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라이트스트리트'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8.02.23 300년 전의 N포세대
  2. 2018.02.21 사진으로 보는 작은 네덜란드
  3. 2018.02.18 치즈, 운하, 풍차가 있는 작은 네덜란드
  4. 2018.02.17 매춘? 대마초? 알아서 하세요

동이 틀 때까지 사람들과 술을 마신 나는 정오가 지나서야 겨우 일어났다. 숙취에 절은 몸을 이끌고 벨기에에서 놓친 감자튀김으로 해장을 하며 느릿느릿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오직 한 곳, 반 고흐 미술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 빈센트 반 고흐

4년 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 보수공사 중인 틈을타 바다 건너온 고흐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됐다. 그때 처음 받은 인상은 "치열함"이었다. 어느 터치 하나 대충한 것이 없는, 정말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의 그림 중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무심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나이를 보았다. 37세. 채 40세가 되기 전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자신의 천재성을 몰랐던 화가는, 9살에서 그림실력이 멈춰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4년 후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을 가는 길, 그 강렬했던 감정을 기억하는 내 가슴은 설레고 있었다.


미술관은 그의 그림뿐만 아니라 가족, 그가 들었던 음악, 읽었던 글, 만났던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 등 고흐와 관련한 모든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동생이자 친구였던 테오와 일생 동안 주고받은 편지는 미술관의 한 면을 거의 가득 차지했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은데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생활비를 동생에게 받아가며 살았던 30대 남자, 고흐는 얼마나 비참했을까?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그의 이야기를 지나니 다시 한 번 주저함이 없는 거친 붓놀림에 눈이 간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세심한, 뭐라 설명할 수가 없는 그림들. 물감 살 돈이 자주 모자랐다고 하지만, 고흐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주저 없이 했던 일은 텅 빈 캠퍼스에 붓질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림에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열정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귀를 자른 이 사내를 단순히 미쳤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하다. 천재성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면 그런 것일까? 몇 년을 그려오던 그의 자화상에는 한결같이 불안정해 보이는 사내가 있다. 충만하지 않은 느낌.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계속 그림을 그려나가는 마음은 어땠을까? 삶을 스스로 끝낸 고흐도 힘들었겠지만, 내게는 테오가 느꼈을 상실감과 형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기력함도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고흐가 삶을 마감한 지 1년 후 테오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렇게 고흐를 아꼈던 테오의 뜻을 따라 테오의 부인이 고흐의 그림을 수집하고 그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로소 고흐는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었다. 


고흐 미술관에서 오후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다시 숙소로 들어가는 길, 고흐의 삶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고단해져 힘이 하나도 없다. 그때부터였다.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고흐는 여행 중에 책을 읽지 않겠다는 내 다짐을 꺾어버렸고, 난 고흐의 평전 『불꽃과 색채』(슈테판 폴라첵 지음, 이상북스)를읽기 시작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고흐의 마지막 그림
The sadness will last forever

'왜 이렇게 힘들고 왜 이렇게 아플까?’


