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뚫고 도착한 여기는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는 파리와는 다른 도시라는 것을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으며 그렇게 베르사유에 도착했다.

넓다, 넓어.


문조차도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금이다. 정말 왕의 절대권력에 대한 욕구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곳도 어김없이 관광객이 많았지만, 뮤지엄 패스로 유유히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로크 양식? 로코코 양식? 말도 많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 알아듣고 싶어 지는 마음이 들 날이 오길 바라며 궁전의 입구로 들어서려는 찰나!

한쪽 팔이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럴 수가 생전 처음으로 새똥을 맞았다! 그리고  그곳은 베르사유 궁전. 실없는 웃음만 계속 흘리며, 소매가 없는 팔에 떨어져 아주 다행이라는 말을 날리며 화장실로 직행했다. 앞으로 내게 베르사유 궁전은 새똥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루이 14세가 파리에 있는 보 르 비콩트 성의 아름다움을 질투하여 베르사유 궁전을 지을 때 무조건 그 성보다 크고 아름답게 지어라고 했다니, 그의 질투 덕에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베르사유 궁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각 방마다 배치된 화려한 가구들과 조각품들. 벽 한 면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그림과 천장화. 대리석으로 점철된 벽과 바닥. 과연 화려함의 극치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베르사유 궁전. 태양왕이라는 별칭답게 궁전의 곳곳에서 태양의 모양이나 태양신 아폴론과 관련된 무늬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아폴론으로 보이는 아래 문 손잡이도 꽤 귀엽다.


왕비의 침실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썼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죽은 불쌍한 인물일 뿐인데, 외국에서는 왜 그렇게 그녀가 유명하지?"

친구의 물음에 내가 더 의아해졌다. 정말? 오히려 프랑스에서는 그녀가 그리 유명하지 않다는 말이야? 왜 그럴까 생각해 보던 나는 "베르사유의 장미" 만화를 말해 주었다. (초등학교 때 정말 가슴 아프게 봤던 그 만화. 아, 추억의 오스칼!) 그 만화 덕분에 초등학생 때부터 이미 마리 앙투아네트니 루이 16세니 프랑스혁명 등에 대해 들어봤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해 놓고 보니 뭔가 부족하다. 그러게 왜 유명할까?

만화에서 그녀는 오히려 바보같이 순진하고 선량한 인물이었던 걸로 기억되고, 그녀를 악명 높게 만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세요."라는 말은 그녀가 내뱉은 적도 없기에 오히려 억울한 인물일 뿐이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프랑스 혁명의 극적 효과를 위해 그런 말을 지은 듯 싶다.

저 무거운 샹들리에가 이렇게 천장에 멀쩡이 붙어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놀랍기도 하고 무섭다. 사실 샹들리에를 볼 때마다 난 『소년탐정 김전일』만화책에서 본 샹들리에를 이용한 살인사건이 자동반사로 항상 떠오른다... (하핫 ^^;)

그시대 최첨단의 예술이 집약되어 있을 베르사유 궁전. 그 당시 최고의 예술가들이 와서 만들었겠지. 그러고 보면 그 시대 살았던 예술가들은 한편으로 고달프지 않았을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이 아닌 왕이 혹은 교황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그려냈으니.. 하긴 그렇게 따지면 현대를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 고용주가, 자본을 가진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얻는 것을 보면 삶은 지금도 그때도 묘하게 연결되는 것 같다.

사람이 가장 많은 이 곳은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가장 유명한 유리의 방이다. 근데 유리가 많이 낡아져서 인지 처음엔 유리의 방인지 몰랐다. 유리창과 그 맞은편마다 붙어 있는 거울이 빛을 서로 반사하며 이 방을 얼마나 눈부시고 크게 보이도록 만들었을지... 루이 14세는 태양왕인 자신의 위엄을 보이려 국빈을 맞거나 행사를 할 때 항상 이곳에서 했다고 한다.

나폴레옹 1세. 역시 로마 황제가 입고 있던 것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한 켠에는 이렇게 그 당시 귀족들의 그림도 같이 걸려 있다. 건물에 이름 새기는 것, 초상화 걸어두는 것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파리에서 떨어진 곳에 궁전을 지어놓다 보니 그 당시 귀족도 전부 베르사유로  넘어왔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힘의 이동이 좀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그때부터 시작된 건지는  몰라도 베르사유가 현재도 좀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기 전 이 도시의 시장이었다고 하는데, 대선 전에 서울 시장을 '거치는'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 정치가 문득 떠올랐다.


드디어 밖으로 나와 방대한 정원을 구경할 시간.

궁전 바로 앞마당에서 찍은 사진인데 아직도 정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술래잡기 하기에도 딱 좋아 보이는 그런 정원. ^^;

성 내부만 입장료를 받고, 이렇게 정원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금요일 오후라 그런지 벌써부터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쉬고 있다. 자전거 타고 달리다가 느닷없이 풀밭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는 사람을 보며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이렇게 자유로이 드나들며 운동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음에 동네 주민들이 살짝 부러워 지기도 했다.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 4편 『해리포터와 불의 잔』의 미로가 생각나게 하는 이곳. 이 미로 숲 역시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이다. 사람 키의 몇 배나 높은 미로 숲을 나무로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유명한 예술작품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내게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귀족들이 이곳에서 밀회를 즐기기도 했다니, 파리 사교계의 시작이 바로 여기인 듯싶다.

