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기념탑, 베를린 대성당, 샤를로텐 부르크 궁전을 둘러본 시간


베를린에 있는 동안은 베를린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땡땡이와 함께 여행 다니기로 했다. 땡땡이는 만나던 날부터 '상수시 궁전'을 보러 베를린 근처의 포츠담에 가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에 쫓겨 베를린 시내에 있는 '샤를로텐 부르크 궁전'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궁전으로 걸어가는 길. 어느 지하철역에서 내려 어디로 걸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베를린의 전승기념탑을 발견했다. 빽빽한 가로수와 그 도로의 끝에 서 있는 탑. 파리의 개선문과 샹젤리제가 떠오르는 풍경이다. 처음엔 1873년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과의 전쟁에서 이긴 기념으로 만들어진 기녑탑이었다. 원래 있던 곳에서 나치가 이곳으로 옮기고, 마지막으로 히틀러가 금장식도 더했다고 한다. 전승기념탑과 그 주위에 있는 여러 기념비는 승리의 의미도 있지만, 여러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독일인은 무엇을 위해 싸운 걸까? 영광은 아니더라도 추모는 받고 있을까?

공격당한 나라의 희생자들에게는 당연히 추모를 하겠지만, 독일 같은 경우는 어떨까? 두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독일에서는 그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도 껄끄럽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무슨 잘못일까? 단지 국가에서 일으킨 전쟁이라는 이유로 전쟁에 참전한 일반 병사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명예도, 자랑스러운 조국도 없는 그 자리...




샤를로텐 부르크 궁전은 왕비 소피 샤를로테를 위해 지어진 여름 별장이라고 한다. 소박해 보이는 궁전 뒤로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하지만 궁전 한 켠은 아쉽게도 보수공사 중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처럼 방은 벽화와 천장화로 가득 채워져 있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궁전 곳곳을 매우고 있는 반짝거리는 금장식들. 여름 별장마저도 이렇다면 도대체 왕과 왕비가 살던 궁전은 어땠을까?


이곳, 샤를로텐 부르크 궁전에도 아시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도자기가 상당히 많다. 덴마크의 왕족 별장에서도 중국과 일본 도자기를 많이 보았는데... 외국의 물건을 수입하고, 전시하는 로얄패밀리의 취미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가보다.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궁전 내부를 찍으려면 입장할 때 사진을 찍겠다는 이용권을 사야 된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난 계속 찍었는데 운이 좋았다. 


드디어 궁전을 다 둘러보고 정원으로 나왔다. 창문을 지날 때마다 밖으로 보이는 정원이 아름다워 얼른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계획대로 잘 짜인 도로를 보는 느낌이다. 조깅하는 사람, 꽃을 찍는 사람, 호수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쬐고 있는 사람..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워킹투어 때는 지나가기만 했던 베를린 대성당. 자세히 보고자 다시 찾아왔다. 대성당에 들어오기 전 땡땡이와 밖에서 나눴던 어지러운 대화가 머리 속에서 사라지도록 만드는 경건한 대성당의 내부. 땡땡이는 천주교 신자답게 촛불에 불을 붙였다. 신자는 아니지만 교회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가만히 서서 대성당 내부의 둥그런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대성당 돔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길, 신기한 광경을 발견했다.(그림인지 실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진까지 찍었던 걸 보면 실제라고 생각한다.) 독일 기독교에서 꽤 유명한 분이 돌아가셨는지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벽 너머의 관 안에 한 분이 누워 계셨다. 그리고 그를 향해 사람들이 묵념을 하고 기도를 했다. 독일 기독교의 성인이시겠지만, 죽은 사람이 떡 하니 보이니 기분이 묘했다. 이전에 본 미국 드라마에서 장례식장 정중앙에 돌아가신 분을 모신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그걸 실제로 보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시체'에 대한 거리낌이 우리보다는 적은가 싶기도 했다.

드디어 올라간 대성당 돔. 근처의 TV타워 외에는 높은 건물이 거의 없어 베를린 시내를 둘러보기에 딱 좋다. 맑은 날씨가 자주 없다는 독일 답게 날씨는 그리 맑지 않지만, 그래서 더 독일스러운 풍경이다. 360도 어느 방향이든 독일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어서 참 좋은 대성당의 돔. 곳곳에 칠이 벗겨져 세월의 흔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대성당 돔의 벽 너머로 구불구불 흐르는 라인강이 참으로 운치 있다.


대성당을 나가는 길, 미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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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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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만난 변태 덕에 잠을 제대로 못 자 기분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얼굴에 와 닿는 베를린 아침 공기는 무척 상쾌했다. 


게스트하우스에 짐만 우선 맡겨두고 베를린 프리워킹투어를 하기 위해 나갔다. 메트로를 찾아가는 길이 꽤나 복잡하다. 이 글씨는 뭐라는 거야? 그리고 표는 또 왜 이리 비싸? 도착하는 곳이 몇 정거장 안 된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아주 대범하게(?) 무임승차를 했다. (덴마크에서 배운 나쁜 버릇이...)

베를린 TV타워

프리워킹투어가 좋은 이유는 나처럼 아무 정보 없이 여행 온 사람들이 아주 간략하게 도시의 역사와 유명한 것과 장소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2시간 내외로 진행되어 시간을 그리 잡아먹지도 않는다. 투어가 끝날 때 웬만하면 모두가 가이드에게 감사의 의미로 '팁'을 주기에 완벽히 무료라고는 할 수 없다. 


약간 길을 헤맨 후 도착한 프리워킹투어 시작 장소는 베를린 관광의 중심지로 보이는 알렉산더 광장 (Alexander platz). 나를 포함해 투어에 있는 사람들은 총 여섯 명. 2명은 뉴질랜드에서 온 6개월째 세계 여행 중인 커플이고, 3명은 호주에서 온 친구들이다. 늘 그렇듯이 새로운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영어 억양이 낯설어 항상 긴장하며 귀 기울인다. 근데 이 오세아니아에서 온 아이들은 지금껏 들은 발음 중 최악으로 못 알아먹을 지경이었다. 왠지 말을 하다가 마는 느낌이랄까...

베를린 성마리아 교회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빨간 벽돌의 성 마리아 교회와 베를린의 TV타워 Fernsehturm를 눈으로 훑었다. 무려 368.06m라는 TV타워에는 전망대도 있다고 하지만, 투어가이드는 너무 비싸다며 추천해 주지 않는다.


