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한국에서 온 XX라고 하고요, 최근 일을 그만두고 유럽을 여행하고 있어요."


유럽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카우치서핑과 히치하이킹이었다. 특히 카우치서핑으로 유럽을 여행한 여행기를 읽고 나서는 ‘그래 이런 게 진짜 여행이지.’라며 현지인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꿈을 꿨다. 하지만 메시지를 계속 보내도 카우치서핑이 처음이고, 추천의 글 하나 없는 나는 줄줄이 퇴짜를 맞았다. 그렇게 카우치서핑을 아예 포기할 무렵, 한줄기 빛과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안녕, 네가 말한 날짜 괜찮은데, 다른 게스트랑 같이 방을 써야 할 거야. 상관없으면 우리 집으로와. 주소는..."


처음 받아보는 “okay” 메시지에 나는 바로 함부르크 행 버스표를 예매했다. 게다가 다른 게스트도 있다니 어색하지도 않고 더 좋을 것이다. 드디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 카우치서핑이 이루어지는구나!

생전 본 적도 없는 나를, 카우치서핑이 처음이라 프로필에 추천의 글 하나 없는 나를 처음으로 재워준 사람은 함부르크의 천사, 나달 아저씨. 그는 30년 전에 시리아에서 독일로 건너와서 이제는 독일에서 산 날이 더 길다고 했다. 아저씨가 간단히 소개해준 방과 거실의 화이트보드에는 그동안 카우치서핑으로 이 집을 다녀갔던 게스트들이 남긴 행복한 메시지가 남아 있었고, 그건 아저씨 인생의 기쁨인 듯했다.


곧 먼저 와 있던 게스트, 미국에서 온 안나가 도착했다. 함부르크에서의 첫날이라고 아저씨는 인도의 난과 비슷한 시리아 식 애피타이저와 구운 연어, 그리고 감자튀김으로 구성된 맛있는 저녁을 차려 주셨다. 공짜로 재워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근사한 밥까지 차려주시는 아저씨는 사람에게 베푸는 게 그저 즐거운지 시리아 술까지 만드셨다.


“카우치서핑하다 보면 딱 잠만 자고 호스트랑 이야기도 안 하고 가는 게스트들이 있거든. 그 아이들은 참 얌체 같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숙박비를 아끼니까 자기들은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인생은 그게 다가 아니거든.”


아저씨의 그 말에 낮에는 함부르크 시내를 돌아다니다가도 해가 질 무렵이면 바로 집으로 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안나와 함께 셋이서 이야기 했는데 안나는 항상 30분 후에 슬그머니 빠져 방으로 들어가 혼자 놀았고, 심심한 아저씨를 걱정하는 오지랖 넓은 나만 아저씨와 함께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시리아에 산 날보다 독일에 산 날이 더 많아. 독일 시민권도 있지만, 여전히 독일은 남의 나라야. 가끔씩 참 외로워."

                              
4년이란 시간 남의 나라에 살면서 가끔씩 주체할 수 없이 외로웠는데, 30년을 살아도 그건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느낌인가 보다. 독일인과 뿌리까지 섞일 수 없는, 그들과 매일 부대끼며 지내도 채워지지 않는 그 느낌. 나만 느낀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뭔가 위안이 되었다.


아저씨는 아침마다 프랑스 라디오를 들어서, 덕분에 아침 먹는 내내 우리는 ‘봉주르’를 들어야 했다. 아랍어, 독일어, 영어까지 3개 국어를 하지만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은 게 가장 후회된다는 아저씨는 그 후회를 끝내려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단다. 그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영어만으로 벅차다며 매번 제2외국어를 배우려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는데 아저씨를 보니 후회하기 전에 시작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같이 좋은 호스트를 만나서 전 운이 정말 좋아요. 고마워요.”