그리고 정원의 끝. 시끌벅적한 풀밭과 호수를 지나 울창하고 한적한 나무숲으로 친구를  따라왔다. 개인이 기증하는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 숲에 오직 한 나무, 그와 그의 친구들이 한 친구의 이름으로 기증한 나무를 찾으러. 몇 달 전 친구 중의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녀가 평소에 좋아했던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 그녀의 이름으로 친구들이 나무 한 그루를  기증했다고 한다. 그때 나무를 확인 못했던 터라 이번 기회에 나무를 찾고 싶다는 그를 도와 어떤 나무 일지 열심히 수색해 보았으나 결국 찾지는 못했다. 항상 세상의 슬픔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여 슬프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던 그녀는 저 먼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에도 항상 가슴 아파했단다. 그 선한 마음이 더 아프게 내게 다가온다. 얼마나 아플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당하고 폭력적인 일들을 진정 가슴으로 느끼며 나의 무기력을 확인해야할 때 오는 그 좌절감은...  이제는 편안한 정원의 나무를 등받이 삼아 행복하게 휴식하기를 바라며 베르사유 궁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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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

파리에서의 넷째 날, 드디어 파리의 상징 에펠타워를 보러 가는 날 :)

메트로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 저 멀리 에펠타워가 보인다.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돼. 파리에 오는 관광객의 99%가 오는 곳이다. 오늘도 날씨가 여전히 좋다. 셔츠를 벗고 풀밭에서 누워 파리 햇살에 에펠탑을 배경으로 일광욕 중이다. 정말 이 날씨를 온몸으로  즐기는구나. 

이 잔디밭에서 가끔씩 작은 공연도 열리고, 여름밤에는 시민들이 돗자리와 맥주를 들고 삼삼오오 이곳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적당히 가벼운 그 여름밤의 공기가 생각나서 괜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에펠탑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내게 다가오는 흰 종이를 들고 있는 집시 언니들. 셀카봉을 들고 어기적 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상인들. 그렇게 걸어 에펠탑에 도착하였다. 밑에서 보니 영락없이 그냥 철탑이다. 처음 에펠탑이 지어졌을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했고, 소설가 모파상은 파리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이 탑이 싫어 에펠탑 1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단다. 탑은 변한 게 없는데, 사람들이 변해서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라며 이 탑을 찬양한다. 탑 입장에서 우리는 얼마나 가벼운 인간들일까. ^^ 

지난 월요일 오페라 가를리에에 갔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프랑스 사람들 건물에 사람 이름 새기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에펠탑을 만들 당시 수고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이렇게 탑에도 새겨져 있다. 그 어떤 보상보다도 탑에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 엄청난 보상일 듯하다.


에펠탑 꼭대기로 올라가는 입구의 길은 이미 길다. 2,3 시간은 기다려야 될 듯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만큼 기다려서 올라가야 할까?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일단 줄에 서서 기다려 본다. 성수기 중에서도 극성수기인 지금 그중에서도 엄청난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있다. 줄은 서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극심한 고민이 왔다 갔다 한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이 좋은 시간에 파리에서 줄이나 서고 있어야 할까. 이런 결정장애 류의 고민에 기분이 금세 가라앉았다. 나도 참, 몸이 줄을 서고 있으면 마음이라도 그냥 편하게 먹고 있으면 안 될까... 

2시간 후, 겨우 4층까지 올라갔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 쓸데없다는 걸 깨달았다. 4층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 풍경은 어마어마했다. 1층은 너무 더웠는데 4층만 돼도 바람이 불어와 구경하기 더없이 완벽한 때였다. 역시 높은 건물이 없어서 바람이 시원시원하게 불어 대나 보다. 그러면 꼭대기는 얼마나 시원할까? 다시 그렇게 꼭대기로 올라가는 줄에서는 기다림에 대한 지루함이 아닌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올라가는 길, 여기서도 보이는 "나 여기 다녀감"류의 낙서들. 이런 낙서는 정말 만국 공통의 문화인가 보다. 쯧쯧

그렇게 3,40분을 더 기다린 끝에 드디어 에펠탑의 꼭대기에 다다랐다. 밑에서 보다 바람이 더 강해 춥기까지 하지만 햇살은 너무 따뜻하고, 하늘도 맑다. 가만히 파리 시내 전경을 보고 있자니 2시간 반가량의 기다림이 그만한 가치로 내게 다가왔다. 며칠 전 가 봤다고 몽마르트 언덕과 개선문이 눈에 들어온다. 