베를린 대성당 앞의 잔디밭에는 드러누워 햇볕을 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낭만적인 모습, 하지만 낭만을 모르는 나. 

 '저 아이들은 유행성 출혈열'을 모르나? 뭐라도 깔지...' 

무슨 행사가 있는지 분장하는 사람들, 멀리서 들리는 스코틀랜드 전통악기 소리...

다시 한번 유럽에 있음이 실감 난다.












그렇게 베를린 돔과 5개의 유명한 박물관이 위치해 있는 박물관 섬(서울의 여의도 같은)을 지나 바다가 없는 베를린에서 만난 도시 비치. Charlie's beach. 근처의 찰리 체크포인트의 이름을 딴 곳인데... 파리 비치부터 느꼈던 거지만, 참 없어 보인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 우리는 누구는 맥주를, 누구는 콜라를, 나는 걷는 내내 눈에 띄어 군침 돌게 만들었던 독일의 소시지를 먹었다. 일명 커리 부어스트 (Curry Wurst.) 소시지 위에 케첩과 카레가루를 뿌린 의외의 조합이지만, 꽤 맛있다.

도시의 모래사장, 찰리 비치Charlie's Beach

 "이제 투어는 끝이 났어. 내가 도움이 됐다면, 팁 좀 줄래? 안 그러면 우리 회사에서 날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투어 내내 피곤한 기색을 보이던 가이드는 마지막 한마디로 우리의 뒷담화거리가 되어 버렸다. 


왠지 헤어지기가 아쉬웠던 우리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위치한  파리지엥 광장의 어느 술집에서 맥주를 한 잔씩 했다. 그곳에서 베를린의 로컬 맥주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를 시켜 마시면서 어제까지도 몰랐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 이 뉴질랜드 커플은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 남자가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했단다. 8년을 사귀고, 결혼 약속을 한 후 6개월째 세계 여행 중인 이 커플은 아직도 서로를 참 사랑스럽게 쳐다본다. 보는 사람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이 로맨틱한 커플. 반면 호주에서 온 대학생 친구들은 아직도 10대처럼 큰소리를 지르며 논다.

베르린 대성당 근처에 있던 로마신화 '넵튠'신을 조각되어 있는 분수

이들과 어울려 브란덴부르크 근처 공원을 어기적 거리며 돌아다니던 중, 호주 친구들 중 한 명이 호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낸다. 암스테르담에서 왔다더니 대마초를 가져왔다. 이윽고 약발이 올라오는지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우리랑 같이 놀자며 미친놈처럼 소릴 지른다. 

"Ok."

 그의 소리에 같이 놀자며 순식간에 우리에게 합류한 어느 동양인 남자.

 "I am from Korea."

 "한국이라고요?"


한 달 만에 처음 만난 한국인이 어찌나 반갑던지... 그렇게 만난 친구는 대학교 반수 준비와 입대를 기다리고 있는 나보다 한참 어린 대학생 땡땡이었다. 여행 시작한 지 이제 이틀째인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인종 차별도 당한 것 같고 해서 기분이 별로던 참에 우리를 만났단다. 

"근데 누나 얘네들 뭐라는 거예요?"

"몰라, 나도 거의 못 알아들어. 그냥 대충 듣고 말하고 있어."

브란덴부르크 문

그렇게 밤거리를 일곱 명이서 싸돌아다니면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처음에 쭈뼛거리던 땡땡이가 서서히 주당의 모습을 보이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맥주를 사서 들고 다니다 메트로 안에서 마셨는데 알고 보니 불법이란다. 이 호주 아이들이랑 몇 시간 같이 있으니 나도 살짝 맛이 가는 듯하다. ^^


더운 여름날 밤 한국에서처럼 슈퍼마켓 앞에 설치된 간이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여기가 한국인지 베를린인지 모르겠다. 매너 좋은 땡땡이는 늦은 밤 누나 혼자 가면 안 된다며 게스트하우스까지 날 데려다줬다. 베를린에서 무얼 본 날이 아닌, 새로 만난 친구들과 정신없이 논 첫 번째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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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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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 한국에서 온 XX라고 하고요, 최근 일을 그만두고 유럽을 여행하고 있어요."


유럽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카우치서핑과 히치하이킹이었다. 특히 카우치서핑으로 유럽을 여행한 여행기를 읽고 나서는 ‘그래 이런 게 진짜 여행이지.’라며 현지인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꿈을 꿨다. 하지만 메시지를 계속 보내도 카우치서핑이 처음이고, 추천의 글 하나 없는 나는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 그렇게 카우치서핑을 아예 포기할 무렵, 한줄기 빛과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안녕, 네가 말한 날짜 괜찮은데, 다른 게스트랑 같이 방을 써야 할 거야. 상관없으면 우리 집으로와. 주소는..."


처음 받아보는 “okay” 메시지에 나는 바로 함부르크 행 버스표를 예매했다. 게다가 다른 게스트도 있다니 어색하지도 않고 더 좋을 것이다. 드디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 카우치서핑이 이루어지는구나!

생전 본 적도 없는 나를, 카우치서핑이 처음이라 프로필에 추천의 글 하나 없는 나를 처음으로 재워준 사람은 함부르크의 천사, 나달 아저씨. 그는 30년 전에 시리아에서 독일로 건너와서 이제는 독일에서 산 날이 더 길다고 했다. 아저씨가 간단히 소개해준 방과 거실의 화이트보드에는 그동안 카우치서핑으로 이 집을 다녀갔던 게스트들이 남긴 행복한 메시지가 남아 있었고, 그건 아저씨 인생의 기쁨인 듯했다.


곧 먼저 와 있던 게스트, 미국에서 온 안나가 도착했다. 함부르크에서의 첫날이라고 아저씨는 인도의 난과 비슷한 시리아 식 애피타이저와 구운 연어, 그리고 감자튀김으로 구성된 맛있는 저녁을 차려 주셨다. 공짜로 재워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근사한 밥까지 차려주시는 아저씨는 사람에게 베푸는 게 그저 즐거운지 시리아 술까지 만드셨다.


“카우치서핑하다 보면 딱 잠만 자고 호스트랑 이야기도 안 하고 가는 게스트들이 있거든. 그 아이들은 참 얌체 같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숙박비를 아끼니까 자기들은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인생은 그게 다가 아니거든.”


