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지만 전혀 박물관스럽지 않은 요상한 이름. DDR 박물관. 독일 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동독) 박물관이라는 뜻으로 통일 전 동독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동독 = 사회주의 국가


이런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멀쩡한 동독 일반 가정의 모습이 꽤 어색하다. 북한이 워낙 못 살고 있기에 왠지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동독은 굶는 사람도 없고 멋쟁이도 있던 곳이었다. 물론 식량 배급표를 보는 순간 다시 북한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기는 했지만. 아무리 국가가 반으로 나뉘어져 있어도 서독에 있는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던 그때 그 사람들. 베를린 장벽 너머로 손을 마주잡는 사람들과 아이들만이라도 벽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려는 어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지금 봐도 가슴이 뭉클하다.


지금은 정말 추억의 물건이 된 카세트테이프, 동독 사람들이 먹던 음식, 통조림, 사용하던 자동차, 텔레비전. 박물관 내부를 계속 보니 동독이란 느낌보다는 그냥 1960,70년대 독일 사람들의 삶 같다. 사회주의 국가였지만, 외국 물건이 꽤 눈에 많이 보이고, 외부와도 교류하고 있던 동독. 그래서일까. 동독은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60년이 넘는 분단의 세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북한. 너무나 다른 북한과 남한의 일상. 그래서 우리는 더 통일하기 힘든 걸지도..

동서 베를린으로 나뉘어져 있던 시절, 신호등 디자인마저도 달랐다. 위 두 사진은 베를린에서도 동독이었던 지역의 신호등, 아래는 서독이었던 지역의 신호등. 다른 곳의 디자인은 어떨지 몰라도 신호등에서만큼은 동독의 디자인이 훨씬 감각적인 듯하다. :)


두시간 여를 관람하고 나온 DDR. 이미 해는 졌지만 체크포인트 찰리로 갔다. 베를린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뉘어져 있던 시절, 검문소의 역할을 했던 곳. 연합군, 외교관, 외국인 관광객 등만 이곳을 통해 드나들 수 있었다. 한 때 소련과 미국의 탱크가 있던 곳, 이탈자를 막기 위해 삼엄한 경비가 있던 곳은 이제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로 넘친다. 당시의 미국 측 검문소가 이제는 '재현'되어 있는 평화로운 곳.(미국 측 검문소만 남아 있는 것도 결국 서독이 사회주의 국가인 동독을 흡수통일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면 나의 억측일까?) 

판문점은 꽤 많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관광지(라는 표현이 싫지만)이다.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은 오직 판문점에서만 가능하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편하게 갈 수 있다는 판문점. 통일이 되어 판문점도 체크포인트 찰리처럼 허가 없이도 갈 수 있는, 카메라를 든 여행객들로 넘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다음날 아침, 베를린을 떠나기 전 가장 가 보고 싶었던 곳, 베를린 장벽 기념관 (Berlin wall Memorial) 으로 향했다. 멀리 시멘트 벽이 보인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에 가까워 가는 신호. 다른 곳의 장벽은 다 철거했지만, 이곳을 포함한 몇 지역의 장벽은 남겨두었다. 그때를 절대 잊지 말고, 다시는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이겠지. 독일이 동서로 나누어졌을 때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담담이 말해주는 기념관. 기념관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곳은 동서독의 통일 선언이 라디오를 통해서 생중계되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화면 앞이었다. 라디오를 듣자마자 기뻐서 미쳐버린 사람들은 모두 장벽 근처로 달려갔다. 도끼로, 망치로 벽을 찍어내고, 드릴로 뚫고, 그게 너무 느렸던지 대충 무너진 벽 너머로 그냥 점프해 달려가는 사람들.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벽 하나를 넘으려고, 지난 30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가. 21세기,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마음이 아프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메세지 속에 반갑게 한국어를 발견했다.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온 우리는, 그래서 베를린을 좀더 특별하게 볼 수밖에 없다. 통일이 된지 25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옛 동독이었던 지역은 서독이었던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가난하다고 한다. 30년간의 분단, 통일 전 이미 많은 것을 대비하고 있던 그들이지만, 통일 이후에 만난 예상치 못했던 문제로 휘청거렸다. 엄청난 혼란을 수습해 나가는 와중에도 다시 선진국이 된 독일. 그들이 먼저 이루어낸 것. 고통스럽지만 해낸 그 일을 우리는 부러움과 경외심을 갖고 바라볼 수 밖에. 판문점이 누구나 갈 수 있는 관광지가 되고, 통일기념관이 세워지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베를린 장벽 위에서 환호하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기념관의 옥상으로 올라가면 일부러 남겨둔 베를린 장벽과 철조망 일부가 있다. 1분 안에 저 벽 너머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근처 아파트에는 1961년의 베를린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과거를 잊지 않고,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 부러움을 가득 안고 기념관을 나왔다.