고흐는 여느 젊은이처럼 20대 초반 이런저런 공부와 일들을 하며 자신을 찾다가 마침내 그림을 발견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미술을 진로로 정한 사람들보다 시작이 늦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찾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찾아도 결코 행복하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이 사내는 보여준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는 인간을 너무 사랑했다. 사람들의 고단한 삶에 녹아들지 않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늘어대던 목사를 저주했고, 그림을 돈의 가치로만 환산하는 부자들에게 환멸을 느꼈다. 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의 고민과 열정과 사랑은 남들에게 광기로 보였던 걸까? 오히려 고흐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욕하고 피했다. 그래서 그렇게나 아팠던 고흐의 유언은 "The sadnesswill last forever"(고통은 영원하다)였다.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지속되고 늪과 같은 가난 속에 있어도, 나는 미치지 않고 원하는 바를 끝까지 추구할 수 있을까? 내 안의 열정을 지필 곳을 찾지 못해 아프고, 날 슬프게 하는 것들에 도움이 되지 못해 아프다. 그가 느꼈을 아픈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문득 겁이 났다. 내 가슴이 느끼는 그것을 제대로 살지 못하면 나도 이렇게 아플 수가 있겠구나. 그리고 그게 심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겠구나. 그의 그림도 아팠지만, 난 무엇보다 그의 삶이 그렇게 아팠다. 암스테르담에서부터 보던 그의 평전은 독일의 함부르크로 넘어가서 끝이 났다. 그래서 난 함부르크에서 좀 아팠다. 그가 가진 것만큼 열정이 없어서 아프고, 내 안의 사랑을 제대로 세상에 내보이지 못하는 비겁함과 게으름에 화가 나고, 그것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 미쳐버릴까 봐 겁이 났다. 어쩌면 그래서 그림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반 고흐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5년 후에 다시 한 번 그 미술관에 가고 싶다. 그때는 좀 더 당당하게 고흐를 만나고 싶다.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고흐의 모든 그림은 네이버 지식사전에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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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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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그렇게 더웠는데 어제저녁부터 쌀쌀해지더니 오늘 아침은 잔뜩 흐리다. 하지만 예정했던 대로 암스테르담의 근교로 떠나 본다.


1. 암스테르담의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가면 도착하는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작은 마을. 관광안내소도 있지만 문 열지 않았고, 작은 교회당에서는 100년은 된 듯한 책과 엽서를 판매하고 있다. 나 같은 외지인에게도 조용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해 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내 무릎 높이보다도 더 낮은 담장을 가진 집에서 살고 있다.

이끼 낀 지붕, 참 좋다.


아이들이 야외수업을 나왔다. 선생님이 손을 절대 놓지 마라고 했는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다. 정말 앙증맞다. 하지만 선생님의 풀 설명보다는 내가 더 신기한지 전부 나를 쳐다봐서 괜히 선생님께 미안했다. 이렇게 자연과 가까운 곳에 살며 소와 양, 말을 매일 보고, 들판에 핀 꽃을 구분할 줄 아는 아이로 큰다는 것은 꽤 멋진 것 같다. 나도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가 어릴 때는 교외에서 키우고 싶다.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급기야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몸을 피해야겠다.


2. 한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나타났다. 얼마만에 보는 무지개인지 게다가 이런 배경으로 무지개를 볼 수 있다니 오늘 운이 참 좋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도시가 뽀송뽀송해졌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에담'이라는 도시. '에담'치즈로 유명한 치즈의 도시란다. 중심가에는 치즈 가게가 여럿 자리 잡고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다. 'Edam Cheese cake'이라는 단어의 나열을 보자 허기가 진다. 식당의 한 쪽에 자리 잡고 앉아 치즈 케이크를 음미해 본다. 꽤 맛있다.

 "넌 어디서 왔니?"

 "한국이요."

 "당연히 남한이겠지?"

식당에서 맥주 한 잔 하시던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때가 북한이 도발을 일으켰던 때라 네덜란드 뉴스에도 연일 한국 소식이 많이 나왔는데 역시나 아저씨가 한국 괜찮냐며 내게 물어보신다. 그러다 말 거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드렸는데 갑자기 궁금증이 밀려왔나 보다.

 "한국은 어쩌다가 분단이 됐니?"

 "그전에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는데 해방이 되면서 남쪽이랑 북쪽에 따로... 어쩌고 저쩌고.."

 "아 그렇구나. 근데 왜 일본은 한국을 왜 식민지로 삼았니?"

 "일본은 섬나라인데 한국이 제일 가깝고... 어쩌고 저쩌고."

내 설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엄지를 들어 올리며 고맙단다. 한국인을 태어나서 처음 만난 거라고 한다. 내가 알크마르에 치즈시장 보러 갔었다고 하니 치즈를 보려면 에담을 먼저 왔어야 했다며 내게 살짝 핀잔을 준다. 

다시 시작된 나 혼자 에담 투어. 아까 들렀던 작은 마을보다는 훨씬 큰 마을. 작지만 나름 광장도 있고,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걸로 보아 적지 않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근처의 아무 마을로 이동해 본다.


