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지만 전혀 박물관스럽지 않은 요상한 이름. DDR 박물관. 독일 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동독) 박물관이라는 뜻으로 통일 전 동독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동독 = 사회주의 국가


이런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멀쩡한 동독 일반 가정의 모습이 꽤 어색하다. 북한이 워낙 못 살고 있기에 왠지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동독은 굶는 사람도 없고 멋쟁이도 있던 곳이었다. 물론 식량 배급표를 보는 순간 다시 북한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기는 했지만. 아무리 국가가 반으로 나뉘어져 있어도 서독에 있는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던 그때 그 사람들. 베를린 장벽 너머로 손을 마주잡는 사람들과 아이들만이라도 벽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려는 어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지금 봐도 가슴이 뭉클하다.


지금은 정말 추억의 물건이 된 카세트테이프, 동독 사람들이 먹던 음식, 통조림, 사용하던 자동차, 텔레비전. 박물관 내부를 계속 보니 동독이란 느낌보다는 그냥 1960,70년대 독일 사람들의 삶 같다. 사회주의 국가였지만, 외국 물건이 꽤 눈에 많이 보이고, 외부와도 교류하고 있던 동독. 그래서일까. 동독은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60년이 넘는 분단의 세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북한. 너무나 다른 북한과 남한의 일상. 그래서 우리는 더 통일하기 힘든 걸지도..

동서 베를린으로 나뉘어져 있던 시절, 신호등 디자인마저도 달랐다. 위 두 사진은 베를린에서도 동독이었던 지역의 신호등, 아래는 서독이었던 지역의 신호등. 다른 곳의 디자인은 어떨지 몰라도 신호등에서만큼은 동독의 디자인이 훨씬 감각적인 듯하다. :)


두시간 여를 관람하고 나온 DDR. 이미 해는 졌지만 체크포인트 찰리로 갔다. 베를린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뉘어져 있던 시절, 검문소의 역할을 했던 곳. 연합군, 외교관, 외국인 관광객 등만 이곳을 통해 드나들 수 있었다. 한 때 소련과 미국의 탱크가 있던 곳, 이탈자를 막기 위해 삼엄한 경비가 있던 곳은 이제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로 넘친다. 당시의 미국 측 검문소가 이제는 '재현'되어 있는 평화로운 곳.(미국 측 검문소만 남아 있는 것도 결국 서독이 사회주의 국가인 동독을 흡수통일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면 나의 억측일까?) 

판문점은 꽤 많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관광지(라는 표현이 싫지만)이다.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은 오직 판문점에서만 가능하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편하게 갈 수 있다는 판문점. 통일이 되어 판문점도 체크포인트 찰리처럼 허가 없이도 갈 수 있는, 카메라를 든 여행객들로 넘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다음날 아침, 베를린을 떠나기 전 가장 가 보고 싶었던 곳, 베를린 장벽 기념관 (Berlin wall Memorial) 으로 향했다. 멀리 시멘트 벽이 보인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에 가까워 가는 신호. 다른 곳의 장벽은 다 철거했지만, 이곳을 포함한 몇 지역의 장벽은 남겨두었다. 그때를 절대 잊지 말고, 다시는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이겠지. 독일이 동서로 나누어졌을 때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담담이 말해주는 기념관. 기념관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곳은 동서독의 통일 선언이 라디오를 통해서 생중계되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화면 앞이었다. 라디오를 듣자마자 기뻐서 미쳐버린 사람들은 모두 장벽 근처로 달려갔다. 도끼로, 망치로 벽을 찍어내고, 드릴로 뚫고, 그게 너무 느렸던지 대충 무너진 벽 너머로 그냥 점프해 달려가는 사람들.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벽 하나를 넘으려고, 지난 30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가. 21세기,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마음이 아프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메세지 속에 반갑게 한국어를 발견했다.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온 우리는, 그래서 베를린을 좀더 특별하게 볼 수밖에 없다. 통일이 된지 25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옛 동독이었던 지역은 서독이었던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가난하다고 한다. 30년간의 분단, 통일 전 이미 많은 것을 대비하고 있던 그들이지만, 통일 이후에 만난 예상치 못했던 문제로 휘청거렸다. 엄청난 혼란을 수습해 나가는 와중에도 다시 선진국이 된 독일. 그들이 먼저 이루어낸 것. 고통스럽지만 해낸 그 일을 우리는 부러움과 경외심을 갖고 바라볼 수 밖에. 판문점이 누구나 갈 수 있는 관광지가 되고, 통일기념관이 세워지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베를린 장벽 위에서 환호하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기념관의 옥상으로 올라가면 일부러 남겨둔 베를린 장벽과 철조망 일부가 있다. 1분 안에 저 벽 너머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근처 아파트에는 1961년의 베를린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과거를 잊지 않고,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 부러움을 가득 안고 기념관을 나왔다.