에펠탑 꼭대기에는 이렇게 샴페인을 파는 자그마한 바도 있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마시는 샴페인은 어떨까 싶어 (가격에 흠칫한 후) 한 잔 사서 마셨다. 양도 많지 않고, 멋있지 않은 플라스틱 잔에 주지만 그래도 풍경을 안주 삼아 맛있게 들이켰다.

도시의 미관을 굉장히 중요시 여겨 고층건물의 건축을 자재한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오래된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노력 덕분에 파리는 파리만의 아름다운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파리를 찾는다. 파리에서만 볼 수 있는 그 분위기 때문에. 분명히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가 있을지언데 (분명 6.25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기도 했겠지만) 개발의 명분으로 많이 파괴된 것 같아 씁쓸하다. 


센강도 한강만큼 다리가 많고, 길게 나 있는 가로수들도 보기가 좋다. 멀리 파리의 비즈니스 중심지인 라데팡스가 보인다. 파리에서 유일하게 고층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곳인데, 역시나 파리 시민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곳이란다. 내가 가 보고 싶다고 하니 절대! 가 볼 필요가 없다고 친구가 말린다. 그 앞 초록 공원 안에 덩그러니 위치한 하얀 건물은 루이비통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라던가...



동화책에서 그대로 나온듯한 원색의 차. 너무 귀엽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서 만난 이 귀여운 차는, 가위로 차만 오려서 도로에 붙여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도 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하다.


그리고 드디어 만났다. 돈 받는 유럽의 화장실. 물론 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은 나는 공짜로 사용 가능하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은 무조건 50센트를 넣어야만 한다. 에펠탑 근처라 워낙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서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한국인의 정서상 화장실 이용한다고 돈을 내라는 건 참 정 없는 짓이다.

그리고 15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전쟁박물관과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다는 앵밸리드 (Hôtel National des  Invalides)를 아주 짧게 관람한 후 근처의 판테온으로 갔다. 도보로 이동 가능해서 참 좋다. ^^  

맨 꼭대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교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지하 묘소, 사령부 등 몇 번에 걸쳐 그 용도가 바뀌었다가 마침내 프랑스 위인들의 묘지로 사용되고 있는 판테옹. 1층에는 2 차세계대전 당시 위인들을 위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역시 왕실에서 지은 교회인 만큼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곳곳에 기독교와 관련된 회화와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에 대해서 많이 모르는 나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퀴리 부부 내외, 빅토르 휴고, 에밀 졸라 그들도 역시 이곳 판테옹에 안치되어 있다. 특히 퀴리 부인은 여성 최초, 그리고 최초로 두 개의 다른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라서 더욱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폴란드 태생이었는데 파리에서 공부하며 주로 거주해서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한다. (폴란드에서는 뭐라고 안 하나?)



그 어떤 위인보다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분도 여기 묻혀 계신다. 성함은 잘 모르지만, 점자를 최초로 발명하신 분이라고 한다. 새삼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세상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이 분은 시각 장애인에게도 글을 알려주고자 점자를 발명하였고, 그 점자를 통해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그중에 한 명이 헬렌 켈러이고, 그녀는 지구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이렇게 보면 정말 중요하지 않은 일이 하나 없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해도 난 내 사명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판테온 내부에는 이렇게 아직 빈자리가 있는데, 미래 프랑스의 위대한 사람을 위한 자리라고 한다.

판테온에 안치되는 사람들은 이미 장례를 치웠음에도 다시 국장을 치르는데 이런 이벤트가 사람들로 하여금 프랑스에 더 자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 같다. 다른 곳에 국립묘지가 당연히 있겠지만, 판테옹이란 곳에 특별히 시신을 안치하면서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보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듯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뒤, 프랑스는 당시 독일 나치 정부를 도왔던 모든 사람들을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어도- 모두 처단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역사의 잘잘못에 대해 칼 같은 평가를 내리는 데서부터 프랑스의 힘이 나오는 게 아닐까? 프랑스인들의 자부심 중 일정 부분도 이런 곳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한편의 위인전을 읽고 나온 듯한 판테옹에서 5분 거리에는 뤽상부르 공원이라는 예쁜 공원이 있다. 뤽상부르의 철자는 룩셈부르크와 같은데 이 공원과 그 나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근데 왜 이렇게 공원 이름이 귀에 익지? 알고 보니 김어준 아저씨가 유럽  배낭여행 중에 이 뤽상부르 공원에서 노숙을 했던 그 공원이었다. 그 강연이 참 재밌어서 몇 번을 들었더니 공원 이름마저 외웠나 보다. (참고로 그 강연은 청춘페스티벌 https://www.youtube.com/watch?v=1zmnoElezRg )

나꼼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엉뚱하게도 난 이 공원에 앉아서 난 김어준 아저씨와 그의 강연을 생각했다. 자신의 결대로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지... 김어준  아저씨처럼 살면 인생에서 최소한 후회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어울리지 않게 야자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 아이는 과연 살아있는 걸까?


여행의 묘미는 발길 닫는 대로 아무 곳이나 걷는 것. 가끔 길을 잃으면 어때. 꼭 그렇게 길을 잃어 지나가는 곳에서 뜻밖의 보물 같은 장소나 물건이나 혹은 사람을 만난다. 