PS. 한 달 반 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영국 여행객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통일 전 독일을 여행하며 체크포인트 찰리를 통해 동,서 베를린을 왔다간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제는 그저 역사적 장소, 관광지인 곳을 정말로 검문소로 이용해서 건넌 사람이 있었다는 게 참 신기했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가는 길에 운좋게 만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베를린장벽 붕괴를 기념해 남아있는 장벽에 세계 유명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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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1)   바벨 광장의 북 버닝 메모리얼(Book burning memorial)


베를린의 대표 박물관 다섯 곳이 모여 있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박물관 섬'. 그 섬을 지나면 바로 '바벨 광장'으로 연결되는데, 그리크지 않은 이 광장의 한 곳은 유리관으로 보호되고 있다.


"더러운 정신들을 불 속으로 던져라."


1933년 정권을 잡은 나치는 가장 먼저 정치뿐 아니라, 역사, 철학, 정신분석, 문학 등 거의 전분야에 걸친 책을 불태웠다. 그들은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우기 전에 사람들의 생각부터 통제하고자 했다. 책을 불태우는 것은 다양한 생각의 가능성을 애초부터 차단하는 일이었다.

“어이, 국민들, 다른 이야기는 들을 필요 없어. 우리가 하는 말만 듣고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해.”














몇 년 전 캄보디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앙코르와트가 주목적이었지만, 다녀오고 나서 정말 기억에 남는 건 프놈펜의 ‘뚜엉 슬랭’이란 고문박물관이었다. 캄보디아의 독재정권이었던 크메르루주는 ‘반동분자’라는 이름으로 죄 없는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을 이곳에 잡아가 두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학교였던 이곳은 고통으로 인한 절규와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끔찍한 곳이 되었다. 당시 그들이 가장 먼저 잡아간 ‘반동분자’는 손이 고운 사람들’이었다. 손이 깨끗한 사람은 책을 보고 글을 쓰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라 위험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개인이 다양한 생각을 할수록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독재정권은 국민이 자유롭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고, 그걸 부추기는 사람은 더 싫어한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은 다루기 쉬우니까.


나치 정권은 바벨 광장에서 상징적인 이벤트를 벌였다. ‘앞으로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 책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단지 책을 태운 장소였지만, 사람들은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스스로 통제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시작된 자기검열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내 생각을 말했다가 부당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서로를 믿지 못한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 독일인들은 이 장소에 표석을 남겨두고 경고하고 있다.



2) 유대인 추모공원


관 모양의 차가운 대리석이 제 각각의 높이로 서 있다. 처음엔 발목 높이밖에 안 되던 대리석은 걸으면 걸을수록 내 손을 쭉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 높이 솟아 있었다. 태양이 쨍쨍할수록 검은 직사각형의 대리석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더 어둡고 추웠다. 검고 길고 차가운 직사각형이 길게 뻗어 있는 이 곳은 그 자체로 거대한 공동묘지 혹은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같았다. 이 곳은 베를린의 유대인 추모공원이다.

