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칠레 하우스(Chile haus)와 하펜시티(Hafen city)를 보기 위해 항구로 왔다. 독일 제 1의 항구이자 유럽 제2의 항구인 함부르크의 랜드마크인 칠레 하우스(Chile haus). 단한 군데의 빈틈도 없이 빨간 벽돌로 촘촘히 쌓아 올린 건물에 과연 철저하게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독일인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인간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내면이 왜곡과 과장으로 표현된,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건물’이라는 설명을 보기 전에도 이미 따스함은 느낄 수 없었다. 아름답고 웅장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가득한 칠레 하우스와, 그 건물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마치 거대한 괴물처럼 나를 내려다보았다.

칠레 하우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은 칠레와의 무역거래로 큰 부를 쌓았다. 성공한 무역상이 지은 건물이 가장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란 것이 보여주듯, 빨갛고 네모난 건물이 바다의 한 면을 둘러싸듯 들어서 있는 이 일대는 모두 상품 창고와 무역 회사였다. 괜히 부산에 온 듯 함부르크에 더 정이 갔다.

오래 된 건물에서는 최대한 건물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모든 물건을 옥상에 설치된 도르래를 이용해서 옮긴단다. 무엇보다 독특한 건 문도 없고 정지하지도 않는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처럼 눈치를 보다 뛰어들어야 한다. 아름다운 옛 건물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하지만 목이 없는 사람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됐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먼저 차를 수입해 판매했다는 곳은 이제 근사한 카페가 되었다. 터키인이 운영하는 페르시아 카펫 상점이 있고, 콜롬비아에서 직수입한 커피콩으로 커피를 만드는 유명 카페가 있었다. 그 어느 곳보다 수입품을 빠르게 입수하는 곳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하펜시티 근처는 이국적인 상점으로 가득했다.

‘항구 도시’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유흥가는 이곳 함부르크에도 어김없이 존재한다. 함부르크의 거대 어시장 뒤편의 상파울리(SaintPauli) 지역을 지나가면 ‘청소년 통행 금지’ 표지판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함부르크 최대의 유흥가 레파반 (Reeperbahn)이 나타난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야한 간판은 오히려 암스테르담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오후의 햇살 아래 서 있는 간판은 불편해 보였지만 구경하는 재미만큼은 쏠쏠했다. 그러다 그 길의 바로 끝에서 적당히 벽처럼 보이고 싶은 벽과 마주했다.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갈 때처럼, 벽 너머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함부르크의 홍등가로 들어가는 입구. 18세 이하와 여자는 이 너머로 갈 수 없다는 경고가 커다랗게 붙어 있다. 호기심에 살짝 넘어갔다가 출근 준비 중인 여자와 눈이 마주쳐 황급히 돌아 나왔다.

초창기 비틀즈는 5명이였다고 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한 명이 더 서 있다.


사실 이 곳은 하룻밤의 유희를 찾는 사람들뿐 아니라 비틀스 팬들의 성지기도 하다. 이 민망한 간판이 즐비한 거리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비틀스 광장’으로 불리고 비틀스 철제 조형물까지 설치되어 있다. 그 비틀스 조형물이 손바닥보다 작은 속옷만 걸친 여자들의 사진을 마주하고 있는 게 참 우스웠다. 영국에서 건너 온 가난한 무명밴드 비틀스는 1960년부터 2년 간 이 곳 펍에서 노래하고연주하며 실력을 쌓았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영국에서 건너온 가난한 청년들에게 이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스트립클럽과 성인 쇼가 난무하는 이곳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을 것 같다. 전설로 불리는 밴드의 시작은 술 취한 뱃사람들이 드나들던 허름한 펍이었다. 그 대단한 비틀스가 이 거리에서 묵묵히 실력을 기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도 무명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위안이 되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든, 연습하고 실력을 쌓다 보면 기회가 오는 걸까?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유럽 독일 | 함부르크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돌아온싱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