뤽상부르 근처를 걷다 보니 근처의 소르본 대학가까지 오게 되었다. 대학교 근처라 역시 술집도 많다. 그래, 대학생이라면 술을 마셔야지! :p

누구나 대여하여 사용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자전거와 벽돌 바닥 길. 운치가 있다. 그리고 이 사람, 창문에 걸치고 앉아서 주위 신경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막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스케치북을 펴고 바로 스케치를 시작한다.

영등포구  크기밖에 안 된다는 파리에서는  400m마다 지하철역을 하나씩 찾을 수 있어 길 잃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가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이동하여 친구를 만나기로 한 리퍼블릭 광장으로 향했다. 파리의 모든 데모와 집회는 여기서 열린다는 리퍼블릭 광장.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지난달 IS에 의한 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추모 행사를 했다. 지난달 파리 테러가 난 직후의 광장의 모습은 내가 보질 못했지만, 적어도 7월 말 이곳은 여전히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었다. 해당 관청에서는 동상을 잘  관리하지 않나 보다. 더러운 상태로 방치하는 건지 아니면 치워도 시민들이 계속 낙서를 하는 건지...

테러는 일어나도 사람들은 여전히 기타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JU SUIS CHARLIE (나는 샤를리다.)
굳이 동상의 입에 이럴 필요까지야...


저녁에는 싱가포르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말 파리로 돌아간 친구를 만났다. 다시 돌아온 파리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단다. 하지만 청년실업률이 높은 프랑스에서 그는 어렵지 않게 다시 일자리를 구해 파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다시 싱가포르에 갈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는 그에게 아는 헤드헌터들의 연락처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파리에서 사는 게 왜 힘들어?"

"여기서 집 사려면 얼마나 드는지 알아? 그리고 일자리도 많이 없고,,,,"

"그래도 너 지금 파리에서 일하고 있잖아. 그리고 싱가포르 집값 비싼 건 너도 살아봐서 알잖아?"

"그래도 그땐 회사에서 지원해 줬었으니까."


그 아이가 싱가포르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잘 와 닿지 않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사는 게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가?

(이건 나도 공감하지만) 외국에서 살면 항상 휴가 온 느낌이 드는데... 그 느낌이 좋은가? 심지어 회사에서 엄청 스트레스 받고 집에 돌아가는 그 길에서도 홀리데이 느낌이 난다. 그리고 그 느낌이 나의 스트레스를 조금  경감시켜줄 때도 있다.

아님 그냥 다시 프랑스를 떠나고 싶은가?

싱가포르를 떠날 때는 분명 싱가포르가 지겹다고 했었는데 왜 다시 가고 싶어 할까?


나도 싱가포르를 떠났는데 막상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난 싱가포르를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 든다.

내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어디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하지만 싱가포르 살면서 배운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어디 사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 

결국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환경도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을 싱가포르에서 온몸으로 느꼈기에..



Posted by 돌아온싱언니

아침 10시 반쯤 노트르담 대성당에 도착했다. <노트르담의 꼽추>로 유명한 그곳.


벌써 줄이 이렇게나 길다. 역시나 오늘도 이상하게 추운 날씨에 덜덜 떨며, 그 줄의 끝에 나도 동참한다. 성당인데, 그 크기가 정말 엄청나다. 예술에 대해 아는 것 없는 내가 봐도 정말 웅장하고, 대단한 건물이다. 건물의 크기에서부터 그 당시 기독교가 왕권과 더불어 얼마나 강력한 종교였는지 짐작이 간다. 게다가 이 대성당에서 황제의 결혼식 등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행사들을 치렀다고 하니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곳.

어제처럼 이곳에서도 역시 한국어가 잘 들린다. 휴가철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삶이 질이 정말 많이 향상되었다는 게 이런 곳에서 보이는 듯하다.

감사하게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입장료는 무료 :)

줄서서 기다리기 지루했던 아이가 그만 비둘기에게 포위 당하다

아무리 지루해도 그렇지. 아이가 비둘기들에게 포위당했다. 심지어 밟히고 있다. 아이에겐 순수한 동심으로 비둘기와 함께하는 시간이지만, 내게는 그저 세균 덩어리 비둘기들. 도시의 비둘기가 얼마나 더러운데...(ㅋㅋ) 참고로 파리에서 비둘기는 "Flying rat"(날아다니는 쥐)이라고 불린단다.


생각보다 짧게 40여분 간을 기다린 끝에 성당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정말 들은 대로 유럽 성당의 스태인드 글라스는 대단하다. 각 창마다 성경의 인물들로 꽉꽉 채운, 단 하나도 중복되는 그림 없는 하나하나가 놀라운 작품들.



잔 다르크 동상

성경 속의 인물이 아닌데도 잔 다르크 동상이 대성당 안에 있다. 늘 비장한 그 모습에서 뭔가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잔 다르크.