"고맙다고 안 해도 돼. 정말 나한테 고마우면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기회를 놓치지 마. 작은 행동이지만 그게 우리가 사는 곳을 좋게 만드는 일이야. 선 순환을 만드는 거지."


예수님인가? 아저씨는 먹여주고 재워주신 것도 모자라 교훈과 따뜻한 마음까지 안겨 주셨다. 마음이 한창 감동으로 차 오를 무렵 아저씨는 뜬금없는 말을 했다.


“나 게스트들한테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는데 너 참 매력 있고, 좋은 사람 같아. 여행 잠깐 쉬고 독일에 좀 더 있으면 안 돼? 몇 달 동안 여기서 지내도 돼. 너 어차피 일도 그만 두었다며.”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아저씨는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부담스럽도록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정신이 화들짝 깼다.


“너 그 애랑 결혼할 거야?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어.”


독일인과 뿌리까지 섞일 수는 없어 항상 이방인 같다는 아저씨는 이런 부분에서는 뼛속까지 유러피언이었다.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고마운 호스트라 뭐라 말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피곤하다 말하고 방에 들어갔다.


‘내일 당장 다른 데 찾아서 나가야지.’


하지만 나갈 때 나가더라도, 아저씨에게 이 찝찝한 기분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늦게 집에 들어간 나는 나를 걱정하는 아저씨에게 내 기분을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게 좀 이상한 것 같지만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기분 풀어. 우리 집에 머무는 게스트에게 안 좋은 기억을 주기 싫어. 이젠 너를 게스트로만 볼게.”

 
‘게스트로만? 아이고 아저씨, 제발 좀.’


그 이후 덜 따뜻해진 아저씨는 다른 게스트들 앞에서 일부러 날 놀리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 했고, 그런 모습에 난 괜히 미안했다. 아저씨는 내가 떠나는 날 저녁에는 마지막이라고 맛있는 저녁을 만들었고, 내가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함부르크에 하루 더 머무르라고 했다.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게스트의 아침과 저녁까지 다 챙겨주고 신경 쓰는 호스트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사 왔던 머그잔을 선물로 드리고 함부르크를 떠나는 길, 색다른 여행의 기억을 만들어 준 나달 아저씨를 생각했다. 아저씨 때문에라도 함부르크는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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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칠레 하우스(Chile haus)와 하펜시티(Hafen city)를 보기 위해 항구로 왔다. 독일 제 1의 항구이자 유럽 제2의 항구인 함부르크의 랜드마크인 칠레 하우스(Chile haus). 단한 군데의 빈틈도 없이 빨간 벽돌로 촘촘히 쌓아 올린 건물에 과연 철저하게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독일인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인간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내면이 왜곡과 과장으로 표현된,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건물’이라는 설명을 보기 전에도 이미 따스함은 느낄 수 없었다. 아름답고 웅장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가득한 칠레 하우스와, 그 건물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마치 거대한 괴물처럼 나를 내려다보았다.

칠레 하우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은 칠레와의 무역거래로 큰 부를 쌓았다. 성공한 무역상이 지은 건물이 가장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란 것이 보여주듯, 빨갛고 네모난 건물이 바다의 한 면을 둘러싸듯 들어서 있는 이 일대는 모두 상품 창고와 무역 회사였다. 괜히 부산에 온 듯 함부르크에 더 정이 갔다.

오래 된 건물에서는 최대한 건물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모든 물건을 옥상에 설치된 도르래를 이용해서 옮긴단다. 무엇보다 독특한 건 문도 없고 정지하지도 않는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눈치를 보다 뛰어들어야 한다. 아름다운 옛 건물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하지만 목이 없는 사람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됐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먼저 차를 수입해 판매했다는 곳은 이제 근사한 카페가 되었다. 터키인이 운영하는 페르시아 카펫 상점이 있고, 콜롬비아에서 직수입한 커피콩으로 커피를 만드는 유명 카페가 있었다. 그 어느 곳보다 수입품을 빠르게 입수하는 곳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하펜시티 근처는 이국적인 상점으로 가득했다.