아저씨의 그 말에 낮에는 함부르크 시내를 돌아다니다가도 해가 질 무렵이면 바로 집으로 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안나와 함께 셋이서 이야기 했는데 안나는 항상 30분 후에 슬그머니 빠져 방으로 들어가 혼자 놀았고, 심심한 아저씨를 걱정하는 오지랖 넓은 나만 아저씨와 함께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시리아에 산 날보다 독일에 산 날이 더 많아. 독일 시민권도 있지만, 여전히 독일은 남의 나라야. 가끔씩 참 외로워."

                              
4년이란 시간 남의 나라에 살면서 가끔씩 주체할 수 없이 외로웠는데, 30년을 살아도 그건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느낌인가 보다. 독일인과 뿌리까지 섞일 수 없는, 그들과 매일 부대끼며 지내도 채워지지 않는 그 느낌. 나만 느낀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뭔가 위안이 되었다.


아저씨는 아침마다 프랑스 라디오를 들어서, 덕분에 아침 먹는 내내 우리는 ‘봉주르’를 들어야 했다. 아랍어, 독일어, 영어까지 3개 국어를 하지만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은 게 가장 후회된다는 아저씨는 그 후회를 끝내려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단다. 그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영어만으로 벅차다며 매번 제2외국어를 배우려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는데 아저씨를 보니 후회하기 전에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같이 좋은 호스트를 만나서 전 운이 정말 좋아요. 고마워요.”

"고맙다고 안 해도 돼. 정말 나한테 고마우면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기회를 놓치지 마. 작은 행동이지만 그게 우리가 사는 곳을 좋게 만드는 일이야. 선 순환을 만드는 거지."


예수님인가? 아저씨는 먹여주고 재워주신 것도 모자라 교훈과 따뜻한 마음까지 안겨 주셨다. 마음이 한창 감동으로 차 오를 무렵 아저씨는 뜬금없는 말을 했다.


“나 게스트들한테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는데 너 참 매력 있고, 좋은 사람 같아. 여행 잠깐 쉬고 독일에 좀 더 있으면 안 돼? 몇 달 동안 여기서 지내도 돼. 너 어차피 일도 그만 두었다며.”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아저씨는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부담스럽도록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정신이 화들짝 깼다.


“너 그 애랑 결혼할 거야?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어.”


독일인과 뿌리까지 섞일 수는 없어 항상 이방인 같다는 아저씨는 이런 부분에서는 뼛속까지 유러피언이었다.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고마운 호스트라 뭐라 말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피곤하다 말하고 방에 들어갔다.


‘내일 당장 다른 데 찾아서 나가야지.’


하지만 나갈 때 나가더라도, 아저씨에게 이 찝찝한 기분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늦게 집에 들어간 나는 나를 걱정하는 아저씨에게 내 기분을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게 좀 이상한 것 같지만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기분 풀어. 우리 집에 머무는 게스트에게 안 좋은 기억을 주기 싫어. 이젠 너를 게스트로만 볼게.”

 
‘게스트로만? 아이고 아저씨, 제발 좀.’


그 이후 덜 따뜻해진 아저씨는 다른 게스트들 앞에서 일부러 날 놀리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 했고, 그런 모습에 난 괜히 미안했다. 아저씨는 내가 떠나는 날 저녁에는 마지막이라고 맛있는 저녁을 만들었고, 내가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함부르크에 하루 더 머무르라고 했다.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게스트의 아침과 저녁까지 다 챙겨주고 신경 쓰는 호스트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사 왔던 머그잔을 선물로 드리고 함부르크를 떠나는 길, 색다른 여행의 기억을 만들어 준 나달 아저씨를 생각했다. 아저씨 때문에라도 함부르크는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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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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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칠레 하우스(Chile haus)와 하펜시티(Hafen city)를 보기 위해 항구로 왔다. 독일 제 1의 항구이자 유럽 제2의 항구인 함부르크의 랜드마크인 칠레 하우스(Chile haus). 단한 군데의 빈틈도 없이 빨간 벽돌로 촘촘히 쌓아 올린 건물에 과연 철저하게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독일인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인간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내면이 왜곡과 과장으로 표현된,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건물’이라는 설명을 보기 전에도 이미 따스함은 느낄 수 없었다. 아름답고 웅장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가득한 칠레 하우스와, 그 건물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마치 거대한 괴물처럼 나를 내려다보았다.

칠레 하우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은 칠레와의 무역거래로 큰 부를 쌓았다. 성공한 무역상이 지은 건물이 가장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란 것이 보여주듯, 빨갛고 네모난 건물이 바다의 한 면을 둘러싸듯 들어서 있는 이 일대는 모두 상품 창고와 무역 회사였다. 괜히 부산에 온 듯 함부르크에 더 정이 갔다.

오래 된 건물에서는 최대한 건물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모든 물건을 옥상에 설치된 도르래를 이용해서 옮긴단다. 무엇보다 독특한 건 문도 없고 정지하지도 않는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눈치를 보다 뛰어들어야 한다. 아름다운 옛 건물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하지만 목이 없는 사람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됐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먼저 차를 수입해 판매했다는 곳은 이제 근사한 카페가 되었다. 터키인이 운영하는 페르시아 카펫 상점이 있고, 콜롬비아에서 직수입한 커피콩으로 커피를 만드는 유명 카페가 있었다. 그 어느 곳보다 수입품을 빠르게 입수하는 곳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하펜시티 근처는 이국적인 상점으로 가득했다.

‘항구 도시’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유흥가는 이곳 함부르크에도 어김없이 존재한다. 함부르크의 거대 어시장 뒤편의 상파울리(SaintPauli) 지역을 지나가면 ‘청소년 통행 금지’ 표지판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함부르크 최대의 유흥가 레파반 (Reeperbahn)이 나타난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야한 간판은 오히려 암스테르담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오후의 햇살 아래 서 있는 간판은 불편해 보였지만 구경하는 재미만큼은 쏠쏠했다. 그러다 그 길의 바로 끝에서 적당히 벽처럼 보이고 싶은 벽과 마주했다.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갈 때처럼, 벽 너머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함부르크의 홍등가로 들어가는 입구. 18세 이하와 여자는 이 너머로 갈 수 없다는 경고가 커다랗게 붙어 있다. 호기심에 살짝 넘어갔다가 출근 준비 중인 여자와 눈이 마주쳐 황급히 돌아 나왔다.