PS. 한 달 반 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영국 여행객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통일 전 독일을 여행하며 체크포인트 찰리를 통해 동,서 베를린을 왔다간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제는 그저 역사적 장소, 관광지인 곳을 정말로 검문소로 이용해서 건넌 사람이 있었다는 게 참 신기했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가는 길에 운좋게 만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베를린장벽 붕괴를 기념해 남아있는 장벽에 세계 유명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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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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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벨 광장의 북 버닝 메모리얼(Book burning memorial)


베를린의 대표 박물관 다섯 곳이 모여 있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박물관 섬'. 그 섬을 지나면 바로 '바벨 광장'으로 연결되는데, 그리크지 않은 이 광장의 한 곳은 유리관으로 보호되고 있다.


"더러운 정신들을 불 속으로 던져라."


1933년 정권을 잡은 나치는 가장 먼저 정치뿐 아니라, 역사, 철학, 정신분석, 문학 등 거의 전분야에 걸친 책을 불태웠다. 그들은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우기 전에 사람들의 생각부터 통제하고자 했다. 책을 불태우는 것은 다양한 생각의 가능성을 애초부터 차단하는 일이었다.

“어이, 국민들, 다른 이야기는 들을 필요 없어. 우리가 하는 말만 듣고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해.”














몇 년 전 캄보디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앙코르와트가 주목적이었지만, 다녀오고 나서 정말 기억에 남는 건 프놈펜의 ‘뚜엉 슬랭’이란 고문박물관이었다. 캄보디아의 독재정권이었던 크메르루주는 ‘반동분자’라는 이름으로 죄 없는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을 이곳에 잡아가 두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학교였던 이곳은 고통으로 인한 절규와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끔찍한 곳이 되었다. 당시 그들이 가장 먼저 잡아간 ‘반동분자’는 손이 고운 사람들’이었다. 손이 깨끗한 사람은 책을 보고 글을 쓰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라 위험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개인이 다양한 생각을 할수록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독재정권은 국민이 자유롭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고, 그걸 부추기는 사람은 더 싫어한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은 다루기 쉬우니까.


나치 정권은 바벨 광장에서 상징적인 이벤트를 벌였다. ‘앞으로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 책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단지 책을 태운 장소였지만, 사람들은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스스로 통제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시작된 자기검열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내 생각을 말했다가 부당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서로를 믿지 못한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 독일인들은 이 장소에 표석을 남겨두고 경고하고 있다.



2) 유대인 추모공원


관 모양의 차가운 대리석이 제 각각의 높이로 서 있다. 처음엔 발목 높이밖에 안 되던 대리석은 걸으면 걸을수록 내 손을 쭉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 높이 솟아 있었다. 태양이 쨍쨍할수록 검은 직사각형의 대리석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더 어둡고 추웠다. 검고 길고 차가운 직사각형이 길게 뻗어 있는 이 곳은 그 자체로 거대한 공동묘지 혹은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같았다. 이 곳은 베를린의 유대인 추모공원이다.

추모 공원 옆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얼마나 많은 유럽인, 특히 유대인을 핍박했는지 아주 자세히 기록해 둔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지도 위에 나열된 적지 않은 숫자에 자연스럽게 입이 벌어졌다. 어느 유대인의 회고록이 흘러나오던 새까만 방에서는 그 주인공과 함께 나도 끔찍함을 느꼈다. 내가 유대인이 되어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감사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 끔찍함에 한기를 느끼며 박물관을 나섰다. 다시 눈 앞에 검은 대리석의 행렬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국회의사당 근처라는 이 좋은 위치에 독일은 지난날의 잘못을 낱낱이 까발리는 유대인 추모공원을 만들었다. 국회의사당을 보니 박물관에서 느낀 분노가 조금 사라졌다.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도 용기니까.














근처에서는 나치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만들어진 선전물과 그 당시의 사진을 포함한 임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나치 전당대회와 정권 홍보 포스터 그리고 그 모든 걸 무표정하게 보고 있던 독일 사람들의 모습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독일인들은 알고 있었을까? 나락의 길을 걷고 있던 독일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히틀러는 오히려 독일을 분열시키고,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고 갔다. 아무리 포스터지만 아이들을 보고 웃는 히틀러는 정말 위선적으로 보였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김 씨 부자를 찬양하는 포스터가 교실마다 있을 텐데… 정말 끔찍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싸웠던 나라들은 여전히 강대국이기에 독일이 순수하게 죄를 뉘우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충분히 계산하여 사과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될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독일은 끊임없이 그때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 특히 히틀러의 자서전을 70년 간출판 금지시켰던 (지금은 금지가 풀렸다고 한다.) 일은 돈한 푼 들이지 않고 독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 강화시켰다. '역사를 반성하는 독일’은 주변국과 오히려 더 발전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심지어 폴란드와 역사교과서를 함께 만드는 중이라고 하니 한국인으로서 정말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일과 싸웠던 나라들이 여전히 강대국이고, 독일의 지리와 인구 등을 보더라도 독일이 피해국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히틀러의 자서전을 70년간 출판 금지시키면서(지금은 금지가 풀렸다고 한다.) '주변국을 배려하고, 역사를 반성하는 독일'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 얻는 것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반성하고 사과하는 독일.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인정해서 오히려 그 나라들과 더 발전된 관계를 만들어 가는 독일. 