‘항구 도시’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유흥가는 이곳 함부르크에도 어김없이 존재한다. 함부르크의 거대 어시장 뒤편의 상파울리(SaintPauli) 지역을 지나가면 ‘청소년 통행 금지’ 표지판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함부르크 최대의 유흥가 레파반 (Reeperbahn)이 나타난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야한 간판은 오히려 암스테르담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오후의 햇살 아래 서 있는 간판은 불편해 보였지만 구경하는 재미만큼은 쏠쏠했다. 그러다 그 길의 바로 끝에서 적당히 벽처럼 보이고 싶은 벽과 마주했다.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갈 때처럼, 벽 너머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함부르크의 홍등가로 들어가는 입구. 18세 이하와 여자는 이 너머로 갈 수 없다는 경고가 커다랗게 붙어 있다. 호기심에 살짝 넘어갔다가 출근 준비 중인 여자와 눈이 마주쳐 황급히 돌아 나왔다.

초창기 비틀즈는 5명이였다고 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한 명이 더 서 있다.


사실 이 곳은 하룻밤의 유희를 찾는 사람들뿐 아니라 비틀스 팬들의 성지기도 하다. 이 민망한 간판이 즐비한 거리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비틀스 광장’으로 불리고 비틀스 철제 조형물까지 설치되어 있다. 그 비틀스 조형물이 손바닥보다 작은 속옷만 걸친 여자들의 사진을 마주하고 있는 게 참 우스웠다. 영국에서 건너 온 가난한 무명밴드 비틀스는 1960년부터 2년 간 이 곳 펍에서 노래하고연주하며 실력을 쌓았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영국에서 건너온 가난한 청년들에게 이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스트립클럽과 성인 쇼가 난무하는 이곳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을 것 같다. 전설로 불리는 밴드의 시작은 술 취한 뱃사람들이 드나들던 허름한 펍이었다. 그 대단한 비틀스가 이 거리에서 묵묵히 실력을 기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도 무명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위안이 되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든, 연습하고 실력을 쌓다 보면 기회가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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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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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리와 레파반 지역만 보고는 함부르크는 옛 건물이 많이 없는 줄 알았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큰 성 미카엘 성당과 그 주변 건물들, 시티홀 등 중세 느낌이 물씬 나는 건물들이 많았다.

함부르크 하루 일정의 처음을 언제나 장식하는 알스터 호수를 출발점으로 해서 5분도 안 되는 곳에 위치한 함부르크의 시티홀. 브뤼셀에서 봤던 시티홀이 순간 떠올랐는데 그보다 훨씬 크고 넓은 느낌이다. 그리고 더 화려한 느낌. 중앙의 홀은 함부르크와 시티홀의 역사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었고 그보다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광장과 분수대가 반짝 거리고 있었다.

보험이 발달하게 된 계기는 무역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면서 상품을 실은 배가 난파당하거나 해적을 만나는 등 의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배웠다. 배 모형물과 안전한 항해를 책임지는 여신의 모형물이 디자인되어 있는 오래된 보험회사 건물. 예전의 역사 수업 시간이 생각난다. 실제로 이 일대는 부산의 중앙동처럼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러 회사가 밀집해 있는 구역. 적당히 어수선한 그 분위기가 부산의 부둣가와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중앙동과 남포동 일대를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이후에 독일의 다른 도시인 베를린, 예나, 슈투트가르트를 거쳤지만 함부르크가 가장 좋았던 건 아무래도 바다가 있기 때문인 듯싶다.

 

주변에는 주거지역도 꽤나 많이 보였는데 네덜란드에서 보았던 좁은 집들이 바다 주변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풍경이 펼쳐져 아시아에서 온 여행객에게 좋은 볼거리를 다시 선사해 주었다. 이런 벽돌집들은 언제 보아도 기분 좋아진다.

