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넷째 날, 드디어 파리의 상징 에펠타워를 보러 가는 날 :)

메트로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 저 멀리 에펠타워가 보인다.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돼. 파리에 오는 관광객의 99%가 오는 곳이다. 오늘도 날씨가 여전히 좋다. 셔츠를 벗고 풀밭에서 누워 파리 햇살에 에펠탑을 배경으로 일광욕 중이다. 정말 이 날씨를 온몸으로  즐기는구나. 

이 잔디밭에서 가끔씩 작은 공연도 열리고, 여름밤에는 시민들이 돗자리와 맥주를 들고 삼삼오오 이곳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적당히 가벼운 그 여름밤의 공기가 생각나서 괜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에펠탑으로 걸어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내게 다가오는 흰 종이를 들고 있는 집시 언니들. 셀카봉을 들고 어기적 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상인들. 그렇게 걸어 에펠탑에 도착하였다. 밑에서 보니 영락없이 그냥 철탑이다. 처음 에펠탑이 지어졌을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했고, 소설가 모파상은 파리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이 탑이 싫어 에펠탑 1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단다. 탑은 변한 게 없는데, 사람들이 변해서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라며 이 탑을 찬양한다. 탑 입장에서 우리는 얼마나 가벼운 인간들일까. ^^ 

지난 월요일 오페라 가를리에에 갔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프랑스 사람들 건물에 사람 이름 새기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에펠탑을 만들 당시 수고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이렇게 탑에도 새겨져 있다. 그 어떤 보상보다도 탑에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 엄청난 보상일 듯하다.


에펠탑 꼭대기로 올라가는 입구의 길은 이미 길다. 2,3 시간은 기다려야 될 듯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만큼 기다려서 올라가야 할까?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일단 줄에 서서 기다려 본다. 성수기 중에서도 극성수기인 지금 그중에서도 엄청난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있다. 줄은 서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극심한 고민이 왔다 갔다 한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이 좋은 시간에 파리에서 줄이나 서고 있어야 할까. 이런 결정장애 류의 고민에 기분이 금세 가라앉았다. 나도 참, 몸이 줄을 서고 있으면 마음이라도 그냥 편하게 먹고 있으면 안 될까... 

2시간 후, 겨우 4층까지 올라갔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이 쓸데없다는 걸 깨달았다. 4층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 풍경은 어마어마했다. 1층은 너무 더웠는데 4층만 돼도 바람이 불어와 구경하기 더없이 완벽한 때였다. 역시 높은 건물이 없어서 바람이 시원시원하게 불어 대나 보다. 그러면 꼭대기는 얼마나 시원할까? 다시 그렇게 꼭대기로 올라가는 줄에서는 기다림에 대한 지루함이 아닌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올라가는 길, 여기서도 보이는 "나 여기 다녀감"류의 낙서들. 이런 낙서는 정말 만국 공통의 문화인가 보다. 쯧쯧

그렇게 3,40분을 더 기다린 끝에 드디어 에펠탑의 꼭대기에 다다랐다. 밑에서 보다 바람이 더 강해 춥기까지 하지만 햇살은 너무 따뜻하고, 하늘도 맑다. 가만히 파리 시내 전경을 보고 있자니 2시간 반가량의 기다림이 그만한 가치로 내게 다가왔다. 며칠 전 가 봤다고 몽마르트 언덕과 개선문이 눈에 들어온다. 

에펠탑 꼭대기에는 이렇게 샴페인을 파는 자그마한 바도 있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마시는 샴페인은 어떨까 싶어 (가격에 흠칫한 후) 한 잔 사서 마셨다. 양도 많지 않고, 멋있지 않은 플라스틱 잔에 주지만 그래도 풍경을 안주 삼아 맛있게 들이켰다.

도시의 미관을 굉장히 중요시 여겨 고층건물의 건축을 자재한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오래된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노력 덕분에 파리는 파리만의 아름다운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파리를 찾는다. 파리에서만 볼 수 있는 그 분위기 때문에. 분명히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가 있을지언데 (분명 6.25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기도 했겠지만) 개발의 명분으로 많이 파괴된 것 같아 씁쓸하다. 


센강도 한강만큼 다리가 많고, 길게 나 있는 가로수들도 보기가 좋다. 멀리 파리의 비즈니스 중심지인 라데팡스가 보인다. 파리에서 유일하게 고층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곳인데, 역시나 파리 시민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곳이란다. 내가 가 보고 싶다고 하니 절대! 가 볼 필요가 없다고 친구가 말린다. 그 앞 초록 공원 안에 덩그러니 위치한 하얀 건물은 루이비통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라던가...



동화책에서 그대로 나온듯한 원색의 차. 너무 귀엽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서 만난 이 귀여운 차는, 가위로 차만 오려서 도로에 붙여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도 차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하다.


그리고 드디어 만났다. 돈 받는 유럽의 화장실. 물론 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은 나는 공짜로 사용 가능하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은 무조건 50센트를 넣어야만 한다. 에펠탑 근처라 워낙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서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한국인의 정서상 화장실 이용한다고 돈을 내라는 건 참 정 없는 짓이다.

그리고 15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전쟁박물관과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다는 앵밸리드 (Hôtel National des  Invalides)를 아주 짧게 관람한 후 근처의 판테온으로 갔다. 도보로 이동 가능해서 참 좋다. ^^  

맨 꼭대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교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지하 묘소, 사령부 등 몇 번에 걸쳐 그 용도가 바뀌었다가 마침내 프랑스 위인들의 묘지로 사용되고 있는 판테옹. 1층에는 2 차세계대전 당시 위인들을 위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역시 왕실에서 지은 교회인 만큼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곳곳에 기독교와 관련된 회화와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에 대해서 많이 모르는 나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퀴리 부부 내외, 빅토르 휴고, 에밀 졸라 그들도 역시 이곳 판테옹에 안치되어 있다. 특히 퀴리 부인은 여성 최초, 그리고 최초로 두 개의 다른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라서 더욱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폴란드 태생이었는데 파리에서 공부하며 주로 거주해서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한다. (폴란드에서는 뭐라고 안 하나?)