심지어 폴란드와 역사교과서를 함께 만드는 중이라고 하니... 한국인이 만드는 역사 교과서도 걱정되는 나는 그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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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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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유럽의 각 도시에선 벼룩시장이 열린다. 베를린에서의 토요일, 베를린에서 유명한 몇 개의 벼룩시장 중 한 군데에 가 보기로 했다. 베를린 메트로 Tiergarten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벼룩시장.


'뭐 이런 걸 다 팔지?'

'이걸 지금 팔겠다고 내놓은 건가?'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싶은 것들이 늘어져 있는 신기한 곳. 

어디서 이렇게 문고리만 잔뜩 모으셨을까? 이 쓰다만 듯한 병들은 다 뭘까? 물건에 살짝 묻어있는 때 조차도 본래의 무늬였던 것처럼 이곳에 있는 모든 물건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손때가 탄 LP와 LP케이스, 조잡해서 정이 가는 주방도구들.. 










아예 집을 몽땅 정리한 게 아닐까 싶은 듯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학교 때 내가 좋아하던 가수의 사진을 한창 모았던 것처럼, 지금 여기서 추억의 그 사진을 팔고 있는 이제는 늙어버린 젊은이. 그나저나 내가 그렇게 모았던 사진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30년 전에 받았던 엽서, 50년 전에 썼던 일기장, 사진첩, 편지...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그 물건들이 이제는 벼룩시장에 나와 있다. 이젠 그 추억이 필요 없는 걸까? 이런 걸 팔려고 내놓고 누군가 사간다는 것이 조금 충격적이다. 여기서 돌아다니는 이 물건들이 30년 후 어디 박물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절대 팔 생각은 없지만 갑자기 내가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이 보고 싶다. 안타깝게도 엄마가 내다 버린 내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 (엄마도 가끔 그 일기장을 버린 걸 후회한다.)

소문으로만 듣던 책을 여기서 만나다니...ㅎ

그리 크지 않은데도 모든 물건에서 눈을 뗄 수 없던 묘한 벼룩시장. 비록 물건을 사지 않고 구경만 해도 눈치 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껏 베를린의 빈티지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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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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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기념탑, 베를린 대성당, 샤를로텐 부르크 궁전을 둘러본 시간


베를린에 있는 동안은 베를린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땡땡이와 함께 여행 다니기로 했다. 땡땡이는 만나던 날부터 '상수시 궁전'을 보러 베를린 근처의 포츠담에 가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에 쫓겨 베를린 시내에 있는 '샤를로텐 부르크 궁전'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궁전으로 걸어가는 길. 어느 지하철역에서 내려 어디로 걸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베를린의 전승기념탑을 발견했다. 빽빽한 가로수와 그 도로의 끝에 서 있는 탑. 파리의 개선문과 샹젤리제가 떠오르는 풍경이다. 처음엔 1873년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과의 전쟁에서 이긴 기념으로 만들어진 기녑탑이었다. 원래 있던 곳에서 나치가 이곳으로 옮기고, 마지막으로 히틀러가 금장식도 더했다고 한다. 전승기념탑과 그 주위에 있는 여러 기념비는 승리의 의미도 있지만, 여러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독일인은 무엇을 위해 싸운 걸까? 영광은 아니더라도 추모는 받고 있을까?

공격당한 나라의 희생자들에게는 당연히 추모를 하겠지만, 독일 같은 경우는 어떨까? 두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독일에서는 그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도 껄끄럽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무슨 잘못일까? 단지 국가에서 일으킨 전쟁이라는 이유로 전쟁에 참전한 일반 병사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명예도, 자랑스러운 조국도 없는 그 자리...




샤를로텐 부르크 궁전은 왕비 소피 샤를로테를 위해 지어진 여름 별장이라고 한다. 소박해 보이는 궁전 뒤로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하지만 궁전 한 켠은 아쉽게도 보수공사 중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처럼 방은 벽화와 천장화로 가득 채워져 있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궁전 곳곳을 매우고 있는 반짝거리는 금장식들. 여름 별장마저도 이렇다면 도대체 왕과 왕비가 살던 궁전은 어땠을까?