운 좋게도 미사 시간에 겹쳐 미사 드리는 모습을 잠깐 볼 수 있었다. 관광객들도 누구든지 원하면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데,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것도 참 기억에 남는 일일 게다. 나도 교회 열심히 다니던 시절에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카에 여행 가서도 (교회를 못 찾아서)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었다. 1800년대에 네덜란드가 말레이시아를 지배할 때 지어진 성당에서 드리는 미사였는데, 기억에 남는 일이다.

그나저나 건물 내부의 높이가 어마어마하다. 경건함과 존경이 아닌 위압감이 들 정도의 높이다. 이 건물의 높이만큼  강력한 왕권과 신권 아래에서 그 당시 백성들은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과 베드로 앞에 나타나신 모습을 나타낸 작품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 속 인물 베드로가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니, 왠지 귀엽다. 이때는 몰랐다. 앞으로 유럽을 다니면서 바을과 베드로를 얼마나 많이 만나게 될지 이때는 미처 몰랐다.


유럽 여행 무사히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는 성당을 나와 성당의 꼭대기로 올라가려고 해 보았으나, 줄이 너무 길어서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밀려오는 죄책감. 항상 어떤 관광지를 제낄 때마다 묘하게 느껴지는 이 감정은, 미디어가 나에게 주입시킨 "꼭 가봐야 할 곳", "꼭 먹어봐야 할 것"에 것을 하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불성실함 때문이리라.

줄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쓰는 대신, 노트르담 대성당이 위치한 시테섬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시테섬과 본토(?) 파리를 연결하는 다리에 이렇게 엄청난 양의 자물쇠가 달려있다. 정말 한 치의 틈마저도 모두 이용하여 빼곡히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도대체 누가 이걸 처음 시작했을까? 이젠 어디를 가도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싱가포르 클락키에도 몇 달 전에 생겼었으니...

이 자물쇠를 단 사람들 중에 과연 얼마나 아직도 서로 사랑하고 있을까... 이런 열쇠를 볼 때마다 항상 드는 의문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이런 자물쇠들을 보면 그냥 다 끊어버리고 싶다. "다 헤어져 버려라!"를 외치면서. 

대성당 근처의 좌판에서 예전 책이나 그림, 포스터 등을 팔고 있다. 강따라 늘어선 고서점들이 운치 있다. 사야 된다는 부담 없이 마음껏 볼 수 있도록 내가 눈길을 주든 안 주든 주인들은 사람들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고서점과 어울리는 하얀 머리의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물 끄러니 길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다.

크아아아 퀸QUEEN이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느낀 그 향수, 왠지 편한 느낌이 여기도 있다. 비록 내가 아는 가수와 영화의 포스터보다는 모르는 내용이 더 많지만, 그래도 오래된 것이 주는 편안함과 아련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좌판 고서점을 뒤로 하고, 시테섬 근처에 위치한 역시 스태인드 글라스로 유명한 생샤펠 성당에 도착했다. 노트르담 대성당보다는 덜 하지만 역시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 성당에서는 입장료를 받네. 기준이 뭐지? 입장료 대신 4일간 파리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에 기다릴 필요 없이 입장이 가능한 뮤지엄 패스(Museum pass)를 구입했다. 그리고 4일간 요긴하게 사용했다.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다른 분위기로 이렇게 천장을 꾸며 놓았다. 색색깔의 천장이  성당이라기보다는 큰 궁전의 방 하나와 같은 그럼 느낌이다.


예술에 무지한 내 눈에는 생 샤펠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나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비슷해 보이기만 할 뿐이다. 정문 위 섬세하게 조각해 놓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이곳에 와서야 어릴 때 RPG 게임을 하며 내가 열심히 죽여댔던 가고일이라는 괴물이 무엇인지 마침내 여기서 알게 됐다.  저승세계에 살면서 빗물을 모으는 풍요의 괴물이라고 하는데, 교회에 경외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혹은  악령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가고일을 이렇게 지붕 위에 조각해서 두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각종 게임들의 괴물들은 고전에서 모티브를 얻어온 게 참으로 많다. 가고일도 그렇고, 세이렌, 오크, 드워프, 트롤 등등... 역시 고전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들의 인생에 들어와 있다.

성당 옆에는 법원이 있었는데 법원 건물도 아주 그냥 끝내줬다.

추위를 피하고(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구름이 끼어 추웠다.) 점심을 먹으러 아무 식당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Crepe이 너무 맛이 없었다. 주변 관광지 믿고 맛에는 신경을 쓰지 않나 보다. 하지만 춥고 배고파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역시 관광지 주변의 식당은 아무 데나 덥석 들어가면 위험하다.


