 기다렸던 것처럼 박물관 내부 역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의 행렬에 같이 휩쓸려 이리저리 같이 돌아다닌다. 


바티칸 시국에 있는 박물관 답게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많은 그림들이 눈에 띈다. 그림을 그리는 기법, 사용하는 도구 등 많은 것들의 변화가 눈에 보이지만 그래도 그리스도라는 한 가지 주제는 영원하다. 아기 예수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까지... 이렇게 몇 천년 동안 한 사람을 주제로 이렇게 놀라운 예술활동이 펼쳐졌다는 것만으로도 예수님은 참 대단하다.

루브르에서 본 것 같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을 경배하는 동상과, 이집트가 얼마나 핍박받고 살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이집트 유물들을 뒤로 하고, 또 하나의 명작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철학을 주제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의 모습을 재기 넘치게 그린 그림. 누가 누구인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계단에 널브러져 있는 디오게네스, 못생긴 들창코의 소크라테스.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등. 50명이 넘는 사람이 그려져 있지만 대부분 나는 잘 모른다. ^^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이끌고 온 가이드 덕분에 그림에 대한 설명을 몰래 들으며 그림을 감상하는 중,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모든 한국인 관광객들이 갑자기 바티칸 미술관 티켓을 들고 "아테네 학당" 그림을 배경으로 바티칸에 왔다는 인증샷을 찍고 있다. 

 "이렇게 하면 멋진 인증샷이 되죠? 카톡 배경에, 블로그에 올리시면 돼요~" 

한국과 중국 투어에서만 찾을 수 있을 그 장면을 보며 그들에게 미안했지만 20명이 갑자기 같은 사진을 찍는 장면이 부끄러워 그 방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사람의 물결에 지쳐 이제 그만 박물관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박물관이 그렇게 숨겨두었던 마지막 장소 '시스타나 예배당'에 도착하였다. 다가갈수록 어두워지는 조명, 그리고 늘어나는 정체구간. 그렇게 기다리기는 몇 분. 드디어 그림으로만 보아왔던 시스타나 예배당의 천장화가 내 머리 위에 펼쳐져 있다. 구약 성경의 각 부분을 친절하게 그려놓은 대작. 발 디딜 틈도 없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덕에 그 성당의 정체 천장을 채우고 있는 그림을 자세하게 다 보진 못하였다. 그리고 목도 꽤 아프다. 더군다나 "No Photo"를 외치며 사람들 사이를 끊임없이 비집고 다니는 경비원들 덕에 분위기는 상당히 어수선하다. 비록 구약성경을 반 정도만 읽어 모든 내용을 다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내용이 나오는 부분을 볼 때면 아는 척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우리나라 성형외과의 광고로도 쓰이는 천장화의 '천지창조' 부분은 천장의 정중앙에 위치해 항상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다. 천장의 높이도 어마어마한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그려낸 걸까.

그리고 한 벽을 전체 채우고 있는 "최후의 심판". 세상의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천국으로 가는 자들과 지옥불에 떨어지는 자들이 한 그림 앞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멋진 몸을 하고 있는 젊은 예수가 있다. 이 어마어마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표정과 몸이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바티칸 박물관의 나선형 출구

그 괴팍한 성격 덕에 좋지 않은 인간관계, 그리고 그의 능력을 시기하는 사람들, 밀리는 급여에 지체되는 작업, 돈 달라고 괴롭히는 아버지와 형, 아픈 동생 그리고 오랜 천장화 작업으로 인해 얻은 목 디스크... 미켈란젤로는 그 상황에서 이렇게 대작을 만들었다. 어쩌면 그런 상황이 그로 하여금 오히려 몰두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도록 그를 이끌었을까. 천재성만으로는 이런 대작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항상 우울함과 불행을 느끼며 살았다고 하는데, 그 덕에 우리의 눈은 이렇게 호강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들의 인생에 힘든 일이 많았을 때,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우리 같은 범인은 힘든 일이 그에게 발생한 것에 대해 묘한 감사를 해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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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