이곳, 샤를로텐 부르크 궁전에도 아시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도자기가 상당히 많다. 덴마크의 왕족 별장에서도 중국과 일본 도자기를 많이 보았는데... 외국의 물건을 수입하고, 전시하는 로얄패밀리의 취미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가보다.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궁전 내부를 찍으려면 입장할 때 사진을 찍겠다는 이용권을 사야 된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난 계속 찍었는데 운이 좋았다. 


드디어 궁전을 다 둘러보고 정원으로 나왔다. 창문을 지날 때마다 밖으로 보이는 정원이 아름다워 얼른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계획대로 잘 짜인 도로를 보는 느낌이다. 조깅하는 사람, 꽃을 찍는 사람, 호수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쬐고 있는 사람..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워킹투어 때는 지나가기만 했던 베를린 대성당. 자세히 보고자 다시 찾아왔다. 대성당에 들어오기 전 땡땡이와 밖에서 나눴던 어지러운 대화가 머리 속에서 사라지도록 만드는 경건한 대성당의 내부. 땡땡이는 천주교 신자답게 촛불에 불을 붙였다. 신자는 아니지만 교회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가만히 서서 대성당 내부의 둥그런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대성당 돔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길, 신기한 광경을 발견했다.(그림인지 실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진까지 찍었던 걸 보면 실제라고 생각한다.) 독일 기독교에서 꽤 유명한 분이 돌아가셨는지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벽 너머의 관 안에 한 분이 누워 계셨다. 그리고 그를 향해 사람들이 묵념을 하고 기도를 했다. 독일 기독교의 성인이시겠지만, 죽은 사람이 떡 하니 보이니 기분이 묘했다. 이전에 본 미국 드라마에서 장례식장 정중앙에 돌아가신 분을 모신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그걸 실제로 보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시체'에 대한 거리낌이 우리보다는 적은가 싶기도 했다.

드디어 올라간 대성당 돔. 근처의 TV타워 외에는 높은 건물이 거의 없어 베를린 시내를 둘러보기에 딱 좋다. 맑은 날씨가 자주 없다는 독일 답게 날씨는 그리 맑지 않지만, 그래서 더 독일스러운 풍경이다. 360도 어느 방향이든 독일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어서 참 좋은 대성당의 돔. 곳곳에 칠이 벗겨져 세월의 흔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대성당 돔의 벽 너머로 구불구불 흐르는 라인강이 참으로 운치 있다.


대성당을 나가는 길, 미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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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만난 변태 덕에 잠을 제대로 못 자 기분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얼굴에 와 닿는 베를린 아침 공기는 무척 상쾌했다. 


게스트하우스에 짐만 우선 맡겨두고 베를린 프리워킹투어를 하기 위해 나갔다. 메트로를 찾아가는 길이 꽤나 복잡하다. 이 글씨는 뭐라는 거야? 그리고 표는 또 왜 이리 비싸? 도착하는 곳이 몇 정거장 안 된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아주 대범하게(?) 무임승차를 했다. (덴마크에서 배운 나쁜 버릇이...)

베를린 TV타워

프리워킹투어가 좋은 이유는 나처럼 아무 정보 없이 여행 온 사람들이 아주 간략하게 도시의 역사와 유명한 것과 장소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2시간 내외로 진행되어 시간을 그리 잡아먹지도 않는다. 투어가 끝날 때 웬만하면 모두가 가이드에게 감사의 의미로 '팁'을 주기에 완벽히 무료라고는 할 수 없다. 


약간 길을 헤맨 후 도착한 프리워킹투어 시작 장소는 베를린 관광의 중심지로 보이는 알렉산더 광장 (Alexander platz). 나를 포함해 투어에 있는 사람들은 총 여섯 명. 2명은 뉴질랜드에서 온 6개월째 세계 여행 중인 커플이고, 3명은 호주에서 온 친구들이다. 늘 그렇듯이 새로운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영어 억양이 낯설어 항상 긴장하며 귀 기울인다. 근데 이 오세아니아에서 온 아이들은 지금껏 들은 발음 중 최악으로 못 알아먹을 지경이었다. 왠지 말을 하다가 마는 느낌이랄까...

베를린 성마리아 교회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빨간 벽돌의 성 마리아 교회와 베를린의 TV타워 Fernsehturm를 눈으로 훑었다. 무려 368.06m라는 TV타워에는 전망대도 있다고 하지만, 투어가이드는 너무 비싸다며 추천해 주지 않는다.


베를린 대성당 앞의 잔디밭에는 드러누워 햇볕을 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낭만적인 모습, 하지만 낭만을 모르는 나. 

 '저 아이들은 유행성 출혈열'을 모르나? 뭐라도 깔지...' 

무슨 행사가 있는지 분장하는 사람들, 멀리서 들리는 스코틀랜드 전통악기 소리...