그리고 이제 메트로를 타고 말로만 듣던 그 몽마르트로 간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얼마나 소매치기가 골칫거리이면 지하철역에서부터 이런 방송을 할까? 하지만,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바로 그런 방송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된다. 몽마르트까지 가는 길이 정말 사람으로 빽빽해서 소매치기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게다가 이 길이 맞나 저길이 맞나 어리바리한 관광객으로선, 소매치기범들에게 밥이 되기 십상일 듯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여쁜 자태를 드러내주는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

사크레쾨르 성당까지 올라가는 길에 만나는 수많은 장사꾼들. 이렇게 짝퉁 가방을 '길'에서 파는 곳은 태국과 베트남 정도일 줄 알았는데 이곳 유럽도 아니 관광객이 모이는 곳에 예외는 없나 보다. 그리고 이 모든 가방에는 "made in Thailand"가 적혀 있다.:p 전 세계 짝퉁 가방 시장의 규모도 상당한 가보다. 그리고 선물이라며 팔찌를 채워주려고 달려드는 많은 흑인 사람들도 불법 장사꾼이다. 팔찌를 차는 순간 돌변하여 돈을 지불하라고 요구한다. 이곳에서 불법으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흑인이라 더 씁쓸했다. 흑인 프랑스인인지 아니면 밀입국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흑인이 이렇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경제와 삶의 질 차이가 느껴진다. 이 차이가 과연 없어질 날이 오기는 할까?

언덕 위에 다 올라와 보니 보이는 파리 시내 전경. 역시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이 넓게 보이는 것이 마음에 딱 든다! 

성당 안에서 사진을 못 찍어서 좀 아쉽지만, 우선 사크레쾨르 성당을 돌아보았다. 각 나라별로 기독교를 위해 순교하신 분들의 사진과 소개가 있는 점이 좀 특별했다. 우리나라의 김대건 신부님도 이곳에 소개되어 있었는데, 프랑스인 신부를 처형했다는 명분으로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했던 이야기를 프랑스인에게 해 주니 돌아오는 말.

"정말? 우리가 한국에 쳐들어 갔었다고? 뭐 놀랍지도 않네. 우리 하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서."


아무튼 내가 믿는 어떤 것을 향해 온몸을 다 던지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항상 그런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그들의 기에 눌리는 그런 기분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인생에서 그런 것이, 그런 때가 한 번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당에서 다시 몇 백개의 계단을 올라 이렇게 샤크레쾨르 성당의 꼭대기, 몽마르트르의 꼭대기에 다다랐다. 정말 파리 시내가 다 보인다. 저기 에펠탑도 보이네. 이곳에서 신을 섬겼던, 섬기는 사람들.. 경건한 마음으로 이 계단을 올라 이곳에서 도시를 보며,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

곡대기의 맞은편 교회 종탑

그렇게 성당의 꼭대기에서 내려와 다시 내려가는 길, 아름답게 노래하던 몽마르트 시스터즈와

그 어떤 도구 없이 오직 연필과 스케치북만으로 아이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거리의 화가들.


몽마르트, 예술가들의 성지였던 이곳에서 고풍스러운 예술의 분위기를 잔뜩 기대했지만 역시 관광객들로 온통 북적대는 통에 많이 느끼지는 못했다. 거리의 예술가보다 더 많은 기념품 상점들과, 감성 없는 카페들.

전설로 남아있는 엄청난 예술가들.  모파상, 세잔, 고흐 등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대화를 나누고 술을 마시던 그들의 인생을 이야기하던 곳이었다는 그 느낌을 조금이나마 받고 싶었는데 그 느낌은 소음에 묻혀 버렸다.

유럽 예술의 수도가 최근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파리의 비싼 집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젊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물가가 저렴한 베를린으로 옮겨가 최근 젊은 예술가들은 베를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하니 베를린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몽마르트 일정까지 마치고, 오늘 저녁 약속이 되어 있는 일행들을 만나러 갔다.  완벽한 프랑스 정통 코스요리. 참 감사하게도 잘 얻어먹고 다니고 있다. 메뉴판을 열심히 공부하다가 문득 나의 메뉴판과 남자가 보고 있는 메뉴판에 다른 점이 있단 걸 알았다. 남자의 메뉴판에는 각 요리의 가격이 표시되어 있고, 여자의 메뉴판에는 가격이 없었다. 


왜 그런고 하니, 남성에게 돈 내라는 뜻이란다. 농담으로 다른 분들에게 "여기는 천국!"이라고 말했는데..

그냥 좀 씁쓸하다. 요즘 레스토랑은 모두에게 동일한 메뉴판을 거의 다 쓰지만, 예전에는 다 이렇게 따로 나눠주곤 했단다. 이게 여성을 배려하는 건지, 아니면 (예전에는 여성이 경제력이 없었으니) 돈을 낼 능력이 없으니 남자가 사 주는 밥을 잘 먹어라는 건지... 확실히 유럽에서도 여성의 권리가 이렇게 높아진지 얼마 안 되었구나. 하긴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게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  레스토랑 메뉴판이 바뀐 역사도 그리 글지 않을 듯하다. 


아뻬오(Apero)부터 애피타이저, 메인 메뉴, 디저트, 치즈 그리고 커피까지... 장장 3시간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이런 긴 저녁식사에서 프랑스 사람들의 여유로움과 식사와 요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했다. 비싼 요리가 아니더라도 저녁 시간의 여유를 통해 가족과 시간을 공유하고 많은 대화를 하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게 삶의 질이라는 생각을 했다.