초창기 비틀즈는 5명이였다고 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한 명이 더 서 있다.


사실 이 곳은 하룻밤의 유희를 찾는 사람들뿐 아니라 비틀스 팬들의 성지기도 하다. 이 민망한 간판이 즐비한 거리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비틀스 광장’으로 불리고 비틀스 철제 조형물까지 설치되어 있다. 그 비틀스 조형물이 손바닥보다 작은 속옷만 걸친 여자들의 사진을 마주하고 있는 게 참 우스웠다. 영국에서 건너 온 가난한 무명밴드 비틀스는 1960년부터 2년 간 이 곳 펍에서 노래하고연주하며 실력을 쌓았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영국에서 건너온 가난한 청년들에게 이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스트립클럽과 성인 쇼가 난무하는 이곳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을 것 같다. 전설로 불리는 밴드의 시작은 술 취한 뱃사람들이 드나들던 허름한 펍이었다. 그 대단한 비틀스가 이 거리에서 묵묵히 실력을 기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도 무명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위안이 되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든, 연습하고 실력을 쌓다 보면 기회가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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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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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리와 레파반 지역만 보고는 함부르크는 옛 건물이 많이 없는 줄 알았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큰 성 미카엘 성당과 그 주변 건물들, 시티홀 등 중세 느낌이 물씬 나는 건물들이 많았다.

함부르크 하루 일정의 처음을 언제나 장식하는 알스터 호수를 출발점으로 해서 5분도 안 되는 곳에 위치한 함부르크의 시티홀. 브뤼셀에서 봤던 시티홀이 순간 떠올랐는데 그보다 훨씬 크고 넓은 느낌이다. 그리고 더 화려한 느낌. 중앙의 홀은 함부르크와 시티홀의 역사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었고 그보다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광장과 분수대가 반짝 거리고 있었다.

보험이 발달하게 된 계기는 무역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면서 상품을 실은 배가 난파당하거나 해적을 만나는 등 의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배웠다. 배 모형물과 안전한 항해를 책임지는 여신의 모형물이 디자인되어 있는 오래된 보험회사 건물. 예전의 역사 수업 시간이 생각난다. 실제로 이 일대는 부산의 중앙동처럼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러 회사가 밀집해 있는 구역. 적당히 어수선한 그 분위기가 부산의 부둣가와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중앙동과 남포동 일대를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이후에 독일의 다른 도시인 베를린, 예나, 슈투트가르트를 거쳤지만 함부르크가 가장 좋았던 건 아무래도 바다가 있기 때문인 듯싶다.

 

주변에는 주거지역도 꽤나 많이 보였는데 네덜란드에서 보았던 좁은 집들이 바다 주변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풍경이 펼쳐져 아시아에서 온 여행객에게 좋은 볼거리를 다시 선사해 주었다. 이런 벽돌집들은 언제 보아도 기분 좋아진다.

100년도 더 되었을 구식 엘리베이터가 아직 운행하고 있는 어떤 건물 안. 엘리베이터에는 문이 없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하체만, 혹은 올라가고 있는 상체만 보여 상당히 기괴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리고 Stop 버튼이 없어 놀라가는 때를 기다려 뛰어 올라타거나 뛰어내려야 한다. 난데없이 운동하는 느낌? ^^;


꾸물거리는 날씨와 왠지 잘 어울리는 벽돌색 건물을 따라 계속 걷다가 함부르크에서 가장 큰 성 미카엘 성당을 만났다. 1,600년대에 지어진 건물답게 파란만장한 역사를 함께한 성당은 화재에 휩싸이기도, 벼락을 맞기도 하면서 여러 차례 재건축되어야만 했다. 실제로 성당 종탑 부분이 본래의 벽돌 건물과 달리 철제로 지어진 이유도 더 이상 불에 타지 말라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것이다.

성당 안에서 운 좋게도 오르간 연주 연습을 들을 수가 있었다. 간단한 건반 터치만으로도 굉장히 웅장한 느낌. 처음 듣는 오르간 소리에, 소리에 압도당하는 아니 압도보다 무언가 나를 내려보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든다. 마침 내리기 시작하던 비를 피해 성당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까지, 성당 안에선 작은 오르간 콘서트가 열린 듯하다.


긴 계단을 통해 올라간 성당 종탑에서는 함부르크 시내 전경을 어느 방향에서나 즐길 수 있었다. 어느 방향이나 물을 끼고 있는 도시. 성당에 들어올 때 조금씩 내리던 비는 탑에 올라왔을 때는 바람과 함께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더 오래 시내 전경을 즐기고 싶었으나 한기가 돌기 시작하는 몸은 성당 안에 다시 들어가자고 꼬드겼고, 결국 나는 성당 지하의 크립트(Crypt, 무덤)까지 돌아보고 말았다. 건물 안에 무덤이 있는 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봤지만, 이렇게 매주 미사가 열리는 곳 아래에 무덤이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성직자들과 함께 부유한 귀족들은 이곳 성당 지하에 묻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바깥 아무 데나 묻혔다. 부유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그렇게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렇게 종탑, 크립트까지 섭렵했건만 비는 아직 그치지 않았다. 마침 배가 고파 근처 작은 가게에 들어가서 소시지가 들어간 빵 중 아무거나 골라 대충 배를 채웠으나, 비는 더 거세게 내린다. 아무래도 비 맞을 각오를 해야 될 듯 싶다. 젖어가는 지도를 들고 요한 브람스 박물관을 찾아갔다. 브람스라는 이름은 어릴 때 피아노를 치면서 들었던, 그의 곡을 연주하기도 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다. 피아노 치는 것 참 좋아했는데 그것도 한 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잊고 있던 예전 기억들, 감성들이 살아나고, 잊고 있던 이름들도 함께 떠오른다. 그렇게 어린 시절, 6년간 배웠던 피아노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려 브람스 박물관에 갔다.

몇백 년 전의 악보와 피아노가 이렇게 보존되어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연주했던 그 음악.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귀는 아직도 그 음악을 기억하고 있다. 여행마저도 내 기억에 의해 이렇게 주관적으로 그려지는데 여행 가이드 북을 열심히 보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메트로 역이 어딘지 알음알음 찾아서 다시 알스터 호수로 갔다. 비 오는 호수가 보고 싶어서. 운동화는 이미 다 젖어 발도 시려오고, 머리도 이미 비에 홀딱 젖었지만 우산 없이 이렇게 비를 맞는 게 참 좋아 계속 그러고 싶었다. 비에 아랑곳 않고 조정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요트도 있었다.