다시 한번 유럽에 있음이 실감 난다.












그렇게 베를린 돔과 5개의 유명한 박물관이 위치해 있는 박물관 섬(서울의 여의도 같은)을 지나 바다가 없는 베를린에서 만난 도시 비치. Charlie's beach. 근처의 찰리 체크포인트의 이름을 딴 곳인데... 파리 비치부터 느꼈던 거지만, 참 없어 보인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 우리는 누구는 맥주를, 누구는 콜라를, 나는 걷는 내내 눈에 띄어 군침 돌게 만들었던 독일의 소시지를 먹었다. 일명 커리 부어스트 (Curry Wurst.) 소시지 위에 케첩과 카레가루를 뿌린 의외의 조합이지만, 꽤 맛있다.

도시의 모래사장, 찰리 비치Charlie's Beach

 "이제 투어는 끝이 났어. 내가 도움이 됐다면, 팁 좀 줄래? 안 그러면 우리 회사에서 날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투어 내내 피곤한 기색을 보이던 가이드는 마지막 한마디로 우리의 뒷담화거리가 되어 버렸다. 


왠지 헤어지기가 아쉬웠던 우리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위치한  파리지엥 광장의 어느 술집에서 맥주를 한 잔씩 했다. 그곳에서 베를린의 로컬 맥주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를 시켜 마시면서 어제까지도 몰랐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 이 뉴질랜드 커플은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 남자가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했단다. 8년을 사귀고, 결혼 약속을 한 후 6개월째 세계 여행 중인 이 커플은 아직도 서로를 참 사랑스럽게 쳐다본다. 보는 사람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이 로맨틱한 커플. 반면 호주에서 온 대학생 친구들은 아직도 10대처럼 큰소리를 지르며 논다.

베르린 대성당 근처에 있던 로마신화 '넵튠'신을 조각되어 있는 분수

이들과 어울려 브란덴부르크 근처 공원을 어기적 거리며 돌아다니던 중, 호주 친구들 중 한 명이 호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낸다. 암스테르담에서 왔다더니 대마초를 가져왔다. 이윽고 약발이 올라오는지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우리랑 같이 놀자며 미친놈처럼 소릴 지른다. 

"Ok."

 그의 소리에 같이 놀자며 순식간에 우리에게 합류한 어느 동양인 남자.

 "I am from Korea."

 "한국이라고요?"


한 달 만에 처음 만난 한국인이 어찌나 반갑던지... 그렇게 만난 친구는 대학교 반수 준비와 입대를 기다리고 있는 나보다 한참 어린 대학생 땡땡이었다. 여행 시작한 지 이제 이틀째인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인종 차별도 당한 것 같고 해서 기분이 별로던 참에 우리를 만났단다. 

"근데 누나 얘네들 뭐라는 거예요?"

"몰라, 나도 거의 못 알아들어. 그냥 대충 듣고 말하고 있어."

브란덴부르크 문

그렇게 밤거리를 일곱 명이서 싸돌아다니면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처음에 쭈뼛거리던 땡땡이가 서서히 주당의 모습을 보이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맥주를 사서 들고 다니다 메트로 안에서 마셨는데 알고 보니 불법이란다. 이 호주 아이들이랑 몇 시간 같이 있으니 나도 살짝 맛이 가는 듯하다. ^^


더운 여름날 밤 한국에서처럼 슈퍼마켓 앞에 설치된 간이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여기가 한국인지 베를린인지 모르겠다. 매너 좋은 땡땡이는 늦은 밤 누나 혼자 가면 안 된다며 게스트하우스까지 날 데려다줬다. 베를린에서 무얼 본 날이 아닌, 새로 만난 친구들과 정신없이 논 첫 번째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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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 한국에서 온 XX라고 하고요, 최근 일을 그만두고 유럽을 여행하고 있어요."


유럽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카우치서핑과 히치하이킹이었다. 특히 카우치서핑으로 유럽을 여행한 여행기를 읽고 나서는 ‘그래 이런 게 진짜 여행이지.’라며 현지인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꿈을 꿨다. 하지만 메시지를 계속 보내도 카우치서핑이 처음이고, 추천의 글 하나 없는 나는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 그렇게 카우치서핑을 아예 포기할 무렵, 한줄기 빛과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안녕, 네가 말한 날짜 괜찮은데, 다른 게스트랑 같이 방을 써야 할 거야. 상관없으면 우리 집으로와. 주소는..."


처음 받아보는 “okay” 메시지에 나는 바로 함부르크 행 버스표를 예매했다. 게다가 다른 게스트도 있다니 어색하지도 않고 더 좋을 것이다. 드디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 카우치서핑이 이루어지는구나!

