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방목하려 떠난 여행의 첫날에, 내남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당신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우습지만, 아무튼 나의 첫 유럽 여행은 남자친구의 친구 결혼식 참석으로 시작했다. 13시간의 비행 끝에 파리에 도착한 뒤,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툴루즈에 내렸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라바스띠드(Labastide)라는 정말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남자친구가 이른바 불알친구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2명인데 모두 초등학교부터 같이 다닌 친구들이다.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 이 세 명의 친구는 얼마나 친한지 성적 취향마저 같아 세 명 모두 여성을 좋아한다. 그리고 오늘 결혼하는 친구는 여자인 소피이다. 그렇다. 남자친구와 같은 취향을 가진 소피 덕에 나는 난생 처음으로 프랑스인의 결혼식 그것도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커플은 결혼식에서 어떤 옷을 입을까? 여기서도 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갈까? 두 여주인공은 어떤 옷을 입을까? 한아름의 궁금증을 안고 도착한 작은 시청.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듯 이 커플도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워낙 소도시라 시청이라기보다는 주민센터 정도로 보이는 작은 건물의 작은 홀에서 결혼식이 치러진다.


먼저 열리고 있던 결혼식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와중에 오늘의 주인공 두 신부가 도착했다. ‘한 명은 정장을 입고 한 명은 하얀 드레스를 입지 않을까?’ 란 나의 이상한 기대는 무너졌다. 둘 다 모두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차에서 함께 내렸다. 너무나 당연한 이성 간의 결혼식만 봐온 데다 게이 커플 중에도 남녀의 역할이 있다고 들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모두가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상상이었다.

 “봉주르~ 나이스투미츄.”

스카이프와 사진으로만 만났던 소피는 내 볼에 뽀뽀하며 반갑고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하객 한 명 한 명과 인사하고 담소를 나누며 결혼식을 기다리는 소피의 모습은 한껏 들떠 있었다. 신부를 꼭꼭 숨겨두는 우리네 결혼식과 달리 두 신부는 너무나 활발하게 하객들 사이를 누볐다. 한 결혼식에서 두 명의 신부를 보는 것도 처음 하는 경험인데 심지어 소피의 그녀는 배까지 불러 있었다. 임신을 어떻게 한 거지? 한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하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마친 커플이 구석으로 가더니 친구 몇 명과 함께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웨딩드레스와 담배라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조합에 어안이 벙벙했다. “새하얀 드레스 수줍은 발걸음♪”은 동쪽의 먼 나라 이야기인가? 웨딩드레스의 하얀색은 순수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We have everything we need!"

앞서 진행되던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과 소피 커플은 다 같이 홀에 들어갔다. 아니 홀이라고 하기도 뭣한 긴 테이블과 의자가 열 개 정도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갔다. 사회, 주례사, 결혼식 도우미, 사진기사? 그런 건 없다. 대부분의 하객들은 서서 결혼식을 지켜봤다. 사회 및 주례사는 시장님이 하고 (작은 도시라서 직접 하신단다.), 사진 찍고, 꽃을 뿌리고, 레드카펫을 까는 것도 다 하객들이 했다. 나는 하나도 못 알아먹은 시장님의 덕담이 끝나자 두 신부가 길게 입맞춤을 하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15분 정도 진행된 예식이 끝나니, 시장님이 새롭게 탄생한 부부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두 신부가 초청한 각 2명의 증인까지 총 6명은 서류에 서명을 했고, 그렇게 결혼식은 끝이 났다. 말로만 듣던 원 스톱 서비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결혼식부터 혼인신고까지 한 자리에서 30분 안에 끝났다. 지금까지 본 가장 소박하고 가장 빠른 결혼식이 끝나자 레드카펫 위로 두 신부가 행진했다. 손을 맞잡은 두 여인은 행복하게 웃었고, 하객들은 나팔을 불고 비눗방울을 불고 꽃가루를 던졌다. 

우연히 그리고 장난스럽게 여자와 데이트한 날, 소피는 남자들을 만나며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어떤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의 부모님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남자와 데이트를 시작했는데, 소피에게 그건 답이 아니었다. 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한 소피가 지금 여기에 서 있다. 프랑스에서는 2013년에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아무리 합법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이 둘의 결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과 색안경을 낀 사람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곳에는 사랑할 만한, 사랑해도 되는 사람을 선택한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기에 그 사람을 선택한 두 여인이 있다.


결혼 전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을 한 소피의 그녀는 결혼식 당시 이미 임신 7개월에 접어들었고, 그로부터 3개월 후 귀여운 남자아이를 낳았다. (잔소리 좀 하자. 임신 7개월인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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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