3. 해 질 무렵 도착한 마을. 역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예쁜 교회와 예쁜 가게들. 그리고 그곳까지 나를 따라온 것 같은 무지개로 완벽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곳. 그러고 보니 오늘은 마당이 있는 집들을 많이 본다. 암스테르담 중심가에서 절대 볼 수 없던 마당이 딸린 집을.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암스테르담으로 다시 넘어왔다. 해가 지고 밤이 시작되었는데 암스테르담에 오니 네온사인으로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것 같다. 오늘이 레베카의 생일이니 한 잔 하러 가자고 한다. 두 시간 정도 놀다가 그것도 재미가 없는지 피곤한지 그만 쉬고 싶어 져서 일찍 잠에 들었다.  아마 낮에 느낀 감성을 계속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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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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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어젯밤 내내 술과 대마초에 찌든 사람들의 고성방가로 암스테르담은 밤새도록 시끄러웠다. 한 나라의 수도 중앙에 와서 조용한 걸 기대한 나는 너무 순진했나 보다. 아무튼 오늘은 암스테르담을 벗어나 책 속에서 본 이 그림을 찾으러 떠난다. 


4월 초순부터 9월 중순까지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네덜란드의 소도시, 알크마르(Alkmaar)에서는 치즈 시장이 열린다. 생산된 치즈를 검수하고, 그 치즈를 운반하는 모든 과정이 몇 백 년 전부터 해오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곳. 덕분에 매주 금요일 이 작은 도시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35분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는 알크마르. 그리 길지 않은 여정이지만 창밖으로 간간이 보이는 풍차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들이 자아내는 풍경에서 네덜란드 전원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기차역을 빠져나오면 이런 전통 복장을 입은 안내원이 친절하게 지도를 주며 치즈시장이 열리는 바흐 광장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그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나는 다른 관광객들 뒤를 설렁설렁 따라가며 알크마르 시내를 구경한다. 시끌벅적하기만 했던 암스테르담과 달리 조용하다. 그 조용함 덕에 도시의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 이 곳은 내 환상 속의 네덜란드 같구나.'


치즈시장은 10시에 시작하지만 굳이 빨리 갈 필요는 없다. 치즈 거래에 관심이 무척 많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10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되는 행사를(그것도 네덜란드어로 진행되는) 전부 다 보지는 않는다. 그러니 조금 늦게 도착해도 별 상관 없다. 아무튼 치즈가 원래 둥그런 모양이라는 것을 처음 안 나는 저울 위의 노랑이들이 무엇인지 깨닫는데 몇 초가 걸렸다. 

충분히 디지털로 할 수 있지만, 계량소에서는 굳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큰 저울에, 반대편에는 추를 두고 치즈의 무게를 재고 있다. 계량소에서 먼저 치즈 무게를 확인하면, 밖에서는 검사원이 치즈 검수를 한다. 그리고 그 검사를 통과해 그날의 치즈로 뽑힌 사람은 (휴대폰으로?) 영예롭게 사진을 찍는다. 


사실 가장 재밌었던 장면은 치즈를 어깨에 메고 뒤뚱거리며 걷는 아저씨의 모습. 지게(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다.)도 귀엽게 생겼는데, 그 지게를 어깨에 매면 저절로 뒤뚱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는지 아저씨들이 치즈를 옮기는 모습은 무척이나 귀엽다. 가끔은 치즈가 아닌 사람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구경꾼들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하기도 한다.

충분히 디지털화 가능한 이 모든 절차를 알크마르 사람들은 굳이 아날로그로 진행하고 있다. 현대화된 것이 있다면 광장에 설치해 놓은 대형 스크린과 카메라, 사회자가 들고 있는 마이크 정도. 전통을 지키는 노력이 먼저였던지, 관광이 먼저였던지 어쨌든 매주 금요일 많은 관광객들이 치즈시장에 들른다. 역시 내가 가진 고유의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되나 보다.

 

알크마르는 치즈시장 말고도 볼 게 많으니 바로 가지 말고 더 둘러보라고 사회자는 권하지만, 치즈 거래가 끝난 후 도시는 이윽고 조용해졌다. 덕분에 난 조용히 이 소도시를 즐길 기회를 갖게 됐다.