생전 본 적도 없는 나를, 카우치서핑이 처음이라 프로필에 추천의 글 하나 없는 나를 처음으로 재워준 사람은 함부르크의 천사, 나달 아저씨. 그는 30년 전에 시리아에서 독일로 건너와서 이제는 독일에서 산 날이 더 길다고 했다. 아저씨가 간단히 소개해준 방과 거실의 화이트보드에는 그동안 카우치서핑으로 이 집을 다녀갔던 게스트들이 남긴 행복한 메시지가 남아 있었고, 그건 아저씨 인생의 기쁨인 듯했다.


곧 먼저 와 있던 게스트, 미국에서 온 안나가 도착했다. 함부르크에서의 첫날이라고 아저씨는 인도의 난과 비슷한 시리아 식 애피타이저와 구운 연어, 그리고 감자튀김으로 구성된 맛있는 저녁을 차려 주셨다. 공짜로 재워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근사한 밥까지 차려주시는 아저씨는 사람에게 베푸는 게 그저 즐거운지 시리아 술까지 만드셨다.


“카우치서핑하다 보면 딱 잠만 자고 호스트랑 이야기도 안 하고 가는 게스트들이 있거든. 그 아이들은 참 얌체 같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숙박비를 아끼니까 자기들은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인생은 그게 다가 아니거든.”


아저씨의 그 말에 낮에는 함부르크 시내를 돌아다니다가도 해가 질 무렵이면 바로 집으로 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안나와 함께 셋이서 이야기 했는데 안나는 항상 30분 후에 슬그머니 빠져 방으로 들어가 혼자 놀았고, 심심한 아저씨를 걱정하는 오지랖 넓은 나만 아저씨와 함께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시리아에 산 날보다 독일에 산 날이 더 많아. 독일 시민권도 있지만, 여전히 독일은 남의 나라야. 가끔씩 참 외로워."

                              
4년이란 시간 남의 나라에 살면서 가끔씩 주체할 수 없이 외로웠는데, 30년을 살아도 그건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느낌인가 보다. 독일인과 뿌리까지 섞일 수 없는, 그들과 매일 부대끼며 지내도 채워지지 않는 그 느낌. 나만 느낀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뭔가 위안이 되었다.


아저씨는 아침마다 프랑스 라디오를 들어서, 덕분에 아침 먹는 내내 우리는 ‘봉주르’를 들어야 했다. 아랍어, 독일어, 영어까지 3개 국어를 하지만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은 게 가장 후회된다는 아저씨는 그 후회를 끝내려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단다. 그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영어만으로 벅차다며 매번 제2외국어를 배우려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는데 아저씨를 보니 후회하기 전에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같이 좋은 호스트를 만나서 전 운이 정말 좋아요. 고마워요.”

"고맙다고 안 해도 돼. 정말 나한테 고마우면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기회를 놓치지 마. 작은 행동이지만 그게 우리가 사는 곳을 좋게 만드는 일이야. 선 순환을 만드는 거지."


예수님인가? 아저씨는 먹여주고 재워주신 것도 모자라 교훈과 따뜻한 마음까지 안겨 주셨다. 마음이 한창 감동으로 차 오를 무렵 아저씨는 뜬금없는 말을 했다.


“나 게스트들한테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는데 너 참 매력 있고, 좋은 사람 같아. 여행 잠깐 쉬고 독일에 좀 더 있으면 안 돼? 몇 달 동안 여기서 지내도 돼. 너 어차피 일도 그만 두었다며.”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아저씨는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부담스럽도록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정신이 화들짝 깼다.


“너 그 애랑 결혼할 거야?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어.”


독일인과 뿌리까지 섞일 수는 없어 항상 이방인 같다는 아저씨는 이런 부분에서는 뼛속까지 유러피언이었다.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고마운 호스트라 뭐라 말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피곤하다 말하고 방에 들어갔다.


‘내일 당장 다른 데 찾아서 나가야지.’


하지만 나갈 때 나가더라도, 아저씨에게 이 찝찝한 기분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늦게 집에 들어간 나는 나를 걱정하는 아저씨에게 내 기분을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게 좀 이상한 것 같지만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기분 풀어. 우리 집에 머무는 게스트에게 안 좋은 기억을 주기 싫어. 이젠 너를 게스트로만 볼게.”

 
‘게스트로만? 아이고 아저씨, 제발 좀.’