자유롭게 비를 맞을 수 있는 권리를 마음껏 누리는 하루여서, 더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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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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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틀 때까지 사람들과 술을 마신 나는 정오가 지나서야 겨우 일어났다. 숙취에 절은 몸을 이끌고 벨기에에서 놓친 감자튀김으로 해장을 하며 느릿느릿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오직 한 곳, 반 고흐 미술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 빈센트 반 고흐

4년 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 보수공사 중인 틈을타 바다 건너온 고흐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됐다. 그때 처음 받은 인상은 "치열함"이었다. 어느 터치 하나 대충한 것이 없는, 정말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의 그림 중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무심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나이를 보았다. 37세. 채 40세가 되기 전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자신의 천재성을 몰랐던 화가는, 9살에서 그림실력이 멈춰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4년 후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을 가는 길, 그 강렬했던 감정을 기억하는 내 가슴은 설레고 있었다.


미술관은 그의 그림뿐만 아니라 가족, 그가 들었던 음악, 읽었던 글, 만났던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 등 고흐와 관련한 모든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동생이자 친구였던 테오와 일생 동안 주고받은 편지는 미술관의 한 면을 거의 가득 차지했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은데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생활비를 동생에게 받아가며 살았던 30대 남자, 고흐는 얼마나 비참했을까?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그의 이야기를 지나니 다시 한 번 주저함이 없는 거친 붓놀림에 눈이 간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세심한, 뭐라 설명할 수가 없는 그림들. 물감 살 돈이 자주 모자랐다고 하지만, 고흐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주저 없이 했던 일은 텅 빈 캠퍼스에 붓질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림에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열정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귀를 자른 이 사내를 단순히 미쳤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하다. 천재성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면 그런 것일까? 몇 년을 그려오던 그의 자화상에는 한결같이 불안정해 보이는 사내가 있다. 충만하지 않은 느낌.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계속 그림을 그려나가는 마음은 어땠을까? 삶을 스스로 끝낸 고흐도 힘들었겠지만, 내게는 테오가 느꼈을 상실감과 형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기력함도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고흐가 삶을 마감한 지 1년 후 테오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렇게 고흐를 아꼈던 테오의 뜻을 따라 테오의 부인이 고흐의 그림을 수집하고 그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로소 고흐는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었다. 


고흐 미술관에서 오후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다시 숙소로 들어가는 길, 고흐의 삶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고단해져 힘이 하나도 없다. 그때부터였다.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고흐는 여행 중에 책을 읽지 않겠다는 내 다짐을 꺾어버렸고, 난 고흐의 평전 『불꽃과 색채』(슈테판 폴라첵 지음, 이상북스)를읽기 시작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고흐의 마지막 그림
The sadness will last forever

'왜 이렇게 힘들고 왜 이렇게 아플까?’


고흐는 여느 젊은이처럼 20대 초반 이런저런 공부와 일들을 하며 자신을 찾다가 마침내 그림을 발견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미술을 진로로 정한 사람들보다 시작이 늦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찾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찾아도 결코 행복하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이 사내는 보여준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는 인간을 너무 사랑했다. 사람들의 고단한 삶에 녹아들지 않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늘어대던 목사를 저주했고, 그림을 돈의 가치로만 환산하는 부자들에게 환멸을 느꼈다. 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의 고민과 열정과 사랑은 남들에게 광기로 보였던 걸까? 오히려 고흐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욕하고 피했다. 그래서 그렇게나 아팠던 고흐의 유언은 "The sadnesswill last forever"(고통은 영원하다)였다.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지속되고 늪과 같은 가난 속에 있어도, 나는 미치지 않고 원하는 바를 끝까지 추구할 수 있을까? 내 안의 열정을 지필 곳을 찾지 못해 아프고, 날 슬프게 하는 것들에 도움이 되지 못해 아프다. 그가 느꼈을 아픈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문득 겁이 났다. 내 가슴이 느끼는 그것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나도 이렇게 아플 수가 있겠구나. 그리고 그게 심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겠구나. 그의 그림도 아팠지만, 난 무엇보다 그의 삶이 그렇게 아팠다. 암스테르담에서부터 보던 그의 평전은 독일의 함부르크로 넘어가서 끝이 났다. 그래서 난 함부르크에서 좀 아팠다. 그가 가진 것만큼 열정이 없어서 아프고, 내 안의 사랑을 제대로 세상에 내보이지 못하는 비겁함과 게으름에 화가 나고, 그것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 미쳐버릴까 봐 겁이 났다. 어쩌면 그래서 그림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반 고흐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5년 후에 다시 한 번 그 미술관에 가고 싶다. 그때는 좀 더 당당하게 고흐를 만나고 싶다.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고흐의 모든 그림은 네이버 지식사전에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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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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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벌써 자? 여긴 파티의 도시 암스테르담이라고!”

페리와 레베카 그리고 다른 여행객들과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펍에서 놀다 보니 어느새 해가 뜨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이만 자러 가겠다는데 너무 빠른 시간이라며 더 놀자고 했다.


너희는 정말 괴물이야.'

오후 늦게 일어나 암스테르담 프리워킹투어에 갔지만 이미 정원이 차 버렸다. 대신 나처럼 갑자기 갈 곳을 잃은 금발 미녀니나를 알게 됐다. 슬로바키아에서 온 니나는 암스테르담으로 6개월간 교환학생 온 친구다. 동유럽 여자들이 예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아마 유럽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서 제일 예뻤던 것 같다.

찌는 듯한 날씨와 거리에 터질 듯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 그 와중에 니나는 물가가 너무 비싸다며 계속 투덜댔다.

"어떻게 맥주 한 잔이 10유로나 하지? 슬로바키아에서는 1유로면 된단 말이야!"

‘네가 암스테르담에 와 버린 걸 어쩌라고….’

그런 니나에게 술은 암스테르담보다 싱가포르가 더 비싸다고 얘기했더니 'Hell'이 따로 없단다. 학생이니 주머니 사정이 어떨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계속 돈 이야기를 하는 니나에게 살짝 질렸다. 하지만 난생처음 만나는 슬로바키아 사람과 이야기하며 도시를 걷는 것도 나름 재미있고, 무엇보다 토요일 오후 보트에서 파티하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혼자였다면 아마 남들이 파티하는 장면을 보고 괜스레 우울해졌을지도 몰랐다.


