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 비로소 혼자가 되어 내가 태어난 대륙이 아닌 유럽이란 곳을 여행한다. 정말 아무에게도 의지할 곳 없이 나 혼자 스스로 다녀야 할 시간. 사실 어젯밤 12시까지도 아침에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했었다. 가고 싶은 곳도 없다. 그러면 이동시간이 가장 짧을 나라는 어디일까? 

그래 가자, 벨기에로, 브뤼셀로. 

단지 파리에서 버스로 3시간이란 이유만으로 즉흥적으로 브뤼셀 행 버스를 예매하고 잠들었다.


버스 터미널로 가기 위해 혼자 지하철을 타니 비로소 내가 외국에 다시 혼자 떨어져 있음이 새삼 느껴진다. 출근하는 파리 시민들 틈에 캐리어를 끌고 적잖은 민폐를 끼치며 도착한 터미널. 세상에! 버스 각 좌석마다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잭이 있다. '이런 예쁜 아이들을 보았나!'

만화박물관에서

이전 동남아를 여행할 때처럼 숙소 예약은 도착해서 하기로 하고 브뤼셀에 내렸다. 파리에서부터 우중충하던 하늘은 브뤼셀에서 비로 바뀌어 있었고, 프랑스어만 가득한 터미널 안에서 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뱅뱅 돌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관광안내소를 찾았건만 점심 먹고 1시까지 오겠다는 성의 없는 팻말만 붙어 있다. 음.. 브뤼셀과 벨기에에 대한 단 하나의 정보도 없이 그냥 이곳에 와서 하나하나 부딪히겠다는 내 생각은 너무 무모했던가?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별 탈 없이 여행 다녔던 건 그저 나의 행운 중에 하나였나... 

그렇게 1시에 다시 문을 연 관광안내소는 브뤼셀 지도를 1유로에 팔고 있었다. 아니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돈 주고 팔고 있다니, 너무 쪼잔한 거 아니야? 눈물을 머금고 1유로를 주고는 직원에게 내가 궁금한 모든 것을 캐묻기 시작했다. 어디가 브뤼셀의 중심지인지 어디 가야 괜찮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는지 등등.


그렇게 약간의 정보를 얻은 후 이름도 부르기 힘든 곳으로 지하철을 타고 출발했다. 여전히 비 내리는 거리. 모자를 푹 눌러쓰고 젖은 지도를 보며 우선 짐을 놔두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길. 혼자 길 찾는 동양인 여자가 안쓰러웠던지 지나가는 잘생긴 청년들이 길을 알려준다. 내가 걷던 길과 반대의 길이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30분 정도 걸었는데 뭔가 이상하다. 지도 상에선 이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는데 왜 이리 가도 가도 나오지 않을까.

다시 제자리에 서서 지도를 자세히 본다. 아뿔싸! 길을 알려준 남자들은 나보다 더한 방향치였다. 다시 내가 원래 가던 방향으로 다시 걸으며 온 골목길을 캐리어를 질질 끌고 헤매며 이제는 제발 아무 게스트하우스만 나오길 바랄 무렵. 내 눈 앞에 게스트하우스 하나가 등장했다. 

"Thank God!"

이미 2시간 정도 비를 쫄딱 맞아 몸도 으슬으슬하게 떨린다. 여행이고 뭐고 잠부터 좀 자고 싶다. 12시 좀 넘은 시간에 브뤼셀에 도착했지만, 숙소에 도착하니 3시가 넘었다. 길에서 3시간을 헤매고 다녔다. 아까운 내 시간... 


체크인하고 들어온 곳은 세명이 함께 방을 쓰는 곳인데 현재 체크인 한 사람은 나뿐이다. 뭔가 예감이 좋다. 그날 밤 이 방에 나만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 침대도 정말 깔끔하고. 뭔가 좋다. 침대 옆의 창문을 통해 비 오는 브뤼셀 거리를 보았다. 맞은편의 쇼핑몰 덕분에 낭만적인 그림은 연출되지 않지만, 비 오는 브뤼셀. 좋다.


침대에 계속 있으면 그대로 잠들어버릴 것 같아 그냥 나왔다.  비 오는 오후 갈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숙소에서 얻은 지도를 다시 보며 갈 곳을 궁리하다가 가까운 곳에 만화 박물관(The Belgian comic strip center)이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즐겁게 봐 온 스머프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너무나도 유명한 틴틴의 고향, 브뤼셀. 그것만으로도 만화박물관은 충분히 가 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만화 박물관 입구, 역시 벨기에 만화의 대표주자 스머프와 틴틴이 지키고 있다. 























틴틴과 스머프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들어가니 으레 모든 박물관들이 그렇듯이 만화의 역사부터 나를 맞이한다. 흥미로운 점은 만화는 문자와 말이 없던 시절부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해 왔던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렇지 인류 최초의 그림이라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 역시도 그렇지. 그 당시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몇천 년이 지난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했는지 그 그림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명작 속에 숨어있는 재기 발랄한 캐릭터들. 그리고 풍자와 비판 기능을 수행하기에 참으로 효과적인 그림까지도.

 

 드디어 스머프를 만나는 시간. 어릴 적 스머프와 함께했던 추억이 마구 쏟아진다. 함께 가가멜을 미워하고 "랄랄라 랄랄라"를 같이 부르던 어린 시절 나와 함께 기억을 공유했던 그 스머프가 소중할 뿐이다. 스머프의 바지까지 이렇게 귀엽게 빨랫줄에 걸려 있다.

프랑스어 발음으로 '땅땅' 우리에게는 '틴틴'.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탐험하는 '인디아나 존스'같은 캐릭터.

두 시간 여를 이리저리 돌아보고 나왔더니 비가 그쳐 있다. 비그친 브뤼셀은 더 깨끗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한여름 비가 지나간 자리, 브뤼셀은 말끔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 있다. 거리의 악사들도 다시 나와 연주를 시작하고, 사람들은 다시 활기차게 걸어 다니기 시작한다.


운 좋게도 오늘 밤 내가 묵는 방에 다른 여행객들은 없다. 벨기에에 왔으니 캔맥주를 몇 개 사다 마시며 잠들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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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아온싱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