그 이후 덜 따뜻해진 아저씨는 다른 게스트들 앞에서 일부러 날 놀리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 했고, 그런 모습에 난 괜히 미안했다. 아저씨는 내가 떠나는 날 저녁에는 마지막이라고 맛있는 저녁을 만들었고, 내가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함부르크에 하루 더 머무르라고 했다.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게스트의 아침과 저녁까지 다 챙겨주고 신경 쓰는 호스트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사 왔던 머그잔을 선물로 드리고 함부르크를 떠나는 길, 색다른 여행의 기억을 만들어 준 나달 아저씨를 생각했다. 아저씨 때문에라도 함부르크는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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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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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칠레 하우스(Chile haus)와 하펜시티(Hafen city)를 보기 위해 항구로 왔다. 독일 제 1의 항구이자 유럽 제2의 항구인 함부르크의 랜드마크인 칠레 하우스(Chile haus). 단한 군데의 빈틈도 없이 빨간 벽돌로 촘촘히 쌓아 올린 건물에 과연 철저하게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독일인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인간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내면이 왜곡과 과장으로 표현된,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건물’이라는 설명을 보기 전에도 이미 따스함은 느낄 수 없었다. 아름답고 웅장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가득한 칠레 하우스와, 그 건물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마치 거대한 괴물처럼 나를 내려다보았다.

칠레 하우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은 칠레와의 무역거래로 큰 부를 쌓았다. 성공한 무역상이 지은 건물이 가장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란 것이 보여주듯, 빨갛고 네모난 건물이 바다의 한 면을 둘러싸듯 들어서 있는 이 일대는 모두 상품 창고와 무역 회사였다. 괜히 부산에 온 듯 함부르크에 더 정이 갔다.

오래 된 건물에서는 최대한 건물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모든 물건을 옥상에 설치된 도르래를 이용해서 옮긴단다. 무엇보다 독특한 건 문도 없고 정지하지도 않는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눈치를 보다 뛰어들어야 한다. 아름다운 옛 건물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하지만 목이 없는 사람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됐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먼저 차를 수입해 판매했다는 곳은 이제 근사한 카페가 되었다. 터키인이 운영하는 페르시아 카펫 상점이 있고, 콜롬비아에서 직수입한 커피콩으로 커피를 만드는 유명 카페가 있었다. 그 어느 곳보다 수입품을 빠르게 입수하는 곳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하펜시티 근처는 이국적인 상점으로 가득했다.

‘항구 도시’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유흥가는 이곳 함부르크에도 어김없이 존재한다. 함부르크의 거대 어시장 뒤편의 상파울리(SaintPauli) 지역을 지나가면 ‘청소년 통행 금지’ 표지판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함부르크 최대의 유흥가 레파반 (Reeperbahn)이 나타난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야한 간판은 오히려 암스테르담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오후의 햇살 아래 서 있는 간판은 불편해 보였지만 구경하는 재미만큼은 쏠쏠했다. 그러다 그 길의 바로 끝에서 적당히 벽처럼 보이고 싶은 벽과 마주했다.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갈 때처럼, 벽 너머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함부르크의 홍등가로 들어가는 입구. 18세 이하와 여자는 이 너머로 갈 수 없다는 경고가 커다랗게 붙어 있다. 호기심에 살짝 넘어갔다가 출근 준비 중인 여자와 눈이 마주쳐 황급히 돌아 나왔다.

초창기 비틀즈는 5명이였다고 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한 명이 더 서 있다.


사실 이 곳은 하룻밤의 유희를 찾는 사람들뿐 아니라 비틀스 팬들의 성지기도 하다. 이 민망한 간판이 즐비한 거리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비틀스 광장’으로 불리고 비틀스 철제 조형물까지 설치되어 있다. 그 비틀스 조형물이 손바닥보다 작은 속옷만 걸친 여자들의 사진을 마주하고 있는 게 참 우스웠다. 영국에서 건너 온 가난한 무명밴드 비틀스는 1960년부터 2년 간 이 곳 펍에서 노래하고연주하며 실력을 쌓았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영국에서 건너온 가난한 청년들에게 이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스트립클럽과 성인 쇼가 난무하는 이곳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을 것 같다. 전설로 불리는 밴드의 시작은 술 취한 뱃사람들이 드나들던 허름한 펍이었다. 그 대단한 비틀스가 이 거리에서 묵묵히 실력을 기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도 무명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위안이 되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든, 연습하고 실력을 쌓다 보면 기회가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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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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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상파울리와 레파반 지역만 보고는 함부르크는 옛 건물이 많이 없는 줄 알았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큰 성 미카엘 성당과 그 주변 건물들, 시티홀 등 중세 느낌이 물씬 나는 건물들이 많았다.

함부르크 하루 일정의 처음을 언제나 장식하는 알스터 호수를 출발점으로 해서 5분도 안 되는 곳에 위치한 함부르크의 시티홀. 브뤼셀에서 봤던 시티홀이 순간 떠올랐는데 그보다 훨씬 크고 넓은 느낌이다. 그리고 더 화려한 느낌. 중앙의 홀은 함부르크와 시티홀의 역사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었고 그보다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광장과 분수대가 반짝 거리고 있었다.