추모 공원 옆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얼마나 많은 유럽인, 특히 유대인을 핍박했는지 아주 자세히 기록해 둔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지도 위에 나열된 적지 않은 숫자에 자연스럽게 입이 벌어졌다. 어느 유대인의 회고록이 흘러나오던 새까만 방에서는 그 주인공과 함께 나도 끔찍함을 느꼈다. 내가 유대인이 되어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감사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 끔찍함에 한기를 느끼며 박물관을 나섰다. 다시 눈 앞에 검은 대리석의 행렬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국회의사당 근처라는 이 좋은 위치에 독일은 지난날의 잘못을 낱낱이 까발리는 유대인 추모공원을 만들었다. 국회의사당을 보니 박물관에서 느낀 분노가 조금 사라졌다.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도 용기니까.














근처에서는 나치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만들어진 선전물과 그 당시의 사진을 포함한 임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나치 전당대회와 정권 홍보 포스터 그리고 그 모든 걸 무표정하게 보고 있던 독일 사람들의 모습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독일인들은 알고 있었을까? 나락의 길을 걷고 있던 독일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히틀러는 오히려 독일을 분열시키고,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고 갔다. 아무리 포스터지만 아이들을 보고 웃는 히틀러는 정말 위선적으로 보였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김 씨 부자를 찬양하는 포스터가 교실마다 있을 텐데… 정말 끔찍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싸웠던 나라들은 여전히 강대국이기에 독일이 순수하게 죄를 뉘우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충분히 계산하여 사과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될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독일은 끊임없이 그때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 특히 히틀러의 자서전을 70년 간출판 금지시켰던 (지금은 금지가 풀렸다고 한다.) 일은 돈한 푼 들이지 않고 독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 강화시켰다. '역사를 반성하는 독일’은 주변국과 오히려 더 발전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심지어 폴란드와 역사교과서를 함께 만드는 중이라고 하니 한국인으로서 정말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일과 싸웠던 나라들이 여전히 강대국이고, 독일의 지리와 인구 등을 보더라도 독일이 피해국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히틀러의 자서전을 70년간 출판 금지시키면서(지금은 금지가 풀렸다고 한다.) '주변국을 배려하고, 역사를 반성하는 독일'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 얻는 것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반성하고 사과하는 독일.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인정해서 오히려 그 나라들과 더 발전된 관계를 만들어 가는 독일. 


심지어 폴란드와 역사교과서를 함께 만드는 중이라고 하니... 한국인이 만드는 역사 교과서도 걱정되는 나는 그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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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주말 아침 유럽의 각 도시에선 벼룩시장이 열린다. 베를린에서의 토요일, 베를린에서 유명한 몇 개의 벼룩시장 중 한 군데에 가 보기로 했다. 베를린 메트로 Tiergarten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벼룩시장.


'뭐 이런 걸 다 팔지?'

'이걸 지금 팔겠다고 내놓은 건가?'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싶은 것들이 늘어져 있는 신기한 곳. 

어디서 이렇게 문고리만 잔뜩 모으셨을까? 이 쓰다만 듯한 병들은 다 뭘까? 물건에 살짝 묻어있는 때 조차도 본래의 무늬였던 것처럼 이곳에 있는 모든 물건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손때가 탄 LP와 LP케이스, 조잡해서 정이 가는 주방도구들.. 










아예 집을 몽땅 정리한 게 아닐까 싶은 듯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학교 때 내가 좋아하던 가수의 사진을 한창 모았던 것처럼, 지금 여기서 추억의 그 사진을 팔고 있는 이제는 늙어버린 젊은이. 그나저나 내가 그렇게 모았던 사진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30년 전에 받았던 엽서, 50년 전에 썼던 일기장, 사진첩, 편지...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그 물건들이 이제는 벼룩시장에 나와 있다. 이젠 그 추억이 필요 없는 걸까? 이런 걸 팔려고 내놓고 누군가 사간다는 것이 조금 충격적이다. 여기서 돌아다니는 이 물건들이 30년 후 어디 박물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절대 팔 생각은 없지만 갑자기 내가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이 보고 싶다. 안타깝게도 엄마가 내다 버린 내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 (엄마도 가끔 그 일기장을 버린 걸 후회한다.)

소문으로만 듣던 책을 여기서 만나다니...ㅎ

그리 크지 않은데도 모든 물건에서 눈을 뗄 수 없던 묘한 벼룩시장. 비록 물건을 사지 않고 구경만 해도 눈치 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껏 베를린의 빈티지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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