홍등가를 궁금해하던 니나에게 홍등가 투어에서 들었던 말을 해주며, 그 거리를 또 걸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벌써부터 출근한 분들도 많았다. 거리에서 그녀들과 협상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과 우연히 눈을 마주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킥킥거렸다. 내가 그랬듯 니나도 그들을 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확실히 같은 유럽이라도 국민성과 문화는 다른 가보다. 네덜란드의 지나친 자유분방함은 그녀에게도 처음 만나는 충격이었고, 니나가 느끼는 충격이 내겐 또 다른 재미였다.

이미 시작된 그들의 선상파티
암스테르담의 마헤레(MAREHE) 개폐교

“나 밤에 펍 크롤(Pub Crawl, 그 지역의 유명한 펍과 클럽을 돌아다니는 파티. 한여름 암스테르담에서는 매일 저녁 펍 크롤 파티가 열린다.)에 가볼까 싶은데…. 어때?”


니나의 눈이 반짝였다. 돈 때문에 1분 정도 고민하던 그녀는 같이 가겠단다! 브라보! 숙소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는데 페리가 나를 붙잡았다. 밤 12시에 파티에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 니 말대로 여긴 파티의 도시니까!'


오케이! 펍 크롤에 갔다가 12시까지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숙소를 떠났다. 펍 크롤에 입장하는 우리 손에는 촌스러운 펍 크롤 티셔츠가 들려 있었다. "Youmay not remember tonight but won't forget!"(오늘 밤을 기억하지 못해도, 잊지는 못할 거야!)이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티셔츠에 쓰여 있었다. 단합대회도 아니고 다 같이 똑같은 옷을 입고 암스테르담 시내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건가? 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희한하게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그 티셔츠를 입었고, 나도 티셔츠를 들고 다니기 귀찮다는 핑계로 입어 버렸다. 똑같은 옷을 입은 몇십 명의 사람들이 암스테르담 거리를 점령한 모습은 꼭 객기 부리는 고등학생들 같았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먼저 대마초를 판매했다는 불독 커피샵 (암스테르담의 커피샵은 대마초를 파는 곳)

각 펍마다 한 잔의 보드카는 무료지만 그 이후부터는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첫 번째 장소에서는 할로윈 파티도 아닌데 악마 복장을 한 무리들이 더러운 춤을 추며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귀찮게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장소에서 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펍을 30분간 간격으로 투어 다녔다. 지루해질라 치면 다음 펍으로 옮겨가는 게 재미있었다. 오늘 나의 친구가 되어준 니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맥주 한 잔을 샀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맥주 한 잔씩 사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좋은데, 짧은 시간 동안 급하게 마셔버린 보드카와 맥주가 점점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공기 중의 대마초 향도 점점 진해지는 느낌이었다.


‘벌써부터 피곤해지면 안 되는데, 12시에 파티에 가기로 했는데…’

네덜란드의 전통신발 나막신 - 클롬펜

오랜만에 상쾌하게 눈을 떴다. 엇? 내가 어떻게 숙소에 왔지?

“야, 너 완전 제대로 놀더라? 니 친구가 너 여기데려다 줬었어. 너 좀 취해 보이던데.”

“아… 그랬구나…. 파티는 재미있었어?”

“아니 파티 취소됐었어.”

니나한테 고맙다는 말이나 했을까?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잘 놀아서 마음에 든다는 페리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오늘 밤에 꼭 파티에 같이 가자고 했다. 오늘은 그의 눈을 피해 숙소에 들어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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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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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더웠는데 어제저녁부터 쌀쌀해지더니 오늘 아침은 잔뜩 흐리다. 하지만 예정했던 대로 암스테르담의 근교로 떠나 본다.


1. 암스테르담의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가면 도착하는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작은 마을. 관광안내소도 있지만 문 열지 않았고, 작은 교회당에서는 100년은 된 듯한 책과 엽서를 판매하고 있다. 나 같은 외지인에게도 조용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해 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내 무릎 높이보다도 더 낮은 담장을 가진 집에서 살고 있다.

이끼 낀 지붕, 참 좋다.


아이들이 야외수업을 나왔다. 선생님이 손을 절대 놓지 마라고 했는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다. 정말 앙증맞다. 하지만 선생님의 풀 설명보다는 내가 더 신기한지 전부 나를 쳐다봐서 괜히 선생님께 미안했다. 이렇게 자연과 가까운 곳에 살며 소와 양, 말을 매일 보고, 들판에 핀 꽃을 구분할 줄 아는 아이로 큰다는 것은 꽤 멋진 것 같다. 나도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가 어릴 때는 교외에서 키우고 싶다.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급기야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몸을 피해야겠다.


2. 한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나타났다. 얼마만에 보는 무지개인지 게다가 이런 배경으로 무지개를 볼 수 있다니 오늘 운이 참 좋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도시가 뽀송뽀송해졌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에담'이라는 도시. '에담'치즈로 유명한 치즈의 도시란다. 중심가에는 치즈 가게가 여럿 자리 잡고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다. 'Edam Cheese cake'이라는 단어의 나열을 보자 허기가 진다. 식당의 한 쪽에 자리 잡고 앉아 치즈 케이크를 음미해 본다. 꽤 맛있다.

 "넌 어디서 왔니?"

 "한국이요."

 "당연히 남한이겠지?"

식당에서 맥주 한 잔 하시던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때가 북한이 도발을 일으켰던 때라 네덜란드 뉴스에도 연일 한국 소식이 많이 나왔는데 역시나 아저씨가 한국 괜찮냐며 내게 물어보신다. 그러다 말 거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드렸는데 갑자기 궁금증이 밀려왔나 보다.

 "한국은 어쩌다가 분단이 됐니?"

 "그전에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는데 해방이 되면서 남쪽이랑 북쪽에 따로... 어쩌고 저쩌고.."

 "아 그렇구나. 근데 왜 일본은 한국을 왜 식민지로 삼았니?"

 "일본은 섬나라인데 한국이 제일 가깝고... 어쩌고 저쩌고."