PS. 이날 계산은 여성분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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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게 맞냐고 사람들에게 몇 번을 되물었다. 단체사진은 찍지도 않았다. 내 결혼식인지 부모의 결혼식인지 모를 만큼 내가 아는 얼굴보다 부모님이 아는 얼굴이 많거나, 친하지도 않은 김대리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부를 사람이 없다며 언젠가 하게 될 내 결혼식의 하객 수를 걱정했던 철없던 시절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기 싫지만 동료의 결혼식이니까, 내가 안 가면 저 사람이 내 결혼식에 안 올 거니까 등의 이유를 대며 그 귀한 주말을 결혼식장에서 의미 없이 보낸 모습이 떠올랐다. 싱가포르에서 좋았던 점 중에 하나가 쓸데없는 결혼식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으니 결혼식을 다니며 알게 모르게 피곤했나 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결혼식에 참석했던 이전 회사 동료들 중 내가 연락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던가?


“하객 대행 알바 구함 25~35세 남/여. 부케 받으실 분도 구해요.”


이쯤 되니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가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나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을 이색 아르바이트.(혹시 중국에도 있으려나?) 하객 머릿수를 채우고 같이 사진 찍는 걸로도 모자라 부케 받을 사람까지 구한단다. 부케를 주고받을 정도면 꽤 친한 친구인데 그런 사람까지 돈 주고 고용해서 쓸 만큼 중요한 걸까?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신랑과 신부의 약속이 아니었던가?


스몰웨딩을 하고 싶어도 부모님의 축의금 회수를 위해 일반적인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도 봤다. “성대한 결혼식=부모님의 기쁨과 체면”이라고 하면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걸까? 그리고 내 결혼식에서 30분을 썼다가 다음 사람에게 넘겨지는 닭장 같은 웨딩홀과 잡다한 소품은 또 무엇인가. 결혼식이 진행되는 시간은 얼추 비슷한데 한국에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걸까? 내가 내 돈으로 올리는 결혼식에 내 의지대로 결정되는 것이 과연 몇 개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겠다고 서약하는 자리인데 서약보다는 왜 다른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걸까? 어쩌다 ‘웨딩 푸어’라는 말이 생겼을까? 우리들이 하는 게 결혼식일까, 축의금 회수전 일까? 열심히 비눗방울을 불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30분 간의 결혼식이 끝나고, 프랑스인들이 진짜 결혼식이라고 부르는 파티를 하러 갔다. 파티장 역시 시에서 빌려준 다목적 홀. 우리는 여기서 밤새도록 파티를 할 예정이다. 몇몇 친구들은 전날 미리 도착하여 이곳을 파티장으로 꾸몄다. 색색의 풍선, 꽃가루, 레드카펫, 명찰, 테이블 세팅… 전문가가 꾸민 것이 아니라 조금씩 엉성하지만 그래서 더 정이 간다. 내가 분 풍선이기에, 내가 붙인 이름표이기에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밤 10시가 돼서야 해가 지는 유럽의 여름. 수다와 술을 사랑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결혼식이 끝난 6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밥도 먹지 않고 샴페인과 다과를 먹으며 수다를 떨어댔다. 식전에 술 마시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말하는 아페로(Apero)라는 프랑스어가 있을 정도니, 밤새도록 놀기 위해 시간을 비워둔 오늘의 아페로는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다목적 홀 뒤로 펼쳐진 들판 너머로 해가 진 밤 10시, 본격적인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저녁이 나오자 사람들은 더 흥분했다. 이렇게 다들 잘 먹을 거였으면서 왜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린 걸까?


빛의 속도로 저녁을 먹어 치우고 디저트가 나오는 사이, 흡사 대학교 MT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게임이 시작되었다. 모든 하객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게임을 즐겼다. 아마도 친하지 않은 회사 동료, 얼굴 본 적도 없는 엄마의 친구가 없는 자리라서 더 그렇겠지. 여전히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부부는 망가지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게임을 즐겼다. 열정적인 게임의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한숨 돌릴 무렵, 오늘의 두 주인공은 블루스를 추기 시작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마침 어두워진 조명 사이로 춤을 추는 두 여인, 그들이 느끼는 행복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소피 부부는 파리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삶에 필요한 것들이 다 있는 도시에서, (프랑스도 한국처럼 수도집중 현상이 심하다.)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집이 없거나 수입이 적다며 결혼을 미루고, 혼수로 스트레스받고 파혼까지 하는 곳에서 온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하다. 남자친구는 소피의 결혼식이 프랑스인의 결혼식 중에서도 조촐한 편이라고 했지만,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한 그녀들은 가진 돈 따위와는 상관없이 참 행복해 보였다.

  "엄마, 난 결혼해도 결혼식 할 생각 없으니까 괜히 축의금 뿌리고 다니지 마."