그녀의 말대로 난 이곳 알크마르에 남아서 치즈 박물관에도 들렀다. 입장과 동시에 치즈 한 조각을 준다. 유럽인들은 도대체 무슨 맛으로 이 치즈를 먹을까? 유럽인들이 보기에 정사각형의 납작한, 아무 맛이 없는 "가짜 치즈"에 익숙한 난 역시나 치즈 박물관에 별 감동받지 못했다. 




사람에 치여, 비싼 물가에 치여 암스테르담에서는 생각도 안 했던 운하 투어 보트에 올라탔다.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 신데렐라... 네덜란드 동화는 아닐지라도 그 동화의 집은 이런 모양일 거야.


집, 회사, 광장, 교회... 자신들의 보금자리 아래 항상 물을 두고 사는 사람들. 새삼 이 불모지나 다름없었을 땅에 길을 내고 삶을 이어나간 네덜란드인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 뒤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알크마르에서 가장 낮은 다리 아래를 지나갈 때는 모두가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




한 시간 가량의 운하 투어 후에 이 조용한 도시가 더욱 좋아진 나는 내친김에 자전거를 빌려 알크마르의 교외로 나갔다. 산이 없는 나라인 만큼, 자전거 타기 정말 좋고, 국민들도 자전거 타기 정말 좋아한다. 다리에서 강으로 다이빙하는 젊은 아이들도, 아이를 앞자리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금요일 오후의 여유를 흠뻑 틀기고 있다. 강가를 마주한 어느 집 앞,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조용히 뭔가를 쓰시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내게 조용히 미소를 지어주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네덜란드가 더 좋아졌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교외로 나오니 집집마다 보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금요일 저녁, 가족들이 보트를 타고, 준비해 온 저녁을 먹으며 그렇게 주말을 맞이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가정이 이런 거겠지? (물론 보트는 없어도 된다.)


PS. 암스테르담 중앙역에는 매 30분마다 알크마르에 가는 기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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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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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Prostitution Information Center (매춘정보센터)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친구가 준 게스트하우스 주소만 달랑 들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는데, 알고 보니 이 일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합법적인 홍등가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튤립과 평화로운 풍차 이미지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매춘 박물관과 SEX SHOW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홍등가를 암스테르담의 관광지 근처에 만들어 놓은 것도 네덜란드 정부의 철저한 계산이겠지만, 대도시 한 복판에 자리한 그 당당함이 더 어이 없었다. 하지만 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홍등가 투어’를 신청해 버렸다.


여전히 대낮같은 저녁 7시, 조금 뻘쭘하게 투어가 시작됐다. 첫 목적지는 숙소를 찾아 헤매다 신기해서 나도 일찍이 들어가 보았던 콘돔 가게. 정말 기발한 모양과 맛(!)을 가진 콘돔이 가득 한 그곳에서 왠지 인간 상상력의 끝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질 무렵 빨간 창 너머로 그녀들이 등장했다. 쇼윈도 너머, 빨간 커튼을 배경으로 속옷만 걸친 그녀들은 섹시한 포즈를 취하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유혹의 눈길을 보내는 게 습관이 된 건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끈적한 눈길을 보낸다. 도대체 왜 내게 혀를 날름대는 건지? 이 일대 내내 이런 가게가 이어졌다. 이들의 사진을 찍는 것은 불법이고, 개중에는 소변을 종이컵에 받아두었다가 사진 찍은 사람의 얼굴에 뿌리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한때는 남성 매춘부들의 거리도 있었지만, 적자를 면치 못해 다시 여성 매춘부의 거리로 바뀌었다는 아주 안타까운 얘기도 들었다.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한 동유럽에서 왔다고 했지만 동양인과 흑인도 거리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각자의 사연으로 이곳까지 왔겠지만, 인신매매 이야기도 들리는 걸 보면 아무리 합법이라도 깨끗할 수는 없나 보다. 인종 별로 나뉘어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그곳은 백화점의 쇼윈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의 시간과 노동을 팔고 돈을 버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지만, 이곳에 있으니 이 세상 어느 것이든 상품가치로 매겨버리는 자본주의의 맨얼굴을 보는 듯했다.