내 설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엄지를 들어 올리며 고맙단다. 한국인을 태어나서 처음 만난 거라고 한다. 내가 알크마르에 치즈시장 보러 갔었다고 하니 치즈를 보려면 에담을 먼저 왔어야 했다며 내게 살짝 핀잔을 준다. 

다시 시작된 나 혼자 에담 투어. 아까 들렀던 작은 마을보다는 훨씬 큰 마을. 작지만 나름 광장도 있고,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걸로 보아 적지 않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근처의 아무 마을로 이동해 본다.


3. 해 질 무렵 도착한 마을. 역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예쁜 교회와 예쁜 가게들. 그리고 그곳까지 나를 따라온 것 같은 무지개로 완벽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곳.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마당이 있는 집들을 많이 본다. 암스테르담 중심가에서 절대 볼 수 없던 마당이 딸린 집을.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암스테르담으로 다시 넘어왔다. 해가 지고 밤이 시작되었는데 암스테르담에 오니 네온사인으로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것 같다. 오늘이 레베카의 생일이니 한 잔 하러 가자고 한다. 두 시간 정도 놀다가 그것도 재미가 없는지 피곤한지 그만 쉬고 싶어 져서 일찍 잠에 들었다.  아마 낮에 느낀 감성을 계속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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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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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그거 알아? 우리 네덜란드인들은 10대 때 딱 2가지만 배워."


 "그게 뭔데?"

 "뭐 먹고 싶어? 뭐 하고 싶어?"

  "내가 과장 좀 했는데, 어릴 때부터 우린 항상 질문을 받아. '뭐 먹고 싶니?', '어디 갈래?', '뭐하고 싶니?' 같은 간단한 질문부터 정치, 경제에 대한 생각까지. 그러다 보니 내가 평소에 생각이 없으면 아무 대답도 못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버릇 덕분에 국민들 각자가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갖고 있어. 난 우리나라 교육 좀 괜찮은 거 같아."


What do you want to do? What do you want to eat?"


게스트하우스에서 근무하며 새벽에는 그래피티를 그리러 다니는 자유로운 영혼, 페리. 그는단 두 문장으로 네덜란드인이 받는 교육을 간결하게 압축시켜 버렸다. 공교육만으로 대부분의 국민이 2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도 부럽지만, 그보다는 각자 ‘생각’을 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란다는 말이 참 근사하다. 매춘과 대마초가 합법이 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교육 때문이 아닐까? 


"그럼 그래피티가 합법이야?"

"당연히 불법이지. 그래서 경찰 뜨면 도망가야 돼!" 


새벽에 돌아다녀서 그런지 대마초 때문인지 항상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는 그 아이는 꼭 『해리포터』에 나오는 스네이프 교수처럼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피티를 이야기하는 순간은 눈이 반짝거린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전 세계 여행객들과 이야기하고, 그래피티를 그리는 삶이 좋단다.

나한테는 그림 그리고 술 마시는 게 휴가야.

로비에 새로 들어오는 여자에게 페리가 인사를 했다. 그녀는 술잔을 들고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영국에서 온 레베카는 까다로워 보이는 첫인상과 다르게 굉장히 붙임성 있었다. 바에서 계속 맥주를 들이키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본인의 스케치북. 그걸 보여주며 한 장 한 장 본인의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그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게다가 그 스케치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그대로 팔에 문신까지 해 버렸다. 그녀는 미술 전공을 하고 있으며 일주일 동안 암스테르담에 휴가를 왔다. 레베카에겐 그림 그리고 술 마시는 게 휴가였다. 실제로 오후에는 암스테르담의 조용한 카페나 운하 근처에 앉아 몇 시간이고 계속 그림을 그리고 밤새도록 파티에서 놀다가 해 뜰 때쯤 돌아와서 잤다. 그리고 오후에 일어나 그림 그리는 일상. 그것을 일주일 내내 암스테르담에서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영감을 주는 고흐의 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그 아이를 보고 내가 지금까지 간 ‘휴가’라는 것들을 돌이켜 보았다. 블로그에서 봤던 “XX에서 꼭 해야 할 것”대로 걷고 음식을 먹은 게 아닐까? 대체 휴가를 간 건 나인가, 블로그 주인인가? 인증샷을 찍고 발도장을 찍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휴가가 아닐까?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먼저 생겼다는 커피숍(네덜란드의 커피숍은 대마초를 파는 곳이다)
 "너희는 11개월 일하고 1개월 휴가 가지? 나는 11개월 여행하고 1개월 일해." 

 "비용은 어떻게 충당해요?"

 "11개월 동안 내 수만 마리의 일꾼(꿀벌)들과 퀸(여왕벌)이 날 위해서 열심히 일해 놓으면 내가 남아공에 돌아가서 1개월 동안 일을 하지. 그리고 그 돈으로 다음 11개월 동안 다시 여행 다녀. 큰 돈은 아니라 고급스럽게 여행은 못해도 배낭여행은 충분히 할 수 있지."


60개국이 넘는 나라를 돌아다니며 30년간 여행 중인 산타클로스의 수염을 가진 에드워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자마자 배낭에서 식빵과 잼을 꺼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고급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예순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젊은이들이 주로 오는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룸을 숙소로 삼은 것도 그랬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정말 여행을 좋아했고, 가지고 있는 돈 안에서 그걸 하고 있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네덜란드 방문이라는 할아버지에겐 여행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삶의 특별한 이벤트' 같은 게 아닌 삶 자체였다. 


나 역시도 살아있는 동안 되도록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여행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은 볼 때마다 놀랍다. 사실 인간은 유목민이었는데 언제부턴가(아마도 벼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정착했다. 사람들이 언제나 여행을 꿈꾸고 버킷리스트에 세계일주를 넣는 이유는 우리 피 속에 아직 남아 있을 유목민의 DNA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것을 보고자 떠난 여행에서 가끔은 그곳의 풍경보다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정말 ‘지 맘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거창한 삶의 철학이랄 것도 없다. 그저 남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걸 하며 살아간다.


 “3개 국어를 하면 이런 작은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고급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면 안 되나? 그리고 그래피티 말고 돈 되는 그림을 그리면 안 될까?

 “네덜란드까지 와서 풍차 안 보고 뭐하냐?”

 “양봉사업이 잘 되면 몇 달 더 일해서 그걸 확장시키면 돈을 더 많이 벌 텐데.”