그 어떤 위인보다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분도 여기 묻혀 계신다. 성함은 잘 모르지만, 점자를 최초로 발명하신 분이라고 한다. 새삼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세상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이 분은 시각 장애인에게도 글을 알려주고자 점자를 발명하였고, 그 점자를 통해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그중에 한 명이 헬렌 켈러이고, 그녀는 지구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이렇게 보면 정말 중요하지 않은 일이 하나 없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해도 난 내 사명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판테온 내부에는 이렇게 아직 빈자리가 있는데, 미래 프랑스의 위대한 사람을 위한 자리라고 한다.

판테온에 안치되는 사람들은 이미 장례를 치웠음에도 다시 국장을 치르는데 이런 이벤트가 사람들로 하여금 프랑스에 더 자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 같다. 다른 곳에 국립묘지가 당연히 있겠지만, 판테옹이란 곳에 특별히 시신을 안치하면서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보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는 듯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뒤, 프랑스는 당시 독일 나치 정부를 도왔던 모든 사람들을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어도- 모두 처단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역사의 잘잘못에 대해 칼 같은 평가를 내리는 데서부터 프랑스의 힘이 나오는 게 아닐까? 프랑스인들의 자부심 중 일정 부분도 이런 곳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한편의 위인전을 읽고 나온 듯한 판테옹에서 5분 거리에는 뤽상부르 공원이라는 예쁜 공원이 있다. 뤽상부르의 철자는 룩셈부르크와 같은데 이 공원과 그 나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근데 왜 이렇게 공원 이름이 귀에 익지? 알고 보니 김어준 아저씨가 유럽  배낭여행 중에 이 뤽상부르 공원에서 노숙을 했던 그 공원이었다. 그 강연이 참 재밌어서 몇 번을 들었더니 공원 이름마저 외웠나 보다. (참고로 그 강연은 청춘페스티벌 https://www.youtube.com/watch?v=1zmnoElezRg )

나꼼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엉뚱하게도 난 이 공원에 앉아서 난 김어준 아저씨와 그의 강연을 생각했다. 자신의 결대로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지... 김어준  아저씨처럼 살면 인생에서 최소한 후회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어울리지 않게 야자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 아이는 과연 살아있는 걸까?


여행의 묘미는 발길 닫는 대로 아무 곳이나 걷는 것. 가끔 길을 잃으면 어때. 꼭 그렇게 길을 잃어 지나가는 곳에서 뜻밖의 보물 같은 장소나 물건이나 혹은 사람을 만난다. 

뤽상부르 근처를 걷다 보니 근처의 소르본 대학가까지 오게 되었다. 대학교 근처라 역시 술집도 많다. 그래, 대학생이라면 술을 마셔야지! :p

누구나 대여하여 사용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자전거와 벽돌 바닥 길. 운치가 있다. 그리고 이 사람, 창문에 걸치고 앉아서 주위 신경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막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스케치북을 펴고 바로 스케치를 시작한다.

영등포구  크기밖에 안 된다는 파리에서는  400m마다 지하철역을 하나씩 찾을 수 있어 길 잃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가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이동하여 친구를 만나기로 한 리퍼블릭 광장으로 향했다. 파리의 모든 데모와 집회는 여기서 열린다는 리퍼블릭 광장.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지난달 IS에 의한 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추모 행사를 했다. 지난달 파리 테러가 난 직후의 광장의 모습은 내가 보질 못했지만, 적어도 7월 말 이곳은 여전히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었다. 해당 관청에서는 동상을 잘  관리하지 않나 보다. 더러운 상태로 방치하는 건지 아니면 치워도 시민들이 계속 낙서를 하는 건지...

테러는 일어나도 사람들은 여전히 기타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JU SUIS CHARLIE (나는 샤를리다.)
굳이 동상의 입에 이럴 필요까지야...


저녁에는 싱가포르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말 파리로 돌아간 친구를 만났다. 다시 돌아온 파리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단다. 하지만 청년실업률이 높은 프랑스에서 그는 어렵지 않게 다시 일자리를 구해 파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다시 싱가포르에 갈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는 그에게 아는 헤드헌터들의 연락처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파리에서 사는 게 왜 힘들어?"

"여기서 집 사려면 얼마나 드는지 알아? 그리고 일자리도 많이 없고,,,,"

"그래도 너 지금 파리에서 일하고 있잖아. 그리고 싱가포르 집값 비싼 건 너도 살아봐서 알잖아?"

"그래도 그땐 회사에서 지원해 줬었으니까."


그 아이가 싱가포르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잘 와 닿지 않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사는 게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가?

(이건 나도 공감하지만) 외국에서 살면 항상 휴가 온 느낌이 드는데... 그 느낌이 좋은가? 심지어 회사에서 엄청 스트레스 받고 집에 돌아가는 그 길에서도 홀리데이 느낌이 난다. 그리고 그 느낌이 나의 스트레스를 조금  경감시켜줄 때도 있다.

아님 그냥 다시 프랑스를 떠나고 싶은가?

싱가포르를 떠날 때는 분명 싱가포르가 지겹다고 했었는데 왜 다시 가고 싶어 할까?


나도 싱가포르를 떠났는데 막상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난 싱가포르를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 든다.

내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어디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하지만 싱가포르 살면서 배운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어디 사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 

결국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나의 환경도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을 싱가포르에서 온몸으로 느꼈기에..



Posted by 돌아온싱언니