기본 요금은 15분에 50유로이며(더 자세한 이야기는 29금으로 넘어가야 해서 패스!) 어떤 서비스를 얼마나 제공하는지 가격표까지 만들고 정찰제를 실시한다. 15분을 넘기거나 다른 서비스를 원하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설명에 모두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몇 백 년 동안 이 거리를 지키고 서 있었을 성당의 바로 맞은편에 헐벗은 여인들이 서 있는 게 정말 웃겼다. 이제는 박힌 돌 신세가 되어 버린 성당이 애처로웠다. 아예 이 일대를 성의 심벌로 만들고자 거리와 건물 곳곳에 여성과 남성의 몸을 상징하는 조형물까지 있다. 거리와 펜스, 벤치에서 야한 상징을 찾는 재미가 월리를 찾는 것처럼 쏠쏠했다. 암스테르담에서 느꼈던 민망함은 간 곳 없고 어느새 난 거리의 모든 곳을 훑고 있었다.

저기 빨간 창 너머, 그녀들이 일하는 곳.

이 매춘의 거리에 진동하는 것 중의 하나는 대마초 냄새이다. 길에서 대마초를 피는 것은 합법인데 맥주를 마시는 것은 불법인이 나라. 도대체 그 기준이 뭘까? 전 세계 사람들이 대마초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이곳에 온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튤립과 풍차에 대한 이미지로 네덜란드에 온 사람은 정말 나뿐이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동안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든 그중 한 명은 꼭 대마초를 말고, 그걸 함께 있는 사람들과 공유했다. 네덜란드 인근 국가에선 대마초만 사러 차를 끌고 암스테르담으로 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중 과연 대마초가 좋아서 오는 사람들이 많을까, 금지된 것을 한 번 해 보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을까?


온갖 안 되는 것으로 점철된 우리의 십 대. 머리카락은 어깨를 넘지 말고, 학교에서 만화책을 보면 안 되고, 치마는 무릎 위로 올라가면 안 되고, 파마는 하지 말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머리를 길러보려 발악했고, 고등학생에게도 술을 파는 술집을 발견하면 쾌감을 느꼈다. 나중에야 알았다. 단지 하지 말란 것들을 하고 싶어서 내가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음을. 막상 이십 대가 되고 보니 그때 하지 말란 것들에 관심이 사라졌다.


금기를 개방시키면 어떨까? 우리가 문제라고 말하는 그것을 마음껏 하게 내버려 두면 정말 문제가 될까? 범죄가 아니고서야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것을 해 보면 우선은 호기심이 사라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든 말든 그것은 개인의 몫이 된다. 집안의 반대가 없었더라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렇게 불타오를 수 있었을까? 


네덜란드는 금기를 비즈니스로 만들었다. 최소한의 제한만 남겨두고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에 맡겨 버린 셈이다. 세수증대, 관광산업 개발. 모두 다 좋지만 자국민을 그만큼 성숙한 인간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 자부심이 어마어마하다.

매춘 박물관

PS.

1. 내가 묵으려 했던 호스텔은 직업여성들을 위한 운동도 한다는 기독교계 게스트하우스인 Shelter city (주소: Barndesteeg 21, 1012 BV, Amsterdam, Netherland). 한 달 정도 암스테르담에 있을 예정이 있다면 한 번 가보는 것도 괜찮다.


2. 암스테르담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게스트하우스의 네덜란드 직원과 친해지게 됐다. 우연히 주변의 홍등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너 저기 홍등가에 가 본 적 있어?"

 "응. 어렸을 때 딱 한 번. 궁금해서."

 "오 정말? 어때?"

 "정말 별로 였어. 그 여자들한테 그건 그냥 일일 뿐이잖아. 아무 반응도 없고 로봇을 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뭐 하고 있나 싶더라고. 나 그 이후로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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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네덜란드 |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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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