보험이 발달하게 된 계기는 무역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면서 상품을 실은 배가 난파당하거나 해적을 만나는 등 의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배웠다. 배 모형물과 안전한 항해를 책임지는 여신의 모형물이 디자인되어 있는 오래된 보험회사 건물. 예전의 역사 수업 시간이 생각난다. 실제로 이 일대는 부산의 중앙동처럼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러 회사가 밀집해 있는 구역. 적당히 어수선한 그 분위기가 부산의 부둣가와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중앙동과 남포동 일대를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이후에 독일의 다른 도시인 베를린, 예나, 슈투트가르트를 거쳤지만 함부르크가 가장 좋았던 건 아무래도 바다가 있기 때문인 듯싶다.

 

주변에는 주거지역도 꽤나 많이 보였는데 네덜란드에서 보았던 좁은 집들이 바다 주변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풍경이 펼쳐져 아시아에서 온 여행객에게 좋은 볼거리를 다시 선사해 주었다. 이런 벽돌집들은 언제 보아도 기분 좋아진다.

100년도 더 되었을 구식 엘리베이터가 아직 운행하고 있는 어떤 건물 안. 엘리베이터에는 문이 없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하체만, 혹은 올라가고 있는 상체만 보여 상당히 기괴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리고 Stop 버튼이 없어 놀라가는 때를 기다려 뛰어 올라타거나 뛰어내려야 한다. 난데없이 운동하는 느낌? ^^;


꾸물거리는 날씨와 왠지 잘 어울리는 벽돌색 건물을 따라 계속 걷다가 함부르크에서 가장 큰 성 미카엘 성당을 만났다. 1,600년대에 지어진 건물답게 파란만장한 역사를 함께한 성당은 화재에 휩싸이기도, 벼락을 맞기도 하면서 여러 차례 재건축되어야만 했다. 실제로 성당 종탑 부분이 본래의 벽돌 건물과 달리 철제로 지어진 이유도 더 이상 불에 타지 말라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것이다.

성당 안에서 운 좋게도 오르간 연주 연습을 들을 수가 있었다. 간단한 건반 터치만으로도 굉장히 웅장한 느낌. 처음 듣는 오르간 소리에, 소리에 압도당하는 아니 압도보다 무언가 나를 내려보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든다. 마침 내리기 시작하던 비를 피해 성당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까지, 성당 안에선 작은 오르간 콘서트가 열린 듯하다.


긴 계단을 통해 올라간 성당 종탑에서는 함부르크 시내 전경을 어느 방향에서나 즐길 수 있었다. 어느 방향이나 물을 끼고 있는 도시. 성당에 들어올 때 조금씩 내리던 비는 탑에 올라왔을 때는 바람과 함께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더 오래 시내 전경을 즐기고 싶었으나 한기가 돌기 시작하는 몸은 성당 안에 다시 들어가자고 꼬드겼고, 결국 나는 성당 지하의 크립트(Crypt, 무덤)까지 돌아보고 말았다. 건물 안에 무덤이 있는 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봤지만, 이렇게 매주 미사가 열리는 곳 아래에 무덤이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성직자들과 함께 부유한 귀족들은 이곳 성당 지하에 묻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바깥 아무 데나 묻혔다. 부유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그렇게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렇게 종탑, 크립트까지 섭렵했건만 비는 아직 그치지 않았다. 마침 배가 고파 근처 작은 가게에 들어가서 소시지가 들어간 빵 중 아무거나 골라 대충 배를 채웠으나, 비는 더 거세게 내린다. 아무래도 비 맞을 각오를 해야 될 듯 싶다. 젖어가는 지도를 들고 요한 브람스 박물관을 찾아갔다. 브람스라는 이름은 어릴 때 피아노를 치면서 들었던, 그의 곡을 연주하기도 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다. 피아노 치는 것 참 좋아했는데 그것도 한 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잊고 있던 예전 기억들, 감성들이 살아나고, 잊고 있던 이름들도 함께 떠오른다. 그렇게 어린 시절, 6년간 배웠던 피아노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려 브람스 박물관에 갔다.

몇백 년 전의 악보와 피아노가 이렇게 보존되어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연주했던 그 음악.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귀는 아직도 그 음악을 기억하고 있다. 여행마저도 내 기억에 의해 이렇게 주관적으로 그려지는데 여행 가이드 북을 열심히 보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메트로 역이 어딘지 알음알음 찾아서 다시 알스터 호수로 갔다. 비 오는 호수가 보고 싶어서. 운동화는 이미 다 젖어 발도 시려오고, 머리도 이미 비에 홀딱 젖었지만 우산 없이 이렇게 비를 맞는 게 참 좋아 계속 그러고 싶었다. 비에 아랑곳 않고 조정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요트도 있었다.

자유롭게 비를 맞을 수 있는 권리를 마음껏 누리는 하루여서, 더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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