100년도 더 되었을 구식 엘리베이터가 아직 운행하고 있는 어떤 건물 안. 엘리베이터에는 문이 없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하체만, 혹은 올라가고 있는 상체만 보여 상당히 기괴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리고 Stop 버튼이 없어 놀라가는 때를 기다려 뛰어 올라타거나 뛰어내려야 한다. 난데없이 운동하는 느낌? ^^;


꾸물거리는 날씨와 왠지 잘 어울리는 벽돌색 건물을 따라 계속 걷다가 함부르크에서 가장 큰 성 미카엘 성당을 만났다. 1,600년대에 지어진 건물답게 파란만장한 역사를 함께한 성당은 화재에 휩싸이기도, 벼락을 맞기도 하면서 여러 차례 재건축되어야만 했다. 실제로 성당 종탑 부분이 본래의 벽돌 건물과 달리 철제로 지어진 이유도 더 이상 불에 타지 말라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것이다.

성당 안에서 운 좋게도 오르간 연주 연습을 들을 수가 있었다. 간단한 건반 터치만으로도 굉장히 웅장한 느낌. 처음 듣는 오르간 소리에, 소리에 압도당하는 아니 압도보다 무언가 나를 내려보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든다. 마침 내리기 시작하던 비를 피해 성당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까지, 성당 안에선 작은 오르간 콘서트가 열린 듯하다.


긴 계단을 통해 올라간 성당 종탑에서는 함부르크 시내 전경을 어느 방향에서나 즐길 수 있었다. 어느 방향이나 물을 끼고 있는 도시. 성당에 들어올 때 조금씩 내리던 비는 탑에 올라왔을 때는 바람과 함께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더 오래 시내 전경을 즐기고 싶었으나 한기가 돌기 시작하는 몸은 성당 안에 다시 들어가자고 꼬드겼고, 결국 나는 성당 지하의 크립트(Crypt, 무덤)까지 돌아보고 말았다. 건물 안에 무덤이 있는 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봤지만, 이렇게 매주 미사가 열리는 곳 아래에 무덤이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성직자들과 함께 부유한 귀족들은 이곳 성당 지하에 묻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바깥 아무 데나 묻혔다. 부유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그렇게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렇게 종탑, 크립트까지 섭렵했건만 비는 아직 그치지 않았다. 마침 배가 고파 근처 작은 가게에 들어가서 소시지가 들어간 빵 중 아무거나 골라 대충 배를 채웠으나, 비는 더 거세게 내린다. 아무래도 비 맞을 각오를 해야 될 듯 싶다. 젖어가는 지도를 들고 요한 브람스 박물관을 찾아갔다. 브람스라는 이름은 어릴 때 피아노를 치면서 들었던, 그의 곡을 연주하기도 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다. 피아노 치는 것 참 좋아했는데 그것도 한 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잊고 있던 예전 기억들, 감성들이 살아나고, 잊고 있던 이름들도 함께 떠오른다. 그렇게 어린 시절, 6년간 배웠던 피아노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려 브람스 박물관에 갔다.

몇백 년 전의 악보와 피아노가 이렇게 보존되어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연주했던 그 음악. 제목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귀는 아직도 그 음악을 기억하고 있다. 여행마저도 내 기억에 의해 이렇게 주관적으로 그려지는데 여행 가이드 북을 열심히 보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메트로 역이 어딘지 알음알음 찾아서 다시 알스터 호수로 갔다. 비 오는 호수가 보고 싶어서. 운동화는 이미 다 젖어 발도 시려오고, 머리도 이미 비에 홀딱 젖었지만 우산 없이 이렇게 비를 맞는 게 참 좋아 계속 그러고 싶었다. 비에 아랑곳 않고 조정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요트도 있었다.

자유롭게 비를 맞을 수 있는 권리를 마음껏 누리는 하루여서, 더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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