지 맘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상반되는 두 감정. 사회가 만들어놓은 길대로 가는 것에 익숙한 나는 그들에게 값싼 걱정을 보내지만, 가슴 한편은 씁쓸하다. 사실 그런 자유와 당당함이 부럽다. 시키는 것을 최고로 잘 해내는 나는 결정하라고 하면 그때부터 바보가 된다. 내 취향마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삶을 살고 있지만, 나는 한국에서 배운 잣대로 그 삶을 멋대로 평가한다.


남들이 만든 길 따라 사는 것이 최고라 해서 그렇게 살았는데, 난 ‘생각 불능 상태’가 되었고 또다시 백수가 되었다. 저렇게 지 맘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저러다 돈 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거 하면 돈 벌 수 있어? 그거 하면 스펙 생겨? 인맥 생겨? 우리가 만들어 놓은 안전한 기준은 내게 행복은 커녕 만성적인 욕구불만만 주었다. 항상 불안했다. 어쩌면 진짜 저 아이들처럼 지 맘대로 사는 게 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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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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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어젯밤 내내 술과 대마초에 찌든 사람들의 고성방가로 암스테르담은 밤새도록 시끄러웠다. 한 나라의 수도 중앙에 와서 조용한 걸 기대한 나는 너무 순진했나 보다. 아무튼 오늘은 암스테르담을 벗어나 책 속에서 본 이 그림을 찾으러 떠난다. 


4월 초순부터 9월 중순까지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네덜란드의 소도시, 알크마르(Alkmaar)에서는 치즈 시장이 열린다. 생산된 치즈를 검수하고, 그 치즈를 운반하는 모든 과정이 몇 백 년 전부터 해오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곳. 덕분에 매주 금요일 이 작은 도시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35분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는 알크마르. 그리 길지 않은 여정이지만 창밖으로 간간이 보이는 풍차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들이 자아내는 풍경에서 네덜란드 전원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기차역을 빠져나오면 이런 전통 복장을 입은 안내원이 친절하게 지도를 주며 치즈시장이 열리는 바흐 광장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그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나는 다른 관광객들 뒤를 설렁설렁 따라가며 알크마르 시내를 구경한다. 시끌벅적하기만 했던 암스테르담과 달리 조용하다. 그 조용함 덕에 도시의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 이 곳은 내 환상 속의 네덜란드 같구나.'


치즈시장은 10시에 시작하지만 굳이 빨리 갈 필요는 없다. 치즈 거래에 관심이 무척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10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되는 행사를(그것도 네덜란드어로 진행되는) 전부 다 보지는 않는다. 그러니 조금 늦게 도착해도 별 상관 없다. 아무튼 치즈가 원래 둥그런 모양이라는 것을 처음 안 나는 저울 위의 노랑이들이 무엇인지 깨닫는데 몇 초가 걸렸다. 

충분히 디지털로 할 수 있지만, 계량소에서는 굳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큰 저울에, 반대편에는 추를 두고 치즈의 무게를 재고 있다. 계량소에서 먼저 치즈 무게를 확인하면, 밖에서는 검사원이 치즈 검수를 한다. 그리고 그 검사를 통과해 그날의 치즈로 뽑힌 사람은 (휴대폰으로?) 영예롭게 사진을 찍는다. 


사실 가장 재밌었던 장면은 치즈를 어깨에 메고 뒤뚱거리며 걷는 아저씨의 모습. 지게(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다.)도 귀엽게 생겼는데, 그 지게를 어깨에 매면 저절로 뒤뚱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는지 아저씨들이 치즈를 옮기는 모습은 무척이나 귀엽다. 가끔은 치즈가 아닌 사람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구경꾼들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하기도 한다.

충분히 디지털화 가능한 이 모든 절차를 알크마르 사람들은 굳이 아날로그로 진행하고 있다. 현대화된 것이 있다면 광장에 설치해 놓은 대형 스크린과 카메라, 사회자가 들고 있는 마이크 정도. 전통을 지키는 노력이 먼저였던지, 관광이 먼저였던지 어쨌든 매주 금요일 많은 관광객들이 치즈시장에 들른다. 역시 내가 가진 고유의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되나 보다.

 

알크마르는 치즈시장 말고도 볼 게 많으니 바로 가지 말고 더 둘러보라고 사회자는 권하지만, 치즈 거래가 끝난 후 도시는 이윽고 조용해졌다. 덕분에 난 조용히 이 소도시를 즐길 기회를 갖게 됐다.


그녀의 말대로 난 이곳 알크마르에 남아서 치즈 박물관에도 들렀다. 입장과 동시에 치즈 한 조각을 준다. 유럽인들은 도대체 무슨 맛으로 이 치즈를 먹을까? 유럽인들이 보기에 정사각형의 납작한, 아무 맛이 없는 "가짜 치즈"에 익숙한 난 역시나 치즈 박물관에 별 감동받지 못했다. 




사람에 치여, 비싼 물가에 치여 암스테르담에서는 생각도 안 했던 운하 투어 보트에 올라탔다.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신데렐라... 네덜란드 동화는 아닐지라도 그 동화의 집은 이런 모양일 거야.


집, 회사, 광장, 교회... 자신들의 보금자리 아래 항상 물을 두고 사는 사람들. 새삼 이 불모지나 다름없었을 땅에 길을 내고 삶을 이어나간 네덜란드인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 뒤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알크마르에서 가장 낮은 다리 아래를 지나갈 때는 모두가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




한 시간 가량의 운하 투어 후에 이 조용한 도시가 더욱 좋아진 나는 내친김에 자전거를 빌려 알크마르의 교외로 나갔다. 산이 없는 나라인 만큼, 자전거 타기 정말 좋고, 국민들도 자전거 타기 정말 좋아한다. 다리에서 강으로 다이빙하는 젊은 아이들도, 아이를 앞자리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금요일 오후의 여유를 흠뻑 틀기고 있다. 강가를 마주한 어느 집 앞,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조용히 뭔가를 쓰시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내게 조용히 미소를 지어주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네덜란드가 더 좋아졌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교외로 나오니 집집마다 보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금요일 저녁, 가족들이 보트를 타고, 준비해 온 저녁을 먹으며 그렇게 주말을 맞이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가정이 이런 거겠지? (물론 보트는 없어도 된다.)


PS. 암스테르담 중앙역에는 매 30분마다 알크마르에 가는 기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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