잊을만하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서운해 했지만 진심이었다. 근데 오늘 이 결혼식을 보고 나선 마음이 살짝 풀렸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평생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는 자리에,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아서 간소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다면 결혼식도 해 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P.S. 시차와의 싸움에서 실패한 나는 파티가 한창 진행되던 11시에 파티장에서 뻗어버렸다. 친구들은 나를 근처의 소피네 집으로 옮겼고, 난 신혼부부의 침대에서 다음날 아침까지 신나게 잤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파티에 침대는 비어 있을 예정이었지만, 결혼 첫날 부부의 침대를 쓴 사람은 시차 적응에 실패한 술 취한 여자였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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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방목하려 떠난 여행의 첫날에, 내남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당신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우습지만, 아무튼 나의 첫 유럽 여행은 남자친구의 친구 결혼식 참석으로 시작했다. 13시간의 비행 끝에 파리에 도착한 뒤,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툴루즈에 내렸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라바스띠드(Labastide)라는 정말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남자친구가 이른바 불알친구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2명인데 모두 초등학교부터 같이 다닌 친구들이다.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 이 세 명의 친구는 얼마나 친한지 성적 취향마저 같아 세 명 모두 여성을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 결혼하는 친구는 여자인 소피이다. 그렇다. 남자친구와 같은 취향을 가진 소피 덕에 나는 난생 처음으로 프랑스인의 결혼식 그것도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커플은 결혼식에서 어떤 옷을 입을까? 여기서도 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갈까? 두 여주인공은 어떤 옷을 입을까? 한아름의 궁금증을 안고 도착한 작은 시청.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듯 이 커플도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워낙 소도시라 시청이라기보다는 주민센터 정도로 보이는 작은 건물의 작은 홀에서 결혼식이 치러진다.


먼저 열리고 있던 결혼식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와중에 오늘의 주인공 두 신부가 도착했다. ‘한 명은 정장을 입고 한 명은 하얀 드레스를 입지 않을까?’ 란 나의 이상한 기대는 무너졌다. 둘 다 모두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차에서 함께 내렸다. 너무나 당연한 이성 간의 결혼식만 봐온 데다 게이 커플 중에도 남녀의 역할이 있다고 들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모두가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상상이었다.

 “봉주르~ 나이스투미츄.”

스카이프와 사진으로만 만났던 소피는 내 볼에 뽀뽀하며 반갑고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하객 한 명 한 명과 인사하고 담소를 나누며 결혼식을 기다리는 소피의 모습은 한껏 들떠 있었다. 신부를 꼭꼭 숨겨두는 우리네 결혼식과 달리 두 신부는 너무나 활발하게 하객들 사이를 누볐다. 한 결혼식에서 두 명의 신부를 보는 것도 처음 하는 경험인데 심지어 소피의 그녀는 배까지 불러 있었다. 임신을 어떻게 한 거지? 한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하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마친 커플이 구석으로 가더니 친구 몇 명과 함께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웨딩드레스와 담배라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조합에 어안이 벙벙했다. “새하얀 드레스 수줍은 발걸음♪”은 동쪽의 먼 나라 이야기인가? 웨딩드레스의 하얀색은 순수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We have everything we need!"

앞서 진행되던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과 소피 커플은 다 같이 홀에 들어갔다. 아니 홀이라고 하기도 뭣한 긴 테이블과 의자가 열 개 정도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갔다. 사회, 주례사, 결혼식 도우미, 사진기사? 그런 건 없다. 대부분의 하객들은 서서 결혼식을 지켜봤다. 사회 및 주례사는 시장님이 하고 (작은 도시라서 직접 하신단다.), 사진 찍고, 꽃을 뿌리고, 레드카펫을 까는 것도 다 하객들이 했다. 나는 하나도 못 알아먹은 시장님의 덕담이 끝나자 두 신부가 길게 입맞춤을 하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15분 정도 진행된 예식이 끝나니, 시장님이 새롭게 탄생한 부부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두 신부가 초청한 각 2명의 증인까지 총 6명은 서류에 서명을 했고, 그렇게 결혼식은 끝이 났다. 말로만 듣던 원 스톱 서비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결혼식부터 혼인신고까지 한 자리에서 30분 안에 끝났다. 지금까지 본 가장 소박하고 가장 빠른 결혼식이 끝나자 레드카펫 위로 두 신부가 행진했다. 손을 맞잡은 두 여인은 행복하게 웃었고, 하객들은 나팔을 불고 비눗방울을 불고 꽃가루를 던졌다. 

우연히 그리고 장난스럽게 여자와 데이트한 날, 소피는 남자들을 만나며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어떤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의 부모님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남자와 데이트를 시작했는데, 소피에게 그건 답이 아니었다. 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한 소피가 지금 여기에 서 있다. 프랑스에서는 2013년에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아무리 합법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이 둘의 결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과 색안경을 낀 사람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곳에는 사랑할 만한, 사랑해도 되는 사람을 선택한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기에 그 사람을 선택한 두 여인이 있다.


결혼 전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을 한 소피의 그녀는 결혼식 당시 이미 임신 7개월에 접어들었고, 그로부터 3개월 후 귀여운 남자아이를 낳았다. (잔소리 좀 하자. 임신 7개월인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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